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기부자클럽 ‘더 미라클스’ 1호 회원
박점식 천지세무법인 회장
“미국은 기부액 50% 세제… 기부 증가
한국은 기부 많이 할수록 세금 많이 내
고액 기부자에게 세금이란 일종의 동기
세제 혜택 주면 결국 더 기부하게 될 것”
지난해 하버드대는 1조2000억원을 기부받았다. 미국 대학 연간 기부금 최다 모금 기록이다. 이는 올해 국내 4년제 대학 기부금을 모두 합한 것(5089억원)의 2배 이상이다. 비결은 고액 기부였다. 세계적인 헤지펀드 회사인 시타델애셋매니지먼트의 최고경영자(CEO) 케네스 그리핀이 1억5000만달러(약 1680억원)를, 홍콩 최대 부동산 개발 업체 헝룽그룹의 로니 챈 회장과 제럴드 챈 이사 형제가 개교 이래 사상 최대인 1억5000만달러를 하버드대에 기부한 것. 이들은 2014년 미국에서 가장 기부를 많이 한 10인에 이름을 올렸고, 기부한 돈의 50%에 대해 세금을 감면받았다. 고액 기부자를 존경하는 문화, 기부를 장려하는 세금 공제 제도는 미국의 연간 기부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의 2%까지 성장시켰다. 반면 우리나라는 고액 기부 의지를 꺾는 세법 개정으로 논란을 빚고 있다. 최근 연말정산 환급 기준이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기부금 3000만원까지는 15%, 초과분에 대해선 25% 세율을 일괄 적용하고 있기 때문. 이는 세제 개편 전보다 고액 자산가가 기부를 많이 할수록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하는 구조다. 연말정산을 겪은 고액 기부자들의 체감도는 어떨까.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의 18번째 회원이자, 지난해 12월 창단한 푸르메재단의 1억원 이상 기부자클럽 ‘더 미라클스’ 1호 회원인 박점식 천지세무법인 회장(前 한국세무사회 부회장)에게 고액 기부와 세금의 상관관계를 물었다.
―이번 세제 개편안이 실제로 고액 기부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 “일단 나부터 이번 연말정산 폭탄으로 세금을 몇천만원 더 내야 한다(웃음). 이번에 기부금이 세액공제 항목에 포함된 것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기부금은 그 항목에서 빠질 줄 알았다. 언론에서도 ‘기부 위축시킨다’고 막 보도가 되고 난 후 정부에서 ‘수정을 하겠다’고 해서 기대를 했다. 근데 소득공제로 돌아간 게 아니라, 세액공제는 그대로 놔둔 채 3000만원 이상 기부할 경우 공제율(25%) 구간 하나만 신설했더라. 기부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너무 안 돼 있구나 싶었다. 연소득 6000만원 이상 기부자들부터 세금 감면 폭이 확연히 줄었다. 예를 들어, 1억원 이상 연봉자가 3000만원을 기부할 경우 소득공제 시 852만원을 감면받았다면 세액공제로는 450만원 공제받게 된다(환급 차 402만원). 반면 3억원 이상 고액 연봉자가 3000만원을 기부하면 감면액이 소득공제 시 1140만원에서 세액공제 시 450만원으로, 환급 차가 690만원이다. 소득이 높아질수록 기부금 공제로 돌려받을 수 있는 세금은 더 줄어드는 구조다. 이 때문에 최근 조언을 구하는 고액 자산가들이 늘었고, ‘기부가 얼어붙을까 염려된다’는 목소리도 많다. 게다가 법정 기부금은 소득과 상관없이 기부금 전액(100%)을 세액공제받지만, 지정 기부금은 소득 금액의 30%까지만 기부금을 인정하기 때문에 차이가 생긴다. 이는 장기적으로 지정 기부금 단체에 대한 기부 감소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고액 기부자에게 세금이란 어떤 의미인가. 일부에선 ‘기부자에게 세금 혜택이 왜 중요하냐’는 시각도 있는데.
“5만원어치 물건을 샀는데 6만원부터 서비스 상품을 준다고 치자. 그럼 꼭 필요하지 않더라도 1만원짜리 제품을 더 사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로 고액 기부자에게 세금 혜택이란 일종의 ‘유인책’이다. 고액 기부자가 환급받은 돈은 그의 주머니로 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돈을 다시 기부할 수 있게 하는 요인이 된다. 기부에 눈뜬 사람들이 ‘연말정산 보너스’를 어디에 쓰겠는가. 실제로 지금까지 나를 비롯한 고액 기부자 대다수가 연말정산으로 돌려받는 금액을 기쁜 마음으로, 오히려 돈을 더 보태서 다시 기부해왔다. 회사 창간 20주년 기념행사 때 전 직원에게 특별상여금으로 100% 보너스를 줬는데, 전 직원이 자발적으로 기부를 했고 지금도 절반 이상이 정기 후원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기부 문화 확산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세금 감면 혜택보다도 고액 기부자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의 따뜻한 인식과 문화라고 생각한다.”
―선진국들은 기부금을 내면 세금을 대폭 깎아주는 제도를 운영해 기부를 장려하고 있다. 미국의 기부금 소득공제율은 50%, 프랑스는 66%, 일본은 40%에 달한다. 우리나라도 기부 문화를 확산하려면 세제 관련 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
“우리나라도 영국의 ‘기프트 에이드(Gift Aid)’ 모델을 가져와, 2016년부터 기부금 세액공제액을 다시 비영리법인에 기부할 수 있는 ‘기부 장려금 제도’를 도입한다고 들었다. 좋은 취지이지만 지금의 세액공제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적어도 기존의 소득공제액만큼 돌려받을 수 있어야 사람들이 다시 기부할 수 있는 금액도 늘어날 것이다. 소득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이 세금을 내야 한다는 세액공제 취지에 대해선 백번 공감한다. 하지만 기부금을 세액공제 항목에 넣어서 기부 문화를 위축시키는 것은 반대다. 정부가 세수 확대를 위해 세액공제 방식으로 바꿨지만, 오히려 더 많은 기부금이 비영리단체로 흘러들어 가야 정부가 미처 돌보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민간이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