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봉사
더 많은 사람 살리기 위해… 수술장 박차고 나와 아프리카 주민들 속으로

[Cover Story] ‘이태석봉사상’ 수상… 박세업 글로벌케어 북아프리카본부장 소외된 사람 위해 선택한 ‘외과의사’ 1998년부터 해외 각지서 의료봉사 15년 전 온 가족 함께 아프간으로 밤낮 사람 살리는 수술에 몰두해 외과의사에서 보건전문가로 가난·기아로 죽어가는 사람들 보며 근본적 해결책 찾고자 보건학 공부 도시 빈민촌 돌며 결핵 예방 주력 지역 문제 해결할 ‘청년’ 육성에 집중 1962년 태어난 동갑내기 두 남자가 있다. 동네는 달랐지만 둘 다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주변에 항상 가난이 있었고,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꿈을 키웠다. 1981년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대학의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민주화 운동이 뜨겁던 시절.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향한 열망 속에서 둘은 비슷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어떤 삶이 가치 있는 삶일까?’ 한 사람은 의대를 졸업한 뒤 성직자가 되기 위해 신학대에 입학한다. 다른 한 사람은 외과 전문의가 돼 개인병원을 연다. 세월이 흘러 신부가 된 남자는 아프리카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남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로 향한다. 외과 의사가 된 남자는 개인병원을 접고 전쟁이 한창인 중동의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간다. 다른 길을 가는 듯했지만 같은 곳으로 가고 있었다. 가장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 곁으로. 영화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 고(故) 이태석 신부와 올해 ‘이태석봉사상’ 수상자로 선정된 박세업(58) 글로벌케어 북아프리카본부장. 살면서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두 사람의 인생은 신기할 만큼 궤적이 닮았다. 이태석 신부의 선종 10주기를 나흘 앞둔 지난 10일, 서울역 공항철도 타는 곳 앞에서 박세업 본부장을 만났다. 커다란

마다가스카르 오지 다니며 13년째 의료봉사… 이재훈 의사, 국민훈장 목련장 수상

  이재훈 의사가 지난달 31일 서울정부청사에서 열린 ‘2017 국민추천포상 수여식’에서 13년째 마다가스카르 주민들을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했다. 국민추천포상은 행정안전부가 우리사회 곳곳에서 묵묵히 헌신하면서 행복과 희망을 전해온 숨은 공로자들을 발굴할 수 있도록 국민들이 직접 추천해 포상하는 제도다. 이재훈 의사는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아프리카 의료봉사를 위해 고려대학교 의과대학과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원을 졸업하고 2005년 마다가스카르로 넘어가 의료혜택을 받기 어려운 오지 지역의 빈민들을 찾아 다니며 이동진료사업을 꾸준히 펼쳐왔다. 이재훈 의사가 활동중인 마다가스카르는 인구 1000명 당 의사가 0.16명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보건의료 환경이 취약한 곳이다. 특히 오지에 사는 주민들의 경우 의사를 만나기 위해선 가깝게는 수십 킬로미터, 멀게는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해야만 한다. 그러나 하루 수입이 1달러 조차 되지 않는 대부분의 주민들에게 병원까지의 교통비와 치료비를 부담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주민들을 위해 이동진료사업을 시작한 이재훈 의사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밀알복지재단 마다가스카르 지부장으로 재임하며 이동진료사업을 확대하고 현지 의료인을 양성하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마다가스카르 오지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는 이재훈 의사는 2011년 외교부가 의료봉사를 하다 세상을 떠난 고 이태석 신부를 기리며 제정한 ‘이태석상’의 첫 수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이재훈 의사는 “이동진료가 이뤄지기까지 함께 헌신해주신 수많은 분들의 공로가 아니었다면 결코 받을 수 없는 상이다. 그분들께 공과 영광을 돌린다”며 “지금 이 순간에도 항생제 하나로도 치료 가능한 가벼운 질병마저 악화돼 결국 목숨까지 잃는 오지 주민들이 있다. 취약한 보건 환경으로 의사 한 번

[기부 그 후] 질병으로 고통받는 지구촌 의료난민을 도와주세요

“갑상선 암입니다. 수술을 해야 해요.” 지난해 6시간이나 되는 먼 길을 걸어서 캄보디아 블루크로스 의료캠프에 찾아온 한 여성에게 천청병력과 같은 소식이 전해집니다. 10년이 넘게 목에 암덩어리를 지닌 채 살아온 그는 죽음의 공포와 혼자 살아갈 아이들 걱정에 눈물만 흐릅니다. 설상가상으로 육아 뿐 아니라 생활비까지 벌어야 하지만 숨쉬기도 어렵고 목소리마저 나오지 않아 얼마 전 일터에서도 쫓겨난 상황입니다.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아들, 아들을 부르고 싶은 엄마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요.” 그의 막내 아들 ‘썸낭’은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 게 소원입니다. 엄마의 목에 있는 커다란 혹 덩어리가 성대를 짓누르면서 엄마는 말하는 것도 힘듭니다. 또 숨을 쉬는 것도 무척 힘이 듭니다. 그래서 썸낭은 엄마가 편하게 숨 쉴 쉬고 말 할 수 있도록 매일 밤 소원을 빌었습니다. 그러던 이들 가족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한국에서 온 의료진이 갑상선암 수술을 무료로 해주겠다는 겁니다. 2시간 여의 수술 끝에 그의 목을 짓눌렀던 혹들이 제거되었습니다. 덕분에 숨쉬기가 편해지고, 말하기도 수월해 졌습니다. 음식을 먹는 것도 이젠 두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제 썸낭은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엄마는 아들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됐습니다.   ◇기부자 4000여명과 의료진이 만들어낸 기적 성산장기려기념사업회와 인제대 서울 백병원, 부산 고신대 복음병원 의료 봉사단이 함께 만든 블루크로스의료봉사단(이하 봉사단)은 국내외 의료난민들을 위해 의료봉사를 해오고 있습니다. 2010년부터 봉사단은 캄보디아 프놈펜에 위치한 헤브론 병원에 매년 무료 진료 및 수술 서비스를 제공하고

[시니어, 공익을 만나다]①“구호 활동가로 제2의 인생 맞이했어요”

‘시니어, 공익을 만나다’ 시리즈 첫 번째 편, 공익 활동가로 변신한 시니어들 유통 전문가에서 구호 활동가로 제2의 인생 맞은 김승수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 인터뷰     다국적 물류 회사에서 은퇴한 뒤, 국제의료봉사단체인 ‘국경없는의사회’에서 활동가로 아프리카 파푸아뉴기니, 남수단, 우간다 등 해외 이곳저곳을 누비는 김승수(61)씨.  지난 4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국경없는의사회 서울 사무소에서 만난 그는 햇볕에 검게 그을린 얼굴로 기자를 맞이했다. “지난달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됐는데, 곧 에티오피아 사무소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올해 예순을 맞이한 그였지만, 열정만큼은 20대 청년 못지않았다.   ◇은퇴 후 신세계와 조우… 청년시절 꿈 되찾아줘   “다국적 유통회사인 TNT에서 영업, 마케팅 전문가로 20여년간 일했습니다. 규모도 크고 글로벌 기업이라 연봉도 높고 복지도 좋았는데, 나이가 드니 은근한 퇴직 압박은 물론 쳇바퀴처럼 도는 내 인생이 지루해서 2011년 퇴사했죠.”  정년 퇴직을 몇 년이나 남기고 내린 결정이었다. 가족과 지인들은 은퇴를 만류했지만 그의 신념은 확고했다.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했고, 문득 모험을 즐겼던 그의 청년시절이 떠올랐단다.  “동창들은 저 보고 성공했다고 해요. 좋은 직장에 화목한 가정… 그런데 스스로 만족이 안됐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경험하는 일을 즐겨 했어요. 대학에 입학하고 취업을 하면서 꿈을 한 켠으로 밀어두고 현실과 타협해야 했죠. 이제는 자식도 어느 정도 다 컸고, 큰 돈 들어갈 일이 많지 않으니 내가 원하는 걸 하고 싶었어요. 바로 ‘새로운 세상을 향한 모험’이요.” 퇴직 후

한국의료지원재단, 저소득 ‘화농땀샘염’ 환자 약제비 지원

한국의료지원재단(이사장 유승흠)이 저소득 ‘화농성 한선염'(화농땀샘염) 환자들의 약제비를 지원한다. 13일 재단은 육체적,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질환 부담을 덜어주고자 약제비 지원 사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사업은 염증성 결절 및 농양으로 인한 통증과 제한적이었던 신체 활동, 정서적 어려움을 해결하고 환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실시된다. 화농땀샘염이라고도 불리는 화농성 한선염은 주로 겨드랑이와 서혜부(사타구니), 항문 주위, 유방 아래 등 피부가 접히는 부위에 반복적으로 염증성 결절, 농양이 생기는 만성 염증성 피부 질환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발생한다. 화농성 한선염은 환자의 삶의 질과 신체적 활동, 정서 상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분당 차병원 피부과 이희정 교수는 “화농성 한선염의 경우 항생제, 수술적 치료 등 다양한 치료법이 시도되고 있지만 완치는 쉽지 않은 질환으로, 피부과 전문의의 조기 진단과 환자의 상태에 맞는 치료법을 선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정확한 진단을 받는 데 8년이나 소요된다는 연구도 있어 환자들의 고통을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특히 기존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중증 환자의 경우 환자들의 비용 부담이 높아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제대로 치료를 받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환자 지원 프로그램에서는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자 생물학적 제제 등 고가의 치료가 필요한 중증의 화농성 한선염 환자에게 약제비가 지원된다. 환자 1인당 약제비 최대 100만원까지 지원하며 이달부터 시작, 예산 소진 시까지 진행된다.  지원 대상은 국내에 거주하는 내·외국인 중 중증의 화농선 한선염으로 치료받고 있는

[기부 그 후] 위이잉~ 모기가 생명을 앗아 간다구요?

뜨거운 여름이 다가옵니다. 여름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불청객이 있죠. 바로 ‘모기’인데요, 윙윙거리고 피를 빨아먹는 작은 모기 때문에 밤새 긁적이다 밤잠을 설치곤 하지요. 그런데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에서는 이 성가신 ‘곤충’ 때문에 목숨까지 잃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바로 모기가 옮기는 전염병 ‘말라리아’ 때문입니다.   ◇끝나지 않는 ‘말라리아’와의 전쟁   말라리아는 주로 모기에 의해 걸립니다. 말라리아에 걸리면 오한과 열, 빈혈 증상이 발생하고,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치명적인 합병증이 생겨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해요. 열대 지방에서는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가 매우 많기에 피하기가 쉽지 않지요. 말라리아 환자는 중남미 지역, 북부 및 중앙 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의 모든 나라들, 중동 및 동아시아 지역에서 많이 발생하는데요. 아프리카와 남부 아시아의 많은 지역에서는 전체 인구가 항상 감염되어 있을 정도예요.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에서는 2분마다 아동 1명이 말라리아로 목숨을 잃을 정도입니다. ☞‘말라리아’란 무엇인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감염 질환’이라는 말라리아. 빌게이츠를 비롯해, 그동안 수많은 이들과단체에서에서 말라리아와 싸워 왔지만, ‘말라리아와의 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말리라이와의 전쟁이 쉬이 끝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한번 물렸다고 해도 내성이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기에 물리면 다시 감염되지요. 말라리아 치료에 들어가는 의약품과 비용은 어마어마하다네요.   ◇ ‘국경없는의사회’ 말라리아와의 전쟁 선포   국제 의료구호 단체인 국경없는의사회는 수십년 전부터 ‘말라리아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의료시설이나 약품, 의사가 부족한 아프리카에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말라리아 예방 및 교육에 힘을 쏟고 있지요. 2014년엔

[공익, 직업의 세계] 럭셔리 브랜드보다 값진 가치를 홍보하다…국경없는의사회 ③

지금까지 국경없는의사회 소셜미디어 홍보를 하면서‘악플’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높은 연봉을 받으며 럭셔리 브랜드를 홍보할 때보다 훨씬 감사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블로그 등 국경없는의사회의 소셜미디어 채널은 구호현장의 소식을 생생하게 전하며 많은 네티즌의 공감과 지지를 얻고 있다. 그리고 최정혜(32·사진) 디지털커뮤니케이션 과장은 12개에 달하는 한국사무소의 소셜미디어 채널을 담당하고 있는 주인공이다. 지난 16일, 최정혜 과장을 만나 그녀가 어떻게 국경없는의사회를 선택하게 됐는지 일을 하면서 느낀 보람과 고민에 대해 들어봤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종교, 인종, 국적, 정치적 신념 등에 상관없이 인도주의적 구호활동을 펼쳐온 글로벌 NGO다. 1971년, 프랑스 의사와 언론인이 처음 설립했으며 한국사무소는 일본과 홍콩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세 번째로 2012년 문을 열었다.   -홍보·광고는 영리업계의 꽃으로 불린다. 어떻게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일할 결심을 하게 됐나? “막연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의사가 돼 국제구호 활동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국경없는의사회가 노벨평화상을 탔을 때쯤이었다. 의대 진학에 실패하고 재수를 할까 고민하던 차에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고 처방하듯, 홍보전문가는 브랜드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그에 맞는 홍보 전략을 처방해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홍보를 전공하게 됐다. ‘홍보를 잘 배워서 NGO로 가야지’라는 생각이었다. 졸업 후 세이브더칠드런에 온라인홍보담당으로 입사(2007년)하게 됐고, 이후 실무경험을 좀 더 쌓으려고 광고대행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외제차, 고급양주 등 한 번에 4~5개 럭셔리 브랜드를 관리했다. 업무경험은 풍부해졌지만, 비영리에 대한 갈증을 이기지 못했다. 결국 2014년, 고등학교 때부터 꿈꾸던 국경없는의사회에 입사했다.”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는 주로 어떤 일을 하나? “첫째, 현장에 파견 될 의료인과

오지마을 ‘필리핀 카파스’ 의료봉사 현장 “도움 받던 제가 이제 마을 주민 간호해요”

NGO 굿피플, 2009년 필리핀 카파스에 병원 설립… 지속적 보건교육으로 현지 인력 키워내 원주민 루샤, 장학금 받아 보건대 간호학과 재학 중 “2013년 졸업하면 보건소에서 주민 돌볼 것” “지이잉~철컥.” 마을 입구에서 생소한 기계 소리가 들려왔다. 흙더미 위를 맨발로 뛰어다니던 아이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집중됐다. 순식간에 30여명의 마을 주민들이 문 앞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아이따족 청년 한 명이 입을 크게 벌린 채, 충치 치료를 받고 있었다. 굿피플 ‘사랑의 의료봉사’팀 김영면 원장이 아이따족의 치아 건강상태를 점검하고 있는 현장이다. “처음엔 아무도 진료실 안으로 들어오질 않았어요. 충치 때문에 이빨이 시리고, 잇몸에서 피가 나고 있는데도 말이죠. 치위생 교육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치과 치료가 필요한지도 몰랐던 겁니다.” 지난 2월 27일, 국제개발 NGO 굿피플(Good People)은 필리핀 마니바악 마을에서 진료실을 열었다. 내과, 치과, 산부인과 의사 4명, 약사 1명, 간호사 1명 등 총 6명의 의료팀이 꾸려졌다. 문명과 떨어진 깊은 산속, 아이따족은 아파서도 다쳐서도 안 된다. 온몸이 물집으로 욱신거리고, 상처가 나도 치료를 받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굿피플은 필리핀 카파스시와 양해각서(MOU)를 체결, 지난 2009년 카파스병원 문을 열었다. 이 지역 최초의 시립병원이었다. 아이따족은 이곳에서 평생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접근성이 문제였다. 탈수 증세로 쓰러진 아이를 병원까지 이송하는 데 세 시간 넘게 걸렸다. 병원에 도착해도, 사망하는 이들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굿피플 김이규 부회장은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따족에 필요한 건 ‘치료’보다

재산 420억원 기부·소외이웃 의료봉사… 줄기세포에 모든걸 건 그

차광렬 차병원 회장 줄기세포 임상센터 세계 최초로 문 열어 입원까지 원스톱 제공 “의학발전에 힘써 달라” 국제줄기세포센터에 연구기금 100억원 기부 성남시와 손잡아 메디클러스터 조성 계획 “줄기세포 치료제는 인류 난치병 치료에 신기원을 열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줄기세포 치료제의 연구와 개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개인 재산 기부를 비롯해 아낌없이 지원할 계획입니다.” 지난 12월 7일, ‘성남 차움 국제줄기세포 임상시험센터’가 문을 열었다. 이는 줄기세포 치료제의 생산부터 임상시험, 수술, 입원까지 원스톱(One-stop)으로 제공되는 세계 유일의 줄기세포 임상시험 센터로, 냉동절차 등을 거치지 않고 세포를 추출해서 바로 적용이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줄기세포치료는 기존의 수술이나 약물요법으로 치료가 불가능했던 난치성 질환의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미래 의학으로 꼽히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인구 노령화 문제가 급증하면서 불치병 치료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병원 그룹은 그동안 줄기세포와 관련한 많은 연구성과를 보이며 줄기세포 치료의 대표 병원으로 성장해왔다. 그리고 그 중심엔 차광렬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이 함께 했다. 차 회장의 기부 철학은 두 가지다. 연구를 통한 줄기세포 치료의 산업화, 교육을 통한 인재양성이 바로 그것이다. 줄기세포 연구에 모든 것을 걸겠다던 그의 소신은 1998년, 첫걸음을 내디뎠다. 차 회장에게는 진정한 의료 인력을 양성해 세계 의술의 허브로 도약하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1997년 포천중문의과대학(CHA의과학대학교) 개교식에서 “미력하나마 평생을 의업에서 축적한 경제적 부를 의학 발전과 후진 양성을 위해 바치겠다”고 공언했던 그는 이듬해 개인 재산 320억원을 환원하며 그

파도 타고 세계로 움직이는 병원 중남미 넘어 아시아로…

병원선 ‘머시쉽’ 대표 돈 스테판스 부부 세계적인 의료봉사 단체 ‘머시쉽(Mercy Ships)’의 돈 스테판스(Don Stephens, 65)대표가 한국을 찾았다. 1978년에 설립된 이 단체는 배에 모든 의료장비를 갖춘 ‘움직이는 병원’을 운영한다. 지금까지 이 병원선(病院船)을 통해 새로운 삶을 찾은 사람은 무려 290만명에 달한다. 70개가 넘는 나라들에서 진행한 의료봉사 활동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9457억원. 매년 배에 올라타는 의사, 간호사를 비롯한 봉사자만도 1500여명이다. 이러한 머시쉽의 헌신에 라이베리아, 감비아 등 방문국 대통령들은 “국민 모두를 대표해 머시쉽 봉사자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직접 배에 올라 감사 인사를 전하곤 한다. 돈 스테판스 대표가 ‘머시쉽’의 꿈을 품은 것은 셋째 아들 존 폴(John Paul)이 태어난 1976년이다. 뇌성마비를 지니고 태어난 아들은 평생 혼자 힘으로 먹지도, 씻지도 못할 운명이었다. “아들은 우리 눈을 뜨게 해 주었어요. 저개발국가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도록 말이죠. 너무 가난해서 아무런 의료 혜택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마음에 품게 되었죠.” 병원선에서 직접 간호사로 활동한 아내, 디온 스테판스(Deyon Stephens, 64)가 당시를 떠올렸다. 부부는 아들이 태어난 지 2년 후인 1978년, 은행에서 100만달러를 대출받아 첫 번째 배를 샀다. 수술실, 진료실 등을 비롯한 의료시설과 장비를 위해서 모금 활동을 펼쳤다. 함께 할 봉사자도 모집했다. 그렇게 첫 번째 병원선 ‘아나스타시스(Anastasis)호’가 만들어졌다. 부부는 아예 배에서 살면서 직접 의료봉사를 위한 준비를 해 나갔다. 드디어 배를 준비한 지 4년 만인 1982년. 첫 항해를 시작해 과테말라에서 의료봉사를 펼칠 수 있었다. 당시 저개발국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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