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소리 없는 소통 기회… 향이 있는 소통의 장

청각장애인이 일하는 카페 ‘티아트’

경복궁 역에서 인왕산 방향으로 꼬불꼬불한 산길을 걸어 올라가면, 그 꼭대기에 작고 예쁘장한 카페 ‘티아트’가 있다. ‘티아트’는 청각장애인들이 바리스타로 일하는 카페이자 사회적 기업이다. 홍차수입회사 ‘티월드’ 대표이자 수많은 티마스터, 바리스타 등을 길러낸 자타공인 홍차전문가 박정동(47)씨가 직접 운영한다.

만나자마자 홍차부터 권하는 박 대표는 나른한 오후 티타임을 즐기듯, 밀크티를 몇 모금 마시더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홍차 수입 때문에 인도에 자주 가는데, 아마 2008년도일 거예요. 인도 콜카타의 어느 식당에 들어갔는데 종업원들이 다 청각장애인들인 거예요.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하는데, 그리고 저 역시 수화를 전혀 할 줄 모르니 큰일이다 싶었죠. 그래도 손짓 발짓 하며 결국 주문을 다 했어요. 음식도 맛있었고 서비스도 너무 좋았어요.”

그날의 짧은 경험이 박 대표의 눈을 뜨게 했다. 청각장애인이지만, 어떤 교육이나 지원도 받지 못한, 심지어 수화조차 배우지 못했던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도 살아났다.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지는 장(場)을 만들어 ‘소리 없는 소통’의 기회를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어머니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인 것만 같았다. 박 대표는 자신의 경험과 강점을 살려 청각장애인들이 일하는 카페를 열기로 결심했다.

박정동(오른쪽) 대표가“티아트를 찾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용기와 희망을 전하고 싶다”며 직원들과 함께 격려의 포즈를 취했다.
박정동(오른쪽) 대표가“티아트를 찾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용기와 희망을 전하고 싶다”며 직원들과 함께 격려의 포즈를 취했다.

“청각장애인들은 소리를 못 듣잖아요. 그래서 시각과 후각, 촉각이 자극되는 일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바리스타 일은 커피나 차를 만들면서 고객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거든요. 그럼 소리를 듣지 못해도 덜 단조롭고 덜 지루할 거라 생각했어요.”

우선 수화부터 배웠다. 청각장애를 가진 청년들을 만나려고 단체들을 찾아다녔다. 함께 일할 직원을 선발하는 것도, 교육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종이와 펜으로 적고 읽으면서 면접을 보니, 질문 몇 번만 해도 한 시간이 훌쩍 넘었다. 홍차교육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적어서 가르쳐야 하니, 가르치는 것도 오래 걸리고 배우는 것도 오래 걸렸다. 듣지 못해도 주문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아이패드 메뉴판도 개발했다. 아이패드 메뉴판으로 고객이 손쉽게 메뉴를 선택해 주문할 수 있다. ‘직원 호출하기’,’물 한 잔 주세요’ 등 카페에서 벌어질 수 있는 거의 모든 소통도 메뉴판에 마련되어 있다.

티아트는 2009년 10월에 문을 열어 어느덧 1년 6개월이 되어간다. 매출은 나지만 아직도 수익을 내기는 어렵다. 워낙 외진 곳에 있으니 아는 사람 아니고는 찾아오기도 쉽지 않다. 그래도 이전과는 다른 보람이 더 커서 박 대표는 “행복하다”고 한다.

“아이들의 표정이 살아났어요. 꿈도 생겼어요. 이거만한 보람이 또 있을까요? 맨 처음에 카페를 시작하려고 청각장애인 청년들을 찾아다니던 시절은 참 서글펐습니다. 한창 꿈도 열정도 많아야 할 나이인데 꿈도, 하고 싶은 것도, 심지어 자신감도 없는 아이들투성이였어요. 항상 ‘이거 하지 마, 저거 하면 위험해, 조심해’ 이런 말만 들었을 뿐, 칭찬이나 격려를 받은 적이 많지 않더라고요. 아이들의 변화가 가장 큰 ‘수익’입니다.”

훌륭한 홍차전문가가 되어 청각장애인 대상으로 홍차교육을 펼치고 싶은 양준상(27)씨, 자신의 카페를 열어 사람들에게 맛있는 홍차와 아늑한 쉼을 선물하고 싶은 장시승(34)씨. 역시 티아트 직원답게 꿈과 희망이 가득하다.

박 대표 역시 꿈이 가득하다. “10년, 20년 계속 진심을 다해 하면 가능할 거 같다”며 자신의 꿈을 들려줬다. “앞으로 더 많은 청각장애인 청년들에게 꿈과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어요. 그리고 비장애인들에게도 ‘소리 없는 대화’, ‘마음으로 하는 대화’를 맛보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고요.” 열린 공간인 카페를 통해 더 많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게 되기를 함께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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