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책 ‘어느 날 갑자기 내 아이가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박현경 저자
12살에 엄마를 잃었다. 삐걱거리던 청소년기를 지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했다. 선물처럼 첫 아이가 찾아왔을 땐 암울했던 과거는 모두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화창했던 봄은 잠시뿐이었다. 아이가 생후 4개월이 된 어느 날, 초점을 잃고,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이다. 박현경(58)씨와 큰아들 신우창(30)씨의 이야기다. 박씨의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같던 시간도 30년이 지났다. 이젠 웬만한 건 ‘그럴 수 있지’ 한다. 무뎌진 걸까. 아니다. 박씨는 행복을 찾는 법을 배웠다.
“늘 행복할 수는 없지만, 매일 행복한 순간은 있다.
행복에 초점을 맞추니 무탈한 하루마다 다행이고 감사한 순간이 공기처럼 넘친다.”
(책 ‘어느 날 갑자기 내 아이가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中)
최근 출판된 책 ‘어느 날 갑자기 내 아이가 장애인이 되었습니다’에는 박씨의 굴곡진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난달 24일, 박씨를 그가 근무하는 서초심리상담센터에서 만났다.
목젖이 보이도록 까르르 웃던 아이가 하루아침에 나무토막처럼 변한 1994년 6월 16일. 예방 접종 다음 날이었다. 박씨는 아직도 그날이 생생하다. 아이가 우유 먹을 시간이 지났는데도 울지 않았다. 안아보니 팔다리가 솜처럼 축 늘어진 채 눈동자는 초점 없이 가운데로 몰렸다. 연체동물처럼 변해버린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달렸다.
검사 결과, 저산소증으로 뇌 손상을 입고 시력마저 전혀 없는 상태였다. 주변에선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거라고들 했다. 하지만 7년여 동안 대학병원 간호사로 근무했었던 박씨는 직감했다. 아이의 완전한 회복은 어려울 거라는 것을.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온 그해 여름 이후, 박씨에겐 매일이 고비였다.
“친구들은 종합병원 간호사로 잘 나가고, 결혼해서 아이와 행복한데…비교를 하기 시작하니까 매일 우울했어요. 꽃을 봐도 안 예쁘고, 하늘이 날 보고 비웃는 것 같았죠.”
아이와 함께 살아갈 방법 찾다 ‘행복’ 얻어
하지만 언제까지나 좌절한 채로 있을 수는 없었다. 아이와 함께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그러다 둘째를 낳기로 결심했다. 큰아이가 동생을 보고 따라 하기도 하고, 함께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34개월 터울의 아들이 태어났다. 첫째와 둘째가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서 박씨는 행복을 찾았다. 그렇게 큰아들과 12살 차이 나는 셋째까지 출산했다.
아이를 위해 음악치료 공부를 시작했다가 평생의 직업도 얻었다. 음악치료가 효과적이라는 얘기를 듣고 사설 기관에 찾아갔는데, 고액 치료비에 놀라 발걸음을 돌린 게 시초였다. ‘그래, 내가 하자.’ 당시 박씨는 아는 음악을 모두 동원해 아이에게 노래도 불러주고 피아노도 쳐줬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서 숙명여자대학교 음악치료대학원에 대한 광고를 봤다. 가슴이 뛰었다. 제대로 배우면 아이에게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엔 집을 비우는 것이 걱정돼 포기할까도 했지만, 주변의 격려로 결국 대학원 시험에 합격했다.
주 3회씩 야간에 대학원을 다녔다. 아이 돌보미를 매번 부르기에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여섯 살이었던 둘째에게 형을 맡기고 학교에 다녀오기도 했다. 수업이 끝나면 무섭게 집으로 돌아왔다. 학교 주변 음식점이나 커피점에는 가본 적도 없다. 폭풍 같던 5학기를 마치고 2005년에 음악치료사 자격증과 함께 대학원 졸업증을 품에 안았다.
졸업 직후 대학교 임상 강사부터 시작해 벌써 20년차 전문가가 됐다. 지금은 서초심리상담센터에서 초중고 학생, 성인, 또 발달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악기 연주부터 작곡 등 음악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배운 것으로 정작 큰아이에게 음악치료를 하진 못했다. “제 말은 안 듣거든요.” 그러나 치료하면서 만난 장애 아이들을 통해 우창씨를 더 이해하게 됐다고.
“음악치료사로서 내담자의 숨은 재능을 발견해주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일에 큰 보람을 느껴요. 매일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이란 확신으로 출근하죠. 우창이 덕분에 꿈을 이뤘고, 가치 있는 일을 하게 됐습니다.”
반복되는 문제, 한탄보단 ‘해결 방법’ 찾게 돼
책을 출판할 수 있게 된 것도 아이 덕분이다. 처음엔 음악치료 얘기를 하고 싶어서 출판사에 찾아갔는데, 박 씨와 우창씨의 이야기를 먼저 출판할 것을 제안받았다. 얼떨결에 30년의 세월을 세상에 전부 공개하게 된 셈이다.
박씨는 “책 곳곳에 아이를 다그친 모든 시간을 반성하며 이젠 이해하겠다고 선포했는데, 글과 행동이 다른 것을 견딜 수 없어 화가 줄었다”며 유익이 크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최근 일화를 털어놨다. 얼마 전, 우창씨가 또다시 텔레비전 액정을 깨뜨렸다. 우창씨는 어릴 때부터 텔레비전 속 AI(지니)와 대화하는 걸 좋아했는데, 문제는 지니가 신통치 않은 답변을 주면 화가 나 리모컨으로 텔레비전 액정을 치다 고장 내는 것이었다. 비싼 수리비를 들여 고쳐도 또다시 고장내기를 수차례. 최근에도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아이를 추궁했을 터.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AI가 제대로 못 알아 드니까 아이도 화가 났겠지’라며 올라오는 감정을 잠재우고 ‘방법’을 고심했다. 그러다 인터넷에 텔레비전 액정에 설치할 수 있는 강화유리를 찾았다. 3일 뒤, 강화유리가 설치됐고, 이후로 지금까지 모든 것이 무사하다.
“제가 미연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안 하고 아이에게 ‘텔레비전 건드리지 마’라며 무리한 요구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또 아이와 평생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깨닫게 됐습니다.”
박씨는 책을 통해 장애를 가진 아이의 부모뿐만 아니라 모든 고난 속에 있는 이들, 혹은 고난을 지나온 이들, 앞으로 지나갈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또 장애를 몰랐던 사람들에게는 장애의 일부 특성을 이해하게 되고 생각의 전환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서른 살인 우창씨는 여전히 혼자 옷을 입고 씻지 못하는 어린 아이와 같다. 크고 작은 어려움은 매일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박씨의 시선과 태도가 바뀌었다.
“살면서 장애 자녀를 둔 가족이 아니어도 누구나 어려움을 겪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견뎌내지는 거죠. 그저 ‘내일도 기분이 안 좋으면 빨간색 립스틱을 발라야지’라고 생각할 뿐이에요.”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oil_lin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