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이서현 보고서’

이번호 커버스토리를 다루면서 울산 울주에서 계모의 학대로 사망한 8세 소녀 ‘이서현 보고서’를 읽었습니다. ‘제2의 이서현 사건’을 막기 위해 사건의 전개 과정, 제도적 문제점, 개선 방향을 정리한 한국판 클림비 보고서입니다. 2000년 빅토리아 클림비라는 아이가 아동학대로 숨졌을 때 영국 정부는 2년에 걸쳐 전문가들의 체계적인 조사 활동을 토대로 한 보고서를 만들고 이를 국회에 제출해 승인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서현 보고서는 2개월 동안 민간위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보고서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왜 우리는 서현이를 살려내지 못했을까’를 짚어내는, 이른바 실패 연구집입니다. 사건 개요를 읽다 눈물과 분노, 안타까움이 일었습니다. 최초 신고를 받은 포항아동보호전문기관, 서현양 가족이 급히 이주했던 인천아동보호전문기관에 대해 “왜 아동을 격리 조치하지 않았느냐” “왜 적극 개입하지 않았으냐”고 비난할 수 있을까요. 학교, 유치원, 병원 등 신고 의무자에 대해 “왜 신고하지 않았느냐”고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최선을 다해 서현양을 돌봤던 상담원 A씨는 사건 이후 경찰에 불려가고 각종 진상보고서를 만드느라 시달리는 등 갖은 고초를 치렀다고 합니다. 신고 의무자들 중 신고 의무자 교육이나 아동학대 예방교육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의사는 의과대학 시절 소아과 과목에서 학대 예방교육을 들은 게 전부요, 교사는 교사 양성 과정에서 학교폭력에 초점이 맞춰진 교육을 받았을 뿐 아동학대 인지 교육은 받지 못했고, 민간 학원은 본인이 신고 의무자인 줄도 몰랐다네요. 궁금해졌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연 이 보고서를 읽었을까요. 역대 정부에서 아동정책은 늘 후순위였지만, 여성 대통령인 박 대통령은 좀 다를 걸 기대했습니다. ‘투표권이

[Cover Story] [아동학대 예방정책, 이대로 괜찮은가] ① 아동학대 특례법, 이대로라면… 실효성 없는 법조문으로 끝날 가능성 크다

[아동학대 예방체계, 이대로 괜찮은가](1)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 전수조사 작년 12월, ‘아동학대 범죄 및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아동학대 특례법)이 제정됐다. 울산에서 계모의 학대로 갈비뼈 16대가 부러져 사망한 ‘울주군 서현이 사건’이 계기가 됐다. 2000년 아동학대 예방 사업이 시작된 지 13년간의 숙원 사업이 풀린 셈이다. 아동학대 사건에 개입할 법적 기반은 확보됐지만, 과연 대한민국 아동보호 체계는 바뀌게 될까. 조선일보 더나은미래는 오는 9월 아동학대 특례법 시행을 앞두고 아동학대 예방정책을 긴급 점검해봤다. 편집자 주 “사실 인터뷰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와 서현이를 돌봐주던 상담원, 많은 분에게 이 사건은 여전히 큰 아픔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당시 서현이 사례 상담 팀장이었던 김지수(가명)씨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사건 발생 3년 전인 2011년 5월 13일, 포항 아동보호 전문기관에서 상담팀장으로 근무하던 김씨는 “동네 유치원에 다니는 한 아이의 몸에서 멍이 발견됐다”는 신고 전화를 받고 상담원 2명을 현장에 파견했다. 긴 옷 차림의 서현이 옷을 벗기자 발바닥, 배와 등에 심한 멍 자국이 발견됐다. “학대 행위자였던 박씨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자신의 행위가 학대인지는 몰랐다고 말했지만, 폭행 사실은 순순히 인정하면서 앞으로 절차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습니다.” 5일간 현장 조사와 면담을 마친 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전체 회의를 소집해 서현이를 ‘원가정에서 보호하되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서비스 개입을 진행하자’고 결정했다. 사례를 전담하는 상담원으로는 A씨가 선정됐다. “직접 현장조사를 했던 터라 서현이 사례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일을 하더라고요.” 이후 두 달 동안 가해자인 박씨(13회)와 친아버지(1회), 유치원 교사를

[희망 허브] [기업, 철학이 바뀐다] ③ 환경·지역과 상생… 세계 100개국 뻗어나간 힘

기업, 철학이 바뀐다 티라윗 리따본 태국 더블에이 부회장 산에서 나무 베지 않도록 논 옆 자투리땅에 나무 심어 연간 670만t 이산화탄소 감축 가공하고 남은 폐기물들 최대한 재활용해 원료 활용 지역 농가도 살려 일석이조 친환경적 상생 가능한 모델 한국에도 널리 알리고 싶어 최근 탄소세 도입을 두고 환경부와 자동차 업계의 날 선 공방이 있었다. 탄소세 제도는 탄소배출량이 많은 차에 부담금을 부과하고 배출량이 적으면 보조금을 주는 제도인데, 재계에선 “우리 실정에 안 맞는 지나친 규제”라는 반응이다. 이런 상황에서 친환경을 규제가 아닌, 기회로 여긴 철학을 가진 기업이 있어 눈길을 끈다. 복사용지로 유명한 태국의 ‘더블에이(DoubleA)’ 이야기다. 티라윗 리따본(57·Thirawit Leetavorn) 부회장에게 그 특별한 철학을 들어봤다. 티라윗 리따본 부회장은 유니레버, 시그램 등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하며 신시장 개척을 담당했던 마케팅 전문가로, 지난 2005년 더블에이에 합류했다. ―복사용지를 만들려면 당연히 산림목을 벨 것으로 예상하는데, 산에 있는 나무를 베지 않는다는 게 사실인가. “제지회사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종이의 원재료인 나무다. 우리는 태국의 특수한 환경에 주목했다. 태국은 세계 최대의 쌀 생산국으로, 전체 인구의 40%가 농업에 종사한다. 대부분 영세하다. 전통적으로 태국 농가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농지를 물려주는데, 이 과정에서 유실이 생기며 토지 규모가 점점 작아진다. 세대가 거듭될수록 가난해지는 거다. 우리는 산이 아니라, 논과 논 사이 자투리땅에서 키우는 나무 ‘칸나(KHAN-NA)'(유칼립투스 수종) 모델을 도입했다. 산의 나무를 베지 않으면서, 지역 농가도 살릴 수도 있는 방법이다. 농촌 주민들과 협의를 통해 작은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이젠 진짜 복지 개혁을 시작할 때

박근혜 정부가 ‘규제 개혁’에 한창입니다. MB 정부 초반에도 대불산단의 ‘전봇대 규제’가 대표 사례로 제시되면서 “규제를 없애자”고 나라가 들썩들썩하던 게 떠오릅니다.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이 이슈가 되자, 최근 사회복지 관계자 한 분이 저희에게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이명박 정권 때 방송에 보도된 ‘공원 공중 화장실에서 기거하는 3남매’ 때에도 소외 계층 찾아내기 총력전이 벌어져 한 달여 호들갑을 떨었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방법이 현장에서 반복돼 너무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당시는 지금보다 더했습니다. 동사무소뿐만 아니라 세탁소협회, 목욕탕협회, 음식점협회, 사회복지 관련 단체들까지 모두 나서 띠를 두르고 “사각지대를 찾자”고 나섰지요. 하지만 찾는다고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100명을 찾았으면, 이 100명에 대한 맞춤형 지원이 이뤄질 대책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대책이란 게 대개 이런 식입니다. 시·군·구, 지역사회에 흩어져 있는 복지 서비스망을 통합 지원하는 시스템 ‘○○센터’가 만들어집니다. 정부 부처나 지자체는 그곳에 3년 정도 사업비를 주고, 민간단체에 입찰을 통해 운영을 맡기거나 퇴직 공무원을 센터장으로 내려보냅니다. 흩어진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엮는 초특급 전문적인 일은 월 100만원짜리 단기계약직들이 맡게 되고, ‘○○ 시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기존에 해왔던 비슷한 종류의 일을 반복합니다. 만약 이 와중에 이번 송파 사건과 같은 대형사건이 나면, 언론과 정치권, 시민단체 등은 “정부는 왜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지 않느냐”고 질타합니다. 그러면 정부는 또다시 예전의 써먹었던 대책을 이름과 콘텐츠만 약간 바꾼 채 발표합니다. 이러다 보니 지역사회의 복지 서비스망을 들여다보면, 정부로부터 일정한 사업비를 받아 운영하는 고만고만한 중간지원조직이나 종합지원센터 등이

[기업, 철학이 바뀐다] ② 황제 경영? 이 회사는 직원이 황제랍니다

기업, 철학이 바뀐다 ② 주성진 여행박사 대표 정년·비정규직 없는 회사 간부는 선거 통해 뽑아 3년 차부터 승진하려면 70% 넘는 지지율 필요 직원들 주인의식 생기니 파산선고 받았던 위기도 십시일반 23억 모아 탈출 전 직원이 볼 수 있도록 법인카드 내역 공개 “이익 10%는 사회 환원” 복지기관에 여행 지원도 매년 가을이 되면, 팀장급 이상 간부를 직원 투표로 뽑는 회사가 있다. 2013년 총매출액 2000억원에 달하는 중견 여행업체 ‘여행박사’ 이야기다. 사장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말, 여행박사 신창연(51) 창업주는 79.2% 지지를 받아 대표직을 물러났다(그는 선거 공약으로 80%의 지지율을 내걸었다). 대신 당시 주성진(30·사진) 일본팀 패키지팀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하며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사장이 직원을 뽑는 것이 아니라 직원이 사장을 뽑는 것이다. ‘오너의 황제 경영’에 대한 부작용이 세간의 이슈가 되는 지금, ‘기업, 철학이 바뀐다’ 시리즈 2번째 주인공은 ‘여행박사’다. 지난달 27일, 서울시 용산구 갈월동에 있는 여행박사 사옥에서 대표 취임 2개월 차에 접어든 주성진 대표를 만났다. 그는 19세라는 젊은 나이에 입사, 12년 동안 여행박사의 생사고락을 함께했다. 회사 경영 상황이 나빠져 연봉 1원 계약을 한 적도 있고, 1억원의 인센티브를 받은 적도 있다. 주 대표가 말하는 여행박사의 경영 철학은 ‘직원의 만족을 우선시한다’이다. 투표제도 여기서 출발했다. “설립된 지 3년쯤 됐을 때 사원 한 명이 팀장으로 승진했는데 직원들 사이에 불만이 있었습니다. 창업주가 ‘너희랑 일할 사람은 너희가 뽑아라’고 시작한 것이 간부 직선제의 계기죠.” 여행박사에서는 간부(팀장, 본부장, 이사,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복지정책이 살펴야 할 개인의 삶

제가 아는 어떤 아이는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자, 할아버지·할머니의 주민등록에 이름을 올린 ‘조손가정’입니다. 시골에 사는 조부모는 팔리지도 않는 땅과 차량 등이 있기에, 아이는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이나 국가의 복지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합니다. 그나마 주변 친인척 등의 도움이 마지막 사회안전망입니다. 제 고향 시골에 사는 어떤 초등학생 아이는 술만 먹으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밑에서 자랍니다. 엄마는 가출했고, 아들 삼형제는 학교에서 유명한 학교 폭력 아동입니다. 아버지가 있는 상태에서, 이 아이들을 보육원으로 보내는 문제도 쉽지 않습니다. 보육원이 과연 최선의 선택인지도 의문입니다. 저 또한 시골에서 도시로 처음 나와 홀로 가난과 외로움에 맞서 싸운 경험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제가 살던 자취방엔 소외 계층투성이였습니다. 세무대학에 가서 집안을 일으키겠다던 고학생, 밤마다 가정폭력을 일삼던 가장이 있던 가족, 곤로에 밥을 해먹어가며 좁은 방에서 자취하던 여고생 둘…. 어느 날 밤, 제 자취방에 침입하려던 도둑이 문을 따려는 소리를 듣고 저와 제 친구는 세상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날 이후 그 방에 들어가기 너무 무서웠지만, 제 주변엔 도와줄 어른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 방법도 몰랐습니다. 일주일 남짓 친구의 하숙집 신세를 지다가 두려움에 떨면서 그 방에 다시 들어가던 그때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얼마 전,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살던 세 모녀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동반 자살한 사건 때문에 나라가 들썩들썩합니다. 과연 이들이 주민센터에 찾아갔더라도 복지 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복지부나 지자체는 ‘대책 마련’을 일회성으로

[기업, 철학이 바뀐다] ① 경영원칙 1순위는 직원… 우린 연애하듯 일해요

[기업, 철학이 바뀐다] ① 안준희 핸드스튜디오 대표 앱 200개 개발한 중소기업… 즐거운 회사로 더 유명해 “오늘 행복해야 내일 행복” 직원들 결혼축하금 주려고 매달 1000만원씩 적금… 요즘엔 육아지원 제도 준비 물론 회사로서 성장 고민… 다만 나 혼자 잘 살기보다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지 가치 두는 게 핵심이죠 지금까지 배워온 기업의 제1 목표는 이윤 추구였다. 하지만 최근 이 자본주의 원리를 반문하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 2008년부터 ‘B 코퍼레이션(Benefit-Corporation)’ 운동이 시작됐다. B 코퍼레이션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 비영리단체 B랩(B-Lab)이 수여하는 인증의 일종으로, 주주를 위한 이윤 추구 외에 사회적 선(善)을 목표로 해야 한다. 지금까지 세계 32개국에서 1000개 가까운 기업이 인증을 받았다. 더나은미래는 기업의 철학이 변하는 현장을 찾아 그 흐름을 짚어보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그 첫 주인공은 ‘핸드스튜디오’다. 핸드스튜디오는 매출의 80%를 직원 급여와 복지로 써서 떠들썩한 스마트TV 애플리케이션 개발 전문 회사다. 5년차 신생 기업 앞에 붙는 수식어는 ‘한국의 구글’. 결혼 지원금 1000만원, 출산 지원금 1000만원, 육아휴직 2년, 3개월 단위로 3일 휴가, 조식·중식·석식 제공…. 우스갯소리로 “사내 결혼 하면 대박 나겠다”고들 한다. 항간에는 복지가 좋은 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안준희(32·사진) 대표의 경영 철학이 핵심이었다. ‘오늘 하루를 즐겁게 일하고 개인을 성장시킨다.’ 이러한 경영 철학은 안 대표가 대학 졸업 후 3개월간 경험했던 대기업 문화가 바탕이 됐다. “청년이 꿈을 꿀 수 있는 조직이 아니었어요. 건강한 성장보단 인맥·처세가 작용하는 문화였지요.” 이후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사회와 이상의 괴리감 저는 오늘도 흔들립니다

현대해상과 더나은미래,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가 함께하는 ‘청년, 세상을 만나다’ 프로젝트에 응모한 이들의 경쟁률이 9대1을 넘었습니다. 스펙으로 가득한 이력서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습니다. ‘더 이상 봉사활동도 차별화가 안 되는구나’ 싶었습니다. 도대체 이 많은 스펙을 쌓기 위해 이들은 24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외계인도 아닐 텐데, 93년도에 대학을 다녔던 저는 ‘이게 과연 가능한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변변한 스펙이 없는 학생을 보면 ‘그동안 뭘 한 건가’ 싶었습니다. 면접관의 눈높이가 이미 상향평준화돼버린 탓이겠지요. 게다가 이력서 속에 담긴 비정규직의 아픔이 읽히자, 말문이 턱 막혔습니다. 특목고를 졸업하고 SKY 대학까지 졸업했으나, 한번 계약직에 몸을 담근 후 2년마다 계약직을 전전한 채 20대 후반이 된 학생들. 이들은 신입도 경력도 아닌 어정쩡한 존재가 돼버린 듯 보였습니다. ‘딸 둘을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개인적인 고민까지 생겨났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딸아이 주변에는 영어, 수학학원을 안 다니는 아이가 거의 없습니다. 어떤 반 친구는 벌써 학원 숙제 하느라 새벽 1시에 잔다고 하더군요. 선행학습을 하지 않은 제 딸은 세 자릿수 곱셈이 느려, 모둠활동에서 민폐를 많이 끼치는 존재입니다. 봄방학을 맞아 아이를 돌봐줄 곳이 마땅치 않아 시골 할머니 댁에 보냈는데, 아이는 “너무 재밌다”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아이도 어른과 비슷한 모양입니다. 여유 있게 하늘도 보고, 바람 맞으며 산책도 하고, 하릴없이 뒹구는 그 시간이 좋은 게 말입니다. ‘어차피'(피 터지게 공부하느라 고생해봤자 SKY 나와도 좋은 직장 구하기 힘든 세상인데)와 ‘그래도'(좋은 대학이라도 가지 않으면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비영리 시장, 탄탄한 길이 필요하다

설 명절 전후로 흉흉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한 비영리단체에서는 차기 회장 선임을 둘러싸고 이사장과 전임 회장을 따르던 이들이 갈등을 빚고, 이사장이 아예 일부 반대파 직원을 지방으로 발령 냈다고 합니다. 또 다른 단체에서는 후원액이 줄어들어 사업을 계속하기 어렵다며, 오래 몸담아온 직원을 구조 조정했다고 합니다. 반면 옥스팜 같은 해외의 유명 국제구호 NGO들은 한국을 두고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이라며 속속 국내 상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린피스는 거리 모금 활동가를 무려 10명씩 뽑기 위해 채용공고를 지난달 냈고 취업설명회까지 열 예정입니다. 펀드레이저(fundraiser·모금가)라는 직업군이 모여 설립한 ‘한국모금가협회’도 2월 말 창립 기념행사를 연다고 합니다. 올 한 해 비영리 시장이 얼마나 격동적으로 움직일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반이 튼튼한 비영리단체는 굳건하게 성장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곳은 자칫 사업을 접어야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때로 이렇게 불붙는 비영리 모금 시장이 약간 불안합니다. 개인과 기업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기부를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테크닉(기술)이 너무 앞서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비영리단체를 위한 싱크탱크는커녕 제대로 된 통계자료조차 아직 구하기 어렵습니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선 정보를 공유하고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모금시장 격화로 일부에선 폐쇄적 태도를 보입니다. S단체, C단체 등 일부 큰 단체는 중소단체를 위해 노하우를 공유하거나 함께 연대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비영리 영역이 커지고 성장하려면, 가야 할 길이 첩첩산중입니다. 불투명한 비영리단체 한 곳의 비리 문제로 모금 시장 전체가 위축될 수도 있습니다. 우선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작은 NGO에게도 단비가 내려야 할 때

‘더나은미래’는 지난 2011년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가 수여하는 ‘제5회 지속가능경영언론상’ 대상을 받았습니다. 언론사에 몸담고 있으면, 이처럼 외부로부터 상을 받거나 지원을 받는 기회가 있습니다. 삼성언론재단, LG상남언론재단, 한국언론진흥재단, 관훈클럽 등 많은 곳에서 기자들의 국내외 대학원 진학 지원, 해외연수 지원, 저술지원, 언론상 시상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때문입니다. 매일 숨 가쁜 일상에 지친 기자들에게 이런 외부지원은 역량 강화와 자기계발을 위해 ‘단비’ 같은 고마운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비영리단체·복지기관·사회적기업 등 공익분야 종사자들을 위한 외부지원은 많지 않았습니다. 복지기관 종사자 해외연수 프로그램이나 모금·홍보·국제개발협력 등에 관한 교육 등이 일부 있지만, 매우 부족해 보입니다. 지난해부터 저에겐 가끔 “내부 직원들에게 홍보와 글쓰기 전반에 대해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옵니다. 연초부터 몇몇 단체의 지인으로부터 “유능한 홍보담당자 좀 찾아달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비영리단체 중간관리자 리더십 교육 프로그램 괜찮은 것 없느냐”는 문의도 받았습니다. 비영리단체에서 이처럼 적극적으로 직원 역량강화에 나서는 데는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경쟁이 그만큼 심해졌기 때문이지요. 이번호 ‘더나은미래’ 지면에서 보듯, 해외 유명 NGO들은 ‘노하우’와 ‘자금’을 갖춘 채 본격 모금활동을 벌일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미 수십만명의 개인후원자들을 보유한 대형 NGO들은 보다 세련된 후원자 관리 시스템과 홍보전략으로 ‘집토끼 잡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사회공헌을 통해 함께 사업을 해오던 기업은 점점 ‘전략적 사회공헌’을 강조하면서, 사회공헌팀이 직접 사업을 하거나 가시적인 임팩트(Impact)를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제가 만약 중소 NGO 대표라면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결국 외부의 충격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NGO들도 전문성 있고 역량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과분한 격려받은 지난 2년… 올해도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이른 새벽 반짝이는 이슬은 하늘을 향하여 불평했습니다. 하나님, 이 차가운 새벽 저를 이렇게 추위에 떨게 하십니까? 진정 저를 사랑하여 만드신 것입니까? 제게 따뜻한 햇볕을 내려 주십시오. 그 소원대로 따뜻한 햇살이 내리비쳤습니다. 그러자 이슬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산마루서신에서) ‘존재의 긴장이 사라지면 존재 자체도 사라진다’. 이른 새벽, 묵상을 위해 이 글을 읽고 여운이 오래 남았습니다. 지난 2년간 더나은미래 편집장 자리를 돌아봤습니다. 고민하고 분투했으며, 때로 안주하고 교만했습니다. 2013년 결산보고서를 쓰느라 한 해 더나은미래 발자취를 들여다보니, 걸어온 자리가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4월 창간 3주년 기념 국제 콘퍼런스를 시작으로 6차례 콘퍼런스를 열었습니다. 공익 분야의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네트워킹의 장을 마련하려는 시도였는데, 분에 넘치는 격려를 많이 받았습니다. 굿네이버스·하트하트재단·코이카·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아름다운가게·초록우산어린이재단·한국사회투자 등 외부 파트너들과 공익캠페인을 벌였습니다. 특히 지난해 8월부터 아산나눔재단과 함께 ‘아산미래포럼’을 발족한 것은 매우 뜻깊었습니다. 탈북·장애·미혼모·비행·가정외보호 청소년의 자립과 성장을 위해 35인의 현장전문가들과 함께 25번의 좌담회를 갖고, 솔루션을 모색해 보았습니다. 청년 소셜벤처인 위즈돔과 함께 6월부터 7개월 동안 ‘청년, 기업 사회공헌을 만나다’ 행사를 통해, 13곳의 국내 대표 사회공헌 우수 기업을 초청했습니다. 2주에 한 번 지면을 메우기에도 헉헉대는데,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요. 삼성꿈장학재단 손병두 이사장 대담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소명의식’ 때문입니다. ‘더나은미래는 왜 존재하는가’, 누군가 물을 때, 그 답을 좀더 잘 하고 싶어서입니다. 중국 베이징으로 떠날 일정이 막혀 계속 더나은미래 편집장을 하게 된 것도 ‘보이지 않는 손’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2014년에도 더나은미래팀은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모두

[청년, 기업사회공헌을 만나다] ⑬ 홈플러스 사회공헌팀 황애경 팀장

[더나은미래·위즈돔 공동 캠페인]“물건 사면 기부하는 착한 소비, 기업 사회공헌 이끌어” 지난 11일,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와 위즈돔이 주최한 ‘청년, 기업 사회공헌을 만나다’의 마지막 13번째 강연이 서울 역삼동 동그라미재단에서 열렸다. 마지막 강연자는 황애경 홈플러스 사회공헌팀 팀장. 이날 황 팀장은 청중 앞에서 ‘어린생명 살리기 캠페인’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백혈병을 앓는 아이들이 매년 1300명 정도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병이 악화되기 전에 치료를 받으면 완치율이 75%에 달하지만, 부모의 연령대가 30대 초반인 경우가 많아 치료비를 자체 부담하기 어렵습니다. 백혈병 소아암 어린이를 돕기 위해 작년부터 284개 회사와 공동 프로모션을 벌이고 있어요. 매장 방문 고객이 생명의 쇼핑카트 로고가 붙은 상품을 사면, 해당 기업이 판매 금액의 1%를 기부합니다. 여기에 홈플러스가 매칭그랜트(matching grant) 방식으로 금액을 출연해 연 30억원의 기금을 마련합니다. 지금까지 197명의 아이들에게 치료비를 전달할 수 있었어요.” 황 팀장은 “착한 상품에 대한 사회적인 요구가 있음을 드러내는 사례”라며 “사회공헌 활동 결과 중 유의미한 내용을 분석해, 협력업체의 추가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연이 무르익을 즈음, 한 청중이 질문을 던졌다. “유통업계는 최근 동반성장, 협력업체와의 상생을 끊임없이 요청받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공헌 활동에는 어떤 것이 있으신가요?” 황 팀장은 ‘사회공헌 R&D’ 사례를 들었다. “2년 전 협력업체를 포함한 140개 기업 CEO를 대상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지를 조사했어요. 약 40%가 사회공헌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예산과 노하우가 지원된다면 사회공헌을 진행할 것인지’를 물었더니 78% 정도가 참여 의사를 표시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