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잘나가는 혁신 기업들, 왜 ‘비콥’ 인증에 몰릴까

딜라이트·트리플래닛 등 국내 8개 혁신기업 美 B코퍼레이션 인증
해외에서 높은 공신력 글로벌 비즈니스 원하는 기업 관심 높아져
기업 신뢰도 커지니 직원들도 자신감 향상

성공한 청년 사회적기업의 대명사로 불리는 ‘딜라이트’, 국내의 ‘퍼네이션'(Funation·재미(fun)와 기부(donation)를 합친 말)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트리플래닛’, 국내 최초의 컨설팅 전문 사회적기업 ‘임팩트스퀘어’, 해외 투자 기관으로부터 200억원 투자 유치의 대박 신화를 쓴 ‘쏘카’까지….

이 혁신기업들의 공통점은 소위 ‘잘나간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이 기업들의 이름 옆에는 모두 ‘B’ 마크가 아로새겨져 있다. 미국의 비영리단체 ‘B랩(B-LAB)’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 수여하는 ‘B코퍼레이션(B-Corporation)’ 인증 마크다. 국내의 젊은 기업가들은 왜 미국 단체에게서 기업의 신뢰도를 검증받았을까?

지난해 8월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NYNOW’ 전시에서 해외 바이어들에게 상품을 소개하는 에코준컴퍼니. /에코준컴퍼니 제공
지난해 8월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NYNOW’ 전시에서 해외 바이어들에게 상품을 소개하는 에코준컴퍼니. /에코준컴퍼니 제공

‘B코퍼레이션(이하 비콥)’ 인증은 지난 2007년부터 시작했다. 온라인 설문, 전화 인터뷰 등의 단계를 통해 지배 구조, 임직원, 고객, 지역사회와의 연계, 환경 등 다섯 가지 분야에서 180개 질문에 답하고, 80점(200점 만점) 이상이면 통과다. 지금까지 33개국에서 약 1000여개 기업이 인증 마크를 달았다. 명품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patagonia)’, 매출 3조원이 넘는 브라질의 화장품 회사 ‘네츄라(Natura)’ 등도 비콥 회원이다. 우리나라에선 지난 2012년 동북아시아 최초로 인증에 성공한 딜라이트(128점)를 시작으로, 2013년 트리플래닛(110점), 2014년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120점)·에바인(98점)·임팩트스퀘어(94점)·쏘카(102점)·에코준컴퍼니(97점), 올해 제너럴 바이오(162점) 등이 차례로 기준을 통과했다.

인증을 받는다고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건 없다. 정식 로고를 사용할 수 있고 비랩이 제공하는 무료 광고나 각종 제휴 서비스 혜택을 받는 정도다. 특히 국내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이 얻는 실익은 크지 않다. 상금이나 지원금도 없다. 반면 인증 절차는 까다롭다. 100% 영어로 진행되며, 구비해야 할 문서도 상당하다. 기업 정보 업데이트는 물론 매년 재심사까지 해야 한다. 가장 최근에 비콥 인증을 받았던 제너럴 바이오의 서정훈 대표는 “전담자 2명이서 1년을 준비했는데 해외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도 생소한 용어가 많아 애를 먹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내 기업들은 무엇을 기대한 것일까?

비콥 인증의 가장 큰 강점은 신뢰성 확보다. 초점이 투자자나 소비자가 ‘좋은 기업’을 식별하는 쪽으로 맞춰져 있다. 지원을 위한 수단인 우리나라 사회적기업 인증과 가장 다른 점이다.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는 “마치 ‘해썹'(HAC CP·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이나 로하스(LO HAS)와 같은 품질 인증”이라고 했다. “미국의 사회적경제 분야는 록펠러재단과 ‘글로벌 임팩트 인베스팅 네크워크(Global Impact Investing Network·GIIN)를 중심으로 돌아가요. 그런데 비콥 인증이 록펠러재단의 투자로 시작된 프로젝트이고, 글로벌 임팩트 인베스팅 네크워크가 투자를 결정할 때 사용하는 평가 툴이 바로 비콥의 평가 툴(GIIRS)을 토대로 만든 겁니다. 공신력이 높은 이유죠.”(도현명 대표)

지난달 25일, 케냐에서 열린 ‘글로벌 기업가정신 정상회의(GES2015)’에 참석한 김형수(맨 왼쪽) 트리플래닛 대표. /트리플래닛 제공
지난달 25일, 케냐에서 열린 ‘글로벌 기업가정신 정상회의(GES2015)’에 참석한 김형수(맨 왼쪽) 트리플래닛 대표. /트리플래닛 제공

이런 신뢰성은 기업 활동의 기회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카셰어링 업체 ‘쏘카’는 지난해 8월 비콥 인증을 받은 지 3개월 만에 180억원의 해외 투자 유치를 이뤄냈다. 국내 1호 인증을 받은 딜라이트의 김정현 대표는 “2012년에 한 달 정도 미국의 사회적경제 분야를 견학하며 수많은 기업과의 만남을 시도했는데, 대부분 ‘외국 회사가 나를 왜 만나지?’라는 반응을 보이며 거절했다”면서 “하지만 비콥 인증을 받고 재방문했을 땐 거부당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지난 4월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의 장남 션 헵번(Sean H Ferrer·56)과 진도 팽목항 인근에서 ‘세월호 기억의 숲 조성 프로젝트’를 함께했던 트리플래닛의 김형수 대표는 “처음엔 반신반의했는데, 비콥 인증 기업이란 걸 알더니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더라”고 했다.

글로벌 비즈니스를 목표로 하는 기업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도 그래서다. 천연 원료나 미생물로 세탁 세제·화장품 등을 만드는 ‘제너럴 바이오’가 올해 초 비콥 인증을 받은 것도 북미 시장 진출 준비의 일환이었다.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서정훈 대표는 “까다로운 북미 시장 바이어들의 대우가 달라지는 걸 느꼈다”며 “(예전에 비해) 훨씬 활발하게 협상 테이블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했다.

비콥 인증은 자사의 사회적 가치를 국제적으로 검증받고, 자신감과 동기부여를 높이는 역할도 한다. 스팸 차단 애플리케이션 개발사인 ‘에바인’의 윤영중 대표는 “비콥 인증을 진행하며 배운 게 많았다”고 했다. “평가 항목 중에 ‘직원들에게 깨끗한 물을 제공하는가?’라는 질문이 있었어요. 우리 실정에는 맞지 않지만, 그 질문을 통해 ‘우리 직원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게 뭘까?’라는 생각을 깊이 하게 됐죠. 인증을 준비하는 과정만으로 우리가 정말 착한 기업이 되어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국내의 구태의연한 인증 제도에 대한 돌파구로 비콥 인증을 찾는다는 지적도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의 인증 제도가 10년째 ‘고용’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젊은 층의 창의적인 가치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돈을 준다는 고용부의 인증은 외면하면서, 회비까지 내며 미국 단체에서 인증을 받으려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최태욱 기자

강미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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