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장애인 절망으로 몰아넣는 ‘활동지원 연령제한’
만 65세 기점 ‘노인장기요양보험’으로 편입
24시간 도움 필요한 중증도 4시간으로 급감
가족이 돌보기엔 생계·체력적 한계 등 문제
삶의 질 나락으로… “사형 선고나 다름없어”
“제게는 활동지원사가 손이고 발입니다. 스스로 물 한 모금도 마실 수가 없지요. 그런데 정부는 만 65세가 넘었으니 더는 지원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이제 정말 손발이 다 잘린 것 같습니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권오태씨는 1급 지체장애인이다. 지난 2012년 교통사고로 경추를 크게 다쳐 목 아래로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다. 사고 이후 권씨는 정부와 지자체의 ‘장애인 활동지원'(활동지원) 서비스로 삶을 이어 왔다. 활동지원 덕분에 조금씩 일상의 기쁨을 누리기도 했지만 지난해 10월 5일 만 65세 생일을 맞으면서 다시 절망에 빠졌다.
정부는 장애인들에게 장애 정도에 따라 한 달에 최소 60시간에서 최대 480시간의 활동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자체의 추가 지원까지 더하면 한 달에 최대 744시간까지 쓸 수 있지만, ‘시한부 지원’이라는 게 맹점이다. 활동지원 서비스 지원 자격을 ‘만 65세 미만 노인이 아닌 자’로 못 박고 있기 때문이다. 65세 이상부터는 ‘노인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게 되는데, 이 경우 한 달에 최대 120시간의 실내 신체 활동·가사 지원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일상생활 전반에서 활동지원사의 도움이 필수적인 중증 장애인에겐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65세 생일이 두려운 장애인들
지난 18일 자택에서 만난 권씨는 활동지원사가 아닌 아내 곽하은(61)씨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현재 권씨는 정부와 지자체의 활동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만 65세가 되는 날을 기준으로 다음 달 말일까지만 활동지원을 제공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어서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자가 되면 하루에 4시간의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아직 신청하지 않았다. 법적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기 시작하면 다시는 기존의 활동지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내 곽씨는 “제도가 바뀌면 만 65세 이상 장애인도 활동지원을 받을 길이 열릴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활동지원 없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교통사고 이후 병원에서 1년 넘게 치료받은 권씨는 2014년부터 하루 평균 20시간의 활동지원을 받았다. 활동지원사 2명이 교대로 찾아와 밥을 떠먹여 주거나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는 등 기본적인 수발을 해줬고, 통원 치료에도 동행해줬다. 권씨가 잘 때도 활동지원사가 곁을 지켰다. 자는 동안 생긴 가래가 기도를 막아 질식사할 우려가 있는 데다, 수시로 자세를 바꿔주지 않으면 온몸에 욕창이 생겨 피부가 괴사하기 때문이다.
생명 유지 장치나 다름없던 활동지원이 끊기면서 권씨를 돌보는 일은 오롯이 아내의 몫이 됐다. 사회복지사로 일했던 곽씨는 직장에 휴직계를 내고 온종일 남편을 돌본다. 곽씨는 “건장한 남자 활동지원사들이 번갈아 하던 일을 혼자 하려니 너무 벅차다”며 “최근에도 남편을 휠체어에 태우다가 넘어져 제대로 걷기가 어렵다”고 했다. 생계 문제도 막막하다. “집안에 돈을 버는 사람이 없어서 당장에라도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달리 방도가 없다”고 했다.
괴롭기는 권씨도 마찬가지다. 아내의 헌신이 고맙고 미안하지만, 갈수록 활동지원사의 빈자리가 크게 다가온다. 전신마비에 따른 근육 경직·퇴행을 막기 위해 일주일에 세 차례 통원 치료를 받아 왔는데, 활동지원이 끊긴 뒤로는 병원 문턱도 밟지 못했다. 권씨는 “숨을 쉬고 침을 삼키는 일이 점점 힘에 부친다”며 “생명이 꺼져가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하루에 한 번은 꼭 나갔던 산책도 못 하게 됐다. 권씨는 “비루한 육신에 유일하게 생기가 깃드는 시간이었는데, 이제는 꿈도 꾸지 못한다”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보건복지부 자료를 받아 지난해 10월 공개한 문건에 따르면 2015~2018년 만 65세가 돼 활동지원 대신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을 받게 된 장애인은 1159명이나 된다. 이 가운데 권씨와 같은 1급 장애인은 468명으로 월평균 활동지원이 188시간 감소했고, 최대 313시간이나 줄어든 경우도 있었다. 여기에는 돌봐줄 가족이 없는 독거 장애인과 기초생활수급자 등도 192명이나 포함된 것으로 확인돼 “구멍 뚫린 복지제도가 장애인들을 사지로 내몬다”는 비판이 나왔다. 고령화가 가속하면서 이런 문제는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진선미 의원실에 따르면 2019~2023년 만 65세가 되는 활동지원 수급 장애인은 7449명에 달한다.
거꾸로 가는 복지 제도… “결국은 비용 문제”
장애인차별철폐연대(장차련)를 비롯한 장애계 시민단체들은 만 65세를 기점으로 활동지원이 대폭 줄어드는 ‘복지 절벽’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예산 증액이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김태훈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정책실장은 “나이가 들면 필요한 복지 서비스가 더 많아지는 것이 당연한데, 정부는 오히려 주던 혜택도 거둬들이겠다고 한다”며 “활동지원은 장애인 기본권 보장을 위한 핵심 서비스인 만큼 예산을 대폭 늘려서라도 국가가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복지 관련 주무 부처인 복지부는 난색을 보이고 있다. 만 65세 이상 장애인을 대상으로 활동지원을 계속 제공할 경우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간 약 5000억원의 예산이 더 필요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활동지원이 노인장기요양보험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부적합성이 나타난다”면서도 “결국은 비용 문제”라고 말했다. 제도 개선이 필요하지만, 예산 문제가 걸림돌이 된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예산 문제는 결국 정부의 의지에 달린 일”이라고 지적했다. 활동지원 예산은 그간 꾸준히 증가해 왔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이 발간하는 장애통계연보와 복지부 예산안 자료 등을 보면 2014년 4285억원에서 올해 1조2752억원으로 늘어났다. 6년 만에 3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염 변호사는 “정부의 고민은 이해하지만, 장애인의 생존 문제가 걸린 활동지원을 중단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우리나라가 5000억원 정도의 추가 예산을 부담하지 못할 수준의 국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복지부가 ‘입법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비판받는 지점이다. 법률 제정을 통해 만 65세 이상 장애인의 활동지원 축소 문제를 해결하려는 국회의 움직임에 오히려 ‘딴지’를 거는 모양새다. 20대 국회에는 만 65세 이상 장애인들이 활동지원을 계속 받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안이 다수 올라와 있다. 이 가운데 윤소하 의원이 2016년 대표 발의한 ‘장애인활동지원에관한법률일부개정안’이 3년여 만인 지난해 11월 보건복지위원회 소위원회에 상정됐지만, 복지부의 문제 제기로 통과가 불발됐다.
당시 회의록을 보면 김강립 복지부 차관은 “시급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한다”면서도 “정부로서는 이 안을 당장 수용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사안이 시급하니) 우선 법은 통과시키자”는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의 제안에도 복지부 측은 시간을 두고 해결하겠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활동지원·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된 2007년 이후 제도를 개선할 시간이 충분했는데도 왜 대책을 내놓지 않느냐는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복지부 장애인정책국장이 “실태 파악에 나서겠다”고 발언했다가 질책을 받기도 했다.
복지부는 지난 2014년 청주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65세 이상 장애인에 대한 활동지원제도 적용 및 다른 제도와 연계방안’ 연구 용역을 진행한 바 있다. 당시에도 ▲활동지원·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의 충돌 ▲활동지원 축소에 따른 장애인 불편 가중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1인 가구·취약 계층의 경우 활동지원에 상응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 혜택을 제공하는 등 대안이 제시됐으나 제도 개선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복지부는 올해 예산 5억원을 편성해 활동지원 제도 개선에 관한 연구 용역을 다시 진행할 예정이다.
인권위 ‘긴급 구제’에도 지원 끊겨… “헌재 가겠다”
활동지원 제도를 둘러싸고 장애인 단체와 정부가 대립하는 사이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인들의 손을 들어주는 판단을 잇따라 내놨다. 지난 11일 인권위는 만 65세 생일을 맞았거나 곧 맞이할 예정인 중증 장애인 12명이 “활동지원을 계속 받게 해달라”며 제기한 진정에 대해 “건강권과 생명권에 심각한 피해가 우려된다”며 ‘긴급 구제’ 결정을 내렸다. 지자체와 복지부 등에 이들에 대한 활동지원을 제공하라고 권고하고 활동지원과 노인장기요양보험 가운데 필요한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라고 주문했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인권위의 긴급 구제 결정은 강제성이 없어서 지자체나 복지부가 받아들이지 않아도 제재할 길이 없다. 인권위는 지난해 9월에도 중증 장애인 3명에 대한 긴급구제 결정을 내렸는데 서울에 사는 2명은 활동지원 중단 없이 현재까지 혜택을 보고 있지만, 부산에 사는 김순옥씨의 경우 부산시가 ‘불수용’ 결정을 내려 활동지원이 끊기고 말았다.
부산시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복지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서는 법적으로 김씨를 지원할 방법이 없어 불수용 결정을 내렸다는 설명이다. 김정우 부산시 장애인복지과장은 “복지부에 수차례 공문을 보내 김씨에 대한 시의 지원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민간과 연계해서 간접 지원할 방법을 찾아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며 “만 65세 장애인의 활동지원에 대해 복지부가 발을 빼려는 느낌마저 받았다”고 말했다.
이번에 긴급 구제 대상이 된 진정인들에 대한 활동지원 여부도 장담할 수 없다. 서울시의 경우에도 확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경자인 서울시 장애인자립정책팀장은 “인권위의 긴급 구제 결정에 대해 아직 시의 입장을 밝힐 상황이 아니다”라며 “복지부가 답변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 (서울시가) 단독으로 지원하기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라고 털어놨다.
입법을 통한 제도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지자체도 복지부 눈치만 보는 상황에서 장애인 단체와 법조계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희망을 걸고 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과 사단법인 두루 등은 지난달 부산지방법원에 나이에 따라 장애인 활동지원이 제한받는 현행 제도가 ▲헌법 제34조 제1항(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헌법 제10조(생명안전권·존엄권·자기결정권) ▲헌법 제34조 제5항(국민에 대한 국가의 보호 의무) 등에 어긋난다는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부산지방법원 담당 판사가 이를 받아들이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여부를 가리게 된다.
위헌법률심판제청의 원고는 김순옥씨다. 1급 뇌병변장애로 손가락만 겨우 움직일 수 있는 김씨는 월평균 411시간의 활동지원을 받다가 지난해 7월 만 65세가 되면서 노인장기요양보험으로 편입, 활동지원 시간이 월평균 120시간으로 대폭 줄었다. 지역 시민단체와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 민간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온몸에 욕창이 생겨 양쪽 다리 살점이 3분의 1이나 떨어져 나가는 등 건강이 크게 악화했다.
모친이 사망한 이후로 장애인 시설에서 20년간 살았던 김씨는 2018년 활동지원을 받아 자립했다. 이후 ‘장애인 권익 옹호’ ‘장애인 탈시설 운동’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로부터 ‘자립왕’에 선정되기도 했다. 김수은 부산 영도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은 “활동지원의 궁극적 취지는 장애인의 자립”이라며 “만 65세가 됐다는 이유로 활동지원을 줄이는 것은 나이 든 장애인은 시설에 들어가 살라는 명령이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김순옥씨는 법적 투쟁으로 장애인 활동지원 확대를 이끌어내겠다는 뜻을 확고히 했다. 김 사무국장을 통해 “잘못된 제도로 인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장애인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끝까지 활동하겠다”고 전했다.
[장지훈 더나은미래 기자 jangpro@chosun.com]–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