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방] 일 잘하는 사람

코리아나호텔 주차장에 차를 대기 시작한 건 2011년이었다. 수개월간 회사 주차장을 비롯해 여러 주차장을 배회하다가 마침내 정착한 곳이었다. 월 주차비 12만원. 도심 한복판에 있는 주차장치곤 가격이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주차 관리하는 분들이 다 좋았다. 세 명의 관리자 중 가장 나이가 많고 책임이 많았던 그분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소장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계장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는 매우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업무를 했고 바쁜 와중에도 늘 단정하고 친절했다. 두 달 전쯤 주차장 입구에서 뚝딱뚝딱 공사를 하더니 차량 드나드는 시스템이 자동으로 바뀌었다. 예전 시스템이 참 구식이었단 걸 그제야 깨달았다. 사람이 부스에 앉아서 차단기를 일일이 열어주는 방식이었으니까. 시스템이 바뀐 뒤에도 한동안 관리자분들이 보여서 별문제 없나 보다 했는데, 갑자기 모두 사라져버렸다. 소장님과 10년간 매일 얼굴 보며 인사를 주고받았지만 대화를 나눈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일하는 모습으로 그를 기억할 뿐이다. 일을 참 즐겁게 하는 사람. 그러므로 좋은 사람. 공익제보자 A는 기부금단체에서 20년 넘게 일하다 사표를 썼다. 조직이 갑자기 비도덕적이고 비상식적으로 굴러가기 시작했고 그 꼴을 견딜 수가 없어서 그만뒀다고 했다. 새 직장을 찾은 그는 전 직장의 갑질 비리 의혹을 제보하겠다며 우리에게 연락을 해왔다. A를 만나러 나가는 후배들에게 잔소리를 좀 길게 했다. 우리가 궁금한 건 제보자의 개인적인 사연이 아니라 팩트다, 기사를 쓰는 이유는 개인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함이 아니라 진실을 전하기 위해서다, 공익제보자라고 다 좋은 사람은

[사회혁신발언대] “새로운 상호 작용의 시작인가, 기존 추세의 강화인가”…코로나19 이후의 국제 개발협력

전 세계적 보건 비상사태인 코로나19 발생과 이로 인한 사회경제적 위기는 글로벌 협력 체제를 재검토하는 계기가 됐다. 바이러스로 인해 생긴 과제들이 초국가적 연대의 새로운 형태와 표현을 초래한 것이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코로나19 사태는 한 국가가 단독으로 다룰 수 있는 일이 아니며 현존하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한 바 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이 끝난 뒤 국제 개발협력의 모습은 어떠할까. 이번 사태를 전 세계적 차원으로 직면하게 되면서 공공재에 대한 규정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선진국들의 개발협력 예산에 대한 압박이 커질수록 이러한 변화가 개발협력을 정의하는 새로운 담론이 될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개발도상국에서의 주된 협력 모델로서는 지속적으로 의의를 잃고 있다. 근래에는 보다 창의적인 대책을 요구받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 대한 중국의 지원이나 미국으로 보낸 러시아 의료물품과 같은 이전과 다른 형태의 협력도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다. 이러한 정황은 공공에 대한 국가들의 지위 추구 행위와 사람들 개개인 간의 공동 연대가 어우러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국제협력은 갈수록 다각적이고 보편적인 성격을 띤다. 이러한 변화들은 새로운 형태의 협력을 도래할지, 혹은 기존의 추세를 보강할지 생각해볼 수 있다. 제도의 설립 및 조정 과정은 주로 단계와 점진적인 수정을 거친 비선형적인 형태로 진행될 것이다. 코로나19 이후의 모습을 누구도 예측할 수 없지만, 최근 생겨나는 전 세계적 과제들을 다루기 위해 양질의 국제협력이 본질적인 토대가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개발협력을 통해

유지민(거꾸로캠퍼스 재학생)
[모두의 칼럼] 코로나 사태… 장애 학생 위한 배려는?

코로나19 사태로 전국 학생들이 등교 대신 온라인 수업을 했다. 중학교 2학년인 나도 매일 집에서 컴퓨터, 프린터와 씨름하느라 애를 먹었다. 지체 장애가 있는 내 입장에서는 이런 수업 방식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리적 등·하교를 하면서 생기는 어려움, 하루에 8시간 이상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생기는 체력적인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됐다. 세상만사가 그렇듯 모든 일에는 장점과 단점이 존재한다. 온라인 수업이 그렇다. 이미 여러 가지 단점이 드러났다. 집에 온라인 수업에 필요한 전자 기기가 없는 학생도 있고 맞벌이 가정이나 한부모 가정, 코로나19 관련 직업 종사자 가정 자녀의 돌봄 문제 등도 발생했다. 그중에서도 장애 학생들이 겪었던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코로나 사태를 통해 장애 학생이나 특별한 돌봄이 필요한 학생들이 처한 교육 현실이 얼마나 열악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시각·청각 장애 학생들의 불편함은 대학교에서 사이버 강의가 시작됐을 무렵부터 문제가 됐던 걸로 안다. 판서 내용을 볼 수 없어 필기가 불가능하고 저화질의 강의로 인해 수업 내용의 30%도 알아듣지 못하는 등 조금만 생각해봐도 영상 강의가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얼마나 큰 난관으로 다가올지 알 수 있다. 실제로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청각 장애를 가진 분은 이어폰을 끼고 소리를 최대로 높여 간신히 수업을 듣고 있다며 불편함을 토로했다. 지적·발달 장애 학생들은 특수 학교에 다니거나 일반 학교 중에도 특수 학급에 소속된 학생들이 대부분인데, 교육 면에서는 상당 부분을 학교에 의지하는지라 학생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도

[모두의법] ‘비영리 회계투명성’이라는 뜨거운 감자

최근 비영리단체의 회계투명성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정의기억연대는 쉼터의 운영과 윤미향 대표의 개인 명의 모금 등으로, 나눔의 집은 후원금 사용을 둘러싼 내부제보 등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보도된 내용 중 최소한 회계투명성과 관계된 의혹은 기재누락 내지 오기재로 인한 결과로 해명된 부분이 있다. 물론, 회계나 공시 관련 개별 단체의 역량부족은 비판을 받아야 할 지점도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발생 원인을 그렇게 단편적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비영리단체의 투명성 논란이 거듭해서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아직도 많은 수의 비영리단체들이 각 단체의 미션을 위한 사업이나 운동에만 신경을 기울이는 나머지 회계나 운영의 책무성, 투명성에 관해서는 부차적인 업무로 취급하는 탓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사실상 강제하는 열악한 재정상태도 문제다. 모든 비영리단체는 자신의 설립목적을 위해 수행하는 활동에 관해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이해관계자란 현재의 기부자들뿐만 아니라 비영리단체가 투신하는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가진 시민, 나아가 함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주체인 정부도 포함된다. 회계는 이해관계자와 소통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다. 비영리단체는 이해관계자들이 단체 활동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도록 회계정보를 충실하게 작성해 공시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활동가들에게 최저임금 수준의 인건비를 겨우 지급하는 대부분의 비영리단체의 경우 회계 투명성을 위해 큰 비용을 투입할 경제적 여력이 없다는 점이다. 회계사 등 전문가에게 의뢰하기는커녕, 회계만 담당하는 전임직원을 채용할 수 있는 조직도 많지 않다. 사회적 경제조직이나 소상공인의 경우 쉽게 접할 수 있는 전문가 컨설팅 지원정책 또한 비영리 영역에서는 찾아보기

[진실의방] 라떼를 끓이며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비영리 활동가 출신 ‘어른’을 만났다. 지금은 공공기관의 높은 자리에서 일하느라 말쑥한 정장 차림에 넥타이까지 매고 다니지만 조금만 대화를 해보면 빼도 박도 못하는 ‘현장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몸으로 때우고 싸워가며 속도감 있게 일하다가, 단계와 절차가 많은 큰 조직에서 일하려니 어려움도 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게 보였다. 저기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뜨거운 피’ 말이다. 한마디로 흙바닥에서 시작한 사람이다. 공익의 개념조차 흐릿하던 시절에 NGO 단체에 들어가 몸과 마음을 ‘갈아 넣으며’ 일했다. 그때는 진짜 아무것도 없었는데, 하며 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느낌이 왔다. 라떼 이야기다. ‘라떼는(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옛날이야기.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런 종류의 무용담을 좋아하는 편이다. 유독 라떼를 잘 끓이는 사람들이 있다. 기자 선배 중에 특히 많다. 마치 구비문학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 청중의 호응이 좋으면 양념이 살짝 뿌려지면서 더 스펙터클해지는 스토리. 자세를 고쳐 앉고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공정무역이라는 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때 공정무역 커피를 들여온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의도는 훌륭했으나 초창기에는 일반 커피보다 가격도 비쌌고 맛도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어서 장사가 잘 안 됐다고 했다. 그럼에도 아프리카 커피 농부들을 떠올리며 아침에는 교회에 가서 커피 팔고, 오후에는 절에 가서 커피를 팔았다는 웃기면서도 짠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기부금을 받기 위해 여기저기 기업들을 찾아다녔던 추억도 꺼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는 돈이 드니까, 라고 그는

[모두의법] 사회 구성원의 자격과 미등록 이주 아동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특정 국가나 지역 출신에 대한 혐오, 차별적 발언이 일상으로 퍼지고 있다. 만약 올 하반기까지 상황이 계속되면 우리 사회는 이방인을 어떻게 인식할까? 전망은 비관적이다. 감염의 해외 유입을 막기 위해 각국이 앞다퉈 국경을 높이고 있지만, 그 앞에서 좌절하는 난민들의 목소리는 벽을 넘기 어렵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바이러스의 확산은 공공정책이 왜 사회 구성원 모두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지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우리 정부는 미등록 이주민이라도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단속의 위협 없이 검사받을 수 있고, 감염됐다면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널리 홍보하고 있다. 최근 정세균 국무총리는 ‘미등록 외국인’도 신분 걱정 없이 마스크를 공급받고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국가기관이 ‘불법체류자’라는 멸칭(蔑稱)에 가까운 용어를 쓰지 않고 ‘미등록 외국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최초의 사례로 보인다. 물론 유엔 등 국제 무대에서는 국제표준에 맞춰 ‘미등록 이주민’이라는 표현을 이미 사용하고 있다. 미등록 이주민도 방역 정책의 대상에 포괄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인식이 발언의 기저에 깔려 있다. 이러한 경험들이 쌓이면 마땅히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회 구성원의 범위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확장되리라 본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놓은 결정은 ‘사회 구성원이 될 자격’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한다. 진정 대상인 피해자들은 국내에서 출생한 미등록 이주 청소년이다. 이들은 법무부의 ‘불법체류 학생의 학습권 지원 방안’ 지침에 따라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부모와 함께 강제 퇴거가 유예됐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다시 강제 퇴거 대상이 됐다. 법무부는

이재현 NPO스쿨 대표
[사회혁신발언대] 코로나19 이후의 비영리<下>

온라인 기반 스크랩 서비스 중 ‘미로’와 ‘비캔버스’라는 곳이 있다. 최근 원격근무가 대중화되면서 크게 주목을 받는 서비스 중 하나다. 포스트잇 방식을 활용해 팀별 토론까지 가능하게 해 호평을 받고 있다. 온라인으로 하는 토론이 처음엔 어색하게 느낄 수 있지만 실제로 서비스를 사용해본 결과 대부분의 사람이 금세 적응하고 토론에 몰입했다. 사람들이 이 서비스에 금세 적응한 것처럼, 대면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비영리 영역도 언젠간 ‘느슨한 조직 문화’와 ‘비대면 활동’에 익숙해지는 날이 오진 않을까. 좋은 점도 있을 것이다. 온라인 행사가 늘어나면 거동이 어려운 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이나 사회 참여권도 확대될 수 있다. 재택근무로 이동량이 줄면 탄소배출이 감소할 수도 있다. 지금 비영리 영역 안에서도 코로나 19 이후에 대한 여러 시선이 교차하고 있다. 이 시각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전자책이 나와도 종이책이 팔리는 것처럼 코로나 19 이후에도 대면 활동의 비중이 일부 줄어드는 정도의 작은 변화만 있을 것이라는 보는 시각이다. 전통적인 비영리 활동 방식을 고수하는 가장 보수적인 시각이다. 두 번째, 온라인상에서 네트워킹과 협업을 도와줄 기술이 새로 나와 비영리가 하던 일부 활동에 적용되는 정도의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이런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비대면을 대면의 보조 활동 정도로 본다. 변화에 대한 중도적 시각이라 하겠다. 세 번째, 온라인 중심 활동이 대면 활동을 거의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을 것이란 시각이다. 이 의견을 가진 사람 중에는 비대면 활동이 대면

이재현 NPO스쿨 대표
[사회혁신발언대] 코로나19 이후의 비영리<中>

“코로나 19로 인한 불황이 장기화되면 후원금이 줄어들 텐데, 재정 환경이 열악한 작은 단체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요즘 비영리조직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코로나 19 이후를 준비하는 비영리조직은 직원들의 ‘고용 유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면서도, 조직 생존과 해산에 관한 새로운 시나리오까지 생각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아무런 재난이 없는 상황을 전제하고 만들어진 조직 운영 방식을 완전히 바꿀 각오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상근 인력의 숫자나 임대료 등 일반적인 비용 축소 방안도 통하지 않을 정도의 재정 상황이 극한에 치달은 조직은 해산을 고민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발전적인 해산’이라는 상상을 해 보면 어떨까. 중요 활동을 남겨둔 채 사무실과 상근 인력이 없는 네트워크나 자원봉사 조직으로 바꾸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직원 임금을 고정급여가 아닌 성과급 방식으로 지급할 수도 있다. 이때 필수적으로 도입될 재택근무나 자율근무의 확대에 대한 대응법도 고민이 필요하다. 노동 강도와 성과를 명확히 평가하고 보상할 체계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식의 새로운 조직 운영 방식을 찾는 실험을 이미 시작한 단체도 있다. 상근자가 아닌 일반 시민이나 자원봉사자와의 협력 방법도 다시 구상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소규모 모임이 확산하고 있는데, 이것도 비영리조직들에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코로나 19 사태 이전에도 이미 ‘가볍게 연결되기’를 선호하는 2030세대가 사회 주류로 떠오르면서 개인보다 조직을 중시하던 비영리 운영 방식은 변하기 시작했다. 재난은 조직에 지친 시민들이 개인 대 개인으로 느슨하게 연결되는 흐름을 가속할 것이다. 전통적인

이재현 NPO스쿨 대표
[사회혁신발언대] 코로나19 이후의 비영리<上>

어딜 가나 코로나19 이야기다. 미디어에도 코로나 19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NGO나 NPO 등 비영리조직이 큰 역할을 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거대한 재난인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바꾸고 있는 지금, 비영리 영역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커다란 위기를 맞았다. 스스로의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과 정체성을 증명하고 재난 이후에도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19로 장애인·저소득층 등 사회취약계층이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졌다. 비영리조직 대부분이 이들에게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코로나 19 국면에선 속수무책이었다.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대면 활동이 제한되면서 노인·장애인 복지관과 지역아동센터 등의 복지 시설과 도서관·평생교육원 등 지역사회 서비스 센터, 비영리활동의 거점이라 할 수 있는 자원봉사센터 등 많은 시설이 문을 닫았다. 이들 시설 대부분이 개관 이래 최초의 휴관을 겪었다. 비영리기관과 이들이 돕던 사회적 약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문제는 코로나 19 사태가 끝나도 비영리 영역의 약화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코로나19로 복지·공공서비스 전달체계가 ‘올스톱’ 수준으로 무너지면서, 정부와 민간의 관계성이 달라질 조짐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복지·공공서비스 전달체계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부는 비영리조직 등 민간 영역의 복지 관계자들에 대한 개입과 관리를 강화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 올 가능성이 크다. 비영리 관계자들 사이에선 코로나19 시국에서 시민의 건강과 위생 관리 역할을 독점하게 된 정부가 앞으로의 민관 파트너십을 이끌며 ‘관 주도’ 방식을

[진실의방] 여전히 천동설을 믿는 사람들

  “쇼하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CEO 제프 베이조스가 최근 사재를 털어 100억달러(약 12조3000억원)를 기부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못해 싸늘하다. 그는 이른바 ‘베이조스 지구 기금(Bezos Earth Fund)’이라는 걸 조성해 이 돈을 기후변화 대응에 쓰겠다고 밝혔다. 칭찬받아 마땅할 일인데 되레 욕을 먹는 이유는 아마존이 ‘기후위기 악당 기업’으로 명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전자상거래 사업과 배송 사업 등으로 전 세계 탄소배출량을 늘리는 데 큰 공(?)을 세우고 있다. 기후변화를 가속화하는 기업 운영 방식은 바꾸지 않고 기후변화 대응 기금을 만들겠다고 하니 거액을 내놓고도 좋은 소리를 못 듣는 것이다. 최근 SNS에서 번지고 있는 ‘나쁜 기업 사회공헌 활동 기금 거부 운동’도 흥미롭다. 국내 복지기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이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는 기업의 기부금은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릴레이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에 지목된 곳은 한국마사회다. 지난해 벌어진 문중원 기수 사망 사건과 관련해 무책임한 모습을 보인 한국마사회의 사회공헌 활동 기부금을 거부하는 운동을 진행 중이다. 아마존도 그렇고, 나쁜 기업들의 보여주기식 사회공헌 활동에 큰 차질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세상이 바뀐 걸 모르고 여전히 수익만을 쫓는 기업들은 투자도 받기 어려워졌다. 올 초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은 “앞으로 기업에 투자를 결정할 때 ‘기후변화’와 관련된 대응을 하고 있는지를 주요 지표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석탄화력 등 탄소배출량이 많은 기업에 대한 투자금부터 빼겠다고 밝혔다. 물론, 블랙록이 환경을 위해서 이런 결정을 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석탄화력 산업의 경제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게

[모두의법] 인력·재정난에 힘든데… ‘의사록 인증’으로 삼중고 겪는 비영리

매년 초 비영리법인들은 총회 또는 이사회 개최로 분주해진다. 그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이 닥치지만 이 가운데 ‘의사록 인증’이라는 큰 벽에 부딪히곤 한다. 민법상 변경 등기 사유 중 총회 또는 이사회 의결사항이 있을 경우에는 변경등기 신청서류에 의사록을 첨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단법인이 정관 중 법인명칭, 목적 사업 등을 변경하려면 변경등기를 해야 하는데 이때 총회 의사록을 제출해야 한다. 의사록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공증인이 필요하다. 문제는 공증인의 인증을 받는 것 자체가 비영리법인에는 무척 부담이라는 점이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공증인을 의결장소에 참석시키는 방법은 출장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재정적인 부담이 발생한다. 또 하나는 공증인이 의결에 필요한 정족수 이상의 사람들에게 진술을 듣고, 그 진술과 의사록의 내용이 부합하는지 대조하는 방법이다. 이 같은 경우 출석 회원의 인감 날인과 인감증명서를 일일이 받아야 하기 때문에 업무 부담이 상당하다. 이러한 부담을 줄이려면 ‘의사록 인증 제외대상 법인’으로 분류되면 된다. 의사록 인증 제외 대상 법인은 ▲민법 32조에 따라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 설립된 비영리법인 ▲설립 목적 및 수행 사무가 공익적이고 주무관청의 감독으로 법인 총회 등의 결의절차와 내용의 진실성에 대한 분쟁 소지가 없는 법인 ▲주무관청의 추천을 받아 법무부장관이 지정·고시하는 법인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공증인법 제66조의2 제1항 제2호, 공증인법 시행령 제37조의3) 의사록 인증 제외 대상이 되면 등기 신청을 할 때 공증문서 대신 법무부 고시를 제출하면 된다. 법무부 고시에 의사록 인증 제외 대상 법인 목록을 확인할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사회혁신발언대] 공적마스크 공급과 공정무역

코로나19가 가져온 마스크 대란. 너무 급작스럽게 터진 일이라 물량 준비가 부족했던 것일까?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마스크 시장을 통제하지 못했다. 정부는 긴급한 개입을 통해 수출량을 통제하고, 무자료 거래에 따른 세금 추징 경고로 창고에서 잠자던 마스크 배포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자기 마스크를 한 달간 양보하는 자발적인 캠페인이 일어나고, 시민들이 재봉틀로 면 마스크를 제작해 취약 계층에게 무상으로 보내주고 있다는 미담도 들려온다. 보이지 않는 손은 비록 마스크의 분배를 통제하진 못했지만, 문제를 해결할 사람들을 하나씩 호명한 것이다. 공정무역에 오래 몸담은 필자는 코로나19로 촉발된 2020년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공정무역 현장과 너무나 닮았음을 느낀다. 공정무역은 가장 취약한 곳에서 어려움을 겪는 커피 농부들에게 제값을 줘 시장에 대비하게 하는 것, 커피 가격을 시장이 결정하게 두지 말고 커피 농부들이 살아갈 만큼의 기본소득을 지켜줄 수 있는 선에서 정하자는 것이다. 왜 이런 개념이 생겨난 걸까? 1980년대 후반, 시장은 커피 가격을 통제하는 데 실패했다. 세계커피위원회의 가격 협상 결렬로 커피 가격이 폭락하면서 커피 농부들의 생계는 하루아침에 벼랑 끝에 내몰렸다. 만약 국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역량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커피의 과다 생산을 일시적으로 막기 위해 작물 전환을 위한 교육과 보조금을 제공하고, 그 기간을 견딜 수 있도록 기존에 생산된 커피를 정부 주도하에 사들여도 된다. 또는 커피를 생산하는 국가들이 연합해 커피 소비국과 가격 협상을 벌여 농부들이 시장에 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