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증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장기기증과 건강보험, 밥벌이의 관료화

얼마 전, 장기기증과 관련된 속 터지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나라 장기기증 서약자는 123만명. 성인 인구의 2.5%다(미국은 48%, 영국은 35% 정도로 높다). 장기기증 수치만 올라가도 우리나라 건강보험재정 1조2000억원이 줄어든다고 했다. 왜 그럴까. 건강보험재정 지출 2순위는 만성신부전증인데, 가장 좋은 치료법은 신장이식이다. 한데 장기 이식이 활성화 안 돼서 이렇게 어마어마한 돈이 건강보험 재정에서 쓰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에선 정부가 장기기증 서약자 비율을 높이기 위해 매년 5억원가량의 예산을 쓴다. 20년 넘게 반복된 패턴이다. 예산 5억원을 쓰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민간단체에 보조금 식으로 쪼개서 나눠주는 방식이다. 어림잡아 20조원을 쓰고도 문제 해결에 실패한 것이다. 이런 사례를 접할 때면 퇴근해 괜히 남편에게 화풀이를 한다. 공무원인 남편을 몰아붙이며, “정부는 규제만 하지 말고, 문제해결에 집중하면 안 되냐”는 식이다. ‘옵트 아웃(opt-out)’ 방식이라도 시도해볼 순 없었을까. 운전면허증을 발급할 때 ‘장기기증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주고, 거기에 체크하도록 해 체크하지 않으면 장기기증에 동의하는 형태 말이다. 아마 누군가는 이런 의견을 냈을 지도 모르고, 시도했다가 좌절했을지도 모른다. 뭔가를 해보려 하다 잘못되면 된통 책임지는 게 공무원 일상이다 보니, 어느새 정부는 ‘효율’보다 ‘공정’만 우선시하는 공룡이 됐는지도 모른다. 신년 들어 임팩트 투자, 소셜벤처 등 사회문제를 좀 더 효율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집단을 많이 만나다 보니, 더더욱 속이 상한다. 400조원 정부 예산 중 0.1%만이라도 과감하게 ‘미친 듯한’ 도전에 쓰이면 안 될까. 해결해야 할 목표만 주고, 그 목표가 이뤄질 때까지 등 어떤

장기기증, 어려운 일 아닌 당연한 문화 되어야죠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_신채영씨 “17년 전, 건강상태가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위암이 아닐까 했는데, 다행히 위염이었어요. 정말 큰 병을 얻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씁쓸했습니다.” 신채영(80)씨는 건강할 때 사후 장기기증을 서약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사후 장기기증과 시신기증, 한 달에 5000원이라는 금액 후원에도 참여했다. 지난 2011년부터 1만원으로 늘렸고, 내년부터는 2만원으로 늘릴 예정이다. 고령에 수입도 일정하지 않지만, 한 번도 후원을 빼먹은 적이 없다. 금액 후원자 3만3000여명 중 둘째로 오랜 기간 동안 후원을 해왔다. 사실 신씨는 사후 장기기증을 서약한 이후 눈에 띄게 몸이 건강해졌다. 이어 “다른 사람을 돕기로 정했더니 오히려 내게 좋은 일이 생겼다”고 말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어쩜 그 나이에 주름살도 없느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바깥양반 도장을 몰래 훔쳐서 후원 신청서를 썼어요. 이후에 들키고는 아주 혼이 났습니다. 근데 제가 더 건강해졌으니 아무 소리 말라고 그랬지요. 우리 집 양반도 어쩔 수 없었죠.” 처음에 “장기기증 서약을 했다”고 말하면 지인들은 깜짝 놀라곤 했다. 모두들 낯설어하고 꺼려하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도 변하면서 주위 사람들 중에서도 “나도 장기기증 서약을 하겠다”는 이들도 생겨났다. 남편도 그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남편은 3년 전, 세상을 갑작스레 떠나면서, 그 말을 지키지 못했다. 신씨는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가버린 이들이 많다”며 “장기기증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당연하게 생명을 나누는 것이라는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노바티스 장기기증 생명나눔 화보 촬영 캠페인 장기기증 서약 하고 나니…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미국·호주 운전면허 교부시 기증 확인… 오스트리아·프랑스 거부 의사 없으면 묵시적 동의…2010년 시작된 장기기증 릴레이 유명인사 10명에서 현재 150명이 중 74명 화보 촬영에 참여, 청계천서 내일부터 4일간 전시… 서울 강남의 한 스튜디오. 평소 모델과 배우들로 북적거리는 이 공간이 배불뚝이 아저씨와 꼬마들 그리고 대학생들로 바글거렸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앞에 오신 분이 아직 촬영 중이라서요.” 안내를 자청한 직원의 목소리에선 즐거움이 묻어 나온다. 사진 촬영을 앞둔 대기실의 풍경은 이채롭다. 작가의 스튜디오답게 개성이 잔뜩 묻어 나오는 물건들 사이로 두 가족이 같은 디자인의 티셔츠를 입고 앉아 과자를 먹고 있고, 그 옆에선 바이올리니스트 노엘라씨가 커다란 개에게 “넬, 너도 티셔츠 입자”며 옷을 입히느라 분주하다. ‘대기실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라는데 그리 서먹하지 않게 어울리는구나’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대학생 둘이 비명을 지르며 대기실에 들어왔다. 그들이 손에 쥔 것은 사진 한 장. 그들은 친구들,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나 방금 오중석 작가님이 사진 찍어줬어.” 대기실의 소란이 가라앉기 전에 오중석 작가가 들어온다.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2011년 달력 촬영 특집을 통해 여러 번 봤던 터라 이미 알고 지내던 사람 같다. “다음 분은 누구세요?” 오 작가의 말에 유항수씨는 두 아들 장근이와 현근이를 데리고 촬영장으로 들어섰다. 아이들은 긴장감을 느끼지 않는 모양이다. 조명을 환하게 밝히고 플래시를 터뜨리는데도 태연하다. 오히려 항수씨가 당황한 듯했지만 곧 오 작가의 리드를 따라 편안한 자세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두 아들과 화보 촬영을 마치고 나온 항수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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