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5일(금)

[기업, 철학이 바뀐다] ② 황제 경영? 이 회사는 직원이 황제랍니다

기업, 철학이 바뀐다 ② 주성진 여행박사 대표
정년·비정규직 없는 회사 간부는 선거 통해 뽑아
3년 차부터 승진하려면 70% 넘는 지지율 필요
직원들 주인의식 생기니 파산선고 받았던 위기도 십시일반 23억 모아 탈출
전 직원이 볼 수 있도록 법인카드 내역 공개
“이익 10%는 사회 환원” 복지기관에 여행 지원도

매년 가을이 되면, 팀장급 이상 간부를 직원 투표로 뽑는 회사가 있다. 2013년 총매출액 2000억원에 달하는 중견 여행업체 ‘여행박사’ 이야기다. 사장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말, 여행박사 신창연(51) 창업주는 79.2% 지지를 받아 대표직을 물러났다(그는 선거 공약으로 80%의 지지율을 내걸었다). 대신 당시 주성진(30·사진) 일본팀 패키지팀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하며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사장이 직원을 뽑는 것이 아니라 직원이 사장을 뽑는 것이다. ‘오너의 황제 경영’에 대한 부작용이 세간의 이슈가 되는 지금, ‘기업, 철학이 바뀐다’ 시리즈 2번째 주인공은 ‘여행박사’다.

P.S. 신창연 창업주는 인터뷰 이틀 전, 청년 30명 과 캄보디아로 '꼴통투어'를 떠났다. 여행박사 투어 상품 중 하나인 '꼴통투어'는 청년들과 여행하며 멘토링을 해주는 것으로 올해엔 총각네 야채 가게 이영석 대표, 오종철 소통테이너가 함께했다. 낙선(?)한 후 한 단계 직급이 깎여 대표이사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신 창업주. 그의 1년 일정 중 90%는 여행 스케줄로 이미 가득 차 있다.
P.S. 신창연 창업주는 인터뷰 이틀 전, 청년 30명 과 캄보디아로 ‘꼴통투어’를 떠났다. 여행박사 투어 상품 중 하나인 ‘꼴통투어’는 청년들과 여행하며 멘토링을 해주는 것으로 올해엔 총각네 야채 가게 이영석 대표, 오종철 소통테이너가 함께했다. 낙선(?)한 후 한 단계 직급이 깎여 대표이사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신 창업주. 그의 1년 일정 중 90%는 여행 스케줄로 이미 가득 차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시 용산구 갈월동에 있는 여행박사 사옥에서 대표 취임 2개월 차에 접어든 주성진 대표를 만났다. 그는 19세라는 젊은 나이에 입사, 12년 동안 여행박사의 생사고락을 함께했다. 회사 경영 상황이 나빠져 연봉 1원 계약을 한 적도 있고, 1억원의 인센티브를 받은 적도 있다. 주 대표가 말하는 여행박사의 경영 철학은 ‘직원의 만족을 우선시한다’이다. 투표제도 여기서 출발했다.

“설립된 지 3년쯤 됐을 때 사원 한 명이 팀장으로 승진했는데 직원들 사이에 불만이 있었습니다. 창업주가 ‘너희랑 일할 사람은 너희가 뽑아라’고 시작한 것이 간부 직선제의 계기죠.”

여행박사에서는 간부(팀장, 본부장, 이사, 대표이사 권한대행, 대표이사)가 되려면 선거를 치러야 한다. 임기 첫해에는 50% 지지를 얻으면 되지만, 이듬해는 60%, 3년 차부터는 70% 지지율을 넘겨야 한다. 아랫사람에게 평판이 좋아야 승진이 가능한 구조다. 신입 사원 면접 과정에도 사장이나 임원은 참여하지 않는다. 팀이 원하는 직원을 팀장이 직접 채용한다.

여행박사는 보텀업 기업 문화의 대표 주자다. /여행박사 제공
여행박사는 보텀업 기업 문화의 대표 주자다. /여행박사 제공

◇보텀업(Bottom-up·상향식) 기업 문화로 직원 만족도 높이다

여행박사의 복지 제도도 톱다운(Top-down·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진행 방식)이 드물다. 성형수술비(라식·라섹·치아교정·피부과 등 본인부담금의 절반) 지원, 의료비 보조, 직원이 사망하면 1년치 연봉을 직계가족에게 지원하는 제도(구글은 직원 사망 시, 배우자에게 급여 절반을 10년 동안 지급한다)도 직원들의 아이디어다. 주 대표는 “직원들이 사용하지 않으면 죽은 복지나 다름없다”면서 “이용자가 1~2명 정도밖에 안 된다면 과감히 없애버린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직원 230명 중 70명이 성형수술비 지원금을 받았고, 마라톤 기록 단축으로 600만원을 인센티브로 받은 여직원도 있다(마라톤 10㎞ 남자 47분, 여자57분 기준에 1분 단축할 때마다 100만원을 지원한다).

직원들의 요청에 따라 불편한 행정 처리도 간소화했다. 사내 인트라넷에 법인카드 결제 내역 시스템을 연동하면서, 별도로 영수증 첨부를 할 필요가 없다. 주 대표는 “대표를 비롯한 전 직원의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사내 인트라넷에 접속하면 볼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여행박사의 투명 경영으로 이어졌다.

사회공헌도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다. 지난해부터 사회공헌 홈페이지(http://csr.tourbaksa.com)를 별도로 열어 도움이 필요한 현장 이야기(복지시설·사회적기업 창업 지원 등)를 상시 접수하고 있다. 2012년부터 매년 진행하고 있는 ‘복지기관 해외여행 공모전’도 대표 사례. 보통 70~80개 기관이 신청을 하고, 이 중 한 곳이 여행을 지원받는다. 기금은 전 직원의 1% 월급 기부와 회사의 매칭그랜트 방식으로 마련된다. 주 대표는 “장애인·저소득층도 여행의 즐거움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 회사의 철학 중 하나”라면서 “여행박사의 분배 경영 원칙 중 하나는 이익의 30%는 주주에게, 30%는 직원, 30%는 재투자, 나머지 10%는 사회 환원에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2년, 입사 10년 차 직원들은 알래스카로 크루즈 여행을 떠났다. /여행박사 제공
지난 2012년, 입사 10년 차 직원들은 알래스카로 크루즈 여행을 떠났다. /여행박사 제공

◇”우리 직원들은 남다른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인지 2008년 경영 위기 때 여행박사를 구한 것은 직원들의 힘이었다. 주 대표는 “당시 인수 합병을 거쳐 상장에 성공했지만 모기업 경영진의 불법 대출과 주가조작 논란으로 8개월 만에 상장이 폐지됐고 파산선고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당시 여행박사 직원은 150여명. 그중 100명이 ‘연봉 1원’ 계약을 맺고 100만원부터 많게는 2500만원까지 십시일반 자본금을 내 23억5000만원을 만들었다. “어떻게 직원의 3분의 1이 합심해서 견딜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주 대표가 이야기를 한 올 한 올 풀어갔다.

“여행사는 컴퓨터, 책상, 사람이 다예요. 먼저 창업주가 그동안 보여줬던 경영 철학을 저희가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100억을 힘들게 버느니 10억을 재미나게 벌자’는 말을 하곤 했는데, 실제로 신명나게 일을 했습니다. 저도 지금껏 회사에 오는 게 싫었던 적이 없어요. 성과 분배에서도 공을 많이 들이는 회사라 다들 더 열심히 일합니다.”

신 창업주와 직원들이 고군분투한 결과 여행박사는 6개월 만에 위기를 돌파하고 재기에 성공했다. 이제 여행박사는 주주의 100%가 직원이다. 얼마 전 회사 화장실 리모델링도 직원들 반대에 부딪혀 그만뒀다. “돈을 쓸데없는 데 왜 쓰느냐”는 반응 때문이었다.

여행박사에는 정년도, 비정규직도 없다. 지난해엔 입사 10년을 맞이한 20명이 9박 10일간 해외 크루즈 여행(600만원 상당)도 다녀왔다. 현재 10년 차 이상이 된 직원은 총 40명으로 20%에 육박하는 수치. 83세의 주차반장 아저씨(?)도 정규직이다. 단, 경기를 타는 여행업의 특성상 리스크가 높기 때문에 공채는 없고 수시 채용만 한다. 채용에선 신중하게 움직이는 것이 원칙이다. 주 대표는 “채용 권한도 팀장한테 있기 때문에 팀장이 사장 같은 분위기입니다”면서 허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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