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증, 어려운 일 아닌 당연한 문화 되어야죠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_신채영씨 “17년 전, 건강상태가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위암이 아닐까 했는데, 다행히 위염이었어요. 정말 큰 병을 얻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씁쓸했습니다.” 신채영(80)씨는 건강할 때 사후 장기기증을 서약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사후 장기기증과 시신기증, 한 달에 5000원이라는 금액 후원에도 참여했다. 지난 2011년부터 1만원으로 늘렸고, 내년부터는 2만원으로 늘릴 예정이다. 고령에 수입도 일정하지 않지만, 한 번도 후원을 빼먹은 적이 없다. 금액 후원자 3만3000여명 중 둘째로 오랜 기간 동안 후원을 해왔다. 사실 신씨는 사후 장기기증을 서약한 이후 눈에 띄게 몸이 건강해졌다. 이어 “다른 사람을 돕기로 정했더니 오히려 내게 좋은 일이 생겼다”고 말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어쩜 그 나이에 주름살도 없느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바깥양반 도장을 몰래 훔쳐서 후원 신청서를 썼어요. 이후에 들키고는 아주 혼이 났습니다. 근데 제가 더 건강해졌으니 아무 소리 말라고 그랬지요. 우리 집 양반도 어쩔 수 없었죠.” 처음에 “장기기증 서약을 했다”고 말하면 지인들은 깜짝 놀라곤 했다. 모두들 낯설어하고 꺼려하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도 변하면서 주위 사람들 중에서도 “나도 장기기증 서약을 하겠다”는 이들도 생겨났다. 남편도 그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남편은 3년 전, 세상을 갑작스레 떠나면서, 그 말을 지키지 못했다. 신씨는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가버린 이들이 많다”며 “장기기증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당연하게 생명을 나누는 것이라는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개발도상국에 식수 지원… 따뜻한 기업 ‘벌써 9년째’

팀앤팀_금성전설산업 경기 군포시 당정동에 위치한 공장지대에 들어섰다. 계단을 따라 3층짜리 베이지색 건물을 올랐다. 사무실 문을 열자, 책꽂이 위에 자리 잡은 아프리카 아이들의 웃는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다. “1978년 회사 설립 때, ‘수익을 낸 만큼 소외된 이웃을 돕는 회사로 성장하자’는 목표를 세웠어요. 아직은 부끄러운 단계입니다. 이제 겨우 한 걸음 내디딘 거죠.” 김태문 ㈜금성전설산업 대표가 사진을 가리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금성전설산업은 배전반(전류의 이동을 보호하는 장치)을 제작·납품하는 회사로, 2010년부터 2년 연속 포스코 건설 최우수 협력사로 선정된 매출액 200억 상당의 우량 중소기업이다. 1년에 1억원 상당을 40곳 이상의 NGO, 복지기관 등에 아낌없이 기부하는 ‘나눔 기업’이기도 하다. 9년 전부터는 개발도상국에 식수를 지원하는 국제구호개발단체 팀앤팀을 후원하고 있다. 김 대표는 “매년 140만명의 아이가 흙탕물을 마시고 죽어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면서 “매달 50만원씩 기부하면 일 년에 우물 한 공을 지원할 수 있다는 말에, 당장 후원을 결심했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회사의 기부 내역과 후원 단체 소식을 정리해, 게시판에 붙이기 시작했다. 직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함이었다. “기부하는 대신 차라리 직원 연봉을 올려달라”던 직원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는 직원 25명 중에서 10명이 해외 아동과 일대일 결연을 맺었다. 이에 김 대표는 직원들이 매달 내는 후원금 3만원 중에서 1만5000원을 회사에서 매칭해 지원해주기로 했다. 10년간 근무한 직원 이선영(28)씨는 “일대일 결연을 시작한 직원들이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때 개별적으로 선물과 카드를 보낼 정도”이고 “서로 후원하는 아동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회사

우리 아이 첫 번째 생일, 첫 기부로 특별한 선물 줘요

한마음한몸운동본부_현준호·남희은 부부 “첫 아이를 낳고 건강한 아기를 주셨다는 감사와 감동이 밀려왔어요. 우리 아이가 건강한 만큼, 다른 아이들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준호·남희은씨 부부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가 진행하는 ‘생애 첫 기부’의 최대 참여자다. 2010년 1월, 첫째 유림이(4)의 ‘백일 기부’를 시작으로, 매년 유림이 생일 때마다 축하 잔치 비용을 아껴 30만~50만원을 기부했다. 지난해 겨울, 둘째 동훈이(2)가 태어난 이후에도 ‘백일 기부’와 ‘첫돌 기부’는 이어졌다. 벌써 6번째 정기적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이들이 기부한 금액은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통해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의 치료비로 사용되고 있다. 남씨가 첫 기부 때 느꼈던 감동을 떠올렸다. “유림이의 첫 번째 생일날엔 돌잔치를 열었어요. 그때 받았던 선물과 축의금을 모아서 유림이 이름으로 기부했죠. 돌잔치에 오신 분들에게 ‘여러분이 주신 선물을 또 다른 아이의 행복을 위해 기부했다’고 편지를 써서 보내드렸어요. ‘좋은 곳에 사용해줘서 고맙다’ ‘우리 부부도 당장 실천하겠다’는 답장이 많이 왔어요. 1월에 출산 예정인 한 친구는 벌써부터 ‘생애 첫 기부’를 준비 중이고요.” 아이가 자랄수록 부부의 나누는 기쁨도 커졌다. 두 아이가 건강하게 생일을 맞이할수록, 더 많은 아이가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도 유림이, 동훈이 생일이 되면 더 많은 축의금을 보내 기부에 동참하고 있다. 남씨는 “유림이가 기부금 전달식 때 받은 사진 액자를 볼 때마다 ‘아픈 아이들 이제 낫게 돼서 좋아요’라고 말한다”면서 “아이들 맘속에 나눔이 자연스레 자리 잡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전했다.

이웃에게 보금자리 선물하며… 서로 같은 꿈 키워가요

2012 NGO가 뽑은 올해 최고의 후원자_해비타트 최린·최완 형제 형 최린 – 올해 건축학과 입학해 봉사하며 20대 보낼 것 건축현장 남는 자재 활용… 물건 팔아 재난지역 기부 동생 최완 – 형 이어 봉사동아리 회장… 용돈 아껴 재료비 마련해 어린이용 탁자 제작… 내가 흘린 땀만큼 감동 줘 “가난한 이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집을 지어주고 싶어요. 음악을 하는 사람에겐 방음이 잘되는 집을, 텃밭을 가꾸고 싶은 이들에겐 마당이 있는 집을요.” 최린(19·사진 왼쪽)군은 올해 서울시립대 건축학과에 입학했다. 미국 남부 극빈촌인 앨라배마주 헤일카운티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사무엘 막비’와 같은 건축가가 되는 꿈에 한층 더 가까워졌다. 최린군의 동생 최완(17·서울고2·사진 오른쪽)군의 꿈도 개발도상국에 필요한 건축물을 짓는 건축가다. 두 형제가 같은 꿈을 꾸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2008년 여름, 최린군은 처음 해비타트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아버지 회사의 해비타트 봉사 프로그램을 소개받아 가족과 함께 참여하게 된 것이 계기였다. 최린군은 이후 4년간 천안, 군산, 양평, 안양, 울릉도를 돌면서 총 500시간가량의 건축봉사에 참여했다. “물집이 잡힐 정도로 힘든 일정이었지만 얻어가는 것이 많았어요. 대학생 형, 누나들과 이야기하면서 미래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수도 있었고요. 봉사하는 삶으로 20대를 보낸 사람들이 만날 공부만 하는 이들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어요.” 최린군은 모교인 서울고 내에 해비타트 봉사동아리 ‘서울인액션(Seoul In Action·이하 시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청소년이 해비타트 봉사를 하면 부모님이 동행해야 하는 등 제약조건이 많은데, 동아리를 만들면 단체로

기부는 작은 계기일 뿐… 미술로 희망을 그리고 있어요

사단법인 글로벌호프 유희숙씨 “2009년, 인도에서 수십명의 고아를 만났어요. 배고프고, 상처받은 아이들이 돌봐줄 곳이 없어 아파하고 있었어요. 3개월 동안 그 아이들이 생각나서 하염없이 울었어요. 아는 분이 인도에 고아원을 짓겠다고 하셔서 1500만원을 기부하고, 매달 10만원씩 아이들 교육비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유희숙(52)씨는 지난 2010년, 인도·미얀마·몽골 등 개발도상국 어린이를 후원하는 사단법인 글로벌호프가 설립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돕고 싶었다. 이미 후원하고 있는 인도의 고아들 외에도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인들에게 찾아가 함께 기부하자는 뜻을 알렸고, 20명으로부터 일대일 아동 결연 약속을 받았다. “생각보다 많은 분이 기부, 나눔에 대해 마음이 열려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유씨는 서양화를 전공한 화가다. 자신의 재능을 나눠 더 많은 아이를 돕고 싶었던 그녀는 2009년부터 기부 전시회를 시작했다. 여주 교도소 재소자를 위한 전시회를 비롯, 세 번의 기부 전시회를 통해 판매 수익금의 30%를 기부했다. 매주 목요일에는 경기 안산시 원곡동에 위치한 국제 다문화학교에서 재능 기부로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있다. 유씨는 “나중에 개도국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며 소통하고, 미술교육을 진행하는 게 꿈”이라고 설명한다. 지난 여름에는 미국에서 영상예술학을 공부 중인 22세 아들을 설득해, 3개월 동안 글로벌호프에서 재능을 나누도록 했다. 사진을 찍어서 팸플릿을 만들고, 홈페이지에 필요한 영상을 만들었다. 당시 미디어 콘텐츠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글로벌호프에 꼭 필요한 나눔이었다. 유씨는 “작지만 진정성 있는 NGO를 후원하고, 재능을 기부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스무 명의 아이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제가 엄마랍니다

플랜코리아 김수미씨 김수미(34)씨는 올해 4월부터, 플랜코리아를 통해 무려 20명의 아이를 후원하고 있다. “왜 20명이냐”는 질문에 김씨는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아직 전 미혼이지만, 이후 출산과 육아 기간이 있을 거잖아요. 그때의 수입을 최하수준으로 가정하고 지금의 수입과 평균을 내봤어요. 그리고 꾸준히 결연할 수 있는 인원이 몇 명쯤 되는지 계산해봤습니다. 아동과 결연하는 것은 멈추게 되면 아이에게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시작할 때 스무 살까지는 책임진다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거든요.” 김씨의 목표는 수입의 3분의 1을 나눔을 위해 쓰는 것이다. 아직 초기라 그 정도는 아니지만, 점점 늘려나갈 계획이다. 김씨에게 이와 같은 인생 계획을 세운 이유를 물었다. “직장생활 한 지 10년 정도 되었는데, 엄마 집도 사드리고…. 꿈꿨던 것들을 대부분 이뤘더라고요. 어릴 때 어렵게 자랐는데, 여기저기서 도움받았던 분들 생각이 났어요.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다른 사람을 도와야겠다고 다짐했던 바를 지금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씨의 서재에는 20명의 아이 사진이 걸려 있다. 그녀는 중국 후원아동인 왕(7)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받았던 때를 회상했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순간이라 잊지 못한다”며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겠다는 말에 왜 그렇게 기뻤는지 모르겠다”고 당시의 기분을 전했다. 왕군을 비롯한 20명 아이의 순수함과 따뜻함이 담긴 편지는 김씨에게 에너지원이다. 김씨는 “전에는 삶에 대한 허무감을 많이 느꼈는데 후원자가 되면서 하루하루가 더 의미 있다”며 “20명을 돕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게 되면서 순간순간이 값지게 느껴진다”고 소감을 말했다.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은 항상

사랑이 가득한,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결혼기념일

동방사회복지회 문혜정·이준형 부부 부부에게 특별한 날 미혼모·장애인 도와 블로그 통해 소개하자 재능기부 문의 쏟아져 2009년 12월, 동방사회복지회 후원사업부로 커다란 상자 하나가 배달됐다. 상자 안에는 아기용 치약, 젖병, 인형, 장난감, 산모 머리띠, 동화책 등 365가지의 출산·육아용품들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물건 하나하나에 붙여진 노란색 메모지에는 물품 구입 경위와 사용 방법이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선물을 보낸 이는 당시 1년차 부부 이준형(36)·문혜정(31)씨. 이들은 “우리 부부가 결혼한 지 365일이 되는 날을 기념해, 영유아 시설이나 미혼모 시설의 엄마들을 위한 365개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게 됐다”면서 결혼기념일 기부를 시작한 계기를 설명했다. 동방사회복지회와의 인연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 방송반 친구들과 뜻깊은 봉사활동을 계획하던 문씨는 동방사회복지회가 운영하는 아동 일시보호소의 문을 두드렸다. 문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가 아이들과 책도 읽고, 레크리에이션도 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저를 엄마라고 부르면서 따르던 일곱 살 아이가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보이지 않는 거예요. 고아원으로 갔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IMF 때문에 일시보호소에 맡겨진 아이들 중 상당수가 결국 버려져 다른 시설로 보내지곤 했거든요. 마음이 아팠어요. 제가 건강하고 예쁜 아이를 낳게 된 감사함을 이 세상에 태어난 다른 아이들에게도 전하고 싶었습니다.” 2010년 11월 23일, 두 번째 결혼기념일에는 매일 1000원씩 365일 동안 모은 36만5000원을 기부했다. 세 번째 결혼기념일에는 동방사회복지회가 후원하는 장애인 재활센터에서 판매하는 쿠키 70세트를 구매해, 지인들에게 나눴다. 올겨울에는 좀 더 특별한 결혼기념일을 준비했다. 문씨는 온라인에서 ‘육아 일기’로 유명한 파워블로거다.

나눔은 액션, 실천하는 용기가 중요해요

국제어린이양육기구 컴패션 이상민씨 올해 후원자 100명 모아 활발한 후원 커뮤니티로 많은 후원자와 교류 막연한 생각만 하기보다 활동하는 곳에 발 들이면 봉사의 기쁨 느낄 수 있어 “영상 속 아이의 슬픈 모습을 보고 감성에 젖어 한 번 후원을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한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할 때까지 책임질 수 있는 후원자 100명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상민(33)씨는 올해 목표로 삼았던 ‘100명의 후원자 만들기’에 성공했다. 그의 성공 비결은 결속력을 가진 단단한 그룹을 만드는 것이었다. 일명 ‘컨티뉴(Continue) 그룹’이다. 80명의 후원자는 직접 아는 지인들이고, 나머지 20명은 지인이 소개한 사람들이다. 이씨는 각각의 이메일, 그룹 가입일, 누구의 소개로 만났는지, 언제 메일을 보냈는지 등의 항목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매번 체크한다. 그는 “컴패션 콘서트가 있거나, 후원모임이 있으면 문자를 보내거나 수시로 안부를 묻는다”며 “후원하는 어린이가 편지를 보내면 스캔해서 메일로 보내주기도 한다”고 했다. 주위 사람들은 이씨에게 “후원자가 한 명 더 생길 때마다 인센티브를 받느냐”며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그는 ‘마음이 움직이는 타이밍이 있다’는 것을 믿고 어떤 반응이 와도 포기하지 않는다. 처음엔 핀잔을 주던 친구들이 지금은 오히려 열혈 후원자가 돼서 다른 후원자를 만들기도 한다. “제 여동생이 대표적이에요. NGO 자체를 싫어하고, 제가 하는 일도 싫어했죠. 어느 날, 컴패션 콘서트가 있기에 초청했더니, ‘연예인 볼 수 있느냐’며 오더라고요. 이때를 계기로 컴패션 후원자가 되었고, 지금은 재능 기부도 하면서 얼마나 바뀌었는지 몰라요(웃음).” 이씨가 열정적으로 나눔에 동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이벤트·공연 전문

[Cover Story] 누군가 나를 행복하게 했듯이 이젠 나도 누군가를 행복하게 합니다

Cover Story 나눔의 선순환을 이루는 사람들 사회복지사 김봉수씨 ‘불량청소년’ 방황하다 복지관에서 마음잡고 한국생명의전화에 취업 “나 같은 아이 위로하고 바르게 잡아주고 싶어” ‘달항아리’ 박진오씨 청각·지적장애 가졌지만 도자기 공예로 세상 소통 체험 학습·무료 강습도 “내 작품에 기뻐하는 이들 바라보는 게 가장 행복” 자원봉사자 안지형씨 난치병 앓던 청소년기 메이크어위시재단 통해 소원 이루고 봉사 결심 “환자 고통 잘 아는 만큼 진심으로 용기 건네죠” 사고로 부모를 잃은 아이가 한 아동복지 단체의 보살핌을 받았다. 그 순간부터 아이는 ‘평생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한다. 아이는 대학 졸업 후 자신을 보살펴준 단체에 취직한다. 고아원에서 꿈을 키웠던 자신처럼, 소외된 아이들의 꿈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다. 그는 결국 이 단체의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오른다. 고(故) 김석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회장 이야기다. 2010년 6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소외된 아이들의 아버지로 불렸다. ‘도움의 선순환’이 만들어낸 기적이다. 2012년 12월, 이 기적은 계속되고 있다. 편집자 주 ◇”불량청소년, 생명지킴이 되다”, 한국생명의전화 김봉수 사회복지사 우산이 꺾일 정도의 비바람이 몰아쳤다. 마포대교 위에 서니, 쌩쌩 스쳐가는 자동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김봉수(31)씨가 초록색 수화기를 들고 ‘생명의전화’라고 쓰여진 버튼을 눌렀다. 곧바로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에는 ‘마포남단서쪽 34번’이라는 발신지가 큼지막하게 떴다. “17초 정도 걸리네요.” 시간을 확인한 그는 “정상입니다”라고 말을 이었다. 지난 14일, 김씨는 마포대교에 설치한 긴급전화기를 점검하고 있었다. 이 전화기는 투신자살을 목적으로 교량에 선 사람이 마지막으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전화기로,

제2의 인생설계, 한숨만? 우리는 이렇게 꽃피워요

베이비부머 세대 3인의 재능나눔 이야기 최영식씨_텃밭 가꾸며 지역 예술가와 소통 사회적 기업 회계업무 도와 “시니어 복합문화공간 운영 목표” 정은희씨_20년 간 주부에서 나눔의 리더로 취미로 시작한 퀼트에 봉사 접목 “작은 재능도 용기있는 나눔으로” 박항수씨_막연히 다짐했던 봉사와 나눔 NGO 활동하며 이제야 실현 “세상을 위한 인생 3막 즐거워” “늘청씨 어디 가요?” 최영식(58)씨는 길에서 젊은 친구들을 만나면 ‘늘청’으로 불린다. ‘늘 청춘’의 줄임말이다. 최씨의 활동무대는 문래동 대안예술공간 ‘솜씨’. 이곳에서 젊은 작가들과 어울려 차도 마시고, 책도 본다. 배움에 대한 열정도 남다르다. 화요일에는 기타를 배우고, 수·목요일에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준비한다. 목공수업에서는 이미 중급반이다. 지난해 30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은퇴한 최씨는 “지금 배우는 것들을 토대로 베이비부머 세대를 위한 복합문화공간을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는 현재 약 712만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5%를 차지한다. 향후 3년 동안 퇴직할 50대 이상이 150만명으로 예상되면서 ‘은퇴 후 삶’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사)한국자원봉사문화에서 개최한 ‘베이비부머 자원봉사 콘퍼런스’에서 ‘나눔’으로 제2의 인생을 맞이한 세 명의 베이비부머를 만났다. ◇마을텃밭 가꾸기에 인생을 투자한다, ‘최영식’씨 퇴직을 3개월쯤 남겨둘 무렵부터, 최영식씨는 은퇴 후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 시작됐다. ‘희망제작소 행복설계아카데미’에서 해피시니어 교육을 받으면서, 인생 제2막의 기준을 세웠다. 첫째, 자신이 잘하는 일. 둘째, 재미를 느끼는 일. 마지막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 “문래동에서 20년 이상 살았는데, 동네에 대해 아는 게 없더라고요. 주부들은 옆집 아줌마도 만나고, 애들도 키우면서 지역 네트워크를

[나눔의 리더를 찾아서] ⑬ 대한적십자사 유중근 총재

“생명줄처럼 이어진 네트워크… 적십자만의 힘이죠” 헌혈 국한된 이미지 벗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적십자의 가치 넓힐 것 자원봉사자와 취약 계층 일대일 결연 ‘희망풍차’ 위기 가정 기금 마련 소외계층 진료비 지원 자원봉사자 35만 명 적십자의 혈액같은 존재 ‘희망나눔봉사센터’ 열어 획일적 나눔이 아니라 수혜자 입장 배려한 기부 개인의 나눔 참여 늘어야 107년 역사의 대한적십자사 최초 여성수장. 유중근(68) 총재는 인터뷰 전날, 기자의 프로필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대개 기자들은 취재원 사전조사를 꼼꼼히 하지만, 취재원이 기자의 신상에 관심을 갖는 경우는 드물다. “만나는 분이 누구인지 아는 게 예의일 것 같아서”라고 했다. 인터뷰 당일인 지난 5일, 단아한 갈색원피스 차림의 유 총재는 펜으로 꼼꼼하게 메모한 질문지를 들고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15년간 봉사위원으로 몸담아 왔을 때와 달리, 107년 역사의 국내 대표 구호기관의 첫 여성수장이라는 부담감도 만만찮았을 것 같다. 어떤 비전과 목표로 총재직을 수락했고, 가장 역점을 둘 사업은 무엇인가. “매우 큰 조직이다. 직원만 3300명이다. 본사와 지사 14곳, 봉사관 50곳, 혈액원과 검사센터 관련 21개 기관, 헌혈의 집 131곳, 적십자병원이 6곳이다. 총재 임명을 받았을 때 부담이 컸지만, 이유와 소명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취임 후 살펴보니, 대한적십자사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헌혈’이나 ‘이산가족’으로 국한돼 있었다. ‘국민 속으로 들어가는 대한적십자사’를 모토로 세웠다. ‘희망풍차’ ‘희망진료센터’ ‘300만 헌혈캠페인’ 등 3가지를 중심사업으로 정했다.” ―지난 7월 ‘희망풍차’라는 브랜드 BI까지 새롭게 론칭했는데, ‘희망풍차’가 무엇인가. “12만 성인 자원봉사자들이 4대 취약계층과 일대일 결연을 맺는 것이다.

“단순한 지원 아닌 양쪽 모두에 이익돼야 성공”

이젠 사회적기업가도 비즈니스 역량 중요 영리기업이 도와주면 마케팅·판로 개척 등 사업 원활해 질 수 있어 실질적 성과 있어야 양측 관계도 단단해져 “사람, 돈, 시장 중 사회적기업이 가진 것은 사람뿐이다.” 김재구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이 영리기업의 참여를 독려하는 이유다. ‘1사1사회적기업 캠페인’은 이런 목소리를 바탕으로 시작됐다. 영리기업과 사회적기업의 파트너십을 통해 공생 발전을 도모하는 활동이다. 지난 6일,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김재구 원장을 찾아 ‘1사1사회적기업 캠페인’ 1년의 행보와 앞으로 나갈 방향을 들었다. ―캠페인이 시작된 배경은 무엇인가. “사회적기업의 경영 컨설팅을 위해 초기에는 대기업 퇴직자들이 나서곤 했는데, 의외로 그분들에게 불평을 많이 들었다. 사회적 기업에서 (경영)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서, 컨설팅을 해주면 이를 잔소리로만 여긴다는 것이다. 국내 사회적기업가의 절반 정도가 시민사회단체나 비영리 기관 출신의 40~50대다 보니, 경영 지식이나 비즈니스 역량에 한계를 보인다. 심지어 ‘비즈니스’나 ‘수익’에 대한 얘기를 경계하는 모습도 있었다. 자신이 영리로 전향되는 것처럼 여겼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사회적기업가들도 비즈니스 역량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리기업이 나설 수 있는 영역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경영 전반은 물론, 회계, 마케팅, 제품 컨설팅, 판로 개척까지 범위도 방대하다. 이런 부분을 널리 알리고, 양측의 참여를 이끌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지난 1년 동안의 캠페인 활동을 평가한다면. “캠페인이 처음 출범한 올해 먼저 적극성을 띤 곳은 대기업들이다. 진정성을 보일 수 있는 사회 공헌이라는 판단을 했던 것 같다. 요즘 국민은 대기업이 일회성 기부나 재단을 만드는 정도로는 감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형식적이란 비판을 듣기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