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신발언대] 베트남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들에게

올해로 12년째 베트남 하노이에 살고 있다. 처음엔 한국 단체 소속된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로 파견됐고, 베트남에 정착한 이후엔 여러 한국 기관들의 지원사업 프로젝트 매니저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하노이의 사회적경제 생태계에 발을 딛게 되었고, 훌륭한 현지 사회적기업가들과 인연을 맺게 됐다. 동료를 넘어 친구가 된 이들은 베트남에서 하는 나의 여러 활동을 함께 해주고 도와주는 든든한 ‘백’이 됐다. 그리고 지금은 현지 활동가들과 함께 교육, 예술, 장애, 여성, 환경 등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다양한 ‘작당 모의’를 해오고 있다.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을 도와달라는 의뢰를 받을 때가 종종 있다. 물론 그중엔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진심으로 베트남 사회에 기여하려는 훌륭한 기업도 있지만, 아쉽게도 베트남 현지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 기획을 갖고 오는 곳도 많다. 그런 사람들 대부분 기금을 따내기 위한 일회성 사업을 마치고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문제는 이런 ‘문제적 기업’ 가운데 스스로를 ‘사회적기업’으로 칭하는 기업들도 많다는 것이다. 이들은 베트남 사회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 없고, 현지 문제 해결에 기여를 하지 못하는데도 이들은 자신을 사회적기업으로 당당하게 소개한다. 이들이 내건 사업 목표에 ‘베트남의 취약계층과 함께한다’가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취약계층이라는 단어는 베트남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을 포괄한다는 것이다. 장애인, 소외 지역에 사는 청소년, 한국에서 돌아온 귀환 결혼 이주 여성, 한국인 핏줄이지만 버려진 아이들, 농어촌 빈곤층, 성별, 지역, 직업 등에 따라 각자의 특수성을 가진 사람들이 ‘취약계층’이라는 한 단어로 뭉뚱그려진다. 현장의 정확한 문제 파악이나

[정경선의 최적화 인류] 인류에게 던져진 不和의 황금사과

어린 시절 열심히 읽던 그리스 신화 세계관의 시작은 바로 트로이 전쟁에 대해 다룬 ‘일리아스’였다. 올림푸스의 신들이 아카이아인과 트로이인들을 통해 대리전을 펼치는 이 중요한 이야기가 ‘에리스’라는, 그리스어로 ‘불화(不和)’를 뜻하는 여신에게서 시작됐다는 건 꽤나 흥미로운 포인트였다. 불화와 이간질의 여신인 에리스는 인간들뿐만 아니라 신들 사이도 이간질하며 불화를 일으킨다. 그리고 이로 인해 벌어진 전쟁터를 전쟁의 신 ‘아레스’와 함께 누비며 자신이 일으킨 파괴의 흔적을 즐기는 존재로 묘사된다. 아마도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에리스가 열심히 가꾸는 ‘불화의 황금사과 과수원’쯤이 아닌가 싶다. 코로나19와 같은 글로벌 팬데믹, 시시각각 닥쳐오는 기후변화 등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는 문제가 산적한 상황인데도 인류는 대동단결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서로 갈라져 다투느라 여념이 없다. 이러한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극단주의다. 정치, 종교, 사회적 이슈 전반에 걸쳐 극단주의가 세계적으로 범람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극단주의는 자신이 믿는 이데올로기를 ‘극단적’으로 내세워 자신과 타인 모두의 이익을 짓밟는 비합리적 행동으로 치닫는 것을 말한다. 미국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이었던 백인 우월주의 단체 프라우드보이스나 음모론을 신봉하는 큐어넌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현재 이러한 극단주의가 자라날 최적 상황이 조성됐다는 점이다. 2000년대 이후 자본의 세계화와 반복된 경제 위기는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한 국가들의 중산층을 붕괴시켰고, 빠른 속도로 양극화가 진행됐다. 실업률 증가, 정부 복지 재정 고갈은 일본·영국·미국 등 선진국들의 급격한 우경화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또한 중국과 미국의 패권 정치와 아프리카, 중동 정세 악화로 인한 대규모 난민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최재호의 소셜 임팩트] 새로운 여행

영리기업과 비영리단체는 그 경계가 명확하고 서로의 역할이 다르다는 것이 사회 통념이다. 영리기업은 수익 창출과 주주이익이 우선이고, 비영리단체는 사회적 가치 창출과 공공의 이익이 우선이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영리기업에서 사회공헌을 담당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영리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거나 비영리단체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지켜보며 어떤 면에서는 둘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시대적으로도 영리와 비영리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기업을 통해 부를 창출한 비즈니스 리더 중에서 비영리단체를 설립해 사회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비콥을 통해 사회혁신 기업을 발굴하는 미국의 비영리기관 ‘B Lab’을 이끄는 바트 홀라한은 스포츠 의류회사인 앤드윈의 회장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설립자 빌게이츠는 2000년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나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기후변화 등 전 세계의 사회문제에 대한 이슈를 주도하고 있다. 파타고니아의 이본 쉬나드 회장은 전설적인 등반가, 서퍼, 환경운동가이다. 파타고니아는 ‘우리는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서 사업을 한다’라는 사명 선언문을 바탕으로 집요하게 환경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기업인지 환경단체인지 헷갈릴 정도다. 또한, 비영리 영역에서도 대기업이 생겨나고 있다. 협동조합으로 시작한 스페인의 몬드라곤은 가전, 건설, 첨단산업을 바탕으로 250여개 사업체로 구성된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2008년 금융위기를 직원들의 해고 없이 극복하였으며, 오히려 1만 5000명의 신규 고용을 창출하며 안정적 성장세를 이어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주주가치 극대화와 이익을 추구하는 비즈니스 마인드가 우리 사회를 더욱 풍요롭게 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듯이, 사회적 가치와 나눔을 추구하는 비영리의 마인드는 지속가능한 포용적 사회를 위해

[기자수첩] 소셜벤처의 힘, 생태계

지난 17~19일 소풍벤처스 주최로 서울 역삼동에서 열린 ‘임팩트 액셀러레이팅 마스터코스’에 참여했다. 2019년부터 매년 개최되는 임팩트 액셀러레이팅 마스터 코스는 ‘임팩트 액셀러레이팅의 모든 것’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임팩트투자의 개념부터 국내 임팩트투자 현황, 창업팀 발굴과 관리 방법, 사회적가치 평가 등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소풍벤처스가 직접 사용하는 툴킷을 그대로 공개하고 투자 심의 관련 서류 관리법, 대표님 멘탈 관리법 등 실제 펀드를 따고 창업팀을 발굴, 육성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모든 내용을 공개한다. 듣다 보니 ‘이렇게 다 공개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과정에 참여한 인원은 40명. MYSC, 사단법인피피엘 등 같은 초기 소셜벤처나 사회적기업을 키우는 기업이 대다수였다. 쟁쟁한 경쟁자들에게 신입사원 연수 수준의 내용을 모두 공개하는 게 쉽지 않겠다 싶었다. 문득 처음 임팩트 액셀러레이팅 마스터 코스에 초대하던 한상엽 대표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영업 비밀을 다 공개한다”면서 “생태계가 자라야 우리도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풍벤처스가 생태계의 중요성을 절감하는 건 어쩌면 조직 특성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풍벤처스는 2008년 소풍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국내 최초 임팩트 전문 액셀러레이터다.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생긴 게 2007년이니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듯’ 일해왔을 것이다. 다른 조직과 힘을 합쳐 필요한 제도를 만들어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언론과 대중에게 사회적가치를 위해 뛰는 기업과 투자의 가치를 알리고….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해야 재무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다’. 아름다운 말이지만 실제 기업 운영 과정 모든 단계의 구체적인 의사 결정 마디마다 이를 모두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ESG 평가에 대한 기업의 4가지 반응

최근 ESG(환경·사회·거버넌스)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가운데, ESG에 대한 우려와 한계 또한 많이 언급되고 있다. 일명 지속가능성 지수로 불리는 ESG 평가의 실제 의도는 투자자가 ESG 관련 위험에 대한 노출평가와 관리, 피투자 기업과의 교류 등을 목적으로 비재무적 성과를 보다 광범위한 기업과 비교 평가해 책임 있는 투자상품을 구축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현재는 표준화된 공시기준과 평가기준이 없다는 지적이 단골로 제기되며 ESG 공시 및 평가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GRI, CDP, IIRC, SASB, CDSB 등 5개 기관은 지난 9월 기업이 공시하는 보고서 표준을 통합하겠다고 밝히고, IIRC와 SASB는 내년 중반까지 합병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ESG 평가에 대해 ‘좌절’을 느끼는 기업이 많은데 그 이유는 수십 개의 평가기관이 연중 비슷한 시기에 서로 다른 플랫폼과 다른 방식을 사용해 유사한 것을 측정함으로써, 기업에 ‘분노’와 ‘냉소’와 ‘보고 피로’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에스터 클레멘티노(Ester Clementino)와 리처드 퍼킨스(Richard Perkins)는 ESG 평가에 대해 기업이 어떻게 생각하고 대응하는지, 실제로 ESG 평가가 기업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연구하였고 몇 가지 흥미로운 결과를 확인하였다. 먼저 에스터 클레멘티노와 리처드 퍼킨스는 ESG 평가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보았다. 이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ESG 평가 및 등급이 공개되기 시작하면서 기업들이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및 ESG 관련 조직을 정교화하고 이들 조직의 역량강화에 힘을 쏟기 시작하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외부평가가 마치 게임에서 높은 점수를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유니콘·VC도 ‘ESG’를 피할 수 없다

환경(Environmental)·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하는 ‘ESG’가 기업의 전략과 운영에 있어서 필수적인 접근으로 여겨지고 있다. ESG의 확산은 어느 정도 예견된 미래였지만, 이렇게 빨리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코로나로 인한 2020년의 위기감이 일종의 ‘가속 페달’ 역할을 한 셈이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VC(Venture Capital)로서 최근 ESG의 폭발적인 확산을 지켜보고 있자니, 지난 십여 년간 급성장한 ‘임팩트투자’와 2006년 UN이 발표한 ‘책임투자(Responsible Investment)’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ESG는 책임투자의 한 가지 방법 혹은 고려해야 하는 요소로 ‘비재무적(non-financial) 정보’라고도 불린다. 임팩트투자는 특정한 사회문제 해결 및 가치창출을 위해 자금을 공급하는 금융의 방식이다. 투자 대상 기업의 ESG 요소를 검토하고 분석하는 게 자본 투자 과정의 필수적 절차로 자리 잡아가는 상황에서, 얼리 스테이지(Early Stage)에 있는 기업들도 ESG를 수용하게 할 수 있을까. 나아가 임팩트투자의 대상 기업으로 바뀌게 할 수 있을까. 몇 년 전부터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사회적 가치’를 고려한 자본 투자를 선언하며 기업들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지만, 전체 자본 투자에서 임팩트투자의 비중은 여전히 소수다. 대부분의 자본이 여전히 수익률만을 기준으로 투자되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은 마치 과거 ESG가 처했던 상황과 비슷하다. ESG 역시 오랫동안 기업들의 자율에 맡겨져 왔다. 지속가능성보고서 혹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으로 불리는 문서를 통해 자본 시장 및 투자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기업은 소수였다. ESG가 폭발적으로 확산된 데에는 기업을 둘러싼 여러 위험들을 평가하는 데 있어 환경·사회와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기업은 물론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궁극적으로

[아무튼 로컬] 로컬의 ‘부캐’ 전쟁

새해가 되면 전국의 지방 도시들은 ‘부캐 전쟁’에 돌입한다. 전쟁의 진원지는 중앙정부다. 정부 각 부처가 그 나름의 콘셉트를 앞세워 다양한 공모 사업을 내놓으면 지방 도시들은 그 사업을 따내기 위해 사활을 건다. 국토부가 스마트시티를 선정하겠다고 하자 갑자기 전국 여러 도시가 ‘우리가 바로 스마트시티 적임’이라고 나선다. 문체부가 문화 도시, 관광 도시를 지정하겠다고 하자 이번에는 일제히 문화 도시 혹은 관광 도시 흉내를 낸다. 모두들 본캐는 뒷전이고 주관 부처 입맛에 맞는 부캐를 앞세워 간택받으려 안달이다. (부캐는 ‘부캐릭터’를 줄인 말로, 본래 모습인 ‘본캐’의 대립어다.) 지자체가 부캐 전쟁을 벌이는 것은 중앙정부의 지원금을 받아내기 위함이다. 지방에서 걷히는 세금 가운데 80%가 국고로 들어가고 지방에 남는 세금은 20%에 불과하다. 그 돈으로 빚 안 지고 살림을 꾸릴 수 있는, 즉 재정 자립도가 100%를 넘는 지자체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강원도 몇몇 군 단위 지자체는 재정 자립도가 너무 낮아 공무원들 월급 주고 나면 곳간이 바닥을 보인다. 그러니 정부 지원금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지역 창업자들도 부캐 전쟁을 벌이기는 마찬가지다. 정부나 지원 기관의 보조금을 받기 위해 어떨 땐 ‘소셜벤처’가 되고 어떨 땐 ‘사회적기업’이 되고 또 어떨 땐 ‘로컬 크리에이터’의 얼굴로 나타난다. 회전의자를 뱅글뱅글 돌리듯이 공모 사업에 맞춰 자신의 부캐를 내세운다. 그런데 이런 억지춘향식 부캐 만들기를 개탄하는 시각도 관점을 바꾸면 긍정적인 쪽으로 바뀔 수 있다. 트로트 가수 ‘유산슬’, 프로듀서 ‘지미유’ 등 11가지 부캐로 정상급 예능인의

유지민(거꾸로캠퍼스 재학생)
[모두의 칼럼] 내겐 너무나 먼 고등학교

내년이면 고등학교 1학년이 된다. 서울은 고교 평준화 지역이기 때문에 내 친구들은 가고 싶은 고등학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추첨을 기다리고 있다. 장애가 있는 나는 입학이 1년이나 남았는데도 벌써 고등학교 답사를 다니고 학교에 입학 문의를 해야 한다. 근 몇 개월간 주변 고등학교들을 돌아보며 한국 고등학교, 특히 사립 고등학교들이 장애 학생에게 참 불친절하다는 걸 깨달았다. 소위 ‘명문’이라는 고등학교도 경사로나 엘리베이터 같은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특수 교사가 없는 학교도 있었다. 심지어 장애 학생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은근히 부정적인 의사를 내비치는 곳도 있었다. 이런 학교들이 아직도 있다는 사실이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매우 가깝고 엘리베이터도 잘 갖춰져 있다. 덕분에 지난 9년간 친한 친구들과 같은 동네에서 자라고 학교도 함께 다닐 수 있었다. 이런 내게 ‘고등학교를 알아본다’는 행위 자체가 어색했다. 어릴 적,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여러 곳에서 거부당했다고 엄마에게 듣긴 했지만 그때는 워낙 어려서 잘 몰랐기 때문에 장애 학생에게 담을 쌓는 듯한 교육 현실을 이번에 처음 느껴본 셈이다. 엉뚱하게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특출나게 잘하는 것이 없어 다행이다’였다. 몇 달 전 누군가 ‘외고를 가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 적이 있었다. ‘그 정도 재능은 없는데…’ 하면서도 가벼운 마음으로 인근 외고를 알아봤는데, 엘리베이터가 전혀 설치돼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지역 학생들까지 일부러 찾아와 입학할 정도로 꽤 평판이 좋은 학교였기 때문에 좀 놀랐다. 만약

[정경선의 최적화 인류] 팔열팔한지구(八熱八寒地球)

대부분의 종교는 사람들에게 선악을 가르치기 위해 각자의 문화권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천국’과 가장 고통스러운 ‘지옥’의 모습을 상상했다. 흥미로운 것은 천국의 모습은 문화권별로 차이가 있는 데 비해, 지옥은 대부분 묘사가 겹친다는 것이다. 그곳은 불타거나, 얼어붙어 있는, 고통만이 존재하는 곳이다. 고대의 종교인들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에 신음하고 있는 오늘날 지구의 풍경을 보게 된다면, 아마도 종말이 다가온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할 것 같다. 2020년은 지구 기온 사상 최고를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럽 지역은 관측을 시작한 이후 2010년까지의 평균기온에 비해 2020년 기온이 2.2도나 높았다. 겨울철 온도가 영하 50도까지 내려가는 시베리아 북동부 북극권 인접 지역 베르호얀스크는 6월 평균기온이 평소 20도에 불과한 곳이었으나 작년 6월에는 38도를 기록했다. 반면 올해 2월에는 30년 만의 최악의 한파가 미국 중부, 남부를 덮치면서 세계 최강 대국 미국에서 수도와 전기가 끊기고 석유 시설의 생산이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 따르면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시기보다 1.1도 이상 증가하면서 열대 폭풍의 빈도와 강도는 올라가고, 제트기류의 약화로 인해 극지방에 갇힌 차가운 공기 덩어리인 극소용돌이(Polar Vortex)가 남하하면서 폭한 사태를 발생, 전 세계적인 폭염과 가뭄, 그로 인한 산불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상기후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서서, 인류 사회에 실존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독일의 비영리 민간기후연구소 저먼워치는 21세기에 들어서 20년간 1만1000건이 넘는 이상기후가 발생했고 이로 인한 사망자가 47만5000명, 피해액은 2조5600억달러(약 2826조원)에 이를 것으로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최재호의 소셜 임팩트] 경계를 넘어서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혁신’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게 기술의 혁신(Technology Innovation)과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이다. 개방형 혁신은 코로나로 인해 촉발된 언택트, 디지털 전환과 함께 기존의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기술, 드론, 자율주행차, 가상현실(VR) 등 신기술의 융합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또 하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게 바로 ‘사회적 혁신(Social Innovation)’이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해결책이 나오고 있다. 사회적 혁신은 정부, 시민사회, 기업 등 섹터 간 경계를 넘어서는 ‘협력’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기꺼이 그 경계를 넘고자 하는 사회혁신가들에 의해 주도된다. 만약 시민사회가 정부를 불신하고, 정부는 시민사회와 소통하지 않으며, 기업의 사회공헌은 더 많은 이윤 추구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있다면 사회혁신적 아이디어의 협력적 성장은 불가능하다. 즉 사회 혁신을 위해서는 섹터 간 경계를 넘어 신뢰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바탕으로 사회구성원 모두가 미래 사회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번 칼럼에서는 정부, 기업, 비영리 간 협력을 통한 사회 혁신 사례와 이러한 성공을 가능케 한 사회혁신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 사회에서의 경제적 격차에 따른 교육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버드 출신의 대표들이 모여 2012년 설립한 사단법인 ‘점프’는 당시만 해도 대학생 십여명의 교육봉사 활동이었다. 사단법인 점프는 한국의 ‘Teach for America(교육을 통해 미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대표적인 미국의 교육 관련 비영리단체)’를 꿈꾸며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에 관심이 있는 기업과 사업모델의 정교화를 위해 장학사업에 전문성이 있는 장학단체를 파트너로 참여토록 설득했다. 2013년 점프의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너무 많아서, 너무 적어서

“안에 들어가면 비 오는 소리가 쏴 하고 들릴 거예요.” 안내인의 설명과 함께 20평이 채 되지 않는 사육장에 들어섰다. 암실 안에서 서로 다른 조도 아래 푸르스름한 빛을 내고 있는 데크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들려오는 힘찬 빗소리. 식용으로 쓰이는 쌍별귀뚜라미 수백만 마리가 만들어내는 그 소리는 한여름 소나기같이 우렁차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청아했다. 곤충 수백만 마리를 한 방에서 마주하는 생경한 경험을 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바로 작년 여름, 곤충 스마트팜 설루션을 만드는 ‘반달소프트’라는 회사에 투자하면서다. 식용 곤충 산업은 새로운 단백질 영양원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존 축산업 대비 토지와 물을 적게는 20배, 많게는 50배까지 절약할 수 있어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면서도 양질의 단백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성장세도 무섭다. 연평균 25% 이상 성장하고 있고, 만약 곤충 단백질을 축산(소·돼지·닭 등) 사료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제가 완화된다면 더 큰 산업적 성장이 담보된다. 식용 곤충 산업이 환경적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는 우리 투자 회사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국내 임팩트투자를 이끌고 있는 성수동의 투자사들이 가장 집중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단연 ‘기후 위기’다. 태양광 등의 신재생에너지 산업이나 재활용 산업은 이제 너무나 익숙한 투자처가 되었다. 원소재를 재활용품에서 뽑아내거나 심지어 연구실에서 배양해 패션 산업의 혁신을 꾀하는 기업들, 대체육·배양육 등을 통해 축산업이나 수산업의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푸드테크 기업들, 유통·판매 과정에서 버려지는 음식 폐기물을 줄이려는 기업들은 이미 임팩트투자사들의 포트폴리오에

김미진 위커넥트 대표
[모두의 칼럼] MZ세대 ‘엄빠’가 온다

MZ세대에게 워라밸은 그저 ‘노야근’이나 ‘칼퇴근’의 의미가 아니다. MZ세대가 워라밸을 중시하게 된 데는 한 회사에 자신의 미래를 걸 수 없다고 믿는 불확실성 속에서 퇴근 이후 언제든 다른 직장과 직업으로 옮길 수 있는 실력과 브랜드를 쌓으며 스스로 안전망을 만들려는 욕구가 숨겨져 있다. 또한 이들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을 통해 인정받고 선한 영향력을 펼치려는 욕구가 강한 세대이기도 하다. 즉 MZ세대에게 워라밸은 수면 위로 드러난 필요 또는 조건일 뿐이지, 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내가 가치 있고 의미 있다고 믿는 일을 통해 스스로와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것’인 셈이다. 대표나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꽤 반가운 소리일지 모른다. 구성원들이 자신이 일하는 의미를 찾고 내 일의 가치와 영향력을 충분히 느낄 수만 있다면 더욱더 높은 몰입도를 갖게 될 테니까. 이런 배경에서 실제로 ‘채용-입사-교육-성장-퇴사’로 이어지는 구성원의 생애주기(Employee Life Cycle)를 고려한 구성원 경험(Employee Experience)을 다시 설계하는 조직이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소셜 임팩트를 지향하는 조직이라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보면 어떨까? 우리 조직의 핵심 인력이자 중추인 MZ세대 구성원의 다수가 곧 일하면서 육아도 하는 엄마·아빠가 된다. 이들이 인생의 중요한 변화를 맞이할 때 즉, 결혼과 출산 이후에도 지속 가능하게 일할 수 있고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환경의 핵심에는 구성원의 일-생활 균형을 지원하는 제도와 문화가 있다. 위커넥트가 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1000여 명의 재직자와 휴직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에 따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