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신 파울러스 대표
[메타버스와 사회혁신] 관망과 실천

6월의 마지막 주, 국제영화제로 잘 알려진 프랑스 칸의 드넓은 해안가에 수많은 미디어, 광고회사들이 모였다. 구글, 아마존, 메타와 같은 세계적인 미디어 플랫폼 회사들이 모래사장 위에 거대한 부스를 세웠고, 낮에는 세미나로 밤에는 네트워킹 파티로 쉴새 없이 열렸다. 지중해의 태양만큼이나 사람들의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던 칸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매년 국제광고제 ‘칸 라이언즈(Cannes Lions)’가 개최된다. 규모 면에서나 참가 인원, 예산으로도 영화제를 훨씬 압도하는 큰 행사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난 2년은 온라인 행사로만 진행됐고, 올해 다시 오프라인 행사를 시작했다. 파울러스는 이번 칸 라이언즈 광고제에 총 3개의 프로젝트를 여러 부문에 출품했다. 팬데믹이 막을 내리는 시점에서 글로벌 광고계의 동향도 경험하고 세계인들과 네트워킹도 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수상에 있어서는 기대보다 성과가 좋았다. 세계 최초 시각장애인 점자패드 ‘닷패드’의 광고 캠페인이 가장 영광스러운 상으로 알려진 ‘티타늄(Titanium) 상’을 받았고, 독립 광고대행사 이노레드와 함께 진행한 ‘우유안부(Greeting Milk)’ 캠페인 등으로 총 5개의 본상을 받게 됐다. 국내 광고 회사로는 으뜸가는 성적이다. 수상하게 된 ‘닷패드’의 캠페인은 시각장애인들의 정보 접근성(Accessibility) 문제를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유안부’는 독거노인의 건강 및 고독사 방지를 위한 우유활용 캠페인에 더해 일반인의 기부 참여를 독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광고제라고 해서 재미있거나 멋진 연예인을 기용해 대중의 기억에 각인시킨 광고를 발굴하고 시상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세계적 광고제 칸 라이언즈에서 커뮤니케이터와 브랜드의 사회적 참여, 혁신적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공로를 인정해온

유지민(거꾸로캠퍼스 재학생)
[Z의 휠체어] 건강하게 살 권리

초등학교에 다닐 때 친구들과 함께 수영장에 간 적이 있다.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는 나에게 한 친구가 물었다. “지민아, 너는 수영 어떻게 해? 휠체어에 앉아서 해?” 나는 상당히 황당했다. 철과 쇠로 만들어진 휠체어가 물에 뜰 수 없다는 건 너무 당연한 상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친구를 이해한다. 초등학생이 ‘운동하는 지체장애인’을 볼 일은 패럴림픽을 빼고 없었을 것이다. 이 일이 있고 5년이 흘렀다. 그 사이 퍼스널트레이닝(PT), 필라테스, 요가, 발레 등은 더욱 대중화됐지만 여전히 지체장애인을 보기 쉽지 않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지체장애인이 운동할 수 있는 장소는 턱없이 부족하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입구가 완만하고, 엘리베이터가 있고, 장애인 화장실과 탈의실이 있는 운동 시설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설령 찾는다고 해도 ‘장애인은 사고 위험이 더 크고, 사고가 일어나면 책임질 수 없다’라며 등록을 거부당하기 일쑤다. 고의가 아닌 이상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내부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선 시설이 책임져야 하지 않는가? 또 장애인이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편견 아닌가? 사람들이 묻는다. “장애인 복지관을 이용하면 되지 않나요?” 2016년 나는 서울의 모 장애인 복지관에서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 2년 이상을 기다렸다. 장소와 인력은 극히 한정돼 있는데, 수요자는 너무나 많다. 사설 센터도 상황이 비슷하다. 이렇다 보니 간신히 등록에 성공하면 멀리 이사를 하더라도 장거리 이동을 감수하며 다니던 곳에 다닐 수밖에 없다. 대기를 하는 동안에는 운동할 수 없어 건강이 악화한다. 거대한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나는 체육

장서정 자란다 대표
[오늘도 자란다] 불확실성이 만드는 성장의 미학

스타트업 경영과 육아의 공통점은 상시로 ‘불확실성’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영역에서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 최선을 다해 분석하고 준비해도 불확실성은 남기 마련이고, 이러한 불확실성은 마치 산소처럼 자연스럽게 맞이해야 한다. 그럼에도 경영과 육아를 하다 보면, 불확실성은 피하고 싶은 대상이 된다. 사전에 구상한 계획대로 일이 술술 풀려 가길 기대하고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서 상황이 발생할 때 우리는 안정감을 느낀다. 반대의 경우에는 불안요인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다. 1인 창업으로 시작한 사업은 나의 의도와 의지 안에서 흘러갈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구성원이 늘고 사업 규모도 확장되면서 나의 통제 안에 있거나 확신을 가지고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점차 줄어들게 됐다. 아이들 역시 부모인 나만큼은 누구보다 아이를 잘 알고 있다 생각하고 성장모습을 예측한다. 하지만 친구나 선생님에게 영향을 받고 본인의 생각이 커지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강점이나 약점이 강화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렇다면 우리는 경영을 하며, 또 아이를 키우며 생기는 불확실성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의 휴 커트니는 불확실성을 4단계로 구분했다. 단 하나의 예측을 내놓을 수 있는 경우는 1단계 ‘확실한 미래’, 몇 개의 대안적인 시나리오로 미래를 예측해볼 수 있는 경우는 2단계 ‘대안이 있는 미래’로 분류된다. 여러 개의 변수가 있어 발생 가능한 대략의 범위만 간신히 예측할 수 있다면 3단계 ‘범위를 정할 수 있는 미래’, 복합적인 불확실 요소로 인해 사실상 예측이 불가능하다면 4단계 ‘완전히 모호한 미래’에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모금하는 사람들] 따뜻한 마음이 만들어낸 1335억원의 기적

시가 1만 달러(1290만원)의 금 175g이 하루아침에 1억350만 달러(약 1335억원)가 됐다. 세계 난민의 날인 지난 20일, 뉴욕 헤리티지 경매에서 벌어진 일이다. 화제의 경매 물품은 러시아 반체제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지난해 받은 노벨평화상 메달이다. 무라토프는 ‘노바야가제타’라는 언론의 편집장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의 비리를 폭로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판하다가 러시아 당국의 처벌 위협 속에 올해 3월 폐간됐고, 소속 기자 6명은 의문의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목숨을 내걸고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언론인으로서 노벨평화상을 받을 만하다. 그가 이 메달을 우크라이나 난민 어린이를 위해 사용하겠다고 옥션에 내놓았고, 수익금은 유니세프에 전달돼 쓰일 예정이다. 남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모습이라 해도 많이 부러운 광경이다. 목숨처럼 영예로운 메달을 경매에 내는 것도, 그 메달 하나를 1억 달러에 사는 것도, 그 수익금이 난민 어린이를 위해 쓰인다는 것도 명분이 좋다거나 통이 크다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 장면에는 다양한 서사가 녹아있다. 독재와 전쟁을 일삼는 이들, 진실을 수호하는 이들, 그를 칭찬하는 이들, 전쟁의 피해로 부모와 일상을 잃어버린 난민 아이들, 도움이 절실한 이들을 위해 자기 명예와 재산을 기꺼이 내놓는 용기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는 따로 있다. 누군가의 눈물과 아픔과 진심이 담긴 진짜 삶의 이야기는 마음에서 마음을 타고 멀리멀리 흘러가는 동안 내내 그 울림이 살아있다. 그런데 이야기를 말하는 입보다 더 중요한 것은 ‘듣는 귀’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실상 앞의 그 경매에서 내가 부러운 것은, 그곳에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나쁜 차별과 건강한 구별

이번 학기 대학에서 강의하는 과목 중 ‘CSR과 사회혁신’이라는 수업이 있다. 사회문제를 정의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통해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학습하고 실행계획까지 수립하는 것이 한 학기의 커리큘럼이다. 지난 3월 학기 초반에 학생들에게 한가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우리 사회, 청년들의 사회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이때 학생들이 꼽은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여러 의견 중 가장 많이 나온 이슈가 ‘젠더갈등’이었다. 지난 5월, 조선일보와 서울대사회발전연구소가 발표한 ‘2022 대한민국 젠더 의식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6.6%가 ‘한국 사회 남녀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는데, 이 중 20대 여성은 무려 82.5%가 갈등이 있다는 것에 동의했고 20대 남녀 평균도 79.8%에 달했다. 2018년에 확산한 미투운동과 n번방 사건 등은 젠더갈등을 촉발했고, 이대남과 이대녀 등의 용어는 젠더갈등의 심각성을 보여주기에 부족하지 않다. 해외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 4월 글로벌 온라인 전자상거래·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회사인 아마존은 직장 내 인종차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외부감사를 받기로 했다. 미국 고용평등기회위원회(EEOC) 조사 결과, 아마존에서 저임금 시간제 근로자 60% 이상이 흑인이나 히스패닉이지만 사무직·기술직은 18%에 불과했다. 지난해 9월에는 미국 상원의원 6명이 아마존에 대해 연방조사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마존 직원 대부분이 창고에서 일하는데, 이들 중 임신하거나 장애가 있는 근로자를 회사가 제대로 보호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물류·포장 업무를 맡은 직원의 경우, 정해진 시간과 할당량 때문에 화장실에 가거나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포기하고 있고 근로자 본인의 안전조치에 소홀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가 큰 상황임을 지적했다. 전기자동차를 만드는 테슬라의

아나스타샤 샤포발 굿네이버스 우크라이나 긴급구호 자원활동가
[사회혁신발언대] 누구도 난민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지난 2월 24일 아침, 음악 수업이 있어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르비우(Lviv)로 향하던 중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갑작스런 분쟁 발생으로 수업이 취소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2월 중순부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분쟁 가능성은 주요 뉴스 중 하나였다. 당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은 ‘설마 21세기에 무슨 전쟁이 일어날까’하며 단순 루머일 뿐이라 생각했다. 믿을 수 없게도, 현실로 마주한 분쟁의 현실은 참담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불안감이 몰려왔다. 바로 전날까지도 나는 선생님을 꿈꾸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분쟁 발생 직후 아이들에게 영어와 음악을 가르치고 싶다는 꿈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소망도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말았다. 내가 살고 있던 이즈마일(Izmail) 지역에서 20km 떨어진 군 시설이 폭격 되면서 가족들은 서둘러 짐을 쌌다. 20여 년의 추억이 담긴 고향을 떠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두려웠다. 평소엔 루마니아 국경까지 2시간 거리였지만, 밀려드는 피란민 행렬로 10시간 만에 루마니아에 도착했다. 낯선 땅 루마니아에서의 첫 달은 고비였다. 무작정 우크라이나를 벗어나긴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매일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독일, 스위스 등 다른 나라로 뿔뿔이 흩어진 친구들이 그리웠고, 매일 연주하던 피아노가 생각났다.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가족, 친척과 함께 안전한 공간에 머무는 것뿐이었다.    루마니아에서 지내며 한국에서 시작된 NGO(비영리기구) 굿네이버스의 지원을 받게 됐다. 이를 계기로 자원활동가로 함께 할 기회를 얻게 됐다. 같은 어려움을 겪은 우크라이나인을 위로할

권영실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사회혁신발언대] 난민법 제정 10주년, 투명한 난민심사제도 마련해야

오늘(20일)은 대한민국이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한 뒤 10번째 맞는 ‘세계 난민의 날’이다. 특히 올해는 한국이 난민협약에 가입한 지 30주년 되는 해다. 이는 난민이라는 새로운 사회구성원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 시작한 지 30년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난민은 우리 사회에서 가려진 존재이자 온전히 정착하지 못한 주변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정부는 작년 말 난민법 개정안을 발의하여 난민인정자와 인도적 체류자에게 취업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이들에게 취업활동을 허가만 하였을 뿐, 언어와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생계를 유지하도록 적극적으로 돕는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난민법은 난민에게 대한민국 국민과 같은 수준의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인도적 체류자에게도 난민에 준하는 처우를 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법과 실무의 괴리와 이주민에 대한 차별적인 개별 법령으로 인해 이들이 마주하는 한국의 현실은 여전히 녹록하지 않다. 지난해 난민도 공공주택에 입주할 자격이 있다고 판시한 법원의 판결에도 국토교통부는 여전히 이를 허용하고 있지 않다. 인도적 체류자는 취업할 수 있는 분야가 실질적으로 단순노무직에 한정되어 있다. 귀화도 불가능하다. 소득·재산과 무관하게 매달 부과되는 높은 건강보험료를 감당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처럼 취업지원 외에 난민과 인도적 체류자의 처우에 개선할 부분이 산적해 있음에도 정부의 난민법 개정안의 초점은 난민인정 재신청자에 대한 적격심사 제도 도입에 있다. 난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받은 사람 등이 다시 난민인정 신청을 하고자 하면 적격심사를 거치도록 하고, 중대한 사정 변경을 입증하지 못하면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가뭄과 농업, 우리의 식량은 안전한가?

도시에 사는 대부분은 봄 가뭄이 얼마나 심각한지 느끼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이 시기에 울진에서 또 산불이 났습니다.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어간다는 게 조금씩 실감 나기도 합니다. 예전엔 가뭄이 들면 정치인들이 농촌을 찾는 뉴스가 가끔 나오기도 했지만 요즘은 그것마저 뜸합니다. 요소수 사태가 터지고서야 질소비료를 걱정하기 시작했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곡물가가 치솟아야 식량 위기를 떠올립니다. 농사의 반은 하늘이 짓는다고 합니다. 기후가 위기로 치달으니 농사인들 무사할 리 없습니다. 2년 전에는 54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된 비로 채소는 밭에서 물렀고 그해 햄버거에서는 토마토가 사라졌습니다. 그 이전 해에는 가을장마로 처마 밑에 걸어놓은 곶감에서 곰팡이가 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습니다. 요즘 곶감은 대부분 건조기에서 말리기 때문입니다. 미국 중서부의 곡창지대에서는 120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이 들었습니다. 그 여파로 작년에는 밀과 옥수수의 생산량이 40%까지 줄었습니다. 가뭄은 올해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호주는 3~5년마다 한 번씩 가뭄이 찾아올 때마다 밀 생산량은 절반까지 곤두박질 칩니다. 다행히 최근 두 해 동안 사상 유례없는 풍작 덕분에 세계는 식량 위기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가끔 이런 걱정도 합니다. ‘미국과 호주에서 동시에 가뭄이 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우리나라 논의 80%는 수리 시설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덕분에 어지간한 가뭄에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어지간한 수준을 넘어서는, 즉 10년 만에 한 번 정도 찾아오는 가뭄의 경우 수리 시설이 있는 논도 절반은 가뭄 피해를 받습니다. 저수지 용량의 한계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지훈 소셜혁신연구소장
[안지훈의 생활정책] 젠트리피케이션을 아시나요?

몇 해 전 조광진 원작의 드라마 ‘이태원클라쓰’가 큰 인기를 누렸다. 이태원클라쓰는 외식업계 1위 ‘장가’와의 악연을 극복하고, 착한 방법으로 ‘장가’를 인수해 가는 청년기업가의 이야기다. 주인공 ‘박새로이’는 7년간 원양어선을 타며 모은 돈으로 이태원에 작은 포장마차를 연다. 포장마차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인기를 얻어 이태원 맛집으로 유명세를 탔고, 장사도 잘됐다. 박새로이의 작은 성공이 눈에 거슬린 장가 회장은 해당 건물을 사들였고, 자신이 장사한다며 포장마차 퇴거를 요구한다. 극 중의 장가 회장이 벌인 행동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 한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상가내몰림현상’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낙후된 도심이 새롭게 활기를 얻는 이후, 해당 도심에 건물주들이 지역을 활성화한 주체들을 쫓아내며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서울의 경우 홍대 앞이나 경리단길, 가로수길이 점차 활성화되면서 전반적으로 품위 있는 고급 상권이 되었지만 오랫동안 자영업을 영위하던 많은 소상공인이 올라가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게 됐다. 서울뿐 아니라 전주나 경주 등지의 이른바 ‘뜨는 골목’들은 모두 예외가 없었다. 2020년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한동안 젠트리피케이션 이슈가 잠잠했지만,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와 영업제한 조치 해제로 조용했던 건물주와 임차인간 긴장관계는 곧 수면위로 표출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2년 동안, 장사를 하지 못했던 임차인의 고통과 2년간 임대료 인상을 미뤘던 건물주의 상황이 머지않아 사회적 쟁점이 될 것이다. 다행히도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팬데믹 전 서울 성동구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2014년 말, 서울숲 주변 성수동에 지역혁신가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성수동은 ‘핫’한 지역이 되었고, 임대료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성동구에서는 문제를 파악했지만 자유시장경제에서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한수정의 커피 한 잔] 코카콜라엔 있고, 스타벅스엔 없는 것

빈용기 재사용 생산자가 부담하는 취급수수료.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이 제도 덕에 동네마트나 편의점에서 팔린 음료수 공병의 90% 이상이 생산 공장으로 되돌아온다. 공병을 세척, 소독, 재활용하여 자원 낭비를 막는다. 국내에서 소주, 맥주, 청량음료 제조사들은 한 병당 약 30원가량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는 이 돈을 재원으로 소비자가 상점에 빈 병을 반환하도록 촉진하고, 도소매 상점들은 수거센터의 역할을 하도록 계도하고 있다. 한국에서 음료회사 13곳이 연간 납부하는 취급수수료 규모는 2800억원 정도다. 제도 시행 초에는 혼란도 있었지만, 2016년부터는 병 음료 출고량 대비 회수비율이 95.2%나 된다고 하니 작은 수수료의 위력이 엄청나다. 그런데 어지간한 병 음료보다 더 비싼 값으로 판매되는 커피가 담긴 일회용 컵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2002년 자발적 협약에 근거해 처음 시행되었다가 2008년 폐지, 그리고 2018년 경기수도권 쓰레기 대란으로 다시 한번 도입이 논의되어, 마침내 오는 6월 ‘일회용 컵 보증금제도’를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당국은 지난 2년간 업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자원재활용법을 개정하여 추진의 근거를 마련했다. IT 강국답게 온라인으로 원스톱 관리가 가능한 앱을 개발하고, 지난 제도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반납처를 구매처에 상관없이 반납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거리에 무단으로 투기 되던 일회용 컵이 사라지고 소각 시 발생하는 온실가스 60% 이상을 줄일 수 있다. 하와이에서는 이 제도를 도입한 첫해에만 해안가에 무단투기 되던 일회용 컵의 50%가 회수되었다. 한국은 보증금제도의 점진적 안착을 위해 우선

장서정 자란다 대표
[오늘도 자란다] 누구나 잘하고 싶다

“아이를 키우면서 회사도 운영하시다니, 힘들지 않으세요?” 자란다 창업 이후 흔히 듣는 말 중 하나다. 육아와 창업, 그리고 몇 십명의 인사를 책임지는 대표 역할까지 하느라 고단하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사람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적인 작업을 하려는 충동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물학적인 행동이다. 런던경영대학원의 댄 케이블 조직행동학 교수는 ‘탐색시스템’이라는 뇌의 일부 기능이 작동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충동을 따를 때 우리는 동기부여와 즐거움에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생성되고, 배우고 탐색하는 활동에 더욱 참여하고 싶어한다고 한다. 케이블 교수는 탐색, 실험, 학습의 프로세스를 갖춘 조직 안에서 도파민을 생성하며 더 즐겁게 일하게 된다고 정의했다. 6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겪으면서 탐색, 실험, 학습이라는 조직의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체감하고 있다. 그동안 여러 가지 감정적, 물리적 수업료를 내며 위와 같은 조직의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먼저 리더가 가져야 할 태도, 마음가짐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가장 첫 번째 태도는 회사 구성원이 스스로 생각하고 헤쳐나가는 힘을 키우도록 기다리는 것이다. 자신의 강점을 발휘해서 문제를 해결한 경험을 가졌을 때 그 강점을 발휘하려는 욕구가 충만해지고 능동적으로 변하게 된다고 한다. 나는 그 과정을 지켜본 후에야 한발 물러서서 구성원 스스로 업무와 목표를 탐색하고 결정하는 시간을 기다릴 수 있게 됐다. 두 번째는 시의적절한 피드백이다. 마냥 기다리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지켜보기만 했을 때, 일부 구성원은 의욕을 잃고 업무효율도 떨어졌다. 당시엔 무척 혼란스러웠다. ‘아니,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용기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것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어, 근데 책임은 아무나 질 수 없는 거다. 용기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거야.” 몇 년 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 나오는 대사 중 하나이다. 이 드라마는 청춘들의 창업 스토리를 담았는데, 경쟁이 치열한 비즈니스 세상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상대방에 맞서 소신과 정의를 지키고 신뢰를 쌓으며 성공을 이루어간다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 용기 있는 사람만이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책임’에 대한 중요한 속성이 언급된 것이다. 책임이란 단어는 ‘맡아서 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임무’라는 사전적 의미와 함께 법률적으로는 ‘법률상의 불이익 또는 제재가 가해지는 일’을 의미한다. 근대형법의 원칙 중 하나인 ‘책임주의’에서는 ‘책임이 없으면 형벌도 없다’는 법언에 따라 책임이 없으면 범죄가 성립하지 않고, 범죄 형량도 책임의 크고 작음에 따라 결정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보통 책임자는 조직 내에서 권한과 힘을 가진 주체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책임자는 어떠한 문제가 생겼을 경우 형벌을 받는 주체가 됨을 의미하는, 다소 엄중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 즉 책임이란 단어는 일상에서도 많이 쓰지만, 함부로 사용하기에는 부담되는 단어인 것이다. 올해 1월 27일,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하여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경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 등에 처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었다. 법 시행과 더불어 많은 기업이 CSO(최고안전책임자)를 선임하였는데, 이에 대에 ‘전문적으로 안전을 관리하고 책임진다’는 해석과 함께, ‘대표를 보호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방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