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은 플라스틱과 함께한다. 현대 사회는 ‘플라스틱’ 시대라는 말도 나온다. 우리나라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은 98.2kg으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미국(97.7kg)보다 높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로렌스버클리 국립연수가 2024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플라스틱 생산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이 2019년 2.24Gt(기가톤)으로 추산됐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으로 여겨진 플라스틱이 지금은 인류와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오는 11월, ‘플라스틱 국제협약을 제정하기 위한 마지막 회의가 부산에서 열린다. 전문가들은 지난 2022년부터 4차례에 걸친 회의의 종착지로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협약이 마련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플라스틱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지금, 한국 기업들은 얼마나 준비됐을까. 지난 12일, 비즈니스포스트와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 공동 개최한 ‘2024 기후경쟁력포럼’에서 한국 기업들의 순환경제 대응 전략과 플라스틱 문제 해법에 대한 논의의 장이 펼쳐졌다.
삼성전자는 2022년 발표한 ‘신(新)환경경영전략’에 따라 자원순환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당시 삼성전자는 ‘2050년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2030년까지 총 7조원 이상의 투자 계획을 밝혔다. 삼성전자는 폐어망과 페트병 등 폐기물로 만든 친환경 플라스틱 소재를 ‘갤럭시 S22’와 ‘Tab S8’, ‘갤럭시Z 폴더블 폰’, ‘버즈2 프로’ 등 다양한 제품에 적용하고 있다. 올해는 ‘S24 시리즈’ 판매로 약 100톤의 재활용 플라스틱을 사용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약 1000만 개의 500ml 페트병과 동일한 양이다.
양경모 삼성전자 글로벌 EHS센터 순환경제연구소 랩장은 “재활용 산업 활성화를 위해 순환경제는 핵심”이라며 “안정적이고 고품질의 원료를 확보하기 위해 전체 밸류 체인과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품 환경 관련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제품 경쟁력을 높여 순환경제 생태계에 동참하겠다”라고 말했다.
플라스틱 사용을 최소화하고,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없으면 재활용한다. LG전자 순환경제 전략의 원칙이다. 홍성민 LG전자 ESG전략실장은 “LG전자가 만드는 거의 모든 제품은 50%가 플라스틱, 50%가 금속이다”며 “비교적 금속은 재활용하기 쉽지만, 플라스틱은 어렵기 때문에 대체 방안과 처리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포장재에 사용되는 플라스틱을 대체하기 위해 펄프몰드(완충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제품에 맞게 종이를 제작해 만든 것)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지난해 12월에는 업계 최초로 20kg 이상 완충 가능한 펄프몰드를 개발해 공기청정기 포장에 사용하고 있다.
LG화학은 에너지 및 소재의 친환경 전환에 방점을 둔다. 기존에는 원유에서 나온 납사 혹은 화석에너지를 통해 생산된 전기로 제품을 생산했다면, 앞으로는 바이오 기반으로 생산된 납사로 중간체 원료를 만들고,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생산된 전기를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김용 LG화학 Recycle전략팀장은 “현재 팜유, 대두유 같은 바이오 원료로 수소처리를 해 납사를 생산했다면 앞으로는 폐식용유, 팜유 부산물 등 쓰고 남은 원료를 통해 생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LG화학은 옥수수나 사탕수수를 발효시켜 얻은 젖산으로 생분해성 바이오 플라스틱 생산도 추진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미생물발효 기술을 토대로 개발한 생분해성 플라스틱 소재 PHA를 소개했다. 문상권 CJ제일제당 BIO BMS사업운영담당 부장은 “PHA는 인체에 독성이 없고 자연 상태에서 생분해가 되기 때문에 미세 플라스틱으로부터 자유롭다”면서 “PHA와 같은 친환경 소재를 통해 탄소중립과 플라스틱 순환경제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CJ제일제당은 PHA를 2021년 식품 포장재 생산에 도입했고, 지난 1월부터 PHA를 적용한 비닐 포장재를 개발해 올리브영의 즉시배송 서비스인 ‘오늘드림’ 포장에 사용하고 있다. 또한, 지난 4월에는 친환경 제품 전문 디자인 기업인 ‘리벨롭’과 PHA를 활용한 칫솔을 공동 개발했다.
이날 포럼에서 김영호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이사장은 “플라스틱 협약이 체결되면 많은 산업이 규제 영향권에 편입돼 기업의 대응 방식이 미래 경쟁력을 좌지우지할 것”이라면서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순환경제의 기틀을 마련하고 탈(脫) 플라스틱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조기용 더나은미래 기자 excusem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