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 주민 신뢰 얻으려 다시 변하는 신협 협동조합 특례보증·1신협1협동조합 추진 신규조합 자금 부족 문제는 과제로 지적 “70년대 시골은 춘궁기를 버티기 위해 쌀을 빌렸죠. 50%의 고리(高利)였어요. 모두가 가난해졌죠. 그래서 동네 청년 24명이 800원씩(당시 8만원 정도의 가치) 거둬 제일 어려운 사람 먼저 빌려줬어요.” 1977년 4월 정식 인가를 받은 전남 ‘보성신협’이 탄생한 배경이다. 당시 기틀을 다졌던 이는 임정빈 현 동작신협 이사장. 임 이사장의 설명은 이어졌다. “점점 사람이 모이니 이자도 모였죠. 마을 사람들과 상의해 동네 화장실을 개량하고, 우수한 돼지 종자를 들여왔어요. 돼지가 많아져 파리가 들끓자 마을 소독도 했죠. 학생들이 통학하는 강가엔 다리를 놨고요. 이게 신협입니다. 다 함께 행복해지는 거죠.” 우리나라에 신용협동조합(이하 신협)이 생긴 건 1960년 5월 미국 메리가브리엘라 수녀가 만든 ‘성가신협’이 처음이다. 국내 최초의 민간 주도 비영리 금융협동조합이었다. 주주 이익이 아닌 상호 이익을 위한다는 게 은행과 달랐다. 1972년엔 신협특별법도 제정됐다. 현재 전국 935개의 신협이 580만명의 조합원과 57조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 4위, 아시아에선 가장 큰 규모다. 소상공인, 저신용 근로자, 지역 주민들이 주고객이다. 5년째 신협을 이용한다는 구자숙(62·서울 동작구)씨는 “(은행에 비해) 소액 대출이나 예금 문의를 훨씬 편하게 할 수 있고, 봄철 기생충 약이나 김장철 소금 같은 것들을 공동구매 해주기도 한다”고 했다. 법 제정 이후 규모가 커지긴 했지만 수많은 신협이 난립하면서 문제도 생겼다. 일부 임원들의 ‘돈놀이’ 창구가 되거나 ‘이율’만 좇는 조합원들도 늘었다. 본래 가치를 잃으니 경영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