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10분. 개점 시간이 20분 남았는데도 10여명이 줄을 서 있다. 문을 열자마자 매장 안으로 우르르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와 매대에 놓인 물건을 집어 간다. “매일 새로운 물건이 들어오니까 보물찾기하는 기분으로 와요.”
전국 33개 매장에서 400여명의 장애인이 일하는 ‘이곳’은 기부받은 상품을 판매한 수익으로 운영하는 장애인직업재활시설, 밀알복지재단의 ‘굿윌스토어’다.
굿윌스토어에서는 발달장애 직원이 함께 근무한다. 2011년도에 입사해 13년째 근무 중인 영업팀 윤승현(37)씨도 그중 하나다. 윤 씨는 “일하면서 사람 상대하는 법도 배우고 옷도 정리할 수 있게 됐다”라며 “직원과 대화가 잘 통하고 내 말을 잘 알아들어 주어 고맙다”라고 말했다.
창고에서 생활용품을 분류하는 작업을 하고 있던 이관태(34)씨는 “직원 복지로 단체 워크숍을 통해 부산에 놀러 가 사진을 찍은 게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허경태 굿윌스토어 밀알송파점 국장은 “굿윌스토어는 장애인직업재활시설 계의 ‘삼성’이라 불린다”고 전했다.
2018년도까지만 해도 전국 5개였던 굿윌스토어 매장은 올해에만 열 군데에 새 지점을 연다. 지난해 12월에는 우리금융그룹미래재단과 협약을 맺어 10년간 300억 원을 지원받기로 했다. 올해에는 CJ제일제당과 연간 50억원 규모의 식품을 기부받는 협약도 체결했다. 지금은 바야흐로 굿윌스토어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굿윌스토어는 어떻게 ‘전성기’를 맞이했을까.
사회복지를 비즈니스 관점으로 전환해 지속가능성 높였다
핵심 비결은 ‘비즈니스 관점’으로의 전환에 있었다. 발달장애인의 일자리를 마련해 전 생애주기를 책임지기 위해서는 ‘지속가능성’이 중요했다. 2019년 3월, 밀알복지재단은 굿윌본부를 만들었다. 한상욱 밀알복지재단 굿윌본부 총괄본부장은 “사회복지와 비즈니스 모델을 결합해 이익을 남겨 발달장애인의 일자리를 만드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전환의 시작은 물류를 통합하는 것이었다. 한 본부장은 “매장이 있어야 기증을 많이 받으니, 본부를 중심으로 전국에 매장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라며 “전국 매장의 기증량 등 전체 사업 데이터를 관리할 수 있도록 물류를 통합했다”고 전했다. 기존에는 개별 매장에서만 물품을 판매한 뒤 남은 것을 버렸다면, 물류 통합 이후에는 재고를 모은 뒤 나눠 판매해 폐기량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2021년 물류 통합을 시작한 뒤 기증품 수요가 늘어난 밀알복지재단은 기업에 직접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장애 시설 후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들은 굿윌스토어 매장으로 초대하기도 했다. ‘장애인 일자리 지원은 실체가 없다’고 말했던 한 기업의 담당자는 현장을 보고 나서 사과의 말을 전하며 장기간의 지원 협약까지 체결했다. 자원순환과 함께 발달 장애인을 고용하는 굿윌스토어 모델은 ESG 열풍과 함께 기업 후원의 물꼬를 텄다.
오솔길 밀알복지재단 대외홍보팀장은 “당연한 일이지만, 장애인 직원 모두 최저임금 이상의 월급을 받고 성과에 따라 승진을 한다”며 “각 직원에게 맞는 직무 배치가 이뤄지며, 장애나 업무 특성에 맞게 쉬는 시간도 주어진다”고 설명했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진 것도 성장 요인 중 하나로 꼽는다. 채민혜 굿윌본부 간사는 “홈페이지 유입이 작년에 비해 두 배가량 늘어 전성기를 체감한다”라며 “장애인이 일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게 돕는다는 굿윌스토어의 가치에 공감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 성장 요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영리 기업의 유통 노하우 이식… 3년만에 기증 물품도 2배 성장
굿윌스토어 기증 물품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20년 1010만점에서 2023년 2100만점으로 3년만에 2배 가량 늘었다. 구매 고객도 2020년 59만명에서 2021년 80만명, 2022년 123만명, 지난해는 184만명으로 성장하고 있다.
영리 기업에서 전문성을 쌓은 인재들의 경험도 유효했다. 특히 굿윌스토어 현장의 이랜드그룹 출신은 37명, 약 15%를 차지한다. 유통 전문 기업의 노하우가 현장에 이식된 것. 한 본부장은 “과거 식품사업부 대표이사 등을 담당한 전문가가 굿윌스토어에서 점장 및 영업팀장, 물류팀장부터 기증 개발까지 핵심 역할과 임무를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본부장도 이랜드 의류 브랜드 본부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굿윌스토어 한 매장에는 평균 약 2만점의 상품이 진열돼있다. 고객들 사이에서는 ‘오늘 어떤 상품이 나올지 모른다’는 것도 인기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2만개의 품목을 진열·표준화하고 고객을 관리하는 것도 ‘노하우’가 있어 가능했다. 한 본부장은 CJ에서 식품 기증을 받을 때도 “우리는 유통기한이 일주일 남아도 팔 수 있다”며 “전부 유통 경험이 있어 식품 관리를 철저하게 할 수 있다”며 포부를 밝혔다고 했다.
지난 20일, 기자가 직접 굿윌스토어 밀알송파점에 방문했을 때 처음 든 인상도 ‘대형 의류 매장’ 같다는 것이었다. 매장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의류 품목이 색깔별로 정돈되어 있어 깔끔했다. 요일마다 ‘색상 할인’ 행사를 하는 아이디어도 눈에 띄었다. 오솔길 밀알복지재단 대외홍보팀장은 “이랜드 출신의 기획”이라고 귀띔했다.
의류뿐만 아니라 기증 물품으로 식품 품목을 개발하면서 매일 찾는 고객도 늘었다. 당시 한 본부장은 “CJ, 오뚜기 등 식품 관련 주요 기업을 직접 찾아갔다”고 전했다. 적극적인 두드림 끝에 기업 후원자를 더 확보하고, 임직원 기증 캠페인, 공간 기부 등 다양한 협력까지 이어졌다.
굿윌스토어의 전성기를 실감하느냐는 기자의 말에 한 본부장은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전했다. 굿윌스토어의 목표는 전국 100개 이상의 매장을 만들어 발달장애인 일자리 2000개를 만드는 것이다. 한 본부장은 “발달장애직원이 만 60세 정년 은퇴한 뒤까지, 생애 마무리까지 책임지는 것이 최종 목표”라며 “더 많은 기업과 사람들이 일자리가 필요한 장애인에게 일할 기회를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kyuriou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