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한수정의 커피 한 잔] 앞선 자 뒤서고, 뒤선 자 앞선다

지난 10여 년, 공정무역 커피 비즈니스 덕에 나름 개성 있는 커피 생산지를 경험해 왔다. 스페셜티 커피처럼 맛있는 커피만을 찾아 여기저기 다닌 것이 아니다 보니, 한 산지에 긴 시간 머물면서 여러 가지 렌즈로 그 사회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 렌즈의 이름은 젠더, 인류학, 경제학, 비즈니스, 사회혁신 등 다양하다. 이 중에서도 나를 가장 매혹했던 관점은 ‘다이내믹스(dynamics·사물 간의 변화를 주는 힘의 작용)’다. 어떻게 변화가 찾아올까, 무엇이 변화를 견인하는가. 최근 흥미 있게 본 생산지는 코스타리카 커피 섹터다. 스위스와 마찬가지로 영세중립국으로 선언한 이 나라에는 유엔 부설 대학원 대학인 유엔평화대학이 있다. 또 생태적으로 잘 보전된 지역을 중심으로 관광 산업이 발전했다. 일찍이 재생에너지를 적극적으로 개발해, 공급 가능한 에너지의 90%가 신재생에너지라 한다. 이것을 기반으로 세계 최초 ‘탄소중립 커피’를 생산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런 기후위기의 시대에 앞선 자가 걸어온 길이 궁금하다. 코스타리카는 중미의 인구 500만 국가로 식민지 시대부터 커피, 바나나 등의 단일 작물 경작과 수출을 주된 경제활동으로 영위했다. 토착 원주민의 숫자가 작아 스페인 본국에는 무의미했던 땅이었지만, 원주민과 영토분쟁 없이 커피 재배 면적을 확대할 수 있었기에 인접 주변국보다 50년 이상 빠르게 커피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었다. 또한 국가 내 커피재배 확산 과정도 다양하다. 초창기 작은 길을 놓고 비즈니스를 시작한 따라주 지역은 소농 기반의 소규모 경작과 가공방식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후 대서양 철도와 판아메리칸 하이웨이로 연결된 뚜리알바, 뻬레스 셀레동 지역은 대규모 경작을 할 수 있어

[진실의 방] 나는 열 살에 죽었다

내 이름은 이사벨(Isabel). 아프리카 남동부의 작은 나라 ‘말라위’에서 태어난 여자 아이다.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 가족의 하루 수입은 1.5달러였다. 하루 한 끼 식사만 가능할 정도로 가난했고 제대로 된 집도 없었다. 여동생이 둘 태어났고, 남동생도 하나 태어났다. 우리 가족은 항상 굶주렸다. 나는 친구들에 비해 똑똑한 편이었지만 영양실조 때문에 허약했고 자주 아팠다. 결국 8살에 학교를 그만뒀다. 셋째 여동생은 6살이 되던 해에 감염병에 걸려 죽었다. 나는 동생이 눈을 감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야 했다. 한국을 방문한 파라그 만키카(Parag Mankeekar) 박사를 인터뷰했다. 그는 ‘리얼라이브즈(RealLives)’라는 시뮬레이션 게임을 만든 인도의 사회적기업가다. 게임 사이트에 접속해 ‘랜덤 인생 살아보기’ 버튼을 클릭하면 아기 울음소리와 함께 나이가 ‘0세’로 설정된 아바타가 생성된다. 출생 국가, 도시, 성별 등은 무작위로 정해진다. 선진국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날지, 아프리카 최빈국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날지는 알 수 없다. 유엔(UN) 등 공신력 있는 기관이 발표한 100여 개 통계 데이터를 기반으로 게임을 제작했기 때문에 전 세계 각국의 삶을 사실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플레이어는 그 나라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겪는 문제나 갈등에 대해 직접 판단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선택이나 의지로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이 게임 안에서 자꾸만 벌어진다. 치안이 불안한 나라에서 태어난 경우엔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친구들로부터 ‘마약을 하자’는 제안을 받기 시작한다. 거절해도 제안은 계속된다. 제안을 받아들일 때까지 말이다. 지진이나 홍수 등 자연재난이 잦은 나라에서 태어나면 죽을 때까지 그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10년 후에도 식량을 생산할 수 있으려면

맑은 가을하늘과 천연색 단풍이 무르익어가는 정선의 고랭지 밭에서는 수십 명의 일꾼이 일사불란하게 천궁(川芎)을 수확하고 있었다. 베트남에서 온 계절노동자들은 해발 900m에서 맞는 서늘한 기후가 익숙지 않은 듯 두꺼운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분주히 움직이던 일꾼들은 순식간에 수확 작업을 끝내고 다른 밭으로 옮겨갔다. 이제는 이런 풍경이 낯설지 않다. 마을 주민들끼리 품앗이하는 걸 보는 게 오히려 생경하다. 농가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절반에 가까워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상황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65세 이상 농업인구는 70%에 이르고 39세 이하는 5% 정도에 불과하다. 2020년 농업경영체의 수는 개인과 단체를 합쳐 107만6000명이다. 2010년 167만9000명에 비해 36% 감소했다. 신규 취농자 수는 5만명대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중 76%는 자영농이다. 특이한 건 고용 취농자의 비율이 10년 만에 1.6배가 증가했고, 대부분 40대 이하라는 점이다. 농업법인의 규모가 커지면서 직장으로서 농업을 택하는 비율이 늘었다. 일본과 한국이 비슷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엄청난 차이가 난다. 일본의 농경지 면적은 434만ha로 우리나라 156만ha의 2.8배에 이른다. 그런데 취농인구는 거의 비슷한 130만명 수준이다. 일본은 고용 취농자가 늘어나자 농업경영자를 위한 안내서를 제작하고, 대학생과 사회인들을 대상으로 농업 적성판별이나 취업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귀농을 위한 정책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고령화 시대를 대비해 농업용 로봇 및 자율주행 농기계를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자동조향장치를 갖춘 농기계 판매 대수는 2013년 190대에서 2018년에는 1900대로 5년 만에 10배 늘어났다. 여기에 더해 2018년부터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기업과 사회] 인권을 소홀히 하는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녀는 새벽 6시쯤 소스 배합기에 끼어 사망했다. SPC그룹 제빵공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빵 가게를 차리는 것이 꿈이었던 그녀는 스물셋에 세상을 떠났다. 배합기에 안전장치가 있었다면, 2인 1조 근무 원칙이 지켜졌다면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그녀는 2주마다 주간과 야간을 바꾸어 12시간씩 일했다. 회사는 사건 다음 날 사고 난 기계에 흰 천을 덮어놓고 작업을 하게 했다. 장례식장 빈소에는 크림빵 두 상자를 보냈다. 그녀는 시간당 14센트를 받았다. 나이키 인도네시아 하청공장에서 일했다. 1992년 미국 잡지에 그녀의 이야기가 보도되었다. 150달러짜리 신발을 만드는 그녀는 맨발로 미국 시급의 50분의 1을 받고 일했다. 나이키는 항변했다. 신발생산을 위탁한 별개의 회사라고, 그래서 근로조건에 관여할 수 없다고. 게다가 인도네시아 최저임금을 상회하고 다른 곳보다는 조건이 좋다고도 했다. 원가를 절감해 최대이윤을 얻는 것이 기업의 목적이라면 나이키의 항변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는 열두살이었다. 1996년 미국 ‘라이프’지에는 그가 나이키 축구공에 바느질하는 사진이 실렸다. 그는 시급 6센트, 일당 60센트를 받았다. 나이키가 아동노동에 연루되었다는 거센 비난이 일어났다. 나이키는 여전히 억울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일이라 항변했다. 주문자의 상표를 부착하여 생산하는 OEM 공장에서 일어난 일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기사가 나간 다음 날 나이키의 주가는 13% 하락했고, 소비자들은 나이키의 노동착취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듬해인 1997년, 나이키는 창사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나이키 CEO는 1998년 5월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나이키 제품은 노예 임금, 초과근로 강제, 자의적 학대와 동의어가 되었다. 나는

장서정 자란다 대표
[오늘도 자란다] 뒤돌아보다

최근 투자 시장에 ‘겨울’이 왔다며, 스타트업의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래의 찬란한 ‘유니콘’보다는 안정적인 수익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켄타로우스’형 스타트업이 돼야 한다고 하고, 스타트업이 스스로 냉정히 되돌아봐야 할 때라고도 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 상황을 마주해야 하는 스타트업은 미래를 향해 바삐 달려갈 수밖에 없다. 전속력으로 내달리는 와중에 뒤를 돌아보는 건 어려운 일이다. 차갑게 변한 시장은 미래에 집중하던 스타트업 업계에 잠시 머리를 식히고, 기업의 본질과 경영 전반을 되돌아볼 기회를 준 것으로 생각한다. 모든 스타트업이 생존과 성장에 대해 고민하는 시점에서 기업들은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까. 비슷한 상황을 맞아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두 기업의 이야기를 나눠보려 한다. 덴마크 완구 기업 ‘레고(LEGO)’는 2003년 요르겐비그 크누스토르프 CEO 취임 당시 레고 블록의 특허 종료와 비디오 게임 등장의 영향으로 ‘혁신의 굴레’에 빠져 있었다. 전방위적인 사업 확장은 회사의 경영 상황을 크게 악화시켰다. 구원투수로 등장한 신임 CEO가 답을 찾을 수 있었던 곳은 70년의 역사를 가진 레고의 기록 보관소였다. 지적성장을 촉진하는 ‘좋은 놀이’를 아이들이 할 수 있도록 돕는 레고의 초기 사명을 떠올린 것이다. 이후 레고는 회사 이름에 담긴 ‘재미있게 논다(Leg Godt)’라는 핵심 가치에 집중하면서, 이익이 나지 않는 비주력 사업을 정리했다. 블록 종류를 효율화하면서 표준 블록의 비율을 70%로 높이는 등 비용 절감과 동시에 본질에 충실한 경영으로 기조를 바꿨다. 단기적 성과에 매몰되기보다 확장할 수 있는 레고 블록 생태계를 만드는 데 주력한 것이다. 과거의 성공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생태계에도 분해자가 필요하다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환경과 생태계에 대한 내용을 떠올려보자. 환경이란 생물과 생물이 살아가는데 영향을 주는 모든 것을 뜻하며, 생태계는 생물이 다른 생물이나 비생물적 환경요인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생물은 양분을 얻는 방법에 따라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로 구분할 수 있다. 생산자는 풀과 나무처럼 필요한 양분을 스스로 만드는 생물이고, 소비자는 스스로 양분을 만들지 못해 다른 생물을 먹이로 살아가는 동물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곰팡이나 세균처럼 다른 생물의 사체나 배설물을 분해하여 살아가는 생물을 분해자라고 부른다. 지구라는 거대한 자연 생태계는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분해자가 각각의 역할을 하며 생태계 시스템을 유지시키고 있다. 그런데 2021년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의 오스카 벤터 교수가 참여한 연구팀이 등재한 연구논문 결과에 따르면, 지구상 완벽한 생태계가 남아 있는 지역은 전체 육지 면적의 2.8~2.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97.1% 지역에서는 생물다양성 파괴가 이미 시작되었고, 이 중 68%는 인간에 의해 생태계가 크게 훼손된 것으로 나타났다. 손상되지 않은 약 2.9%는 기원후 1500년 당시 살았던 모든 생명체가 그대로 살고 있는 지역을 의미하는데, 2.9%중 약 11%정도만 자연보호구역에 속해있어, 앞으로 생태계 파괴가 지속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앞서 언급한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인간의 개발행위와 환경오염, 기후변화 등이 생태계의 복잡하고 긴밀한 역학관계 사슬을 끊기 시작했다. 생태계는 자연계에만 존재할까? 그렇지 않다. 인간의 경제 생태계에도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제 생태계는 생산자와 소비자에

유지민(거꾸로캠퍼스 재학생)
[Z의 휠체어] 내가 꾸미는 나의 휠체어

아주 어릴 때부터 대학병원 보조기실에 종종 갔다. 휠체어를 타면서 발생할 수 있는 척추 휘어짐과 발 모양의 변형을 막는 보조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의족, 의수 등 다양한 보조기 샘플이 있었는데, 형형색색의 무늬로 꾸며진 보조기가 가장 눈을 사로잡았다. 아동의 경우 자기가 원하는 디자인을 선택할 수 있었고, 나는 분홍꽃이 가득 그려진 디자인을 선택했었다. 이후 여러 번 보조기를 바꾸면서 그 모양새는 단조로워졌다. 휠체어도 여러 번 바꿨지만 꾸민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더 이상 보조기에 무늬가 들어가지 않았고, 하루 24시간 함께 하는 휠체어와 보조기를 스스로 꾸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유튜버 ‘굴러라 구르님’과 팀 개굴이 함께 한 ‘휠체어 위의 우리들’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아동 청소년들이 직접 휠체어 스포크가드(휠체어 바퀴살 위에 씌워 손 끼임을 방지하는 얇은 판 형태 부속품), 가드와 어울리는 등받이 디자인을 구상하고 꾸미고, 그 휠체어 모델이 되는 뜻깊은 경험이었다. 나는 평소 좋아하는 하늘색과 체커보드 무늬, 스티커 등을 이용해 나름 ‘힙하게’ 꾸몄다. 두 달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한동안 잊고 살던 꾸미기의 즐거움을 느꼈다. 직접 꾸미기를 한 뿌듯함은 덤이다. 이번 프로젝트 이후 내게 가장 큰 변화는 휠체어를 단순한 수단으로 여기지 않게 된 것이다. 흔히 휠체어는 장애인의 몸 일부라고 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 휠체어를 험하게 타서 흠집도 나고 고장도 여러 번 났었다. 하지만 휠체어를 꾸미고 난 뒤부터는 애착을 가지게 되어 더 조심해 휠체어를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기업과 사회] ESG가 성차별을 해결할 수 있을까?

성 격차 지수 156개국 중 102위(세계경제포럼, 2021년). 유리천장 지수 OECD 회원국 중 10년 연속 꼴찌(영국 이코노미스트, 2022년). 여성 이사 비율 72개국 중 69위(딜로이트 글로벌, 2022년). 한국의 성평등 성적표다. 우리나라는 1987년에 남녀고용평등법을 제정했다. 경력단절 여성의 경제활동을 촉진하는 법도 2008년 제정됐다. 올해부터는 자산 총액 2조원 이상인 주권상장법인의 경우 여성 이사를 1명 이상 선임해야 한다. 법과 제도가 적지 않음에도 기업의 성차별은 왜 시정되지 않을까? 물론 실효성이 낮은 법과 제도도 문제다. 그러나 법과 제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시장과 공급망, 투자자의 변화를 특징으로 하는 ESG가 한국 기업의 성차별을 해소하는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일본 공적연금(GPIF)은 2017년부터 ‘여성 지수(Empowering Women Index)’를 도입했다. 신규 채용 비율, 근속연수, 관리자 비율 등에서 성 다양성이 높은 기업에 투자한다. 블랙록, SSGA 등 글로벌 투자회사들도 ‘젠더 관점 투자(Gender Lens Investing)’를 한다. 투자자들은 투자한 기업에 여성 다양성을 높일 것을 요구하고, 여성 이사가 부족한 기업의 남성 이사 선임에 반대투표를 던지기도 한다.  여성 이사를 한 명 선임하는 것은 쉽지만, 여성 관리자 비율을 높이는 일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투자자들이 여성 지수를 만들어 투자하는 것은 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몇 년 전 국민연금도 젠더 관점 투자를 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거래소가 여성 지수를 개발하고 있고, 젠더 관점 투자를 시도하는 회사가 생겨나는 것이다. 스타트업 투자사인 소풍벤처스는 2018년부터 젠더 관점 투자를 하고 있고, 2021년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헬로트랙터’가 바꾸는 아프리카의 농업

세계 최대 농기계 기업인 ‘존디어(John Deere)’에서 케냐의 스타트업 ‘헬로트랙터(Hello Tractor)’에 투자했다는 뉴스가 눈길을 끌었다. 미국의 거대 기업이 25명 근무하는 아프리카 스타트업에 투자했다는 게 생소했다. 어떤 배경에서 투자가 이루어졌는지 좀 더 깊이 들여다봤다.  아프리카의 농기계화율은 매우 낮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농경지 100㎢당 트랙터 수는 아프리카의 경우 28대에 불과하다. 대부분 개도국인 남아시아는 96대, 유럽은 815대, 한국과 일본은 각각 1620대, 4380대에 이른다. 아프리카에서 농기계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넓은 농경지가 있어도 경작할 수 있는 면적은 한 가구당 1~2h(헥타르) 내외에 불과하다. 농기계의 부족은 아프리카 농업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제한인자 중 하나다. 헬로트랙터는 농기계 임대 시장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2014년 창업했다. 소농들이 농기계를 구입하기에는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헬로트랙터는 농기계 소유자가 자신의 농기계가 어디 있는지, 운영은 잘 되고 있는지를 모니터링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사물인터넷(IoT) 기반 농기계 관리 서비스를 제공했다. 여기에는 농기계가 얼마나 많은 작업을 수행했는지, 얼마나 많은 연료를 소모했는지 추적하고, 농기계 운전자의 역량과 차량 유지관리에 필요한 사항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외에도 농작업 수요자를 그룹화하여 농작업 효율을 높이는 일부터 농기계 구매를 위한 대출 프로그램까지 시작했다. 시장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헬로트랙터 플랫폼에 등록한 농기계 소유자는 약 3000명에 이른다. 이들은 모바일 및 웹 프로그램을 통해 농민들에게 트랙터를 임대하고, 약 50만명의 농민들이 트랙터를 빌려 쓰고 있다. 이 중 87%의 농민은 농기계를 활용함으로써 소득이 증가했다고 한다. 현재 헬로트랙터의 서비스는 아프리카 5개국과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최재호의 소셜 임팩트] 기업가형 재단

발렌베리그룹은 2019년 기준 스웨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스웨덴 대표 기업집단이다. 발렌베리의 모태는 1856년 해군 장교 출신인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가 설립한 스톡홀름 엔스킬다은행(SEB)이다. 1911년 스웨덴 정부는 은행의 산업자본 진출을 허용하는 은행법을 제정하였고, 스톡홀름 엔스킬다 은행은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ABB(발전설비, 엔지니어링), 에릭슨(통신장비), 스카니아(상용차) 등 스웨덴 대표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글로벌 기업집단으로 성장한다. 아스트라제네카와 가전제품으로 유명한 일렉트로룩스 또한 발렌베리그룹의 계열사다. 이후 1930년대 은행의 산업자본 소유가 금지되자, 발렌베리재단을 중심으로 하는 재단 중심의 지배구조가 구축되었다. 발렌베리재단은 발렌베리 그룹 산하 계열사에서 나오는 주식 배당금의 80% 정도를 대학과 연구소의 연구지원 사업에 사용하고 있다. 2019년 기준 재단에서 스웨덴 과학연구와 교육에 지원하는 금액은 연간 3000억원이 넘는다. 10년 누적 규모로는 2조5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스웨덴 국적으로 과학 분야의 노벨상을 받은 이들은 거의 다 발렌베리재단의 후원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렌베리그룹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있지만, 그룹이 재단의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스웨덴의 기초과학(의학・생명과학 중심) 분야를 발전시키고 중장기 산업기술 발전에 기여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슈미트가족재단(Schmidt Family Foundation)은 구글 전 경영자인 에릭 슈미트와 아내 웬디 슈미트의 출연금 약 2조원으로 2006년 설립됐다. 슈미트재단은 환경과 사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관련 단체를 지원하고, 스타트업에 임팩트투자를 한다. 슈미트재단의 특징은 직원이 모두 사회문제에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팀이라는 것이다. 지구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사내에 에너지 정책 및 기술, 국제법, 광업, 인권, 식품, 재생 농업, 해양 기술, 임팩트 투자 분야의

장서정 자란다 대표
[오늘도 자란다] 고객의 숨은 마음

코로나19 ‘엔데믹’과 세계 경제 여건의 급변 등이 겹치면서 각계각층의 시장 변화가 격동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스타트업의 대표로서, 기업이 앞을 내다보고 더 빠르게 대비해야 할 필요성이 더 커지고 있음을 최전선에서 느끼는 중이다. 자란다에서도 ‘고객에게 물어보기’와 같은 세미나를 열어, 고객의 대답 속에 숨은 요구를 찾아내기 위한 인터뷰 기법을 논의하는 등 어떻게 한발 앞서 고객 요구에 맞는 서비스를 만들지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고객의 요구를 확인하는 것은 기업에서 가장 치열하게 임하는 과업이다. 동시에 항상 어려움에 부딪히는 영역이기도 하다. 고객들은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수많은 요구를 표출한다. 그중에서 어떤 요구를 가장 본질적인 것으로 포착해서 서비스에 반영할지는 기업이 결정할 몫이다. 그 결정의 차이는 때로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데이터 전문가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는 저서 ‘모두 거짓말을 한다’에서 넷플릭스의 사례를 소개한다. 넷플릭스 창업 초기에 사용자들에게 보고 싶은 영화에 대해 물으면, 사용자들은 다큐멘터리나 심오한 외국 영화를 많이 골랐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이 즐겨보는 건 코미디나 로맨스 영화였고, 고객이 솔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데이터로 확인한 넷플릭스는 시청 이력 위주로 추천 방식을 바꿔 큰 성공을 거뒀다. 자란다는 부모가 아이를 위해 사용하는 서비스다. 부모님이 서비스를 신청하지만 선생님과 시간을 보내는 당사자는 아이들이다. 부모님이 작성한 내용 속에 숨겨진 내심, 그리고 부모님이 미처 알지 못한 아이들의 요구까지 읽어내야 하는 것이 숙제다. 부모님의 신청 글과 선생님이 방문 후 기록한 수업내용, 관찰내용을 비교해보기도 하고, 이 만남이 얼마나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한수정의 커피 한 잔] 한국 쌀에도 공정무역이 필요한 이유

유례없이 큰 태풍 ‘힌남노’가 추석 직전 몰아닥쳤다. 여름부터 간헐적으로 이어진 큰비, 연초부터 줄줄이 인상된 금리와 환율 등 추석 차례상 물가 걱정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각종 식품 제조 가공업체들은 추석 대목까지만 버티고, 이후 가격 인상을 예고한다. 사실 장바구니 한번 들어본 사람이라면, 추석 차례상 아니라도 익히 체감한 일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밀값 상승의 불안감이 이어지고, 작년부터 이어지는 미국 캘리포니아 산불은 우리 먹거리 시장을 불안하게 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가 위기를 체감할 상황은 닥치지 않았다. 한국 정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식량위기를 느낄 정도가 되면, 개발도상국에선 이미 식량 위기로 폭동이 나도 여러 번 났어야 한다. 즉 가난하고 어려운 나라의 백성들에게 식량 위기는 늘 먼저 닥친다. 다행일까. 이렇게 전 세계가 기후위기에 따른 식량으로 불안한 가운데 한국의 주곡인 쌀 자급률은 그나마 선방하고 있다. 연속 풍년으로 너무 선방한 나머지, 물가는 오르는데 쌀값만 폭락하고 있다. 햅쌀 본격 출하 시점을 앞둔 지난 8월 농민들은 쌀값 안정화를 촉구하는 시위를 열었다. 농민들은 “정부가 시장에 있는 쌀을 사들이는 ‘시장격리’ 조치를 세 차례 발동했지만, 쌀값은 작년 대비 23.6% 폭락했다”며 필수 농기자재에 대한 지원과 햅쌀이 풀리기 전 신속한 시장격리, 농업 생산비 보전 등을 요구했다. 농민들은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용산 방면으로 향하며, 화물차에 실린 볍씨를 도로에 뿌렸다. 판로가 없어 헐값으로 커피를 팔아야 하는 개발도상국가 농민들은 항의할 관계 기관이 없어 스스로 커피나무를 갈아엎었다 하는데, 우리 농민들은 항의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