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일)

“웨딩드레스, 식이 끝나면 평상복으로 수선해드려요”

‘대지를 위한 바느질’의친환경 결혼식 ‘에코웨딩’
화분 꽃장식, 하객에게 선물로… 유기농 음식, 남는 건 싸가도록… “아직 장소 제약 많아 아쉬워”…

세상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생애 그 어느 순간보다 빛나고 싶은 사람이 바로 결혼식 날 ‘신부(新婦)’다. 그 욕망을 공식적으로 풀어놔도 되는 결혼식은 그래서 종종 과한 느낌을 준다. 특히 식장, 음식, 웨딩드레스 등 결혼관련 상품이 죄다 ‘패키지화’된 한국의 결혼식은 비싸면서도 천편일률적이다. 결혼식 날 단 하루를 위해 만들어지고 버려지는 물품들이 환경을 심하게 오염시킨다는 것도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진정한 의미의 결혼이 무엇인지 묻고, 상업화된 한국의 결혼문화에 대안을 제시하는 이가 있다. 사회적기업 ‘대지를 위한 바느질’의 이경재(31) 대표다.

이씨는 원래 의류회사와 방송국 의상실에서 일하는 평범한 패션디자이너였다. 그런 이씨가 ‘옥수수 전분’을 이용해 웨딩드레스를 만드는 그린(green) 디자이너가 된 것은 한 방송을 통해 국민대 윤호섭 교수의 인터뷰를 보고서다. 이씨는 “‘환경이 이렇게 되기까지 디자이너의 잘못은 없나?’라는 윤 교수의 물음에 내 마음이 움직였다”고 말했다. 그 길로 이씨는 국민대학교 환경디자인 대학원에 진학했고, 자신의 전공인 ‘패션’을 통해 환경과 공존할 수 있는 디자인을 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쐐기풀, 한지, 옥수수 전분 등을 소재로 친환경 드레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일년에 170만 벌씩 버려지는 썩지도 않는 드레스는 새롭게 출발하는 한 가정의 시작과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6년 연 첫 개인전에는 친환경 소재를 이용한 웨딩드레스 열여섯 벌을 전시했다. 이 개인전을 보러 온 한 여성 관람객이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드레스를 입고 결혼한 첫 번째 신부가 되었다. 어디선가 이야기를 듣고 온 다른 예비신부도 “나도 그 드레스를 입고 싶다”고 주문을 해왔다.

이경재 대표는 "에코웨딩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환경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경재 대표는 “에코웨딩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환경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자 ‘다른 건 친환경으로 안 되느냐’는 문의도 들어왔다. “제일 쉬운 것부터 바꾸자는 생각에 청첩장을 재생지와 콩기름 잉크를 이용해 만들기 시작했다”는 이씨는 “그러다 보니 유기농 결혼식 음식도 하게 됐고, 결혼식이 끝나고 화분에 심을 수 있는 뿌리가 살아있는 부케도 생각해냈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씨는 이처럼 친환경 제품으로만 결혼식을 올리는 것을 ‘에코웨딩’이라고 이름 붙였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대지를 위한 바느질’을 통해 50여 쌍이 ‘에코웨딩’으로 결혼을 했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매년 그 숫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결혼식 후 평상복으로 수선해주는 친환경 웨딩드레스는 신부가 두고두고 입을 수 있었다. 유기농으로 만들어지고 남은 건 집에 싸갈 수도 있는 결혼식 음식을 부모님들은 만족해했다. 버려지는 꽃 대신 선물할 수 있는 화분으로 장식한 식장은 하객에게도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원래대로라면 결혼식 후 버려지는 웨딩드레스, 음식, 꽃이 전부 하나의 ‘의미’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힘든 점도 있다. 결혼식을 할 장소를 찾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결혼식장을 예약하면 꽃 장식이나 음식 등을 무조건 해야 하는 게 업계의 불문율이라서 에코웨딩을 하려면 공원 등 야외를 찾아야 한다. 이씨는 “야외 웨딩은 시간과 날씨 등의 제약이 많아서 에코웨딩을 하고 싶어도 결국 못하는 커플이 많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진심은 통하는 법이다. 작년 8월 이씨는 프랑스 명품 브랜드 ‘까르띠에’에서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의미를 지켜나가며 사업을 하는 여성사업가에게 주는 상인 ‘여성창업상(Women’s Initiative Awards)’을 수상했다. 이씨는 수상이 확정된 순간, 여기까지 오는 데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천연실을 만드는 공장이 없었다면, 유기농 농사를 짓는 농부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라고 말한 이씨는 “더 많은 사람들이 결혼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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