한국의 임팩트 투자자 8인 인터뷰
임팩트 투자, 재무적인 수익에 사회·환경 가치까지 고려한 투자
작년 전 세계 임팩트 투자 70조원 2020년엔 400조원까지 늘어날듯“상위 1%가 아닌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기업 성공법칙 바뀌는 중”
투자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저성장 시대의 돌파구로 ‘임팩트 투자’가 뜨고 있다. 임팩트 투자란 재무적 수익뿐 아니라 사회·환경적 가치를 고려한 투자를 말한다. JP모건과 ‘글로벌임팩트투자네트워크(GIIN)’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임팩트 투자 규모는 70조원. 1년 전(53조원)과 비교하면 30% 넘게 급증했고, 2013년(9조5000원)에 비해 3년 만에 8배 성장했다. 2020년이면 임팩트 투자 규모가 400조원까지 불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더나은미래는 창간 6주년을 맞아, 한국의 민간 임팩트 투자를 이끌고 있는 8명의 대표주자를 만나 특별 인터뷰했다. D3쥬빌리 이덕준(51) 대표, 미스크(MYSC) 김정태(39) 대표, 소풍(Sopoong) 한상엽(32) 대표, SK행복나눔재단 김용갑 사회적기업 본부장, HGI 정경선(30) 대표, 카이스트청년창업투자지주 이병태(52) 대표, 쿨리지코너 인베스트먼트 권혁태(42) 대표, 크레비스파트너스 김재현(34) 대표다(기관명 가나다순). 8명 모두 “사회·환경 문제가 복잡해지면서 사회적 가치와 결합된 비즈니스가 미래 산업의 중심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편집자
◇투자·금융 전문가 출신 임팩트 투자자, D3쥬빌리 이덕준 대표
“지금까지의 투자는 자본 논리만 있고, 시민적인 가치는 배제돼왔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회의 구성원이자, 세계 시민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기업이 돈을 벌어야 전체적인 시스템이 좋아진다.”
D3쥬빌리의 이덕준 대표는 영국계 자산운용사 슈로드, 시티은행, 크레딧스위스(CSFB) 등 외국계 투자은행에서 경험을 쌓고, 2000년대 G마켓을 나스닥에 상장시킨 재무이사(CFO)로 활약했던 인물이다. 그는 2011년 ‘D3쥬빌리’를 설립, 국내외 투자처를 발굴하고 있다. 2012년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자회사를 만들어 이곳을 주요 무대로 삼아 글로벌 임팩트 투자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G마켓의 창업 멤버들이 주주로 대거 참여한 것이 특징적이다. 창업자인 구영배 ‘큐텐(Qoo10)’ 사장을 비롯, 류광진 전 G마켓 부사장, 양대식 G마켓 전 최고기술책임자(CTO)가 D3쥬빌리의 주주다. 김상범 넥슨 공동창업자, 최권욱 안다자산운용 회장 등 벤처 및 투자 업계에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 모였다. D3쥬빌리가 만든 투자클럽인 ‘D3+(플러스)’에는 주주 외에 임팩트 투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초청하기도 한다. 금융 소외 계층과 과다 채무자를 대상으로 가계 부채 상담 및 소액 금융을 지원하는 ‘희만사(희망을 만드는 사람들)’와 맞춤형 수학 교육 콘텐츠 플랫폼인 ‘노리(KnowRe)’도 D3+ 클럽에서 투자가 결정됐다.
규모는 2000만~1억원으로, 신생 벤처를 투자하는 엔젤투자 기관이다. 지난 5년간 집행한 투자금액은 약 30억원, 투자 기업은 34곳, 후속 투자나 인수합병(M&A) 등으로 투자금 회수(Exit)를 한 기업은 4곳이다. 이 대표는 “투자 기업들이 연평균 20% 이상 순자산가치(NAV)가 상승하고 있다”면서 “단기 수익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큰 회사로 성장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했다. D3쥬빌리의 중점 투자 분야는 교육·헬스·에너지·금융·공유 경제 분야다. 같은 헬스 분야라도 인도의 저소득층 환자를 위한 정기회원제 방문 진료 서비스 ‘세바몹(Sevamob)’부터, 모바일 헬스케어 스타트업인 ‘눔(NOOM)’까지 지역도, 타겟층도 다양하다. 이 대표는 “통상적인 개념으로는 ‘눔’이 소셜 벤처 성격이 약하다고 볼 수 있지만, 비만과 당뇨병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임을 고려할 때, 기술을 활용해 효과적으로 풀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각 기업의 사회적인 임팩트 유무는 투자자가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사회 양극화 문제 심각하죠? 이 문제를 푸는 열쇠는 기업가로 정당하게 성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글로벌 시장과 비교해보면 한국은 임팩트 투자뿐만 아니라 벤처 생태계의 규모와 역동성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전 세계 벤처 투자의 1% 정도밖에 안 돼요. 미국의 밀레니엄 세대(80년대 초반부터 90년대 중반 출생자들)의 상당수가 사회·환경적 요소를 고려해 소비한다고 해요. 앞으로 한국도 더욱 변화될 거예요. 상류 1%를 위한 혁신이 아니라, 대중에게 혜택(benefit)을 줄 수 있는 기업이 성공한다는 것을 계속해서 증명해 나갈 겁니다.”
◇UN 산하기관 출신 임팩트 투자자, MYSC 김정태 대표
“소셜 섹터가 메인 스트림(주류)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대한민국에 민주주의란 말을 앞에 붙이지 않듯, 앞으로는 ‘소셜’이라는 단어를 굳이 쓰지 않아도 될 수 있어요. ”
2011년 설립된 임팩트 투자 및 컨설팅 기관 ‘MYSC(Merry Year Social Company·이하 미스크)’의 3대 CEO인 김정태 대표의 말이다. 초대 대표를 지냈던 정진호 엠씨파빌리온대체투자 부회장은 30년간 증권, 펀드업계에서 종사한 금융 전문가이며, 현재는 미스크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이외에도 윤영각 전 삼정KPMG 회장, 김동호 열매나눔재단 이사장, 곽수근 전 한국경영학회장 등이 대표 주주다.
김 대표는 2007년부터 유엔 경제사회국(UNDESA) 산하기관 유엔거버넌스센터(UNPOG)에서 5년간 홍보담당관으로 일했던 국제기구 종사자다. 2014년 5월부터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김 대표는 “사회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를 비즈니스로 적극적으로 푸는 것을 돕고 싶다”며 기업의 미션을 강조했다.
미스크는 투자한 기업의 비즈니스가 사회적 취약 계층(시니어, 장애인, 경력단절여성 등)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가장 먼저 본다. 지금까지 투자한 기업은 6곳. 이 중 ‘메자닌아이팩’과 ‘요벨’ 모두 북한이탈주민 대상 사업을 펼친다. 메자닌아이팩은 2008년 탈북자 및 사회 취약 계층의 자립을 돕기 위해 설립된 사회적기업이며, 요벨은 탈북 청년 5명이 2014년 창업한 카페다. 김 대표는 “북한이탈주민의 숫자는 2만8000여명으로 소수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사회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했다. 메자닌아이팩은 2013년 미스크의 투자를 발판삼아, 현재 50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전체 직원 40명 중 15명이 탈북자다.
또 하나의 투자 관점은 해당 분야를 리딩하는 ‘선도기업’인지다. 미스크가 임팩트 투자 1호로 셰어하우스를 제공하는 ‘우주(Woozoo)’를 선택한 이유도 이 때문. 김 대표는 “평균 투자 금액이 1억원 미만으로 작기 때문에, 선도기업으로 임팩트 확산에 기여할 수 있는지 꼼꼼히 따진다”고 했다. 우주는 현재 27지점을 만들었고, 주거 공유 문화를 확산했다. 서울시의 ‘사회성과연계채권(이하 SIB)’ 운영기관인 ‘팬임팩트코리아’에 투자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SIB는 민간 투자로 공공 정책 사업을 수행한 후, 성과 목표에 따라 정부가 사업비에 이자를 더해 민간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제도다. 김 대표는 “저성장, 저금리 시대에 프로젝트가 성공할 경우 보상까지 받을 수 있는 시스템 때문에 민간 투자자들의 관심도도 높다”고 덧붙였다.
대기업 대상으로 사회 혁신 컨설팅을 하면서 소셜 벤처와의 접점을 만들어주는 것도 주요 전략이다. 이랜드그룹이 동구밭(발달장애인 사회성 함양을 위한 텃밭 교육 프로그램 운영), 빅워크(걷기만 하면 기부되는 어플 제작), 바이맘(난방텐트 제조), 요벨 등 4곳의 소셜벤처와 협업하도록 이끌었다. 김 대표는 “대기업과 소셜 벤처가 공동 사업을 하면서 궤를 맞춰보고, 이후 조인트벤처나 인수합병(M&A)까지 키워 비즈니스 규모의 확장할 수 있다”며 “사회혁신 기업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전망했다.
◇소셜 벤처 창업가 출신 임팩트 투자자, Sopoong 한상엽 대표
다음커뮤니케이션(現 카카오) 창업자인 이재웅씨가 2008년 설립한 ‘Sopoong(이하 소풍)’은 소셜 벤처 투자 겸 인큐베이팅 기관이다. 지금까지 14개 국내외 소셜 벤처에 초기 투자를 했으며, 그 중 6개가 후속 투자를 받았다. 해외(스킬셰어, 인벤처)를 제외하고는, 모두 소풍이 첫 투자자다. 평균 투자금은 3000만원에서 5000만원 선. 커피 찌꺼기로 느타리버섯을 재배하는 ‘꼬마농부’, 카셰어링 전문 기업 ‘쏘카’, 창작자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 농부와 투자자를 연결하는 크라우드펀딩 ‘농사펀드’, 지식 공유 플랫폼 ‘위즈돔’이 대표적이다. 자본금 3억원으로 2011년 설립된 쏘카는 소풍의 초기 투자 이후, 2014년 베인캐피털로부터 18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고, 2015년에는 SK 최태원 회장이 590억원을 투자하는 등 기업 가치가 300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현재 3000대가 넘는 영업용 차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회원 수도 140만명이 넘었다. 텀블벅도 지난해 네이버와 실리콘밸리 투자자로부터 17억원가량을 투자받았다.
이재웅씨를 비롯해, 2대 CEO인 임준우 전 대표, 올해부터 소풍의 대표를 맡고 있는 한상엽씨까지 모두 창업가 출신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임준우 전 대표는 다음에 입사한 지 3년 만에 최연소 임원(CPO)이 되며 화제가 됐던 인물로 커리어다음과 중국 법인 창업, 퇴사 후에도 식당과 컨설팅 회사까지 창업했다. 3대 CEO인 한상엽 대표는 소풍의 초기 투자를 받은 소셜 벤처 ‘위즈돔’의 창업자다. 소풍의 투자 및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은 3명의 파트너가 함께 논의하고 결정한다. 한 대표는 “투자자들이 밀착 조언을 하지만 최종 결정은 대표에게 오롯이 맡긴다”면서 “재무적인 성과가 있어야 임팩트가 크기 때문에 ‘벤처 방식’으로 일하는 곳에 기본적으로 투자를 하지만, 임팩트를 많이 내는 곳이라면 법인격이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점차 비영리 스타트업에도 투자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올해부터는 3개월간의 액셀러레이팅(기업 육성) 프로그램을 론칭했다. 선정된 기업은 어반비즈서울(도시양봉가 양성 프로그램 운영), 동구밭(발달장애인 사회성 함양을 위한 텃밭 교육 프로그램 운영), 노페땅(인디 밴드 후원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어픽스(유아용품 중고 거래 서비스), 비플러스(사회적 경제 조직을 위한 P2P 대출 플랫폼) 총 5곳. 이들은 2000만원의 초기 지분 투자(8%)와 함께, 매주 선배 기업가로부터 교육과 인큐베이팅을 받고 있다. 한 대표는 “비즈니스 모델과 사회적 가치, 창업가와 팀 등 3가지 요소를 보는데 한 부분이라도 과락이 있으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소셜 임팩트는 각 기업의 서비스와 사업 내용에 따라 측정한다. 농사펀드나 텀블벅의 경우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 및 후원자 숫자로, 꼬마농부의 경우 생태키트 판매 숫자로 임팩트를 측정하는 등의 방식이다. 소풍은 지난 4월부터 시작된 1기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정기적인 ‘기수’ 방식으로 소셜 벤처 창업가를 육성할 계획이다. 한 대표는 소풍의 미션을 명료하게 정리했다.
“소풍은 더 빠르고, 더 지속가능하고,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기업에 투자합니다. 저희는 그것이 소셜 벤처라고 믿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사회공헌으로서의 임팩트 투자, SK행복나눔재단 김용갑 본부장
대기업 재단 중에서는 SK행복나눔재단이 발빠르게 ‘임팩트 투자’에 나서고 있다. 2010년 1월, SK가 대기업 최초로 ‘사회적기업단’을 출범하며 사회공헌의 큰 축을 ‘사회적기업’으로 잡은 것과 일맥상통한다. 김용갑 SK행복나눔재단 사회적기업 본부장은 “사회적기업은 일회성 기부가 아니라 기업의 방식으로 임팩트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면서 “사회적기업 생태계를 위한 건강한 자본 유입이 필수적이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SK행복나눔재단은 2010년부터 세상 사회적기업 콘테스트를 개최하며, 사회 혁신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가와 팀에 상금을 주는 공모 프로그램을 이어왔다. 2013년에는 콘테스트에 임팩트 투자를 연계했고, 2014년부터는 투자 공모전에서 선발된 기업을 대상으로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인 ‘IR캠프’를 진행하고 있다. 김 본부장은 “아이디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행까지 가능한 곳에 집중하자는 의미로 투자로 방향을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첫째 투자 기업으로 농산물 직거래 유통 서비스를 제공하는 ‘파머스페이스’가 선정됐다. 지금까지 임팩트 투자를 받은 기업은 총 17곳. 투자금은 총 37억원이다. 투자 규모는 기업당 5000만원에서 5억 정도다. 대출, 전환사채(일정한 조건에 따라 회사의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채권), 우선주(기업이 배당을 하거나 해산을 할 경우 잔여재산 배분 등에서 보통주보다 우선적 지위가 인정된 주식)투자 등 다양하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분야도 교육·문화예술·헬스·농촌·지역개발·일자리 창출 등 다양하다.
특히 글로벌로 진출하려는 사회적기업이나, 해외에 있는 소셜벤처에도 투자한다.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일반적인 학습이 어려운 아동을 위한 맞춤형 학습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에누마(전 로코티브랩스)’가 대표적이다. 게임개발자 출신 한국인 부부가 만든 게임형 학습 어플로, 지난해 교실 버전 수학교육 콘텐츠는 미국 1200개 학교에서 시범 운영했다. 이곳은 2014년 7월 행복나눔재단의 임팩트 투자에 이어 지난해 소프트뱅크벤처스와 중국의 대표적인 방과 후 학원 업체인 TAL에듀케이션그룹 등으로부터 약 44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SK행복나눔재단은 지난해에는 인도네시아 사회적기업 지원단체 ‘언리미티드 인도네시아’에도 투자하며, 현지 사회적기업가를 발굴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는 노하우가 생겼다는 것도 하나의 강점으로 꼽았다. 김 본부장은 “기업마다 소셜 임팩트의 목표치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면 대출 이자를 줄여준다는 등의 인센티브로 더 많은 사회적인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비영리 단체 대표 출신 임팩트 투자자, HGI 정경선 대표
“민주화 이후 세대에선, 성장보다 분배에 대한 담론이 많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전후 세대에는 굶주림에 대한 공포 때문에 성장에 목을 멜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 지금은 달라졌죠.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윤을 많이 남기는 게 어렵기도 하고요. ‘더불어 잘 사는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봅니다.”
임팩트 비즈니스 회사 ‘HGI’의 정경선 대표는 사회적기업가를 돕는 비영리단체 ‘루트임팩트’의 대표이자, 현대가(家)의 3세다. 그는 2012년 7월 루트임팩트 창업에 이어, 2014년에는 ‘HGI’라는 임팩트 투자 회사까지 설립했다. 정 대표는 “처음에는 성수동의 셰어하우스 ‘디웰’을 위한 부동산 개발 등 특수 목적을 수행했는데, 지난해부터 공공임대주택 사업이나 임팩트 투자 등의 영역으로 확장됐다”고 설명했다. 디웰은 사회적기업가나 비영리 단체 종사자 등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혁신가들이 저렴한 임대료로 생활할 수 있는 주거 및 커뮤니티 공간이다. 정 대표가 일종의 착한 건물주인 셈. 입주 경쟁률이 10대1이 넘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성수동에 소셜 벤처 밸리를 조성하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체인지메이커(ChangeMaker)를 위한 주거 및 오피스 공간 등 생태계 조성을 위한 역할을 하다보니 투자 영역까지 자연스레 확장됐다”고 했다. 현재 서울숲 인근에는 20개가 넘는 소셜 벤처가 둥지를 틀었다.
HGI가 지금까지 투자한 회사는 생생농업유통·두손컴퍼니·마리몬드·도트윈스튜디오·볼런컬처·트리플래닛·프렌트립 등 총 7개. 기본적으로 대출 혹은 지분 투자 방식이나, 투자 형태와 규모는 기업에 따라 다르다. 홈리스의 자립을 돕는 ‘두손컴퍼니’의 경우 지난해 초, 사업 영역을 디자인 및 제품 제작에서 물류 대행 서비스로 확장하면서 추가 자금이 필요했다. 이때 HGI가 임팩트 투자사로 나서며 자금 조달이 가능했다. 두손컴퍼니는 현재 14명의 직원 중 5명이 홈리스 출신이며, 지난 3월부터는 흑자로도 전환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그림으로 디자인 제품을 만드는 소셜벤처 ‘마리몬드’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4배가량 성장했다.
투자 기준은 무엇일까. 다양성·포용성·웰빙이라는 3가지 핵심 가치를 주로 본다. 두손컴퍼니에 투자를 결정한 것도 이 때문. 주류 사회에서 소외된 이웃과 취약 계층에 좀 더 많은 기회를 주는 ‘포용성’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정 대표는 “투자 회사지만 파트너십을 맺고 함께 다양성을 존중하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에 가깝다”면서 “단기간에 자금 회수(EXIT)를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기업이 풀고 싶어 하는 사회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계속 커나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자기 자본만으로 투자를 결정할 수 있기에 가능한 부분이다. 임팩트 투자자로서의 고민이 무엇인지 묻자, 그는 “좋은 취지로 사업을 하면 돈을 못 번다는 편견이 자리잡고 있어 안타깝다”면서 “아무리 안정적으로 돈을 벌고 있다고 해도 덮어놓고 보지 않는 것이 답답하다”고 답했다. 현재 HGI가 투자한 회사들의 누적 연평균 성장률은 150% 이상이다.
◇경영대 교수가 임팩트 투자자로, 카이스트청년창업투자지주 이병태 대표
이병태 교수는 서울대 산업공학 학사와 카이스트 대학원 경영과학 석사, 텍사스대학교 경영학 대학원 박사를 거쳐 카이스트 경영대학의 학장까지 지낸 학자다. 그랬던 그가 카이스트청년창업투자지주(이하 카이스트창투)의 수장을 맡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금융 위기 이후 각 학교의 경영대학원(MBA) 교육에 대한 비판이 크게 일어났어요. 금융이나 경영이라는 것이 남의 돈을 빼앗아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 아니냐는 거죠. 자본주의 4.0 이야기가 나왔죠.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경영대학원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카이스트는 남들이 하지 않지만,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경영학적으로 심도 깊게 다루는 대학을 만들어보자고 한 거죠.”
2013년, 카이스트에 ‘사회적기업가MBA 과정’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카이스트 사회적기업가MBA과정은 국내 최초의 사회적기업 관련 정규 학제로, SK그룹이 선발된 이들에게 2년 동안 등록금을 전액 지원한다. 또한 ‘창업’중심의 실무 과정으로 졸업생들은 사회적기업을 창업하거나, 사회적기업 유관 업무를 맡아야 한다. 청년들이 창업할 수 있는 시드머니(Seed Money)가 필요하자, 2014년 SK 최태원 회장은 사재 100억원을 털어 카이스트창투를 설립했고 이병태 교수가 대표로 임팩트 투자 업무를 맡게 된 것. 이 대표는 “사회적기업도 혁신성이 있으면 자본 시장 내에서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면서 “앞으로 사회적기업계의 유니콘(기업가치 약 1조원이 넘는 대형 비상장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2015년 본격적으로 임팩트 투자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투자한 기업은 9곳. 투자 규모는 기업당 1억~2억원 정도다. ‘사회적기업가MBA과정’ 졸업생뿐 아니라, 외부에서도 투자 대상을 찾는다. 이 중 백패커스그룹(비빔밥 유랑단)의 성장이 고무적이다. 지난 5년간 세계 15개국 23개 도시를 돌며 진행했던 비빔밥 홍보가 해외시장 개척을 앞두고 교두보 역할을 한 것. 지난해에는 미국 보건복지부로부터 지역민에게 건강 음식을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감사패를 받았고, 이어 미셸 오바마가 주관하는 아동 건강 관련 캠페인 지부로도 선정됐다. 백패커스그룹은 팀 전체가 미국으로 떠나, 지사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이외에도 IoT(사물인터넷)를 활용한 주차 공간 공유 서비스인 ‘이노온’, 중국인 관광객(유커) 대상 로컬 여행 콘텐츠를 제공하는 ‘크리에이트립’ 등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들이 눈에 띈다. 이 대표는 “민간 임팩트 투자자가 활성화되면 옥석이 구분되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며 “사회적기업은 100조 복지 시대에 정부의 비효율성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전문 벤처캐피털 출신 임팩트 투자자,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 권혁태 대표
전문 벤처 투자자도 ‘임팩트 투자’ 시장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이하 쿨리지코너)의 권혁태 대표가 선두 주자다. 권 대표는 뱁슨 대학(Babson College)에서 MBA를 마친 후, 미국 이튼밴스(Eaton Vance) 자산운용사 애널리스트와 한국에서 인수합병(M&A) 업무 전문가로 활동하다, 2010년 쿨리지코너를 창업한 인물이다. 6년 만에 운용자산만 600억원대인 중견 벤처캐피털로 성장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한편 쿨리지코너는 2014년 정부출연금으로 조성한 중소·벤처기업 투자금인 ‘모태펀드’ 운용사로 선정된 기관 중 한 곳으로, 지난해에는 40억원 규모의 ‘CCVC 소셜벤처투자조합’을 결성했다. 투자조합에는 모태펀드(25억원 출자)를 비롯해 행복나눔재단, 우리은행, 한화B&B 등이 참여했고, 당초 예상했던 36억원 규모를 넘어섰다.
‘CCVC 소셜벤처투자조합’의 첫 투자 대상은 법률 상담 온라인 플랫폼 ‘로톡(www.lawtalk.co.kr)’을 제공하는 로앤컴퍼니다. 일반인이 느끼는 법의 장벽을 IT기술로 낮춰 법률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소셜 벤처다. 상담 내용을 로톡에 올리면 전문변호사의 답변을 평균 24시간 안에 들을 수 있고, 로톡의 모든 서비스는 상담자나 변호사 모두에게 무료다. 현재 로톡에서 활동하는 변호사는 400명이 넘고, 하루 평균 방문자 수는 5000여명. 지난 6개월간 8000건이 넘는 상담 사례가 등록됐다. 2만명의 변호사가 무한경쟁하면서,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가속화되는 문제에 주목한 것이다. 이들은 비공개 전화 상담이나 계약서 작성 등에서 유료 서비스를 만들어 갈 예정이다. 권 대표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사회적기업이나 소셜 벤처와 일반 기업을 별다르게 나누지 않는다”면서 “사회문제가 다양하다 보니 오히려 사업의 기회가 많을 수 있다”고 했다.
태양광 압축 쓰레기통으로 올해 상반기에만 60억원의 매출을 올린 ‘이큐브랩’을 초기 투자한 것도 쿨리지코너다. 이큐브랩은 2012년 쿨리지코너 3회 창업경진대회 우승팀으로, 5억원의 초기 투자를 받으면서 성장했다. 권 대표는 “이큐브랩이 소셜 벤처인지 나중에서야 알았다”고 했다. 지금까지 쿨리지코너가 투자한 스타트업은 45~50개가량. 이 중 “사회적 가치가 좀 더 강한 기업을 꼽아 달라” 요청하자 로톡, 이큐브랩 등 구체적인 곳을 소개하면서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며 곤란해했다. 그는 “아무리 사회적 가치가 높다고 해도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으면 기업으로서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얼마 전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스마트폰 보조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을 만났는데, CTO가 시각장애인이었는데 기술력이 정말 훌륭한 거예요. 투자자의 감으로 보니,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저시력자나 노인 대상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면 좋겠더라고요. 시각장애인을 위한 소셜 미션도 좋지만, 확산성이 있을 때 그 회사의 임팩트는 커지겠죠? 제가 할 역할이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임팩트 투자 회사 업력(業力) 10년, 크레비스파트너스 김재현 대표
10년 전부터 임팩트 투자자로서의 방향성을 품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성장한 기업가도 있다. 김재현 대표는 서울대 경영대 재학 시절 인근 음식점이나 학교, 기관 등의 웹사이트를 만들면서 회사 설립을 위한 종잣돈을 마련했다. 2004년 선배들이 창업한 자기주도학습 사업인 ‘에듀플렉스’에 초기 투자하며 임팩트 투자자로서의 스타트를 끊었다. 당시 획일화된 사교육 시장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재 에듀플렉스는 전국 100개 지점을 운영하는 교육 회사로 성장했다.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것은 2005년. 싸이맵디지털휴먼웨어(크레비스파트너스 최초 법인명)를 설립하고, IT 컨설팅 및 자문, 아웃소싱 등으로 IT 서비스 사업을 확대했다. 한국에 소셜 벤처 개념이 처음으로 소개되던 시기였던 2006년에는 한국 소셜 벤처 대회(SVCK)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무상으로 IT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년, 소셜 벤처와의 인연을 이어가면서, 사명(社名)을 현재의 ‘크레비스파트너스(이하 크레비스)’로 바꾸고 초기에 꿈꿨던 임팩트 투자기관으로서의 역할이 점차 강화됐다. 서울대학교 발전기금 관리 시스템을 구축한 크레비스는 ‘기부금 사용처가 불투명하다는 인식 때문에 기부가 어렵다’는 생각으로 모금 추적 솔루션 ‘도너스’를 개발했고, 2009년에는 이를 투자하며 독립사업화했다. 2011년 기부금 흐름 추적 기술을 특허로 등록한 도너스는 서울대 의대, 가톨릭 중앙 의료원, 월드비전 등 대형 기관에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크레비스가 투자한 기업은 현재 12곳. 나무 심는 게임으로 알려진 ‘트리플래닛’이 대표적이다. 2010년 설립 당시부터 크레비스가 초기 투자하며, 사무 공간과 인큐베이팅까지 제공했다. 지금까지 전 세계 12개국 116개 숲에 55만 그루의 나무를 심은 트리플래닛은 매출액도 10억원(2014년 기준)을 넘기며,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가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이 밖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만지는 시계’를 출시해 미국 벤처 업계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이원(Eone) 타임피스’, 중고 스마트폰 배터리를 업사이클링해 보조배터리로 만드는 ‘인라이튼’ 등 임팩트 벤처를 지속적으로 발굴·투자하고 있다. 시침과 분침 없이 2개의 구슬로 시간을 알 수 있는 ‘브래들리 시계’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킥스타터’를 통해 한 달 만에 60만달러(약 6억7000만원)를 모았고, 인라이튼이 개발한 ‘베터 리(Bette re)’도 킥스타터에 내놓은 지 하루 만에 3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세상을 바꿀 당신의 잠재 능력을 깨우십시오(Awaken Your Potential to Impact the World).” 지난해 10월, 성수동에 둥지를 튼 크레비스 사무실 입구에 쓰인 문구다. 이곳에는 크레비스 20여명의 직원 외에 지금까지 투자한 기업 및 파트너사 10여 곳 80여명이 함께 입주해있다. 김 대표는 임팩트 투자자로서 현재 소셜 벤처 업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력’이라고 조언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테슬라 같은 실력을 갖춰야 합니다. 테슬라가 13년 전에 만들어진 기업인 줄 많이들 모르죠. 회사가 예전부터 잘나간 것이 아닙니다.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를 했기에, 지금과 같은 시대가 온 거죠. 이젠 건강한 철학은 물론이고, 기업가가 고도의 역량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