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8일(수)
[Cover story] 인터뷰―월드비전 한국 박종삼 회장 “우리의 나눔은 개미군단의 승리이자 생명 나눔”

아동 결연사업 규모 세계 4번째짧은 역사 속 ‘기적’의 성적모금이 가장 잘된 시기는 IMF 때”우리는 충분히 스스로를자랑스러워할 자격 있어”

전쟁을 직접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극한의 굶주림과 공포를 이해하게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운 일’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이뤄졌던 때가 1950년, 6·25전쟁 이후다.

당시 한국 거리에는 굶고 병든 아이들이 넘쳤다. 전쟁을 피해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 하나 부지하기 어려운 시절. 커다란 트럭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아이들의 시체를 보고, ‘어린 생명을 돕자’는 구호단체가 생겨났다. ‘한국 월드비전 60년, 세계 월드비전 60년’의 역사도 그렇게 시작했다.

당시 14살 소년이었던 월드비전 박종삼(75) 회장도 1950년 그 추운 겨울을 ‘거리의 소년’으로 지독하게 났다. “길에서 잠자며 며칠 굶주리고 나니, 지나가는 사람 주머니에서 동전이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고 했다.

박종삼 회장은“한국 월드비전 60년의 역사가, 세계 구호단체의 역사”라며“잿더미에서 일어나 더 큰 사랑을 나누게 된 한국의 성공을 우리 모두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1950년 당시 14살이었던 소년의 머리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하얗게 세었지만, 그 열정과 패기는 아직도 뜨거웠다. /고대권 더나은미래 기자
박종삼 회장은“한국 월드비전 60년의 역사가, 세계 구호단체의 역사”라며“잿더미에서 일어나 더 큰 사랑을 나누게 된 한국의 성공을 우리 모두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1950년 당시 14살이었던 소년의 머리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하얗게 세었지만, 그 열정과 패기는 아직도 뜨거웠다. /고대권 더나은미래 기자

살아남으려면,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도 도와줄 수 있으려면, 실력을 갖춰야 한다고 깨달았다.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남았고, 그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사람들에게 보답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서울대 치과대학을 나와 진료 봉사에 나섰고, 무의탁 청소년들을 위한 마을을 세웠다. 20년 넘게 교수로도 봉직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쉼 없이 달려온 시간들. 그는 “학교 정년 퇴임식 날, 비로소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식은 오래가지 않았다. 월드비전 이사들이 찾아왔다. 그간 쌓은 모든 지식과 네트워크를 월드비전의 성장을 위해 쏟아달라는 요청이었다.

“완고하게 거절하는 저에게 한 분이, 얼마 안 있으면 죽을 텐데 그럼 그 머릿속에 든 가치 있는 것들도 모두 잿더미가 된다고 꾸짖으셨습니다.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2003년, 회장 자리에 오른 후 월드비전한국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7년 새 후원자는 39만 명을 넘어섰다. 후원금도 1000억원대로 커졌다. 아동 결연사업에 있어, 미국·캐나다·호주에 이어 4번째로 규모가 커졌다.

“이건 기적입니다. 60년간 결연사업을 해온 숱한 국가를 제치고, 해외 원조 20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이 4번째로 결연 아동이 많다는 것은 기적이라고밖에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우리의 나눔은 “개미군단의 승리이자, 생명 나눔”이라고 했다.

“미국·유럽처럼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거치며 부를 축적한 나라의 사람들이 가난한 나라를 돕는 건 말 그대로 자선일 겁니다. 우리는 식민시대와 전쟁, 가난과 독재를 거치며 살아왔어요. 우리는 혼자 잘사는 데 머물지 않고 더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나서고 있습니다. 이건 생명을 나누는 일입니다.” 그는 국가나 큰 기업보다도, 십시일반 자기 것을 내어 놓는 우리나라 국민이 진정한 역사의 주인공이라고 했다.

미상_사진_국제구호_박종삼2_2010“기부가 적다, 봉사를 안 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한국이 경제 성장을 했다고는 하지만 모두 부자가 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없는 가운데서 더 나누겠다는 한국 사람들은 위대한 겁니다. 아이 이름으로 후원해주는 부모들부터, 반에서 동전을 모아 결연을 신청하는 아이들까지, 볼 때마다 자랑스럽고 뿌듯합니다. IMF 외환위기 때 모금이 가장 잘 됐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마음이 그렇게 따뜻합니다.”

그는 요즘 해외에 나가면 다른 나라 NGO들이 다가와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코리아 넘버원’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한국 음식, 한국 드라마 얘기를 꺼내고, 강연 요청도 심심치 않게 들어온다.

“많은 나라들이 제 눈치를 보며 지원을 해줄 수 있냐고 묻죠. 그럼 저는 ‘당당하게 요청하라’고 말합니다. 우리도 가난했었고, 도움을 요청했고, 그래서 당신들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죠. 잿더미 속에서 일어난 우리를 보면서, 그들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습니다.”

6·25전쟁 이후 우리나라는 무려 40년 동안 해외 구호단체의 지원을 받았다. 그는 “그 과정에서 무엇이 진짜 세상을 돕는 것인지를 우리 국민이 배웠다”고 했다.

“이 경험은 정말 중요한 우리의 ‘유산(遺産)’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우리 같은 경험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보다 더 잘 도울 수 있는 나라도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 때문에 요즘 박종삼 회장은 월드비전 직원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급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내라”고 주문하고 있다.

“그렇게 하려면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신해 현장을 찾아내고, 가장 필요한 도움이 무엇인지 해결책을 마련하고, 후원자들을 설득해야 하니까요.” 그는 생명 살리는 것만큼 전문적이고 어려운 일이 없다고 했다. “한 아이를 돕고, 가족을 돕고, 마을을 돕지 않으면 이 싸움을 끝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세계의 가장 가난하고 급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서 1년에 필요한 돈이 230억달러(26조원)입니다. 어마어마한 돈으로 들리지요? 하지만 전세계 나라들이 국방비로 쓰는 돈이 1년 7800억달러(881조원), 마약으로 쓰는 돈이 4000억달러(450조원), 향수로 쓰는 돈이 120억달러(13조5000억원)입니다. 돈이 없어서 돕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분배의 문제, 마음의 문제입니다.”하얗던 얼굴이 일순 발갛게 달아올랐다. 마치 눈앞에서 어린아이들이 울부짖는 것처럼,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월드비전한국의 2020년 목표가 전 세계 100만명의 아이들을 돕는 겁니다. 비극을 성공으로 만든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목표도 꼭 달성하게 도와줄 거라고 믿습니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는 내내, “우리는 충분히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할 자격이 있다”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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