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5일(금)

[기업, 철학이 바뀐다] ① 경영원칙 1순위는 직원… 우린 연애하듯 일해요

[기업, 철학이 바뀐다] ① 안준희 핸드스튜디오 대표
앱 200개 개발한 중소기업… 즐거운 회사로 더 유명해 “오늘 행복해야 내일 행복”
직원들 결혼축하금 주려고 매달 1000만원씩 적금… 요즘엔 육아지원 제도 준비
물론 회사로서 성장 고민… 다만 나 혼자 잘 살기보다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지 가치 두는 게 핵심이죠

미상_사진_기업,철학이바뀐다_안준희대표_2014

지금까지 배워온 기업의 제1 목표는 이윤 추구였다. 하지만 최근 이 자본주의 원리를 반문하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 2008년부터 ‘B 코퍼레이션(Benefit-Corporation)’ 운동이 시작됐다. B 코퍼레이션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 비영리단체 B랩(B-Lab)이 수여하는 인증의 일종으로, 주주를 위한 이윤 추구 외에 사회적 선(善)을 목표로 해야 한다. 지금까지 세계 32개국에서 1000개 가까운 기업이 인증을 받았다. 더나은미래는 기업의 철학이 변하는 현장을 찾아 그 흐름을 짚어보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그 첫 주인공은 ‘핸드스튜디오’다.

핸드스튜디오는 매출의 80%를 직원 급여와 복지로 써서 떠들썩한 스마트TV 애플리케이션 개발 전문 회사다. 5년차 신생 기업 앞에 붙는 수식어는 ‘한국의 구글’. 결혼 지원금 1000만원, 출산 지원금 1000만원, 육아휴직 2년, 3개월 단위로 3일 휴가, 조식·중식·석식 제공…. 우스갯소리로 “사내 결혼 하면 대박 나겠다”고들 한다. 항간에는 복지가 좋은 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안준희(32·사진) 대표의 경영 철학이 핵심이었다.

‘오늘 하루를 즐겁게 일하고 개인을 성장시킨다.’

이러한 경영 철학은 안 대표가 대학 졸업 후 3개월간 경험했던 대기업 문화가 바탕이 됐다. “청년이 꿈을 꿀 수 있는 조직이 아니었어요. 건강한 성장보단 인맥·처세가 작용하는 문화였지요.” 이후 3년간 공장, IT 업계 등을 전전하며 다양한 조직 문화를 경험했다. 이 과정에서 철학을 공유한 창업 멤버 4명을 만났다. 2010년 ‘연애하듯 행복한 일터를 만들자’며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다. 창업 아이템도 없었다. 모아 놓은 돈 5000만원에다, 친구에게 5000만원을 빌려 자본금 1억원을 모았다. 창업 멤버들에게 10%씩 지분을 나눠줬다.

5평짜리 원룸에 둥지를 튼 멤버들은 한 달 동안 해외 논문, 책을 탐독하다 ‘스마트TV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분야를 발견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 스마트폰이 막 나오기 시작한 시점, 스마트TV 분야는 ‘블루오션’이었다. 창업한 지 두 달 만에 기회가 왔다. “당시 삼성전자 과장님이 검색을 하는데 스마트TV 앱 개발 기업으론 저희가 유일했다고 하더군요.” 시범적으로 만든 헬스 관련 앱이 유럽 시장에서 히트를 치면서 6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달성했다. 현재 이들이 만든 앱은 200개가 넘고, 삼성·LG·SK·네이버·아마존 등이 주요 고객이다. 지난해 매출은 38억원.

성장하고 있지만, 유보금이 20%도 안 된다니 위험하지 않을까. 안 대표는 “경영학적 사고론 설명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오늘이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하다’는 철학으로밖에 설명이 안 된다”고 했다. 여러 번 좋은 투자 조건에 한 번도 응하지 않은 이유다. “앞으로도 투자를 받지 않을 거냐”는 질문에 그는 “미리 겁을 먹어서 거절한 부분도 있는데 사회가 바뀌고 있음을 느낀다”면서 “회사의 경영 철학을 지지하는 투자자가 있다면 가능성을 열어놓을 것”이라고 답했다. 안 대표를 포함한 이사진은 지금까지 배당금을 한 번도 가져가지 않았다. 그는 “대부분의 회사는 주주가 먼저 수익을 챙긴 다음에 직원들에게 나누지만 우리의 우선순위는 직원”이라고 했다. 2011년부터 직원들의 결혼 축하금을 지원하기 위해 월 500만원씩 적금을 부었다. 결혼 적령기인 직원이 늘어나면서 지난해부턴 월 1000만원으로 늘렸다(핸드스튜디오 평균 연령은 28세고, 올 상반기만 해도 5명이 결혼을 앞두고 있다). 안 대표는 이제 구성원들을 위한 ‘육아 지원 제도’ 정비에 한창이다.

2010년 창업자 5명으로 시작한 핸드스튜디오는 직원 42명, 연매출 40억 원의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2010년 창업자 5명으로 시작한 핸드스튜디오는 직원 42명, 연매출 40억 원의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직원이 진짜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복지죠”

어마어마한 복지 제도를 가진 회사라고 느끼지만, 시작은 소소한 이벤트 수준이었다. 첫 복지 제도(?)는 한 달에 한 번 직원들에게 영화 보여주고, 맛있는 것 사주기. 당시 대부분이 싱글 남성으로 영화를 보고 싶어도 늘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제대로 끼니를 챙겨 먹지 못한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현재 20개가 넘는 핸드스튜디오의 복지 제도는 모두 안 대표 아이디어의 산물이다. 그가 가장 고민하는 질문은 ‘지금 직원들한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다. 가장 애착이 가는 제도는 ‘가족과 함께하는 1박 2일 송년회’다.

“창업하고 1년 만에 고향에 내려갔어요. 부모님과 함께 오랜만에 교회에 가서 인사를 하는데, 주위 분들이 제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시더라고요. 어머니께 ‘왜 이야기하지 않으셨느냐’고 물었더니 ‘네가 망할까 봐 말 안 했다’고 하시더군요. 이름도 없는 벤처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 부모님 마음도 같겠거니 싶었죠.”

이후 어버이날엔 회사 차원에서 직원 부모님에게 한우 세트를 선물하고, 연말 송년회에 부모님을 초청하기 시작했다. 이날을 위해 직원들은 몇 달 동안 공연, 영상 편지 등 송년회 순서를 직접 준비한다. 안 대표는 “부모님도 직원들도 매번 울고, 감동이 넘치고 만족도도 높은 행사”라고 했다. 개발팀의 서희(26) 연구원(노조위원장)은 “송년회, 미디어데이, 패션쇼 등 다양한 특별한 문화들이 있는데 참여하다 보면 회사와 동료를 좀 더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즐겁게 일한다는 소문에 인재들도 몰려…

핸드스튜디오의 철학은 인재 발굴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는 “2011년도까진 채용 공고를 낼 때 ‘스마트TV 앱’이라는 산업적 우위로 어필했지만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2012년도부터는 ‘채용 시스템’에 변화를 가져왔다. 직원들의 회사 생활 모습, 여러 이벤트를 블로그에다 포스팅하기 시작한 것. 소문과 언론을 타고 ‘즐거운 회사’로 알려지면서 매일 채용 문의가 들어온다. 요즘엔 공고를 내면 경쟁률 200대 1을 기록한다. 현직 방송사 기자가 고민을 담은 장문의 채용 문의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이 회사의 채용 과정은 다른 곳과 반대다. 편견 없이 ‘전문성을 가진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서다. 대개 이력서를 보고 자기소개서, 포트폴리오 순으로 서류 확인을 하지만, 핸드스튜디오는 포트폴리오와 자기소개서만 본다. 이력서는 면접 과정에서 참고하는 정도다. 대신 입사하면 ‘성장’에 대한 요구를 스스로 강하게 느낀다고 한다. 1년에 두 번 전 직원의 성과를 평가해 이익금을 나누는 성과 시스템 때문이다. 직급이 아니라 성과로 평가하기 때문에 직급이 낮아도 훨씬 많은 돈을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

“저희는 정당한 거래를 하는 회사입니다. 조직 문화와 채용, 성과 시스템 3박자가 맞아야 건강한 조직으로 성장합니다.”

직원의 전문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지원은 아낌없다. 업무와 관련된 자격증 학원비 및 수강비는 100% 지원하고, 매월 25일이면 희망 도서 목록을 신청받아 도서 구매도 지원한다(자유로운 지원을 위해 쇼핑몰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전 직원이 공유한다).

핸드스튜디오 사무실 3층에 위치한 강연장 및 직원들의 휴식 공간으로 쓰이는 스튜디오.
핸드스튜디오 사무실 3층에 위치한 강연장 및 직원들의 휴식 공간으로 쓰이는 스튜디오.

◇창업 5년 차… 하나의 철학, 다양한 시도

아직 풀어야 할 과제는 많다. 안 대표는 지난 3년을 “극과 극을 오갔다”고 표현했다. 근무시간을 완전 자율에 맡겨 근태를 없애보기도 하고, 반대로 지문 등록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 그는 “평등해서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던 적도 많았고, 반대로 일에 집중하다 보면 처음에 내세운 가치들이 깨지기도 했다”고 했다. 올해 초 핸드스튜디오는 마이스터고를 졸업한 여고생 2명을 특별 채용했다. 전문성을 제1원칙으로 꼽는 회사 채용 방식에 반하는 행동인데, 왜 그럴까. 조직원의 인격 성장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시도 중 하나다.

“직원 대부분이 핸드스튜디오가 첫 직장이에요. 평등한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다 보니 선후배 문화를 잘 모릅니다. 이직할 때 다른 기업 문화에 적응할 수 있을지도 고민이고요. 한참 어린 후배가 조직 내에 있다면 전문 분야에서 선배가 되어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달 핸드스튜디오는 사무실을 2층에서 3층까지 확장하면서 두 팀으로 나눴다. 경영기획팀, 디자인팀, 개발팀 등 업무 부서로 나눈 것이 아니라 성격유형검사(MBTI)를 통해 과정중심형·결과중심형 두 가지 업무 스타일로 팀을 만들었다. 여기에도 안 대표의 경영 철학이 묻어난다.

“조직 내에 갈등이 생길 때 단지 그 사람과 일하는 방식이 다를 뿐인 경우가 많더라고요. 즐겁게 일하고 싶은데 장벽이 된다면 해결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장은 연애와 같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핸드스튜디오 안준희 대표. 그에게도 고민은 ‘어떻게 회사를 성장시킬지’다. 하지만 그 중심에 나 혼자만 잘사는 것이 아닌 구성원들의 오늘의 행복에 최고 가치를 두는 것이 핵심이다. 그는 “직원들보다 월급도 많이 받고, 함께 행복하니 그걸로 된다”며 웃었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