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65세’라는 복지 절벽… 나이 들면 장애가 사라집니까?

[Cover Story] 장애인 절망으로 몰아넣는 ‘활동지원 연령제한’ 만 65세 기점 ‘노인장기요양보험’으로 편입 24시간 도움 필요한 중증도 4시간으로 급감 가족이 돌보기엔 생계·체력적 한계 등 문제 삶의 질 나락으로… “사형 선고나 다름없어”   “제게는 활동지원사가 손이고 발입니다. 스스로 물 한 모금도 마실 수가 없지요. 그런데 정부는 만 65세가 넘었으니 더는 지원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이제 정말 손발이 다 잘린 것 같습니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권오태씨는 1급 지체장애인이다. 지난 2012년 교통사고로 경추를 크게 다쳐 목 아래로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다. 사고 이후 권씨는 정부와 지자체의 ‘장애인 활동지원'(활동지원) 서비스로 삶을 이어 왔다. 활동지원 덕분에 조금씩 일상의 기쁨을 누리기도 했지만 지난해 10월 5일 만 65세 생일을 맞으면서 다시 절망에 빠졌다. 정부는 장애인들에게 장애 정도에 따라 한 달에 최소 60시간에서 최대 480시간의 활동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자체의 추가 지원까지 더하면 한 달에 최대 744시간까지 쓸 수 있지만, ‘시한부 지원’이라는 게 맹점이다. 활동지원 서비스 지원 자격을 ‘만 65세 미만 노인이 아닌 자’로 못 박고 있기 때문이다. 65세 이상부터는 ‘노인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게 되는데, 이 경우 한 달에 최대 120시간의 실내 신체 활동·가사 지원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일상생활 전반에서 활동지원사의 도움이 필수적인 중증 장애인에겐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65세 생일이 두려운 장애인들 지난 18일 자택에서 만난 권씨는 활동지원사가 아닌 아내 곽하은(61)씨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현재 권씨는 정부와 지자체의

“먹는 것, 입는 것, 노는 것 모든 ‘사회적가치’를 팝니다”

[Cover Story] 3년 만에 매출 240억원 달성, 경북사회적기업종합상사협동조합 “무엇이든 판다.” 무역 거간꾼으로 불리는 ‘상사맨’들의 제1 신조다. 뛰어난 상사맨을 두고 “아프리카에 난로를, 알래스카에 냉장고를 판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다. 지난 2014년 인기를 끈 드라마 미생의 주무대도 종합상사였다. 스타킹부터 철강까지 고객사가 원하는 제품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상사맨들의 모습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경상북도 경주에는 조금 특별한 종합상사가 있다. 판매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치열하게 뛴다는 점에선 여느 상사와 같지만, 이후의 과정은 좀 다르다. 판매 계약이 완료되면 상사는 공급업체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데, 이 수수료를 1~5% 사이에서 내고 싶은 만큼 ‘알아서’ 내게 한다는 점이다. 또 공급업체의 수수료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발주처와 직접 계약을 권하기도 한다. 이 ‘별난 상사’가 내건 조건은 단 하나. ‘사회적기업’ 제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최초 사회적기업 전문 종합상사인 ‘경북사회적기업종합상사협동조합'(이하 ‘경북상사’) 얘기다. “경북상사 통하면 믿을 수 있다” 입소문 지난 4일 경주시 황오동에 있는 경북상사를 방문했다. 경북상사는 상근직원 14명으로 이뤄진 작은 회사다. 보통 종합상사는 대기업이 운영하지만 경북상사는 ▲행정지원팀 ▲대외협력팀 ▲청년일자리팀 등 세 팀이 전부다. 규모는 작아도 소화하는 일은 대기업 못지않다. 경북 지역 공공기관·공기업과의 협력 사업이나 공공구매 진출 상황을 관리하면서 새로운 판로를 찾아내고(행정지원팀), 사회적기업들과 소통하며 제품의 질이나 서비스를 개선하면서(대외협력팀), 경북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길 원하는 청년 구직자와 사회적기업을 연결하는 일(청년일자리팀)까지 한다. 이날도 상사맨들은 분주했다. 칸막이가 쳐진 책상마다 서류가 높이 쌓여 있고, 모두 전화를 받거나 서류작업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3개의 회의실은

더 많은 사람 살리기 위해… 수술장 박차고 나와 아프리카 주민들 속으로

[Cover Story] ‘이태석봉사상’ 수상… 박세업 글로벌케어 북아프리카본부장 소외된 사람 위해 선택한 ‘외과의사’ 1998년부터 해외 각지서 의료봉사 15년 전 온 가족 함께 아프간으로 밤낮 사람 살리는 수술에 몰두해 외과의사에서 보건전문가로 가난·기아로 죽어가는 사람들 보며 근본적 해결책 찾고자 보건학 공부 도시 빈민촌 돌며 결핵 예방 주력 지역 문제 해결할 ‘청년’ 육성에 집중 1962년 태어난 동갑내기 두 남자가 있다. 동네는 달랐지만 둘 다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주변에 항상 가난이 있었고,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꿈을 키웠다. 1981년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대학의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민주화 운동이 뜨겁던 시절.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향한 열망 속에서 둘은 비슷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어떤 삶이 가치 있는 삶일까?’ 한 사람은 의대를 졸업한 뒤 성직자가 되기 위해 신학대에 입학한다. 다른 한 사람은 외과 전문의가 돼 개인병원을 연다. 세월이 흘러 신부가 된 남자는 아프리카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남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로 향한다. 외과 의사가 된 남자는 개인병원을 접고 전쟁이 한창인 중동의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간다. 다른 길을 가는 듯했지만 같은 곳으로 가고 있었다. 가장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 곁으로. 영화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 고(故) 이태석 신부와 올해 ‘이태석봉사상’ 수상자로 선정된 박세업(58) 글로벌케어 북아프리카본부장. 살면서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두 사람의 인생은 신기할 만큼 궤적이 닮았다. 이태석 신부의 선종 10주기를 나흘 앞둔 지난 10일, 서울역 공항철도 타는 곳 앞에서 박세업 본부장을 만났다. 커다란

청소년도 지금을 살아가는 ‘시민’ 세상을 바꾸는 일에 목소리 낼 겁니다

[Cover Story] ‘만 18세 투표권’ 앞장선 당사자 활동가 서한울군 오는 4월 15일 치러질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만 18세 청소년이 투표권을 행사한다. 약 53만명의 청소년이 정치권에 ‘페이퍼 스톤(Paper stone)’을 던질 자격을 얻었다. 2017년부터 청소년 참정권 운동을 주도한 시민단체연합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촛불청소년연대)는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된 지난달 27일 투표 연령 하향이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위한 마중물이자 청소년을 배제하는 정치판을 뒤엎는 지렛대가 될 것”이라고 평했다. 정당들은 유권자가 된 청소년의 표심을 잡기 위해 전략 수립에 나섰고, ‘뉴권자'(만 18세 청소년 유권자를 가리키는 말)의 의견을 정책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정치인도 나왔다. 투표 연령 하향을 두고 여러 가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변화는 이미 시작된 셈이다. 지난 5일 강원 원주에서 만난 만 18세 청소년 서한울군은 “청소년은 미래세대가 아닌, 지금을 살아가는 시민”이라며 “시민의 목소리를 최대한 모아내는 것이 대의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길이라면 청소년의 정치 참여는 권장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서군은 촛불청소년연대 강원연대 공동대표를 맡아 지난 2년 동안 투표 연령 하향을 위해 앞장섰다. 지역사회에서 풀뿌리 청소년운동을 꾸준히 한 당사자 활동가이기도 하다. 원주 지역 중·고등학교 두발자유화 운동을 주도했고, ‘세월호’ ‘일본군 위안부’ ‘학생 인권’ 등과 관련한 청소년 행사를 기획했다. “청소년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20대 국회가 문을 닫기 직전에 극적으로 투표 연령 하향이 이뤄졌다. “지난해 4월 투표 연령 하향을 포함한 선거법 개정안이 신속 처리 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됐을 때만 해도 다 해결된 것 같았다.

[2020 제3섹터 키워드10] 일상이 된 ‘시민모임’, 경제가 된 ‘임팩트투자’

  올해 제3섹터에서는 ‘임팩트’라는 단어가 유독 강조됐다. 사회적·환경적 성과를 추구하는 임팩트 투자 확대로 자본시장의 새로운 질서가 형성됐고, 임팩트 효과를 측정하고 평가하려는 각계의 시도도 이어졌다. 2020년 경자년(庚子年)에는 어떤 트렌드가 제3섹터를 장식할까. 더나은미래는 기업사회공헌, 비영리, 사회적경제, 학계 등 각 분야에서 활동 중인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2020년 제3섹터 키워드’ 10개를 꼽았다.   셀프 애드보커시 운동(Self Advocacy movement) 차별과 편견, 불평등과 부조리에 맞서 누군가의 권리를 보호하고 대변하는 것을 애드보커시(advocacy·옹호) 활동이라고 한다. 내년 제3섹터에서는 문제의 당사자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알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셀프 애드보커시 운동(Self Advocacy movement)’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당사자가 전면에 나서서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나아가 ‘법제도 개선’까지 요구하는 형태다. 보호종료아동 자립 지원 캠페인 ‘열여덟 어른’은 대표적인 셀프 애드보커시 운동이다. 아름다운재단이 지원하는 이 캠페인은 만 18세가 되면 보육원에서 나와 자립 정착금 500만원으로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보호종료아동들의 실상을 당사자의 목소리로 전해 사회적 지지를 받았다. 당사자들이 경험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해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애드보커시보다 파급력이 크다.   공유경제 2.0(Sharing economy 2.0) 오피스 공유 스타트업 위워크가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 올 3분기에만 12억5000만달러(약 1조4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한때 공유경제의 성공 신화로 불리던 위워크의 몰락으로 전문가들은 공유경제 시장의 극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공유경제 2.0’은 소비 활동을 소유에서 대여로 전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비자와 노동자가 경제 주체로 자리 잡는 패러다임을 의미한다. 공유경제의

“민주주의 플랫폼 더 확대돼야… ‘광장의 힘’ 일상서 발휘될 것”

[시민력(力)이 큰다] ③시민 목소리 내는 터 만드는 조아신 더이음 대표·권오현 빠띠 대표 조 대표, ‘열린소통포럼’ 등 총괄 기획 권 대표, 온라인 토론장 ‘빠띠’ 운영 시민력 극대화돼야 진정한 민주주의 축적된 시민력이 인터넷 만나니 ‘폭발’ 지역·가정 등 일상에서 부조리 변화 고민 ‘지식의 지휘자’로 불리는 미국 출판인 존 브룩만은 새천년을 앞둔 1999년, 전 세계 석학들에게 이메일로 질문했다. “지난 2000년을 통틀어 인류 최고의 발명품은 무엇인가?” ‘마취제’ ‘피임약’ ‘0’ ‘확률 이론’ 등 기상천외한 응답이 쏟아진 가운데 스티븐 로즈 런던대학교 신경생물학과 교수는 ‘민주주의’를 답으로 제시했다. “인종과 계급, 성별의 억압에서 벗어나 시민이 주인인 사회를 건설할 가능성을 열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난 2일 서울 정부서울청사 열린소통포럼에서 만난 조아신(47) 더이음 상임대표와 권오현(44)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대표는 자발적으로 연대한 시민의 힘, 즉 ‘시민력(力)’이 극대화할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말한다. 행정과 민간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시민이 목소리를 낼 터전을 일구는 것이 이들이 하는 일이다. 조 대표는 문재인 정부 국민인수위원회가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자 마련한 ‘광화문 1번가’와 이를 발전시킨 국 정책 제안 플랫폼 ‘열린소통포럼’을 총괄 기획했다. 공감·소통·합의·토론·결정 등 민주주의 발전에 필요한 기술을 시민에게 가르치는 ‘민주주의기술학교’를 만들고 운영에도 참여한다. 권 대표의 명함에는 ‘우리는 민주주의를 개발한다’고 적혔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아고라’라는 공론장을 연 IT 개발자인 그는 현재 빠띠를 통해 민주적인 커뮤니티·공론장 확대를 위한 디지털 플랫폼을 보급하고 있다. 서울시의 민주주의 플랫폼 ‘민주주의서울’의 총괄 기획자로도 활동했다. 시민력,

나를 ‘바른 투자’로 이끈 건 노력 없이 물려받은 富에 대한 책임감

[Cover Story] 홍콩 ‘RS그룹’ 설립자 애니 첸 회장 인터뷰 10년 전 ‘RS그룹’ 설립… 100% 임팩트투자 전념해 ‘나쁜 투자’가 부른 재앙, ‘바른 투자’로 해결하고파 부자들이 집안의 돈을 관리하기 위해 세운 자산운용회사를 ‘패밀리오피스(family office)’라고 부른다. 미국의 석유재벌 록펠러가 1882년 ‘록펠러 패밀리오피스’를 설립하면서 생겨난 용어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개별 패밀리오피스들이 굴리는 자산의 규모는 최소 500억~1000억원. 많게는 조 단위를 넘어서는 경우도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패밀리오피스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혔지만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는 여전히 생소한 개념이다. 애니 첸(Annie Chen)은 홍콩에 본사를 둔 패밀리오피스 ‘RS그룹’의 회장이자 설립자다. 2009년 개인 재산으로 회사를 차렸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100% 임팩트투자(Impact investing)로 자산을 운용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환경이나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펀드나 기업에만 돈을 투자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21~22일 임팩트투자 포럼인 ‘2019 아시아임팩트나이츠’가 제주에서 개최됐다.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첸 회장을 만났다. 그는 RS그룹을 설립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부(富)의 목적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항상 마음속에 있었다. 나의 부는 과연 내 것일까? 무엇을 위해, 어떻게 써야 할까? 부를 물려받은 사람들이 갖게 되는 일종의 죄의식이기도 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임팩트투자에 눈 떠 ―’죄의식’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죄의식이라고 해도 되고 책임감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내가 노력해서 창출한 부가 아니라 부모님이 물려준 것이기 때문에 부담감이 있었다.” ―그래서 RS그룹을 만들었다? “원래는 가족이 함께 하나의 패밀리오피스를 운영했는데 2007년 자산을 분할하면서 각자 돈을 관리하게 됐다. 큰돈을

그저 취향이라고? 우리의 ‘채식할 권리’ 보장하라

[Cover Story] 채식의 미래 채식도 ‘기본권’, 생존의 문제로 봐야 입대 예정자, ‘軍 채식권 보장’ 진정서 녹색당은 공공 급식 채식권 보장 주장 이스라엘에선 비건 전투복·식단 제공 ‘채밍아웃’. 채식주의자(vegetarian)들이 자신의 식생활을 주변에 알리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성적 지향을 밝히는 ‘커밍아웃’에 빗대 채식을 고백하기까지의 어려움을 드러낸 것이다. 환경운동가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김한민도 ‘아무튼 비건’이란 책에서 ‘한국에서 비건을 하면 도 닦는 심정이 된다’고 썼다. 한국채식연합이 추산한 우리나라 채식 인구는 지난해 기준 100만~150만명으로 10년 전과 비교해 10배나 늘었지만, 여전히 전체 인구의 3%를 차지하는 ‘소수자’다. “그래, 나 채식한다!”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비건 페스티벌 현장’은 당당하게 채식주의자임을 밝히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1만5000명이 모여 채식의 즐거움을 공유했다. 채식이 식생활이나 취향을 넘어 ‘신념의 표현’이자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군대와 병원, 학교처럼 공공급식을 시행하는 곳에서도 ‘채식권’ 논쟁이 불붙고 있다. 채식권은 취향 아닌 ‘인권’ 문제… 녹색당 헌법소원 제기 내년 초 입대하는 정태현씨는 오늘(12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한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한 진정서에는 ‘국군 장병의 채식권을 보장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현재 우리나라 국군 장병은 약 58만명. 채식 인구를 3%라고 잡았을 때 1만7400명이 ‘채식하는 군인’이라는 계산이 나오지만, 국방부는 장병의 건강 상태나 기호에 관계없이 똑같은 식단을 제공하고 있다. 육류·어패류는 물론 동물성 원료가 들어간 조미료조차 먹지 않는 정씨에겐 고역이다. 육군훈련소 11월 식단표를 보면 비건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쌀밥’뿐이다. 정씨는 “김치조차

누가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나…미등록 이주노동자 사망 사건

서른 살 태국 청년이 ‘불법체류’ 단속에 쫓기다 지난달 24일 사망했다. 이름은 품 누 아누삭. 그가 한국 땅을 밟은 건 지난해 8월이다. 가족의 생계에 보탬이 되고자 지방의 공장을 전전한 지 1년 만에 벌어진 비극이다. 그의 죽음을 추모한 사람은 없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흔히 ‘불법 체류자’로 불리는 신분 탓이다. 아누삭의 장례는 사망 열흘 만인 지난 4일 태국에서 치러졌다. 본국의 부모는 막내아들을 데리러 올 형편이 못 됐고, 시신은 방부 처리돼 태국행 비행기 화물칸에 실렸다. 압착 종이로 짠 3만원짜리 관 앞에 어머니는 주저앉았다. 아누삭이 눈을 감은 지 보름이 지났지만, 죽음을 둘러싼 진실 공방은 계속되고 있다. 쟁점은 단속반의 사망 책임 여부다. 단속에 나선 법무부 산하 부산출입국·외국인청(이하 부산출입국청)은 단속 당시 추격이나 신체적 접촉이 일절 없었다며 이번 사망 사건과 무관하다는 입장이지만, 이주민지원단체들은 부산출입국청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사건을 은폐·축소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장 목격자인 동료 8명은 이미 본국으로 강제 추방당한 상황. 목격자는 사라졌고, 고인은 말이 없다. 엇갈린 진술… 태국 노동자 추락사 진실 공방 사건을 맡은 김해중부경찰서에 따르면, 아누삭은 단속이 있던 지난달 24일 오후 3시쯤 단속 현장 인근에서 사망했다. 부산과학수사연구소 부검 결과 사인은 ‘장기 손상으로 인한 과다 출혈’이다. 부검의는 갈비뼈 3대가 부러질 정도로 강한 외부력이 있었으며, 외부 충격으로 인한 간 파열이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추정했다. 지난 11일 사건 현장을 찾았다. 도시 외곽에 자리 잡은 공장은 700㎡ 규모로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곳이다.

모래바람 덮친 그 땅에 어떻게 숲이 생겨났을까?

[Cover Story] 사막화로 터전 잃은 몽골 유목민 자립기 기후변화로 가축 잃은 유목민, 초원서 밀려나 ‘도시 빈민’ 전락 조림 사업 10년 ‘바양노르’ 지역…모래폭풍 잦아들고 생태 복원 주민들 ‘협동조합’ 꾸려 경제 자립…스스로 사업하고 소득 배분   “처음 나무를 심을 땐 믿을 수가 없었어요. 이렇게 작은 나뭇가지들이 자라서 나무가 된다고? 하지만 보세요. 10년이 지나 이제 커다란 그늘을 만들고 있어요. 차차르간 열매를 수확해 돈도 벌고 있고요.” 지난달 28일 몽골 바양노르. 주민협동조합장 잉흐자르갈(51)씨가 플라스틱 통에 가득 담긴 주홍빛 열매를 가리켰다. 갓 수확한 열매를 기자에게 한 움큼 집어주며 먹어보라고 권했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신맛이 났다. 차차르간 열매는 몽골 사람들의 대표적인 비타민 공급원이다. 주스, 차, 샴페인, 와인 등으로 가공돼 시중에 판매된다. 수확기를 맞은 요즘엔 14명의 조합원과 주민들이 힘을 합쳐 매일 200㎏ 가까이 딴다. 수확한 열매는 1㎏당 5000투그릭(몽골 화폐단위), 우리 돈으로 2300원 정도에 팔린다. 나무가 자라면서 매년 생산량이 늘어 올해는 수확량이 3t에 달할 것이라고 했다. 열매를 팔아 벌어들인 수익금은 조합원들에게 공평하게 배분된다. 기후변화로 인한 사막화로 매년 60차례 이상 모래폭풍이 몰아치던 바양노르에 ‘숲’이 생겼다. 높이 5m에 달하는 포플러와 비술나무가 마을을 빙 둘러싸고 있다. 사막화로 가축을 잃은 바양노르의 유목민들은 소와 말, 양과 염소 대신 ‘비타민나무’라 불리는 차차르간을 기른다. 외부의 도움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주민 스스로 조합을 만들어 사업을 하고 소득을 만들어내는 ‘완전 자립’에 성공했다.   ‘환경난민’된 유목민들 바양노르에서 조림 사업이 시작된 건 지난 2007년이다.

수익 올리고 사회문제 해결하고…임팩트투자, 누구나 하는 시대

개인 임팩트투자 누적액 1000억 돌파…은행보다 수익 좋고 리워드 ‘덤’ 증권형·P2P대출형, ‘중개 플랫폼’ 이용해 클릭 몇 번으로 투자 가능해 사회적경제 기업들, 미래 가치 평가해 자금 조달받고 홍보도 ‘일석이조’   5020억달러(약 600조원). 글로벌임팩트투자네트워크(GIIN)에서 전망하는 2019년 세계 ‘임팩트투자’ 규모다. 임팩트투자는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변화를 만드는 기업이나 단체에 투자해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인 이익을 동시에 얻는 이른바 ‘착한 투자’를 말한다. 투자를 통해 돈도 벌고 사회문제도 해결하자는 취지다. 우리나라 한 해 예산을 웃도는 엄청난 규모의 돈이 임팩트투자에 투입되는 셈이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약 2050억원의 기금이 조성될 정도로 임팩트투자가 활발하다. 주로 D3쥬빌리, 에스오피오오엔지, 옐로우독, 크레비스파트너스 등 임팩트투자사가 마련한 민간 자본에 정부 출자금이 더해져 기관 차원에서 집행된다. 최근에는 크라우드펀딩 형식의 개인 임팩트투자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16년 싹을 틔운 이른바 개인 임팩트투자는 지난 16일 기준 누적 투자액 1000억원을 돌파했다. 개미 투자자들이 사회적경제 성장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변화의 바람은 이미 시작됐을지 모른다. 크라우드펀딩으로 ‘투자’하는 시대 이예슬(31)씨는 지난 1년간 크라우드펀딩으로 사회적기업에 총 500만원을 투자해 58만원 수익을 냈다. 연수익률로 환산하면 금리가 11.6%에 달한다. 같은 금액을 시중은행에 1년 만기 정기예금으로 맡겼을 때 기대수익은 약 10만원(금리 2.00% 기준)이다. 세금을 제하고 나면 8만원 겨우 쥔다. 이마저도 금리 우대를 받아야 가능한 수익이다. 이씨는 “은행보다 높은 이자 수익에 투자 기업이 생산하는 시가 4만원 상당의 제품까지 받았기 때문에 실제 수익은 더 크다”고 말했다. 이씨의 임팩트투자는 ‘증권형

사회주택, 복지 넘어 관계·즐거움을 향하다

[사회주택이 진화한다] 민관 협력으로 공동주택 조성해 공급 임대료는 시세 60~80%, 최장 15년까지 주거 부담 던 청년들, 주체적 인생 찾아 개인 공간선 나만의 생활 온전히 누리고 커뮤니티 공간, ‘주거 공동체’ 회복 효과   저렴하지만 환경은 쾌적하고 쫓겨날 걱정 없이 오래 살 수 있는 집. 무주택자들의 ‘로망’일 것이다. 여기에 가까이 지낼 수 있는 이웃까지 있다면 금상첨화다. 최근 늘어나는 ‘사회주택’은 이런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등장한 모델이다. 비영리법인이나 사회적기업 등 민간 사업자가 공공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공동주택을 조성한 뒤, 집이 필요한 사람에게 저렴하게 임대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사회주택 사업자들은 공공 소유의 토지나 건물을 장기간 빌리거나 공공으로부터 건물 건축과 리모델링에 드는 비용을 지원받는다. 사회주택의 임대료는 주변 시세의 60~80% 수준으로 책정되며, 입주 기간은 최대 6~15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사회주택 공급에 불을 댕긴 건 서울시다. 서울시는 2012년 사회주택 공급을 위해 ‘사회투자기금’을 조성하고, 2015년에는 ‘서울특별시 사회주택 활성화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자금과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면서 서울시내 사회주택 공급량은 꾸준히 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5년 102호(가구 수), 2016년 303호, 2017년 239호, 2018년 361호의 사회주택이 공급됐고 올해도 270호가 추가될 예정이다. 정부도 사회주택 공급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2017년 말 발표한 ‘주거복지 로드맵’에서 ‘사회적경제 주체에 의한 임대주택(사회주택) 공급 활성화’를 정책 목표로 내세웠고, 올해 초에는 2022년까지 매년 사회주택을 2000호씩 공급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사회주택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국토부는 사회주택이 공공과 민간으로 이원화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