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8일(일)

학교폭력 피해 고통 64.1%로 역대 최고치, 자살·자해 충동 경험 연령 어려졌다

“유서에 가해자 이름을 쓰면 가해자가 나쁜 사람이라는 게 알려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것만을 위해서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피해 학생은 가해 동급생으로부터 괴롭힘 및 따돌림을 경험한 끝에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함. 유가족은 자녀의 학교폭력 피해를 주장했으나 사실관계 확인이 어렵다는 이유 등으로 절차가 지연되며 피해 사실 소명에 어려움을 겪음.”

푸른나무재단이 24일 오전 ‘2024 전국 학교폭력·사이버폭력 실태조사 및 대책 발표 기자회견’에서 공개한 학교 폭력 피해자의 목소리와 피해 사례다.

푸른나무재단이 24일 오전 ‘2024 전국 학교폭력·사이버폭력 실태조사 및 대책 발표 기자회견’에서 ‘방관의 탈을 벗어라’ 퍼포먼스를 통해 학교폭력을 방관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김규리 기자

서울 서초구 소재 본부에서 열린 이번 행사에는 박길성 푸른나무재단 이사장, 최선희 사무총장, 김미정 상담본부장, 김성민 선임연구원, 학교폭력 피해 보호자인 김은정(가명) 씨를 비롯한 관계자와 기자 50여 명이 참석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학교폭력 및 사이버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푸른나무재단은 2001년부터 매해 전국 단위로 학교폭력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는 전국의 초·중·고등학생 8590명 및 교사·보호자·학교전담경찰관·학교폭력현장전문가·변호사 31명, 학교폭력 피해 학생 보호자 38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실시했다.

‘2024 전국 학교폭력·사이버폭력 실태조사’ 인포그래픽. /푸른나무재단

조사 결과, 학교폭력 피해경험 대상자에게 고통 정도를 묻는 말에 ‘고통스러웠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64.1%로 역대 최고치로 나타났다. 학교폭력 피해로 인한 자살·자해 충동 경험률 또한 2021년(26.8%), 2022년(38.8%), 2023년(39.9%)로 지난 3년간 꾸준히 증가해 왔다.

재단은 자살·자해 충동을 경험하는 학생의 연령이 어려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초등학교 피해 학생의 자살·자해 충동 경험률은 2022년 28.4%에서 2023년 39.3%로 10%p 이상 증가했다.

김미정 푸른나무재단 상담본부장은 “피해 학생의 고통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자살·자해 충동이 증가하는 만큼, 실효성 있는 보호와 지원의 확대가 요구되는 시점”이라며 ▲보다 적극적인 보호조치 부여 ▲고위기 피해 학생을 위한 일시보호 시설의 확대 설치·운영 ▲학교폭력 자살 유가족을 위한 치료적·교육적·경제적 통합 지원체계 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학교폭력 피해경험을 나누는 김은정(가명) 씨의 모습. /푸른나무재단

이번 조사에서 눈에 띄는 것은 올해 처음 조사 대상에 포함된 ‘학교폭력 피해 학생 보호자’였다. 이들의 98.2%가 ‘우울, 불안 등 정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으며 수면 문제를 겪은 경우도 90.8%에 달했다. 학교폭력 피해 경험 이후 자녀 돌봄과 사안처리 등으로 가정 경제의 어려움도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 학생 보호자의 75.2%가 경제적인 부담을 경험했으며 73.4%는 생업에 지장이 있었다고 답했다.

현행법상 학교폭력 피해 보호자를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 및 제도는 없다. 학교폭력예방법 보호조치의 상담 및 치료는 피해 학생에 한해 제공되기 때문이다.

학교폭력 피해 보호자인 김은정(가명) 씨는 “심신이 불안정한 아이의 회복을 돕고자 생업을 중단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도 잇따랐다”며 “심리상담, 정신과, 교육청, 경찰서 등 학교폭력 사안을 처리하기 위해 사방으로 뛰었어야 하다 보니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고 전했다.

김 상담본부장은 “자녀의 학교폭력 문제로 정서적·경제적·법률적 지원이 필요하나,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례가 상당수”라며 “피해 부모 지원체제 구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푸른나무재단이 24일 오전 개최한 ‘2024 전국 학교폭력·사이버폭력 실태조사 및 대책 발표 기자회견’ 현장의 모습. /푸른나무재단

재단은 사이버폭력의 심각성에도 주목했다. 푸른나무재단의 학교폭력 실태조사는 사이버폭력의 비중이 증가함에 따라, 지난 2020년부터 ‘학교폭력·사이버폭력 실태조사’로 연구명을 변경했다. 이번 조사 결과, 사이버폭력을 경험한 학교폭력 피해 학생 집단의 자살·자해 충동 경험률은 45.5%로 사이버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학교폭력 피해 학생집단(34.0%)보다 10%p이상 높게 나타났다.

김성민 선임연구원은 “온라인상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언어 폭력을 경험하는 사례도 있다”며 “피해 대상이 정서적으로 민감한 청소년이다 보니 신체적 폭력보다도 더 큰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재단은 사이버폭력의 대책으로 즉각적인 보호조치 및 경각심 강화와 함께 플랫폼의 역할을 강조했다. 학교폭력 관련 유해 콘텐츠를 기술적으로 차단할 수 있도록 기술을 강화하고 플랫폼 차원의 디지털 시민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 학교폭력 피해 학생 보호자의 82.5%가 ‘SNS에서 발생한 사이버폭력에 대해 플랫폼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고 답변했다.

박길성 푸른나무재단 이사장은 “사이버폭력은 플랫폼 기업의 미온적 태도로 인해 교묘한 방식으로 확산한다”며 “플랫폼 기업은 자율 규제 범위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사이버 폭력 예방에 적극 나서는 등 사회적 비판을 수용하고 책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kyuriou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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