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삼
이일하·박종삼·김노보… 개발원조의 산증인들

2010년 세상을 떠난 어린이재단 고(故) 김석산 회장에 이어 정정섭 기아대책 회장이 최근 별세하면서, 한국 NGO를 이끈 1세대들의 ‘큰 별’들이 하나둘씩 지고 있다. 이에 늦기 전에 현존하는 NGO 1세대들의 역사와 발자취를 기록하고, ‘우리나라 해외원조의 산증인’인 이들의 삶을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현존하는 NGO 1세대로는 이일하 굿네이버스 회장, 박종삼 월드비전 전 회장, 김노보 세이브더칠드런 회장, 박동은 유니세프 부회장, 강문규 지구촌나눔운동 이사장 등을 들 수 있다. 1991년 7명의 지인과 함께 굿네이버스를 창립한 이일하(66) 회장은 ‘토종’ NGO로서는 기적에 가까운 성장을 일궈냈다. 설립 당시 2억원에 불과했던 모금액은 518배인 1035억여원으로 증가했고, 128명에 불과했던 정기 후원자도 26만여명으로 늘었다. 대형 NGO로 성장한 굿네이버스는 전 국민 나눔 교육, 기부 전문 포털 ‘기부스타트’ 론칭, 적정기술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기부 문화를 확대하고 있다. 박종삼(76) 전 월드비전 회장은 50년간 사회복지 현장에 있었다. 서울대 치과대학을 나와 진료 봉사에 나섰고, 무의탁 청소년들을 위한 마을을 세웠다. 20년 넘게 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2003년 월드비전 회장에 올랐고, 9년 동안 월드비전을 39만명의 후원자와 1000억원대 모금을 하는 NGO로 키워냈다. 아동결연사업도 미국, 캐나다, 호주에 이어 4번째로 큰 규모로 확대됐다. 김노보(68)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은 30년 동안 한국네슬레에서 일하다 2004년 직원 수 10명에 불과했던 세이브더칠드런에 합류했다. 그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길거리 모금은 이후 ‘모자 뜨기’ ‘빨간 염소’ 등 전 국민이 참여하는 모금 캠페인으로 발전했다. 체계적인 후원자 관리 시스템과 직원 역량 강화

[Cover story] 인터뷰―월드비전 한국 박종삼 회장 “우리의 나눔은 개미군단의 승리이자 생명 나눔”

아동 결연사업 규모 세계 4번째짧은 역사 속 ‘기적’의 성적모금이 가장 잘된 시기는 IMF 때”우리는 충분히 스스로를자랑스러워할 자격 있어” 전쟁을 직접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극한의 굶주림과 공포를 이해하게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운 일’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이뤄졌던 때가 1950년, 6·25전쟁 이후다. 당시 한국 거리에는 굶고 병든 아이들이 넘쳤다. 전쟁을 피해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 하나 부지하기 어려운 시절. 커다란 트럭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아이들의 시체를 보고, ‘어린 생명을 돕자’는 구호단체가 생겨났다. ‘한국 월드비전 60년, 세계 월드비전 60년’의 역사도 그렇게 시작했다. 당시 14살 소년이었던 월드비전 박종삼(75) 회장도 1950년 그 추운 겨울을 ‘거리의 소년’으로 지독하게 났다. “길에서 잠자며 며칠 굶주리고 나니, 지나가는 사람 주머니에서 동전이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고 했다. 살아남으려면,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도 도와줄 수 있으려면, 실력을 갖춰야 한다고 깨달았다.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남았고, 그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사람들에게 보답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서울대 치과대학을 나와 진료 봉사에 나섰고, 무의탁 청소년들을 위한 마을을 세웠다. 20년 넘게 교수로도 봉직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쉼 없이 달려온 시간들. 그는 “학교 정년 퇴임식 날, 비로소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식은 오래가지 않았다. 월드비전 이사들이 찾아왔다. 그간 쌓은 모든 지식과 네트워크를 월드비전의 성장을 위해 쏟아달라는 요청이었다. “완고하게 거절하는 저에게 한 분이, 얼마 안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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