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활짝 열어주세요, ‘다름’ 향해 닫혀 있는 마음의 門

소외… 한국이 낯선 사람들
제3국서 출생한 ‘중도입국자녀’, 탈북 청소년으로도 분류 어려워
다른 인종·출생의 편견 없이 마음의 문 열고 다가와 줬으면

법무부가 발표한 ‘2014년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 연보’에 따르면 국내 출·입국자는 6000만명을 넘어섰고, 국내 체류 외국인은 179만7618명으로 전체 인구의 3.5%를 차지했다. 한국 사회에 터를 잡은 이주민들,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 사회는 어떠할까. 우리 주변 이웃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담았다.

미상_그래픽_이주민_소외_2016

“저는 영화감독이 될 거예요.”

지난해 말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에서 만난 김화령(22)씨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로 ‘올리버 트위스트’를 꼽으며, “외로움, 고독, 죽음 등 인간 내면 깊숙한 부분의 감정과 상처를 매만지고 싶다”고 했다. 연신 밝은 표정으로 꿈을 이야기하던 그녀에게 새해 목표를 묻자 급격히 얼굴이 굳어지더니 이내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제가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영어도, 수학도 정말 어려웠는데, 포기하지 않고 만날 책을 붙잡고 살았어요.”

옷소매로 눈가를 매만지던 그녀가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지원한 대학 6곳에서 모두 낙방했기 때문. 그녀는 “남한 아이들과 실력 차이가 나는 걸 아니까 정말 죽도록 열심히 했건만, 도저히 경쟁이 안 되더라”고 했다. 올해보다 내년이 더 걱정이다. 화령씨는 “새해에는 우리를 위한 제도가 나올까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탈북 학생들의 경우 특별전형으로 여러 개 대학에 합격하고 골라서 다닐 정도인데, 왜 화령씨는 등록금 지원은커녕 대학 문을 두드릴 기회조차 없었을까. ‘입국의 비밀’ 때문이다. 화령씨처럼 탈북 어머니를 따라 제3국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아이들을 ‘제3국 출생 북한이탈주민자녀’ 혹은 ‘중도입국자녀’라고 부른다. 주로 탈북 여성들이 남한으로 오는 과정에서 중국에서 출생한 아이들을 일컫는데, 화령씨는 북한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더 특이한 케이스다. 여명학교 변정훈 생활부장은 “요즘 학교 홍보차 하나원에 방문해보면 각 학급의 10~20%가 중도입국자녀들로, 점차 늘고 있다”며 “여명학교에도 117명 중 24명이 여기에 속한다”고 했다. 국내 거주 탈북 청소년 2200여명 중 절반이 중도입국자녀로 추산된다.

“똑같이 사회적 기반이 없는 탈북자의 자녀이지만 출생을 어디에서 했느냐에 따라서 한국에서의 삶이 완전히 달라지는 거예요. 그마저도 화령이의 경우 북한에서 태어났는데 탈북 청소년에 분류되지 못했죠. 그야말로 사각지대 속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예요.”

조명숙 여명학교 교감이 목소리를 높였다. 탈북 당사자에게 국한되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의 적용 범위가 가족 단위로 확대되지 않는다면, 화령씨는 대학 입학과 영화감독의 꿈을 접어야 할지 모른다.

◇고국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박창현 사진작가 제공
박창현 사진작가 제공

말레이시아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노르아마니나빈티루슬란(21·한양대 산업공학과 2학년)씨는 한국 생활 2년 차다. 그녀가 하루 중 가장 신경 쓰는 때는 바로 ‘밥 시간’. 이슬람교도인 그녀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인지 꼼꼼히 살펴야 하기 때문. 해외에는 ‘할랄(halal)’ 인증을 받거나 ‘베지테리안(채식주의자) 음식’이 따로 준비된 반면, 한국에는 아직 찾기 어렵다. 특히 친구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선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저는 고기나 술을 못 먹으니까 제 테이블에는 해산물만 있는 거예요. 맞춰주는 친구들이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크죠. 졸업 이후 한국에서 취업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한국은 회식이나 뒤풀이 문화가 강한 것 같아서 고민이에요. 회식 자리에 안 가면 친해지기 어렵고, 그렇다고 가서는 계속 음식 고민을 해야 할 테니까요. 지금은 그저 더 많은 분이 할랄에 대해서 알게 되셨으면 좋겠어요.”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인 레티튀니엠(37)씨는 태어난 지 채 백일이 안 된 아들을 둔 산모다. 그녀는 “임신 기간 중 베트남 친정 생각이 많이 났다”고 했다. 타국에서 친정 부모도 없이 홀로 아기를 낳는 어려움은 결혼이주여성이 대부분 겪는 일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 레티튀니엠씨를 도운 건 같은 베트남인 산후관리사 황은아(27·2012년 귀화)씨다. ‘다누리맘’이라는 기관을 통해서다. 이곳에선 결혼이주여성과 동일한 국가 출신인 산후관리사를 가정으로 파견해 산후조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베트남 내에서도 남쪽과 북쪽의 산후 문화가 다른데 이국 땅에서 출산한 결혼이주여성들은 어려움이 더 크죠. 신체·정서적인 어려움뿐 아니라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우울감이나 고립감도 심해요.”(황은아씨)

레티튀니엠씨는 “아이를 돌봐주는 것도 좋지만 말이 잘 통하는 산후관리사랑 이야기하면서 의지할 수 있다는 게 가장 좋다”고 했다. 파견된 산후관리사가 머무는 기간은 하루 8시간씩 12일. 레티튀니엠씨는 “방문이 끝난 이후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걱정되고 무섭다”고 했다. 수원에서 시작된 다누리맘은 안양·안산·일산 등 다른 경기 지역과 서울로 확대됐지만 현재 산후관리사가 부족해 수요의 30% 정도만 파견된다. 다누리맘 한만형 대표는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산후관리사 공급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보내달라”고 전했다.

◇”마음의 문을 더 활짝 열어주세요”

북한 인권 방송을 만드는 NGO ‘인사이드 NK’의 백요셉(34) 사무국장은 한국에 온 지 9년 차를 맞은 탈북자다. 라디오를 통해 남한에서 탈북 트로트 가수로 성공한 김용씨 이야기를 접하면서 ‘기회의 땅’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하지만 정작 밟은 남한 땅은 ‘김치와 된장을 함께 먹는 것’ 빼고는 북한과 너무 달랐다.

“북한에서는 ‘한번 보자’고 하면 정말 봐야 합니다. 휴대폰이 없기 때문에 한두 시간 늦는 것은 일도 아닐 정도로 신뢰가 강해요. 그래서 처음에는 말로만 보자고 하는 남한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했죠(웃음).”

백요셉 사무총장은 남과 북의 다름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재 북한과 교류가 완전히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통일 대박의 키는 남한에 머물고 있는 북한이탈주민들에게 달려 있어요. ‘저 사람들은 왜 저래’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곤란합니다. 북한 그 자체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태국 출신 난민 아하마드 압둘마이(43)씨는 종교적 박해를 피해 2011년 한국에 왔다. 아하마드씨는 “이전에는 ‘한국에도 난민이 있느냐’며 비웃는 분이 많았는데 요즘은 ‘난민’이라는 단어 자체를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했다. 동시에 지난해 프랑스 테러 사건 이후로 생긴 난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테러라는 단어 자체가 자극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요. 난민에 대해서 무작정 테러리스트의 이미지를 씌우거나 경계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이 좋고 한국 사람이 좋아요. ‘진짜 난민’들이 피해를 받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난민에 대해서 이해를 좀 더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피난처 김수진 간사는 “난민은 연민이나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자유 혹은 지켜야 할 가치를 위해 다른 나라에서 살기를 택한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며 “캐나다에선 난민 인력을 잘 활용하고, 미국의 재정착 난민은 80%에 달하지만, 우리의 난민 인정률은 4%에 불과하다”고 인식 전환을 강조했다.

이주민 작곡가 힐 히존(49·사진)씨의 고향은 필리핀이다. 매니지먼트의 소개로 2008년 한국에 와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다문화 극단이자 사회적기업인 ‘샐러드’에서 작곡가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한국은 좋은 곳이에요. 그런데 그 안으로 들어가기는 어려운 점이 있어요. 한국 사람들도 외국인에게 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와 줬으면 좋겠어요. 이주민들과 한국인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만드는 음악들이 그런 역할을 하게 된다면 더없이 좋겠죠?(웃음)”

권태학·김효정·서승희·장혜승·전세원·최아리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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