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나눔운동 몽골사무소

무담보 대출로 몽골 유목민 웃음꽃 피운다 마이크로크레딧… 경제적 자립 위한 무담보 ‘소액대출’, 가축·사료은행과 더불어 소·닭·묘목도 대출 아무도 갚지 않을거라 예상… 초조함 감출 수 없었지만 꼬깃꼬깃한 지폐 받았던 첫 상환 순간 잊지 못해 지금까지 상환율 90%… 곧 ‘빈곤 퇴치’ 보게 될 것 마이크로크레딧(Microcredit)은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적 자립 지원을 위한 무담보 소액대출을 말한다. UN이 2005년을 ‘마이크로크레딧의 해’로 선포하고, 대표적 기관인 그라민 은행과 무하마드 유누스 총재가 2006년 노벨 평화상을 받으면서 널리 알려졌다. 최근에는 지역사회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소나 닭, 심지어는 묘목을 빌려주는 재미있는 마이크로크레딧도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구촌나눔운동 몽골사무소 조현주(43) 소장 역시 가축은행, 사료은행 등 마이크로크레딧 모델을 활용해 지역사회 개발을 꾀하고 있다. 잠시 한국을 방문한 조 소장을 직접 만났다. 편집자 주 조 소장은 지역사회 개발의 사명을 처음 품은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대학교 3학년 때 필리핀 빈민촌으로 떠난 단기봉사에서였습니다. 어느 날 봉사를 마치고 빈민촌을 빠져나오는 중에 ‘네가 이런 곳에서 함께 살아야 하지 않겠니?’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날 이후 ‘아시아의 빈곤에 동참하는 것’이 인생의 좌우명이 됐죠.” ‘서울대 수의학과’ 정도면 좀 더 편안한 삶을 꿈꿨을 법도 한데, 조 소장은 “인생에 있어 젊음은 ‘계란 노른자’와 같은 시간”이라며 “그 시간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값진 일 아니겠느냐”고 오히려 되물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계란 노른자 시간’을 헌신했다. 대학 졸업 후 6년간 방글라데시에서 개발사업을 담당하며 봉사했고, 이후 2002년에

주류社 페르노리카코리아 – 음주운전예방의 날 캠페인

끝까지 품위 있는 음주문화 위해 뛴다 기업 수익도 중요하지만 위험한 음주습관 막고 싶어 최근 외국계 기업들의 국내 사회공헌 활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만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페르노리카코리아가 진행해 온 스마트 드라이빙 캠페인이 올해로 5주년을 맞았다. 페르노리카코리아의 프랭크 라페르 대표를 만나 페르노리카코리아의 사회공헌 철학과 지난 23일에 진행된 ‘음주운전예방의 날(Responsib’ALL Day)’ 캠페인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최근 외국계 기업이 국내에서 사회공헌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국적을 떠나 일단 수익만 챙기는 기업활동은 곤란하다. 한국의 기업들이나 외국계 기업들이 외국에서, 또 한국에서 사회공헌을 하는 건 당연하다.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은 감수해야 한다.” ―페르노리카 그룹은 어떤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나? “페르노리카는 많은 사회공헌 활동을 해왔다. 환경과 관련된 책임에 대해 고민했고,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해 물을 가꾸고 보호하는 활동을 해왔다. 특히 1971년부터 젊은 성인과 임산부를 비롯한 소비자들에게 음주운전과 과도한 알코올 섭취를 막을 수 있는 책임 있는 소비습관을 장려해오고 있다.” ―술을 파는 회사가 과음이나 음주운전에 대해 고민하는 것 자체가 신선하다. “기업의 수익도 중요하지만 타인을 희생해가며 성장하고 싶지는 않다. 술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윤택하게 해주고 품위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절제하지 못하면 누군가가 희생된다. 특히 음주운전이 그렇다.” ―지난해 국내에 ‘음주운전예방재단’을 설립했다. “음주운전은 나뿐만 아니라 나의 가족, 타인의 가족에게까지 해를 입힌다. 다행히 다른 사회문제들에 비해 음주운전에는 대안이 있다. 특히 한국은

팬들과 병원·학교 짓기 프로젝트… “나눔으로 리드합시다”

기아대책과 나눔 펼치는 이지성 작가 착한 카드로 나눔 실천해요 ‘꿈꾸는 다락방’,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리딩으로 리드하라’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저술한 이지성(37) 작가. 지금까지 출판한 책만도 거의 50권에 달한다. 작가 자신도 정확히 몇 권인지 모를 정도다. 100만권이 넘게 팔린 ‘꿈꾸는 다락방’을 비롯해 베스트셀러도 수십 권으로 인세 수입만도 18억원을 넘는다. 많지 않은 나이에 큰 성공을 거둔 그는 요즘 ‘나눔으로 리드하라’고 외치고 있다. 특강을 할 때에도, 인터뷰에 응할 때에도 그의 관심 주제는 나눔이다. 급기야 팬 카페 회원들과 ‘Dream 프로젝트’까지 시작한 그를 프로젝트 비전 선포식 현장에서 만나보았다. “Dream 프로젝트는 앞으로 10년 동안 기아대책 해외 사업장에 병원과 학교 100개를 짓는 프로젝트예요. 빈곤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병원과 학교가 세워지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00개를 저 혼자 짓기는 쉽지 않겠더군요. 그래서 팬 카페 회원들을 끌어들였죠. 좋은 일인데 같이 하면 더욱 좋잖아요. 저 혼자 할 수 있는 수준에 맞춰 꿈을 줄이는 것보단, 이 꿈에 맞춰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게 나을 거 같더라고요.” 이날, 양재동의 힐스테이트 갤러리에서 이씨와 500명의 팬들은 ‘Dream 프로젝트’의 비전을 선포했다. 팬 카페에서 그동안 모은 후원금과 이날 행사 참가비, 현장에서 모금한 후원금 1700만원도 기아대책에 기탁했다. 이씨는 “기아대책을 통해 나눔을 체험하면서 행복해졌다”는 고백으로 나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꿈에 그리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공허해졌습니다. 한 2년간 그랬을 거예요. 돈도 많이 벌고, 여기저기서

투병생활로 가려진 꿈… 마음과 손길 모여 이루다

메이크어위시 콘서트_신곡 쇼케이스 연 신민지양 지난달 말, 열다섯 살의 신민지양은 평소 꿈인 ‘가수’가 되어 무대에 올랐다. 첫무대인데 긴장한 기색도, 아픈 기색도 없이 총 3곡의 신곡을 선보였다. 민지는 꿈을 이룬 흥분으로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민지의 특별한 무대를 축하하기 위해 멀리서 달려온 가족과 친척, 친구들 역시 함께 설레는 모습이었다. 이날의 특별한 무대는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www.wish.or.kr)이 마련했다. 첫 번째 소원성취의 주인공, 크리스가 경찰관 체험으로 소원을 이룬 날을 기념하는 월드위시데이(World Wish Day·매년 4월 29일)를 맞아 난소생식세포종양으로 투병 중인 민지의 신곡 발표 쇼케이스를 열어준 것이다. 메이크어위시재단은 소아암, 백혈병, 근이영양증 등 난치병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장기간 투병하는 아이들의 소원을 이루어 주는 소원성취기관이다. 국내에는 2002년 설립되어 현재까지 약 1600여명 아이들의 소원을 이루어주며 희망과 용기를 전하고 있다. 무대에서 내려온 민지는 “오늘 하루가 너무 짧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공연 전에 청심환을 먹었다”고 고백한 민지는 “재미있고 좋았다”며 내내 웃는 얼굴이다. 2009년 발병 이래 대전과 서울을 오가며 종양제거수술, 집중항암치료를 끊임없이 받느라 몸도 마음도 지쳤을 법한데 여전히 밝다. 투병생활로 빨리 철이 들었는지 감사인사도 빠뜨리지 않는다. “저 하나를 위해서 참 많은 분들이 긴 시간 동안 함께했거든요. 저를 보러 이렇게 와주신 분들, 다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고마운 사람들 이야기를 꺼내니 목이 메는지 민지는 잠시 말을 멈췄다. 민지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성기영(40)·이규원(37)·유태환(33)씨 등 작곡가 3명이 한 곡씩을 무료로 선물했고, 그룹 SES의 슈(30·본명 유수영)와 신예 가수들도 출연료 없이 이날

‘본사랑재단’ 설립한 본죽 대표_’죽’ 한 그릇으로 전하는 한국인의 따뜻한 ‘정’

병원·아프리카… 아프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죽 기부 가맹점 1000여 곳·협력업체도 동참 본사 본아이에프도 수익 10% 기부 연세의료원에 의료선교기금으로 올해부터 10년간 총 10억 지원 예정 “약속을 지키는 것뿐입니다.” 2009년 6월 본사랑재단을 설립한 이후 남모르게 펼쳐 오던 선행을 더욱 체계적으로 펼치고 있는 본 아이에프㈜의 김철호(48) 대표, 최복이(46) 이사장이 말하는 ‘나눔의 이유’다. 대학 졸업 후인 1989년 단돈 100만원으로 서울에 올라온 부부는 사업 초반에 고생이 많았다. “한 번은 기차 타고 대전에 있는 친척 집에 돈을 빌리러 갔어요. 자존심 때문에 정작 ‘돈’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거실에 앉아 있는데, 부엌에서 친척들 목소리가 들리더라고요. ‘돈 빌리러 온 거 아니냐’, ‘한 번 빌려주기 시작하면 버릇 되니, 차비도 주지 마라’ 이런 얘기들이 들리는데, 너무 속상해서 그냥 뛰쳐나왔죠. 한 분이 따라 나와 차비 얼마를 쥐여 주시는데, 자존심은 상해도 그 돈이 아니면 서울로 돌아갈 방법도 없는 터라 받으면서 너무 속상했어요. 돌아오는 기차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울면서 최 이사장은 “앞으로 꾸는 삶이 아니라 베푸는 삶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돈을 벌게 되면 열심히 베풀며 살겠다”고 약속도 했다. 하지만 사업이 바빠지면서 그 약속은 잊혀지고 말았다. 1998년 외환위기로 당시 운영하던 사업이 부도를 맞으면서, 비로소 그 약속이 다시 생각났다. “망하기 전 1~2년간 사업이 꽤 잘 됐거든요. 그러다 갑자기 망하니까 허망하기도 하고, ‘돈이 이런 거구나, 있다가도 사라지는 것이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죠. 그리고는 옛날의 약속이 생각났습니다. 예전에 베풀며 살겠다고

[한국의 혼을 찾아서③] 인터뷰_ 신국악단 ‘소리아’ 류문 프로듀서

“국악, 전통을 바탕으로 하되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어야” “우리가 만든 新국악이 온 세상에 울려 퍼질 때까지 내인생 모두 바칠 것” 미국 공영방송 PBS가 만들고 있는 한국 특집 다큐멘터리 ‘김치연대기(Kimchi Chronicles)’를 보면 해금, 대금, 가야금 등 한국 전통 악기를 사용한 음악이 나온다. 하지만 지금까지 들어왔던 국악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훨씬 빠르고 젊은 분위기다. 이런 스타일의 음악은 지난 2009년 미국 NBC 방송에 나갔던 독도 홍보영상에도 사용돼 많은 사람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번 PBS의 다큐멘터리와 NBC의 독도 홍보영상에 사용된 음악은 둘 다 국악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목표로 만들어진 신국악단 ‘소리아’의 음악이다. 소리아(SOREA)는 한국의 소리(Sound of Korea), 한국의 영혼(Soul of Korea)이라는 뜻으로 2005년에 결성됐다. 데뷔 직후인 2006년 국악 분야를 넘어 대중음악 분야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하며, 창작곡 ‘뷰티풀 코리아(Beautiful Korea)’가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2006년 독일 펜페스트(Fan Fest) 공식 초청 독일 5개 도시 순회공연, 2009년 영국 템스페스티벌 공식 초청 특별공연, 2010년 프랑스 샹리브르페스티벌 공식 초청 특별공연 등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고 외치지만 막상 국민들은 외면해 왔던 국악으로 소리아가 국내외 무대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소리아의 류문 프로듀서는 “음악은 특히 공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처음부터 전 세계 청중과의 소통을 염두에 두고 음악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보사노바, 탱고 등의 음악도 원래는 한 지역의 음악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유럽 등의 유명 아티스트들과 교류하고

“한국 사회의 미래 위해서 경쟁 아닌 나눔 가르쳐야”

인터뷰_ 김중곤 굿네이버스 본부장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가 지난 1993년부터 진행해 온 세계시민교육은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이 지구촌 이웃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세계시민’으로 커갈 수 있도록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학교나 가정에서 굿네이버스가 제작한 영상과 홈페이지를 통해 교육을 받는 ‘간접교육’과 전문강사가 학교로 파견돼 수업을 하는 ‘직접교육’이 있다. 지금까지 약 1500만명의 학생들이 이 교육을 통해 ‘나눔’을 배웠으며, 올해에도 226만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굿네이버스 사업운영본부의 김중곤 본부장은 “세계시민교육의 3가지 핵심 키워드는 이해와 존중, 협력”이라고 말했다. 이 중에서도 가장 바탕이 되는 것은 ‘이해’, 즉 상대 문화와 사람에 대한 ‘공감’이라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돈도 많고 경험도 많은 선진국의 NGO가 실패하는 이유는 ‘우리가 가르쳐줄게’ 혹은 ‘내가 많이 가지고 있으니깐 불쌍한 너희들을 도와줄게’라는 생각으로 국제협력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받는 사람의 입장에선 당연히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세계시민교육의 수업을 들어보면 강사는 유독 ‘학교에 가는 것은 모든 아이의 권리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는 김 본부장이 말한 세계시민교육의 핵심과도 일치한다. 아이들은 수업을 통해 자연스럽게 생존과 교육은 모든 아이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임을 인식하게 된다. 또한 그렇지 못한 아이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런 당연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우리가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그렇다면 세계시민의 자질인 ‘이해’와 ‘존중’, ‘협력’ 등을 배우는 나눔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 본부장은 “아동기에 형성된 행동 양식이 성인기에 패턴으로 굳어지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한국의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이뤄지는 교육은 나눔보다는 경쟁을

“지금 사는 공간에 대한 애정, 근대 문화재 보존의 출발점이죠”

도코모모코리아 ‘근대문화유산 지키기’ 서울에서 가장 높았던 지하 1층, 지상 6층의 건물. 옥상에는 전광판이 있어 뉴스를 보여주고 내부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던 ‘화신백화점’은 1930년대에 단연 ‘장안의 화제’였다. 일제시대 대표적 한국인 건축가 박길용이 르네상스시대 건축양식을 소화해 지은 화신백화점은 한국인이 주인인 최초의 백화점이었다. 1987년 헐리기 전까지 종로의 랜드마크였던 화신백화점을 지금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그 자리에는 종로타워가 세워져 있다. 김종헌 회장은“근대 문화재의 옛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도시개발 계획을 세워 문화와 역사를 일상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도코모모코리아(DOCOMOMO Korea) 김종헌 회장은 화신백화점과 서울시청을 ‘가장 아까운 근대문화재’로 꼽았다. 서울시청 역시 2008년 일부를 철거하고 현재 리모델링 중이다. 근대문화재는 개화기부터 일제 강점기를 포함한 6·25전쟁 전후의 기간에 제작된 건축물이나 생활 문화 자산을 말한다. 한국의 근대 문화재는 일제시대의 잔유물로 여겨진 데다 ‘문화재로 보존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부족해 급속한 도시화 과정에서 훼손된 경우가 많다. “광화문 뒤편에 있었던 조선총독부처럼 의도적인 것은 응어리를 풀어줘야 하겠지만, 근대를 일본과 관계된 독립운동사로만 이해할 일은 아닙니다. 일제시대라고 해도 그 상황을 뚫고 살아온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가 있고, 이들의 생각과 생활을 알려면 근대 문화재를 보존해야 합니다” 김종헌 회장이 이끌고 있는 도코모모코리아는 한국의 근대 건축문화 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2003년에 만들어진 단체다. 도코모모코리아가 속해있는 도코모모(DOCOMOMO)는 ‘근대의 건물과 환경형성의 기록 및 보존을 위한 조직(DOcumentation and COnservation of buildings, sites andneighborhoods of the MOdern MOvement)’의 줄임말로 1990년 네덜란드에서 생겨난 국제 민간단체다. 김 회장은 “근대

[한국의 혼을 찾아서②] “궁중음식은 ‘맛과 멋’이 있는 우리의 식문화”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 이사장 무형문화재회관서 궁중음식 전시… ‘조선왕조의궤’ 속 잔치 장면 재현 궁중잔치 음식·식문화 알리고 의궤 가치도 알릴 수 있을 것 봄 햇살이 내려앉은 오후. 창덕궁 서편 서울 종로구 원서동 골목 끝에 있는 (사)궁중음식연구원 안마당 장독대에는 된장·고추장이 익어가고 있었다. 연구원은 중요무형문화재 38호인 ‘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 보유자 한복려씨가 궁중음식의 명맥을 이어가는 곳이다.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이사장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주방상궁이었던 고(故) 한희순 상궁과 한 상궁에게 궁중음식을 전수받은 어머니 고(故) 황혜성 선생에 이은 3대 궁중음식 기능보유자이다. 아담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한옥 건물인 궁중음식연구원 안채에서 만난 한 이사장은 고운 한복을 입고 기자를 맞았다. 한 이사장은 궁중음식의 가치를 단순히 ‘맛있는 먹거리’로 볼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식문화’로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런 의미에서 ‘요리한다’는 말 대신 ‘음식한다’고 표현해달라고 부탁했다. ‘요리’가 일본식 단어이기도 하지만, 음식을 단순히 ‘조리법’과 같은 기능적 측면으로만 이해하게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드라마 ‘대장금’이 인기를 끌면서 몇 가지 궁중음식이 유행하고 한식세계화 바람이 불기도 했지만, 레시피(조리법)만 익힌다고 음식을 다 이해한 것은 아니거든요. 궁중음식에는 충효 사상을 바탕으로 음식을 궁에 ‘올리고’, 백성을 사랑하는 왕이 궁중음식을 ‘내리는’, ‘올림과 내림’의 미학이 있습니다. 음식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을 봐야 ‘문화재’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거죠. 궁중음식을 ‘맛’뿐 아니라 ‘멋’으로 이해해야 세계인들에게도 더 높게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궁중음식의 ‘멋’을 알리고 싶은 한복려 이사장은 오는 29~30일 서울 삼성동 무형문화재회관에서 궁중음식 ‘전시’를 연다. 단순히 음식을 해서 맛을 보이는

[Cover story] “한국 친구들의 도움으로 건강과 꿈을 찾았어요”

한국 도움으로 건강 되찾은 우즈베키스탄의 ‘니고라’ 햇살 따뜻한 지난 주말. 병원 복도에 들어서자, 시간이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링거 바늘을 손에 꽂은 채 천천히 복도를 지나갔다. 휠체어를 탄 중년의 남자는 서다 가다를 반복했다. 공기는 무거웠고, 낮은 목소리들이 웅웅거렸다. ‘이곳은 아직 봄이 오지 않았구나’ 생각하는 찰나,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8살 소녀 ‘니고라’가 활짝 핀 봄꽃처럼 웃고 있었다. 아이와 눈을 맞춘 후 시선은 바로 몸에 두른 기구로 옮겨갔다. 소녀의 여린 몸에 갑옷 같은 회색 보조기구와 머리를 고정하는 흰색 장치가 달려 있었다. 측은한 표정을 짓자 아이는 고개를 젓는다. 이 기구들은 5시간에 걸친 수술을 무사히 끝냈다는 ‘영광의 장치’들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돌이 지난 후부터 뼈가 휘기 시작했다. 커갈수록 통증은 더 심해졌다. 뼈가 장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가난한 부부는 아이에게 “수술하자”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아빠 톨릅씨와 아내는 “아이가 큰 병을 앓고 있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생후 8개월 때 아이가 침대에서 떨어진 기억만 떠올리며, 부부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밤마다 아이를 껴안고 우는 것이, 부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러던 2007년, ‘희망’이라는 단어가 니고라에게 찾아왔다.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이 우즈베키스탄 베카밧에 장애아동을 위해 만든 유치원에 들어갔고, 니고라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한국에서 후원자들이 생겨났다. 서울 은평구 서문교회의 중고등부 학생 20여명은 니고라를 위해 두 달에 한 번씩 저금통을 깨서 2년 동안 200여만원을 모았다. 강남세브란스 병원도 돕겠다고 나섰다.

시민의 사랑이 끓인 칼국수… 희망의 한 그릇 ‘후루룩~’

시민공모주로 만든 식당 ‘희망칼국수’ 천안시민의 돈 모아 만든 착한기업 ‘동행’의 첫 식당 직원 월급 10% 제외 판매 수익금 전액 기부 올가을 2호점도 오픈 예정… 벌써 1500만원 이상 모여 지난 2월 문을 열었다는 ‘희망칼국수’는 평일 점심시간에도 손님으로 북적였다. 점심시간이 다 끝나도록 스무 명씩 늘어선 줄이 좀처럼 줄어들 줄 몰랐다. 이 칼국수집은 요즘 천안의 새로운 ‘맛집’으로 뜨고 있다. 하루에 파는 칼국수만 400인분이다. 칼국수의 생명인 육수가 시원한 데다, 6500원짜리 칼국수정식 하나만 시켜도 만두나 보쌈이 줄줄이 코스로 나오는 것이 인기 비결이라고 했다. 그러나 희망칼국수는 단순한 ‘맛집’만은 아니다. 맛있다는 소문만 듣고 찾아온 손님들은 ‘희망칼국수의 수익금 전액은 지역사회와 공익활동에 사용됩니다’라고 적힌 현판을 보고 또 한 번 놀란다. 주부 이주현(38)씨는 “내가 먹는 칼국수 한 그릇으로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게 좋아서라도 앞으로 이 집을 자주 찾게 될 것 같다”며 웃었다. 희망칼국수는 천안시민들이 한푼 두푼 돈을 모아 ‘시민공모주’로 만든 착한기업 ㈜아름다운동행이 차린 첫 번째 식당이다. 박노진 아름다운동행 대표는 “시민공모주로 회사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온 지 불과 2주 만에 1억원이 모여서 깜짝 놀랐다”고 회상했다. 현재 이 회사의 주주는 천안 시민 70명이다. 주주들의 면면도 다채롭다. 부모님을 따라 저금통을 깬 중·고등학생, 아내와 상의해 적금 탄 돈을 냈다는 직장인, 한푼 두푼 모아온 모임 회비를 낸 친목회, 경쟁 관계인데도 선뜻 돈을 낸 이웃 식당 사장까지, 천안 곳곳에서 시민주주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나섰다. “절반은 저도 아는

소리 없는 소통 기회… 향이 있는 소통의 장

청각장애인이 일하는 카페 ‘티아트’ 경복궁 역에서 인왕산 방향으로 꼬불꼬불한 산길을 걸어 올라가면, 그 꼭대기에 작고 예쁘장한 카페 ‘티아트’가 있다. ‘티아트’는 청각장애인들이 바리스타로 일하는 카페이자 사회적 기업이다. 홍차수입회사 ‘티월드’ 대표이자 수많은 티마스터, 바리스타 등을 길러낸 자타공인 홍차전문가 박정동(47)씨가 직접 운영한다. 만나자마자 홍차부터 권하는 박 대표는 나른한 오후 티타임을 즐기듯, 밀크티를 몇 모금 마시더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홍차 수입 때문에 인도에 자주 가는데, 아마 2008년도일 거예요. 인도 콜카타의 어느 식당에 들어갔는데 종업원들이 다 청각장애인들인 거예요.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하는데, 그리고 저 역시 수화를 전혀 할 줄 모르니 큰일이다 싶었죠. 그래도 손짓 발짓 하며 결국 주문을 다 했어요. 음식도 맛있었고 서비스도 너무 좋았어요.” 그날의 짧은 경험이 박 대표의 눈을 뜨게 했다. 청각장애인이지만, 어떤 교육이나 지원도 받지 못한, 심지어 수화조차 배우지 못했던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도 살아났다.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지는 장(場)을 만들어 ‘소리 없는 소통’의 기회를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어머니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인 것만 같았다. 박 대표는 자신의 경험과 강점을 살려 청각장애인들이 일하는 카페를 열기로 결심했다. “청각장애인들은 소리를 못 듣잖아요. 그래서 시각과 후각, 촉각이 자극되는 일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바리스타 일은 커피나 차를 만들면서 고객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거든요. 그럼 소리를 듣지 못해도 덜 단조롭고 덜 지루할 거라 생각했어요.” 우선 수화부터 배웠다. 청각장애를 가진 청년들을 만나려고 단체들을 찾아다녔다. 함께 일할 직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