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탈주민
‘창업’으로 제2의 인생 꿈꾸는 북한이탈주민들, ‘산 넘어 산’

통일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총 3만2705명의 북한이탈주민이 한국에 정착했다. 북한이탈주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1998년부터 지금까지 연평균 1557명이 북한을 떠나 한국에 왔다. 북한이탈주민이 낯선 한국땅에 적응하는 과정은 지난하다.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찾지만, 차별적인 시선과 문화적 차이로 어려움을 겪는다. 단순생산직 외에는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 좌절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이 같은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창업’에 도전하는 북한이탈주민이 늘고 있다. 늘어나는 북한이탈주민 창업 “남한 직장에 적응하기 어려워” 통일과나눔재단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16년 680명이었던 창업자 수는 지난해 800명으로 늘었다. 한국에 사는 북한이탈주민 가운데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비율은 약 50%. 경제활동을 하는 북한이탈주민 100명 가운데 5명은 창업에 나섰다는 이야기다. 직장생활에서 겪는 불평등은 북한이탈주민이 창업에 나서게 되는 가장 큰 이유로 꼽혔다. 통일부의 지난 2017년 조사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의 월평균 임금은 한국 근로자 평균임금의 3분의 2 수준인 160만원에 머물렀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북한이탈주민은 “같은 직장에서 일해도 북한과 남한의 사회적 지위 차이 때문에 대우가 좋지 않다”며 “탈북자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일도 있어 갈등을 겪기도 한다”고 말했다. 남성은 운송업, 여성은 서비스업 창업을 희망하는 북한이탈주민에게 무담보·무이자로 최대 2000만원까지 대출해주고, 사업이 안착할 수 있도록 인큐베이팅을 제공하는 열린나눔재단 메리스타트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은 성별에 따라 희망하는 창업 아이템이 확연하게 갈린다. 남성의 경우 운송업에 가장 많이 뛰어든다. 북한에서는 운전면허가 귀하다. 면허가 있다는 것은 지역과 지역을 오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면허 발급 자체를 잘 해주지 않는다.

[공변이 사는 法] 북한 인권 활동가에서 변호사로…”편견 없는 세상 꿈꿉니다”

[공변이 사는 法] 전수미 변호사 “자유를 찾아온 북한 이탈 주민들은 남한 사회의 차별적인 시선에 무너집니다. 외국에 여행 갔을 때를 생각해보세요. 그 나라의 문화나 법률을 잘 알지 못해서 이런저런 사고가 나기도 하잖아요? 탈북민은 언어와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온 사람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전수미(37) 변호사는 북한 인권활동가 출신이다. 북한 인권활동에 뛰어든지 햇수로 17년째. 이 가운데 7년은 변호사로 활동했다. 과거에는 직접 탈북민 구출사업을 진행했고, 지금은 북한 이탈주민 정착지원 시설인 하나원이나 통일부·법무부·외교부에 접수된 탈북민 사건을 공익소송으로 진행하고 있다. 또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에서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화해평화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평범한 탈북민들이 편견과 냉대 속에 범죄로 빠지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 주민을 돕는 건 결국 ‘사람’을 돕는 일” 탈북민들은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분쟁에 휘말린다. 대표적인 게 층간소음 분쟁이다. “북한 출신의 사람들은 목소리가 큰 편이에요. 마치 성난 사람처럼 이야기해요. 아주 평온한 상태인데도 말이죠. 특히 북한에는 층간소음이라는 개념이 없어서인지 법적 분쟁까지 이어져요. 어떻게 보면 간단한 문제인데 법적인 도움을 구할 데가 없어 곤란해 하는 분들이 많죠.” 이 정도는 양호한 편이다. 문제는 폭행 같은 형사사건이다. 그는 “탈북민에게 ‘김정은 XXX’라고 말해보라며 자극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면서 “명백한 인권침해 사건인데 주먹이 오가면서 결국 형사사건으로 처리된다”며 안타까워했다. 전 변호사는 소송뿐 아니라 법제도 개선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남북 교류 확대되고 실질적인 통일 절차가 진행됐을 때를 대비하기

[이희숙 변호사의 모두의 법] 탈북민의 ‘SOS’에 우린 어떻게 답했나

[이희숙 변호사의 모두의 법]   위기의 순간,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곳은 어딜까? 가족과 연인,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나라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달 초 수년 전 나라에 보호를 요청한 탈북민을 오히려 북한이탈주민 인정마저 취소하고 형사 재판 피고인으로 세운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이 이뤄졌다. 피고인 A씨는 북한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16세까지 살다가 북한으로 이주했다. 그는 아버지 국적을 따라 북한 국적을 인정받았고, 결혼해 자녀를 낳아 20년 넘게 북한에서 살다가 홀로 탈북했다. 이후 중국에서 일용직 노동자를 전전하다 어렸을 때 남아 있던 중국 호구부를 회복하는 방법으로 한국으로 입국, 탈북민 자격을 인정받았다. 한국에 정착한 A씨는 북에 둔 가족들 생각에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이들을 탈북시키고자 다시 중국에 입국했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A씨는 이때 압수된 한국 여권을 받을 수 있도록 대한민국총영사관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국적 문제가 불거졌다. 중국 공안청은 A씨에게 중국 호구부가 있으므로 중국인이라 할 수 있지만, 중국법상 외국 국적을 적법하게 취득하면 중국 국적은 상실된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 A씨의 국적을 확인하기 위해 북한인 신분 증명 자료를 우리 정부에 요청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우리나라 국정원, 통일부, 외교부 어느 곳 하나도 A씨가 탈북민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 협조하지 않았다. 오히려 중국 공안청 말만 듣고 2011년 A씨에 대한 탈북민 인정을 취소하고, 위장 탈북민으로 수사를 의뢰했다. 이에 대해 1심 법원은 정부가 피고인의 북한인 신분 증명에 관한 자료를 공안청에 제공해

[기부 그 후]10명 가족의 보금자리, 당신의 콩으로 완성해주세요

북한이탈청소년의 보금자리, 그룹홈 ‘가족’       영화 ‘우리 가족’을 아시나요? ‘우리 가족’은 총각엄마 김태훈씨와 10명의 북한이탈청소년들이 함께 사는 그룹홈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가족’의 첫 시작은 13년 전, *하나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태훈씨가 우연히 염하룡 군(당세 10세)을 만나면서였습니다. 어머니가 지방으로 일을 나가고, 집에 홀로 남겨진 하룡군과 하루를 보낸 뒤로, 태훈씨가 아이와 함께 살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작은 가족이, 10년 만에 어느새 유치원생부터 취업준비생까지 어우러져 사는 대가족이 되었습니다.  *하나원: 북한이탈주민들의 사회정착 지원을 위하여 설치한 통일부 소속기관  피가 섞인 가족보다 더 사랑이 넘치는 이들. 하지만 태훈씨와 아이들의 생활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룹홈 식구들이 살 곳을 구하려 해도, ‘남자 아이 10명이면 집이 다 망가진다’며 거절당하기 일쑤였습니다. ‘탈북’청소년이라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들 때문에 지난 10년 동안 5-6차례나 집을 옮기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태훈씨의 사정을 잘 아는 지인 덕분에, 서울 성북구에 있는 한 주택에 장기 임대를 할 수 있게 됐지만 문제는 또 있었습니다. 30년 된 주택이 노후화가 심해 전반적인 개보수 없이는 거주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전반적인 개보수가 필요한 30년 된 주택   집안 곳곳에 피어있는 곰팡이, 보일러도 깔려있지 않은 바닥, 노후화된 화장실의 세면대와 변기까지…. 보기에도 주택 상태는 심각했습니다. 특히 오래된 창문과 창틀, 방문에서는 걸핏하면 ‘휘잉휘잉’ 바람소리가 나고 제 역할을 못했습니다. 도배부터, 바닥 장판, 단열 작업부터 화장실, 주방을 비롯한 내장재를 모두 개보수하는 큰 공사가 불가피했습니다.

활짝 열어주세요, ‘다름’ 향해 닫혀 있는 마음의 門

소외… 한국이 낯선 사람들 제3국서 출생한 ‘중도입국자녀’, 탈북 청소년으로도 분류 어려워 다른 인종·출생의 편견 없이 마음의 문 열고 다가와 줬으면 법무부가 발표한 ‘2014년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 연보’에 따르면 국내 출·입국자는 6000만명을 넘어섰고, 국내 체류 외국인은 179만7618명으로 전체 인구의 3.5%를 차지했다. 한국 사회에 터를 잡은 이주민들,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 사회는 어떠할까. 우리 주변 이웃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담았다. “저는 영화감독이 될 거예요.” 지난해 말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에서 만난 김화령(22)씨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로 ‘올리버 트위스트’를 꼽으며, “외로움, 고독, 죽음 등 인간 내면 깊숙한 부분의 감정과 상처를 매만지고 싶다”고 했다. 연신 밝은 표정으로 꿈을 이야기하던 그녀에게 새해 목표를 묻자 급격히 얼굴이 굳어지더니 이내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제가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영어도, 수학도 정말 어려웠는데, 포기하지 않고 만날 책을 붙잡고 살았어요.” 옷소매로 눈가를 매만지던 그녀가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지원한 대학 6곳에서 모두 낙방했기 때문. 그녀는 “남한 아이들과 실력 차이가 나는 걸 아니까 정말 죽도록 열심히 했건만, 도저히 경쟁이 안 되더라”고 했다. 올해보다 내년이 더 걱정이다. 화령씨는 “새해에는 우리를 위한 제도가 나올까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탈북 학생들의 경우 특별전형으로 여러 개 대학에 합격하고 골라서 다닐 정도인데, 왜 화령씨는 등록금 지원은커녕 대학 문을 두드릴 기회조차 없었을까. ‘입국의 비밀’ 때문이다. 화령씨처럼 탈북 어머니를 따라 제3국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아이들을 ‘제3국 출생 북한이탈주민자녀’

“북한에서 왔어요” 이 한마디에… 꿈도 포기해야 하는 탈북청년들

취업 전선에서 차별받는 탈북청년들 고용률 53%로 전체 비해 7.7% 낮고 ‘일용직’도 일반 국민보다 3배 이상 월 평균 근로소득도 76만원 덜 받아… 대학 나와도 태도부터 처우까지 차별 지난달 인천공항공사의 한 아웃소싱 업체 면접을 봤던 북한이탈주민 김명진(가명·29)씨는 면접장에서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경험을 했다. 면접관에게 “공항에는 출입국관리소와 세관 등이 있어 북한 출신은 보안 쪽으로 문제가 된다”며 “이쪽으론 아예 마음을 접으라”는 말까지 들은 것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말을 재차 확인하고, 수년간 준비에 매진했지만 현실은 냉담했다. 김씨는 “꿈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에서 더 이상 어떻게 버텨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기업 제조분야 특채로 입사한 북한이탈주민 한동철(가명·27)씨에겐 면접 때부터 따라다닌 질문이 있다. “회사 기밀사항을 알게 되면 어떻게 할 거냐”는 것이다.”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고급 정보를 더 많이 알 텐데, ‘승진이나 될까’ 하는 우려가 든다”고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해 통일부와 남북하나재단이 국내에 거주하는 북한이탈주민 1만277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4년 북한이탈주민 실태조사’를 보면, 이들의 고용률은 53.1%로 전체(60.8%)에 비해 7.7% 낮았다.’일용직'(19.8%)이 일반 국민에 비해 3배 이상 많고, ‘사무직’이 8.3%에 불과하다. 북한이탈주민 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은 147만원으로 일반국민(223만원)에 비해 열악하다. 김재석 국가인권위 북한인권팀 팀장은 “한국의 교육열을 감안하면, 탈북 청소년들이 사회적 격차를 해소하기가 쉽지 않다”며 “고도의 업무 역량을 요구하는 일자리에 취직하는 경우가 극히 드문 이유”라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역량을 갈고 닦은 취업 준비생들마저 보이지 않는 차별을 겪는다는 점이다. 남북하나재단 관계자는 “북한이탈주민들은 ‘태도부터 처우에 이르기까지

[Cover story] 10호점 당찬 출발 “꿈에 그린 내 가게, 야무지게 꾸려나갈래요”

탈북가정 편의점 지원 굿피플 ‘자유시민대학’ 인성·취업 교육 지도 10년간 졸업생수 482명 10호점의 주인공은 ‘똑순이’ 주부 이정선씨 요리 자격증 전부 따내 “저의 특별한 서비스로고객들 사로잡을래요” “상품에 대해서 아직 파악이 덜 되어 있습니다. 일단 젊은 층들이 많이 오니까 이 지역 젊은이들이 어떤 상품을 선호하는지를 먼저 알아볼 겁니다.” 이정선<사진>씨의 얼굴엔 진지함과 기대감, 기쁨과 걱정이 교차했다. 그러면서도 기자와 말을 하는 사이에 매장에 들어온 손님에게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선씨는 14개월 된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이면서 결혼생활 5년차의 주부다. 지난 14일에 편의점을 창업했고, 고향은 함경북도 온성이다. 2004년에 탈북해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를 거쳐 2006년에 한국에 입국했다. “11월 5일에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저 생각보다 경력이 많습니다. 요리직업훈련을 6개월가량 받아서 한식, 중식, 일식, 양식 자격증을 다 땄습니다. 일식주방에서 4개월 정도 일하고, 레스토랑에서도 2개월 정도 일했습니다. 그런데 몸이 안 좋아서 잘 따라가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타자, 컴퓨터, 회계까지 다시 직업훈련을 받아서 자격증을 땄습니다.” 지난 5년의 세월을 떠올리던 정선씨는 생활인의 모습으로 자신의 가게에 있는 물건들을 매만지고 정리했다. 꿈속에서 그리던 내 가게, 내 물건이다. 지난 12월 14일, 정선씨 부부는 한국에 온 지 5년 만에 편의점을 가졌다. 혼자 힘으로 가게를 낸 것은 아니다. 정선씨는 굿피플이 운영하는 북한이탈주민 교육기관인 ‘자유시민대학’의 8기 졸업생이다. 이번 편의점을 위해 굿피플은 무담보 소액대출을 제공했다. 굿피플은 지난 2002년부터 10년간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자유시민대학을 운영해왔다. 자유시민대학에서는 인성교육을 중심으로 한 6개월간의

[2010 사회공헌 결산] ④ SKT_ 북한이탈주민 휴대폰 교육

사용법에서 에티켓까지… 3600명에 ‘소통 교육’ 북한이탈주민 최미혜(가명·36)씨가 지난 4월 초 남한 땅을 밟은 뒤 가장 신기했던 것 중의 하나는 휴대폰이었다. 북한 국경 근처에는 휴대폰을 쓰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고, 북한을 떠나오는 길에 중국 등 다른 국가에서 휴대폰을 사용해봤다는 북한이탈주민들도 만났다. 하지만 최씨가 직접 휴대폰을 손에 쥐어본 것은 한국에 온 후였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가족들이랑 돌려보며 좋아했지요. 어찌나 신기하던지….” 최씨는 북한이탈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사회에 나온 지 석 달 만에 휴대폰이 한국사회에서 ‘필수품’이라는 걸 알았다. “사람 한번 만나려고 해도 시간을 정하고 목적지까지 가는데 계속 휴대폰을 써야 했다”고 말했다. 최씨에게 휴대폰 사용법을 알려준 것은 SK텔레콤 임직원들이었다. SK텔레콤 임직원들은 북한이탈주민의 정착과 교육을 돕는 경기 서북부 하나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중에 최씨를 만났고, 그가 묻지 않은 것까지 친절하게 알려줬다. 최씨는 “내가 터치폰을 골라서 요금이 많이 나오는데 봉사자 분이 저렴한 요금제를 추천해주고 기초수급자에게 할인혜택이 있다는 사실도 알려줘서 큰 도움이 됐다”며 고마워했다. 북한이탈주민 휴대폰 교육에 참여한 SK텔레콤 이성환(29) 매니저는 “북한이탈주민들은 커뮤니티를 만들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살기 때문에 휴대폰 활용도가 높아 휴대폰 활용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선을 넘어오신 분들이라 그런지 쉬는 시간이 되면 줄을 서서 경쟁적으로 질문하시는데 그럴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정보통신기술(ICT: 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을 활용한 사회공헌 활동에 중점을 두고있는 SK텔레콤은 2008년부터 3년간 3600여명의 북한이탈주민에게 휴대폰 활용교육을 해왔다. 북한이탈주민들에게 필요한 내용을 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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