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방] 누가 먼저 넷째를 낳을까

아이를 갖고 싶었지만 병원에 다니고 시술을 받아도 번번이 실패했다. 원인 불명 난임으로 고생하던 배정란씨는 문득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고향인 전남 여수에서 상경한 게 스무 살 때. 서울서 대학 다니고 직장을 얻고 결혼을 했다. 부부 둘 다 야근과 술자리가 많은 직업을 가진 탓에 평일에는 서로 얼굴 보기도 어려웠고 주말에는 피로에 절어 무기력했다. ‘우리가 원한 삶이 이런 것이었나?’ 부부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남편의 고향인 경북 청도로 내려갔다. 매일 아침 사과 밭으로 출근하는 생활이 시작됐다. 그리고 귀촌 6개월 만에 기적처럼 아이가 생겼다. 자연 임신이었다. 연년생으로 둘째도 태어났다. 작년 가을 어느 행사장에서 만난 배정란씨는 마이크를 잡고 들뜬 목소리로 지난 이야기를 들려줬다. 청도 지역 여성들과 함께 ‘노는엄마들’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멤버로 참여한 엄마가 8명인데 아이는 23명이라고 했다. 자녀가 평균 3명씩 있는 셈이다. 인구 소멸 위험 지역으로 알려진 청도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청도에는 소아과와 산부인과 병원이 없다. 학원도 적고 돌봄 시설도 부족하다. 초등학생이 갈 수 있는 돌봄센터가 두 곳 있는데 20명씩 총 40명이 이용할 수 있다. 대기자가 많아 들어갈 엄두도 못 낸다. ‘노는엄마들’은 육아와 돌봄 인프라가 부족한 청도에 직접 인프라를 만들고 있다. 최근 주력하는 건 협동조합 형식의 돌봄센터를 설립하는 일이다. 일단 돌봄이 해결돼야 엄마들이 일하든 놀든 뭐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멤버는 작년보다 셋 늘어 11명이 됐다. 장난식으로 이런 내기를 한 적도 있다.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식량안보, 시장 안정될 때 준비 시작해야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러우전쟁)으로 촉발된 세계 식량위기는 올들어 잦아들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서 발표한 올해 2월 식량가격지수는 129.8포인트로 11개월 연속 하락했고, 2022년 최고점 대비 18.7% 감소했다. 이번 식량위기가 시작되기 이전인 2020년 대비 32% 더 높지만 우리나라에서 식량위기는 이미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듯하다. 요즘은 식량위기를 대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가 머쓱해진다. 양치기 소년처럼 보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식량위기는 대체로 10년 주기로 발생했다. 1974년 전 세계를 강타한 식량위기가 있었고, 1980년에는 우리나라 쌀 생산량이 30% 이상 줄어드는 대흉작이 있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은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최악의 식량난을 겪었다. 한동안 국지적인 식량위기만 발생하다 2016년 유럽의 가뭄에서 시작돼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함께 다시 글로벌 규모의 식량위기로 번졌다. 특히 이때의 식량위기는 3~4년 동안 지속되면서 ‘재스민 혁명’을 촉발했고 중동의 여러 국가들이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했다. 그리고 다시 10년이 지난 2021년부터 미국 중서부에 몰아닥친 사상 최악의 가뭄은 러우전쟁을 만나면서 다시 글로벌 규모의 식량위기로 발전했다.  물론 이런 종류의 식량위기만 있는 건 아니다. 2020년에는 비가 너무 오랫동안 내리면서 많은 국가에서 토마토 가격이 폭등했고, 올해는 남유럽의 한파와 전반적인 에너지 가격 상승의 영향이 겹치면서 유럽의 토마토 가격이 폭등했다. 여기에 비료 공급량 감소까지 더해졌다. 우리는 식량위기가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기후변화와 러우전쟁으로 촉발된 식량위기는 한동안 위세를 떨칠 수밖에 없다.  어쨌든 2022년의 식량위기는 지나갈 것이다. 그렇지만 다음 식량위기 역시 찾아오기 마련이다. 채소가격 폭등에서부터 글로벌 식량 공급망의 붕괴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기업과 사회] 금융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세상을 바꾸는 금융. 국내 어느 은행의 모토다. 냉정하게 수익을 좇는 금융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을까? 금융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지구를 바꾸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유럽연합(EU)은 2018년 ‘지속가능금융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달성하기 위한 열쇠를 금융에서 찾았다. 환경과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경제활동이 활성화되고 이 분야에 돈이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2020년에 발행된 사회적채권(Social Bond)은 팬데믹 이전보다 10배 늘었다고 한다. 사회적채권은 사회문제 해결이나 완화를 목적으로 발행하는 채권을 말한다. 신한카드는 2019년 1000억원 규모의 사회적채권을 발행했다. 조달된 돈을 중소가맹점 지급 주기 단축 등 사회적 가치를 높일 목적으로 활용했다. 장애인 등 취약계층 지원이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서도 사회적채권이 발행된다.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녹색채권(Green Bond)이 인기를 끈 것은 오래전 일이다. 녹색채권과 사회적채권 등 두 가지 성격을 모두 가지는 지속가능채권(Sustainability Bond)도 등장했다. 우리나라도 2021년까지 세 채권(ESG채권)의 누적 발행규모가 모두 172조원에 달한다(사회적채권 139조원, 지속가능채권 18조원, 녹색채권 15조5000억원). 지속가능연계채권(Sustainability-Linked Bond)도 있다. 지속가능채권이 좋은 목적(지속가능성)을 위해 사용되는 채권이라면, 지속가능연계채권은 ESG 경영목표 달성 여부에 따라 금리 등이 조정되는 채권이다. 2023년 SK하이닉스는 10억 달러 규모의 지속가능연계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반도체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거둔 성과였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6년까지 57%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면 이자율이 낮아지고, 달성하지 못하면 이자율이 높아지게 설계된 채권이다. 2022년에는 국내 최초로 지속가능연계대출(Sustainability-linked loan)이 등장했다. 지속가능연계대출은 대출 및 금리에 지속가능성을 연계하는 금융상품이다. IBK기업은행이 발행한 상품을 보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고, 대출을 신청한

정유미 포포포 대표
[기차에서 일합니다] 경계를 넘고 간극을 메우며

7시 15분 서울행 KTX-산천 234. 동트기 전 아이를 맡기고 기차에 올라 달이 마중 나온 심야의 택시로 귀가한다. 왕복 680km를 오가다 보니 장거리 이동의 달인이 되었다. 다음 정차역을 알리는 기내 방송은 알람이, 비좁은 기차 좌석은 맞춤형 이동식 독서실이 된다. 서울역 플랫폼에 내리면 새로운 타이머가 울린다. 제한된 시간 안에 오늘의 미션을 완수해야 한다. 버스, 지하철, 택시 모든 교통수단을 섭렵할 기세로 출퇴근 전쟁에 합류한다.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우고 싶어 사표를 던지고 남편이 있는 포항으로 이주했다. ‘결혼이주여성’ ‘경단녀’라는 꼬리표가 자동으로 붙었다. 처음 사업 아이템을 피칭하는 자리에서 “남편에게 허락받고 왔냐”는 질문을 반복해서 받았다. 그땐 의아했고 4년이 지난 지금은 숨은 맥락을 이해하게 되었다. 일자리의 범주가 협소한 공업도시는 여성을 집 안에 주저앉힌다. 애 팽개치고 나간다는 날 선 시선과 퇴근 전까지 돌봄의 외주를 맡기는 학원비와 월급을 저울질하게 된다. 제한된 선택지 앞에서 부등호의 방향은 포기를 종용한다. 기울어진 경제권은 크고 작은 결정권에서 나아가 인권과 직결된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이방인으로 살면서 나는 말만 통하는 외국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하물며 언어 소통조차 어려운 해외결혼이주여성의 사정은 더 복잡하다. 본국으로 홀로 떠난 엄마와 남겨진 아이들은 복지의 사각지대에 자리했다. 단 몇백원의 건강보험료 차액으로 사회보장제도에 편입되지 못해 방치된 아이들이 곁에 있었다. 수십 년을 한국에서 살았어도 언어장벽으로 가족 안에서 고립되어 온 결혼이주여성의 상흔은 짙어져만 갔다. 지역에 거주하면서 ‘다문화’라는 세 음절로 함축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현실의 목격자가 되었다.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만능 치트키’가 된 ESG

조직 경영에 환경적, 사회적, 거버넌스를 고려해야 한다는 ‘ESG 경영’은 최근 몇 년간 유행어처럼 소비됐다. 기업은 의사결정 프로세스에 ESG 요소를 포함했고, 투자자는 투자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재무적 성과 이외에 비재무적 성과를 의미하는 ESG 요소도 추가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방증하듯 올해 들어 환경 관련 ETF(Exchange Traded Fund)는 20% 이상 급등했고, 투자사들이 ESG펀드 설정액을 대폭 키웠다는 기사도 쏟아지고 있다. 최근 전경련이 발표한 매출액 500대 기업 중, 응답자의 93%가 올해 ESG 경영 규모를 작년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겠다고 답했다. 지난 12월에 조사된 ‘국내 500대 기업 48%는 2023년에 투자 계획이 없거나 미정이고, 투자계획을 수립한 기업도 투자를 축소하겠다’는 결과와 사뭇 다른 동향이다. 그러면 기업은 왜 전형적으로 해오던 비즈니스 투자도 축소하는 상황에서 ESG 경영에 대한 투자는 더 늘리겠다는 것일까? 기업이 근본적인 문제나 핵심적인 사안은 숨기고 이해관계자들에게 긍정적인 관심을 얻기 위해 ‘만능 치트키(cheat key)’로 ESG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치트키란 게임 중에 더 이상 진행이 어려운 경우 일종의 속임수로 사용하는 방법을 일컫는 말이다. 게임 유저의 레벨을 높이거나 특별한 힘을 얻는 방법 또는 장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최근 많은 기업과 조직이 ESG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기업의 ESG 경영에 대한 언급이 일종의 속임수, 즉 치트키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란 것이다. 기업이 ESG를 치트키로 사용하는지, 또는 속임수가 아닌 진짜 ESG 경영을 하고 있는지는 몇 가지 상황을

이재현 NPO스쿨 대표
[사회혁신발언대] 챗GPT에 비영리조직이 직면한 문제를 물었더니

질문) 비영리조직이 직면한 문제는 무엇인가?답변) 비영리조직은 가까운 미래에 다음의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1) 재정적 지속가능성 불안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2) 빠른 기술변화에 대한 적응은 중요한 과제가 될 수 있습니다.3) 심화하는 자원 경쟁으로 소규모·기성 조직은 부담이 커집니다.4) 까다로운 기부자들의 기대 변화로 신뢰 구축이 더욱 부각됩니다.5) 정부 정책, 경기침체, 자연재해 등 외부적 영향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공개된 챗GPT(Chat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에 비영리조직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물었다. 챗GPT는 5개 항목을 지목했고 항목별 설명을 제시했다. 항목별로 구성된 내용이 핵심을 다루고 있었고 문맥은 매끄러워 이해가 쉬웠다.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한국의 비영리조직이 직면하고 있는 주요 이슈는 무엇인가’를 물었다. 챗GPT는 제한된 자원과 지속가능성, 투명성에 관계된 조직의 신뢰도 이슈를 꼽았다. 화제를 돌려 기후변화를 위해 일상에서 실천할 방법, 직장에서의 번아웃 대처법, 인간의 성격변화 가능성 등 점점 까다로운 질문을 해봤더니 ‘자신이 생각하는 적절한 의견’을 제시했다. 챗GPT가 공개 이후 두어 달 만에 월 사용자 1억명을 돌파했다. 여타 소셜미디어(SNS) 사용자 통계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숫자다. 챗GPT를 만든 ‘오픈AI(OpenAI)’는 2015년 미국의 샘 알트만, 일론 머스크 등이 10억달러를 합작투자한 비영리단체로 출발했지만 2019년 마이크로소프트가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 상업화됐다. OpenAI는 챗GPT 출시 전에도 다양한 인공지능 서비스를 공개했으나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챗GPT에 적용함으로써 전 지구적인 호응을 받고 있다.  기존 포털사이트의 검색엔진이 원하는 정보를 나열해 제시하는 수준이었다면, 챗GPT는 원하는 정보를 맥락에 맞게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모두의 칼럼] 휴전선 너머 가족 잇는 법원 판결을 기다리며

김정은 집권 이후 국경 경비가 강화된 데 이어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탈북 경로가 거의 막힌 상황이다. 어렵게 탈북에 성공하더라도 제3국을 거쳐 한국에 입국하는 여정은 목숨을 건 위기의 연속이다. 탈북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여성들은 중국에서 숨어지내는 중 자녀를 낳게 되고, 일부는 한국행에 성공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공안에게 붙잡혀 북송된다. 남겨진 자녀는 한순간 어머니를 잃을 뿐 아니라 한국 국적자임을 입증할 방법도 묘연해진다. 의뢰인은 탈북민 어머니와 중국 동포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강제 북송된 이후 아버지와 한국에 들어왔다. 이후 아버지가 탈북민과 재혼하면서 계모의 자녀로 주민등록됐고 한국인으로 생활했다. 하지만 청소년 시절 지속된 계모의 학대에서 벗어나고자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판결을 받으면서 한국 국적을 상실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루아침에 무국적자가 되자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을지, 취업은 할 수 있을지 불안의 날들이 이어졌다. 의뢰인은 국적을 얻기 위해 국적판정신청서를 제출하려 했지만 담당자는 어머니가 없는 상황에서 인정될 가능성이 없다며 서류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이러한 의뢰인의 사정이 전해지면서 대한변호사협회, 법무법인 태평양, 재단법인 동천, 법무법인 바른 등에서 지원 변호사단을 구성해 북송된 어머니를 피고로 한 ‘친생자관계확인소송’을 제기했다. 다행히 준비과정에서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친모의 고종사촌을 찾게 됐다. 기쁨도 잠시, 고종 5촌 관계는 유전자 검사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좌절했지만, 5~6촌 관계까지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유전자 검사 방법을 개발 중인 회사를 찾아 유전자 검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1심은 어머니의 인적 사항을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가 없고, 생존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모금하는 사람들] 튀르키예 지진 성금으로 보는 재난기부금의 진실

느닷없이 들이닥친 2월의 비극. 튀르키예 지진 피해 현장을 담은 사진과 영상 앞에 무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무너진 건물 더미에 깔린 딸의 손을 잡은 채 초점을 잃은 눈빛으로 망연자실하게 앉아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한숨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목숨은 건졌지만 집을 잃고, 이젠 추위를 피할 곳도 잠을 청할 수 있는 공간도 없는 이들에게 과연 ‘다행이다, 희망을 품자’는 말을 꺼낼 수 있을까. 우리는 허망함으로, 그리고 미안함으로 조용히 입을 닫는다. 그 와중에도 생명을 위한 시간 싸움은 계속된다. 무너진 건물 잔해를 치워가는 동안 기적적으로 살아있는 이들을 발견할 때마다 우리는 한 줄기 희망이란 것을 느끼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기꺼이 돕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고, 그것이 작은 행동으로 이어져 기부하게 된다. 지진 피해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국제구호 NGO의 사무실은 비상 체계로 돌아간다. 지진 발생 6시간, 12시간, 24시간, 48시간, 7일 등 시간 흐름에 따른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조치에 대해 수시 회의가 진행된다. 지진의 강도와 피해 정도가 심할 수록 재난 카테고리 등급이 올라간다. NGO들은 현지 소식을 수시로 모니터링하면서 가장 필요한 조치를 선별한다. 우선 보유하고 있던 긴급지원금 예산에서 일차적으로 보낼 수 있는 지원금 규모를 결정하고 국제본부로 송금한다. 재난발생국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재난지원센터의 전문인력과 자원공급 물류창고를 통해 어떤 경로로 어떻게 지원할지, 타 단체의 네트워크와 현지 사업 강점을 파악하고 협력 방안을 모색한다.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민간 국제구호단체들이

조대식 KCOC 사무총장
[사회혁신발언대] 대규모 재난 앞에 해야 할 일과 해선 안 되는 일

형제 나라 튀르키예 남동부에서 규모 7.8의 대지진이 발생한지 나흘째다. 튀르키예와 인근 시리아 양국의 희생자 수는 1만5000명을 훌쩍 넘기면서 지난 2015년 네팔 대지진 피해 규모를 넘어섰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국제사회는 발 빠르게 구호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12년 전 지진 피해지역인 시리아 인근의 전쟁터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아랍의 봄’으로 내전이 발발한 리비아에서 경험한 재난 현장의 모습은 지금도 떠올리고 싶지 않을 만큼 참혹했다. 이처럼 대규모의 재난을 돕기 위해서는 뜨거운 가슴이 중요하다. 그러나 마음만으로 현장에 뛰어들면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구호 활동에 방해될 수도 있다. 뜨거운 가슴과 함께 갖추어야 할 차가운 머리에 대해 생각해본다. 첫째, 지진과 같은 재난 현장에는 여진이 지속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재난이 발생할 수 있다. 현장에 자원봉사로 참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전문적으로 훈련되지 않은 채 단순히 선한 의지만으로는 도움은커녕 오히려 현장에서 혼선만 일으킬 수 있다. 재난 현장 자체의 위험성과 민감성이 있기에 현장에는 오랜 기간 훈련된 전문가가 투입돼야 한다. 아무나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억지로 가서도 안 되는 곳이다. 둘째, 해외 재난은 국내 재난과 대응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단지 장소와 물리적 거리의 차이가 아니다. 국제적인 대형 재난의 경우 국내외 기관들이 참여하는 매우 복잡한 조정 체계에 따라 진행된다. 현지 정부뿐 아니라 UN과 국제 NGO, 현지 민간기관 등 다양한 대응 기관이 존재하기 때문에 국제적인 공조와 조정 체계에 대한 이해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기업과 사회] 인권실사에 대한 네 가지 오해

첫 번째 오해 : 조사 또는 감사?인권실사는 ‘Human Rights Due Diligence’를 번역한 말이다. 나는 ‘실사’라는 번역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권실사를 조사(investigation)나 감사(audit)로 오해하게 한다. ‘Due Diligence’는 직역하면 ‘적절한 성실성’이다. 미국 법률 사전에서는 ‘특정 상황에서 합리적이고 신중한 보통의 사람에게 적절하게 기대되고 일반적으로 행사되는 신중함, 행동 또는 성실성의 척도’라고 풀이한다. 일반적인 사람(선량한 관리자)이라면 기울일 주의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이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선관주의)라고 한다. 인권실사는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UN Human Rights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 이하 UNGPs)에서 나온 말이다. UNGPs는 기업이 인권존중책임을 다하기 위해 ▲인권정책을 수립하고 서약하며 ▲인권실사를 하고 ▲구제 절차 제공을 요구한다. 이 중 인권실사는 기업 활동이 인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식별, 방지, 완화하고 인권에 대한 영향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설명하는 일련의 절차다. 인권존중을 위해 이 정도의 주의의무는 기울여야 한다는 ‘프로세스’를 말한다. 두 번째 오해 : 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UNGPs가 만들어지기 전 국제사회는 ‘기업과 인권’에 대하여 많은 논의를 했다. 다국적 기업의 인권침해가 크게 문제됐기 때문이다. 처음 나온 것은 ‘유엔 기업인권규범 초안’이었다. 이 규범은 다국적기업에 국제법적 인권의무를 부과하고, 여러 집행장치를 마련했다. 40여 개에 달하는 국제인권법규를 기업이 준수하도록 했다. 인권규범 이행 상황을 정기적으로 공시하도록 하고, 독립적인 외부 모니터링과 검증을 받도록 하며, 다른 경제주체와 계약을 체결할 때 인권규범을 포함하도록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국제 인권조약 중 기업에 직접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당사국에 의무를 부과할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모두의 칼럼] “비영리의 인건비는 ‘사업비’다” 법원 판결이 불러올 나비효과는?

늦은 밤. 동료들의 전화 통화, 타이핑 소리가 이어진다. 학교에서 부당한 처분을 받은 발달장애 학생에 대한 구제 사건, 외국인보호소에 수 개월째 구금된 난민에 관한 사건, 북송된 어머니와의 친생자관계를 입증해야 하는 탈북민 자녀 사건…. ‘공익변호사’들은 소송의 결과를 예측하지 않는다.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 뿐이다. 이런 간절함으로 재판을 하고, 서면을 쓰고 관계자를 설득하는 노력들이 사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비영리의 활동가, 연구자들도 마찬가지다.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을 상담하고, 구제받을 길을 함께 찾고,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기획하는 일은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에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된다. 문제는 이들에 대한 인건비가 사업비가 아닌 단순 운영비로 치부돼 법적 규제 대상이 되곤 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도 같은 경우였다. 주무관청은 ‘공익법인의 상근임직원의 인건비는 운용소득의 20% 이내로 제한되어야 한다’는 내부 기준을 이유로 들며 독립운동가와 친일 역사를 규명하는 공익사단법인의 연구자 직원 정수 승인을 거부했다. 연구원 인건비 지급을 위한 기부회원들의 기부금 사용도 동결시켜 기부금이 쌓여 있음에도 임금을 지급할 수 없는 상황이 수개월째 이어졌다. 결국 연구자들은 소속을 바꿀 수밖에 없었고 수십 년간의 쌓아온 연구소의 연구 기능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공익법인은 주무관청을 설득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결국 처분을 다투는 행정 소송을 진행했고, 1년여 기간을 다툰 끝에 지난 12월 법원은 공익법인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렸다. 주무관청의 상근임직원 정수승인신청 반려처분을 취소한다는 판결이 확정된 것이다. 주무관청은 행정기관 내부의 사무처리 기준에 따라

장서정 자란다 대표
[오늘도 자란다] 인연의 가치

얼마 전, 동네에 있는 교정 전문 치과에 아이를 데려갔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하고서 앞니 부정교합으로 치료를 한 후, 꽤 오랜 만에 방문한 치과에는 아이의 6년 전 진료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차트에는 앳된 얼굴의 아이가 이를 모으고 찍었던 사진도 그대로 붙어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많이 컸네”하면서 아이를 기억했다. 앞으로 검진할 주기와 주의해야 하는 습관을 하나씩 알려주면서 “치과는 이렇게 더 자라서 찾아오는 아이들이 많아 좋다”고 했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시험 공부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였다. 초등 저학년 때 아이와 만났던 자란다 선생님과 연락이 닿았다. 아이가 크면서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 당황스럽다고 했다. 선생님은 본인이 아이를 잘 아니까,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보겠다 했다. 아이는 어릴 적 만났던 선생님에게 이런저런 수다를 하며 속이 시원해진 듯했다. 며칠 전 고객센터에서 상담이 진행되는 소리가 들렸다. 낯익은 이름이라 물어보니 서비스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이용했던 남녀 쌍둥이 부모님과의 통화였다. 당시 일곱살 쌍둥이를 키우던 부모님은 두 아이 성향이 너무 달라,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하곤 했다. 여전히 자란다 선생님을 잘 만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용 기록에는 아이들의 성장 흔적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시간이 쌓이면서 만들어진 인연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던 순간들이다. 시장에 맞춰 빠르게 변화하느라 2~3년 내 사라지는 서비스가 많은 스타트업 시장에서도 ‘고객 생애 가치(Customer Lifetime Value)’라는 지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고객 생애 가치는 고객이 기업과 관계를 유지하는 기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