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나눔공연…
27일 서울서 ‘스크루지 퍼포먼스’
최불암 후원회장 지휘로 연극 나눔활동 계획
이홍렬·김경란 홍보대사 “무대 오르겠다” 맹연습
전국 21개 후원회는 운영 자금 모금 도와…
수익은 위기아동에 전달
“금고에서 썩어가는 돈으로 불쌍한 아이들을 도와줄 수도 있었어. 하지만 넌 외면했지.” 김경란 아나운서의 숙연한 목소리에 최불암씨가 목소리를 높인다. “아냐, 더 추궁하듯이!” 고개를 끄덕이던 김 아나운서는 최 회장이 짚어주는 톤을 몇 번씩 흉내낸다. “옳지, 그거야.” 마침내 떨어진 ‘오케이’ 신호에 김 아나운서는 “아, 너무 힘드네”라고 한다. 최불암씨는 “아냐, 소질 있어”라며 “모두 김경란 대사에게 박수”라고 외친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6명의 연극인이 박수갈채를 보낸다.
금요일 오후 이들이 모인 이유는 ‘나눔 공연’ 준비를 위해서다. 오는 27일 저녁 7시, 서울 중구 ‘밀레니엄서울힐튼’에서 열릴 공연 제목은 ‘스크루지 퍼포먼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하 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장인 최불암씨를 비롯, 어린이재단 홍보대사인 김경란 아나운서와 개그맨 이홍렬씨가 무대를 위해 함께 뭉쳤다. 이번 공연의 스크루지는 표독한 구두쇠가 아니다. 김경란 아나운서는 “동화(찰스 디킨스 作)와 달리 그저 노후를 위해 열심히 벌고 아낀 사람으로 스크루지를 각색했는데, 관객들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무엇이든 넘쳐나지만 이를 가치있게 사용하는 데는 인색한 현대사회에서 나눌 때 더 행복하다는 걸 함께 느끼기 위해 기획된 것”이라고 했다.
‘스크루지 퍼포먼스’ 공연은 온전히 ‘후원자’ 손에 의해 탄생했다. 구상부터 실행까지 전 과정을 모두 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가 맡은 것. “재단의 지역본부가 있는데, 본부장을 비롯한 구성원들이 바뀌다 보니 지역의 사회복지기관이나 23만 개별 후원자분들과 지속적인 교감을 갖기가 쉽지 않죠. 지역후원회는 그래서 필요한 거에요. 처음엔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났는데, 지금은 많이 조직화됐어요. (후원회)운영위원들은 모두 다른 직업을 가진 분들로, 순수 자원봉사로 참여하죠. 다른 NGO기관에서 우리 후원회 조직을 부러워한다는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김영후 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 사무총장)
어린이재단의 22개 지역후원회, 400여명의 운영위원은 상근 직원만큼 열정적 지지자다. 지역의 후원자를 관리하고, 새 후원자를 발굴하며, 어린이재단 활동 모니터링도 한다. 오랫동안 후원에 참여해온 지역 오피니언 리더들이 지역후원회장이 되며, 최불암 회장이 이들을 진두지휘한다. 전국후원회에서 ‘연극을 통한 나눔 활동’ 얘기가 나왔던 건 1년여 전. 30년 이상 후원회장으로 활동하며, 본인의 업(業)을 통해 나눔의 행복을 전하고 싶었던 최 회장의 의지가 그 출발점이다. 실현은 쉽지 않았다. 김영후 사무총장은 “가수나 악단을 유료로 초청해 진행하는 후원행사는 예전에도 있었는데, 연극 형태는 연기자를 비롯해 생각보다 많은 인력과 자금이 필요하더라”고 했다.
묵혀 왔던 의지가 실천으로 바뀐 건 지난 9월, 어린이재단 ‘명예의 전당’ 현판식 행사 때였다. “명예의 전당에 오른 100명의 후원자를 보며 너무 큰 감동을 받았어요. 모두 각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도움을 실천하신 분들이죠. 문득 ‘우린 뭘 한 거냐’ 싶더라고요. 그분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감동과 감사를 전하고 싶어 본격적으로 나섰죠.”(최불암 회장) 전국 21개 지역후원회(제주 제외)에서 십시일반 자금이 모아졌다. 대학로 극단 대표, 공연기획사 기획자, 연극배우, 연극과 학생 등이 “최불암 회장님을 믿고 좋은 뜻에 동참하고 싶다”며 재능기부 대열에 합류했다.
김경란·이홍렬 어린이재단 홍보대사도 “직접 연극 무대에 서겠다”며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최 회장은 “그들이 허락 안 하면 못할 일인데, ‘매우 좋다’며 반기더라”며 “연말이라 무척 바쁠 텐데 참 고마웠다”고 했다. 김경란 아나운서는 “어릴 때부터 소극장 공연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데, 실제로 무대에 선다니 설렌다”며 “아직 연기가 어색하다 보니 평소 자애로운 최 회장님이 무섭게 몰입하며 잘못된 부분을 짚어내는데,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출을 맡은 김동환 대표(극단 외치는 소리)는 현재 대학로에서 두 편의 연극을 상연하고 있지만, 이를 조연출에게 맡기고 이번 무대에 매진하고 있다. 김 대표는 “바쁜 시기에 소중한 재능들이 모인 만큼, 무대·음향·조명 등을 고민하며 밤샘 작업 중”이라고 했다. 공연의 부제는 ‘나 홀로 아동 희망 공연’. 공연장에서 모인 기부금은 전국의 ‘나 홀로아동’들에게 전달되는 후원 행사다.
이제훈 어린이재단 회장은 “연말은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는 ‘나 홀로 아동’에겐 더없이 힘든 시기”라며 “이번 공연을 통해 이들이 보다 따뜻한 연말과 새해를 맞을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이날 행사의 객석을 메울 주인공들 역시 후원자다. 전국 각지의 후원자 150여명과 그동안 재단 지원에 앞장서 온 현대자동차 임직원 250여명이 초대됐다. 행사가 진행될 힐튼호텔에서는 당일 행사 장소와 만찬을 ‘반값’으로 제공하며, 무대 준비를 도왔다. 우리 시대 위기 아동을 향한 관심과 이를 응원하는 재능들이 한데 어우러져 펼치는 ‘스크루지 퍼포먼스’를 통해 연말·연시가 더 따뜻해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