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우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기업·국가 의존도 높은 국내 비영리조직… 역량 강화 및 성장 돕는 전문 기관 없어
“비영리 조직을 지원하는 조직이 훨씬 더 많아져야 한다. 아이러니하지만 정부나 기업에서 나서 비영리 지원 조직에 대한 고민을 해줘야 한다.”
한동우<사진>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말이다. 한 교수는 ‘비영리 조직’을 전공한 국내 몇 안 되는 비영리 조직 전문가 다. 비영리 조직이 지속 가능하려면 어때야 할까.
―현재 한국 비영리 조직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보나.
“비영리 섹터의 핵심은 자발성이다. 그러나 한국의 비영리 조직은 시장과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 후원 구조가 취약해 재원을 끌어들이기 어렵다보니 정부 기금이나 기업에 의존한다. 지속 가능성이 굉장히 낮다. 자발성 관점에서도 비영리조직의 정체성을 위협한다.”
―이유가 무엇인가.
“비영리 조직은 많은데 비영리조직을 지원하는 구조가 없다. 미국의 경우, 비영리 조직을 지원하고 역량강화를 돕는 조직들이 굉장히 많다. 국내엔 거의 없다. 서울시 NPO지원센터 정도다. 사회공헌정보센터가 있긴 하지만 정보센터로서의 기능이 부족하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역시 역량 강화는커녕 사업 영수증 확인하기에 급급하다. 역량강화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 해도 굉장히 산발적으로 이뤄진다. 조직의 역량은 커지지 않으면서 사업비만 지원받다보니, 지금으로선 이 지원금 없어지면 망한다. 비영리 조직이 투명하지 않다고 하는데 그것 역시도 의지가 아닌 ‘능력의 문제’라고 본다. 투명해지고 싶어도 ‘투명할 능력’이 없는 거다. 그런 역량을 누군가 계속해서 키워줘야 하는데 그런 조직이 없다.”
―한국 비영리가 지나 온 맥락과도 연관이 있나.
“1987년 이후 많은 비영리조직이 생겼다. 큰 한쪽 물줄기는 소위 ‘운동단체’였지만 이후 투쟁 대상이 없어지면서, 여성, 환경, 복지 등 다양한 이슈에 집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국가가 전혀 관심 없을 때라 굉장히 바람직한 일이었다. 실제로 우리나라 비영리조직에서 국가 제도를 견인하는 역할을 많이 했다. 비영리조직이 문제를 제기하고 애드버커시(advocacy·옹호) 활동을 열심히 하면, 뒤늦게 정부가 제도화시키는 식이었다. 대표적인 게 지역아동센터나 다문화 문제다.
이제는 조직 내에 다양한 세대가 섞여 있다. 1세대는 굉장히 미션 지향적이지만 그 가치가 굉장히 관념적이다. 젊은 세대는 다르다. 운동의 문제이기 전에 직장의 문제인 이들도 많다. 가치 충돌에서 오는 내부 어려움도 있다. 또 조직 자체의 경영 기법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 대부분의 조직이 팀 체제로 운영되는데, 사실상 내부는 과업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부서제 형태로 경직돼 있다. 조직 내 권한 위임구조도 애매해, 소위 조직 내부 ‘시어머니’가 많아 지치는 경우도 많다. 사실 개개인은 학습 욕구도 크고, 가치 지향성도 뚜렷해 비영리의 핵심적인 장점을 많이 갖고 있음에도, 기술적인 면이 따라주지 않다보니 지속 가능성도 낮고 인기를 많이 잃었다.”
―최근 비영리조직 101곳을 진단하는 연구를 했는데, 그 결과가 어땠는지 궁금하다.
“‘미션과 비전’ 관련 부분이 재미있다. 우리 조직의 정체성과 관련해서 ‘미션 비전이 얼마나 뚜렷하게 갖춰져 있느냐’는 질문이 4점 만점에 평균 3.37로 나왔다. 미션은 뚜렷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2006년부터 10년째 매년 ‘비영리 조직론’을 강의하는데, 매년 첫 시간에 내주는 과제는 똑같다. 임의로 선정한 비영리기관 A의 미션을 읽고, 그게 그 조직에서 하는 일이나 사업과 부합하는지 판단해 보라는 것이다. 미션만 읽으면 학생들 반응은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한다. 미션 문구가 그만큼 관념적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 같이 아름다운 말로만 구성된 문장일 뿐, 실질적인 힘이 없다. 지식공유 플랫폼인 테드(TED)의 미션은 뭘까? 단 두 글자, ‘Spread Idea(생각을 퍼뜨려라)’다. 짧지만 분명하다. 어떤 연사를 섭외할지, 어떤 장소로 결정할지, 강연의 분위기가 어때야 할지 등 수많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모든 기준은 ‘생각을 퍼뜨리는 일’로 수렴한다. 지금은 미션 자체가 단체를 하나로 엮어내는 기능을 못하고 취약한 곳들이 많다.”
―비영리조직 지원기관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모든 기업이 나쁜 게 아닌 것처럼 모든 시민단체가 좋은 게 아니다. 잘하고 좋은 비영리조직들을 키워서 정부나 기업이 하지 못하는 일을 ‘잘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정부나 기업이 반드시 해줘야 하는 역할이다. 그게 가능하려면, 비영리 조직 역량 키우는 것을 지원하는 정책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 ‘돈 줄 테니 사업하고 영수증 가져와라’식으로 계속해선 답이 없다. 기업이나 정부 사이드에서 비영리 역량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진짜 파트너로 삼으려면 키워야 하고 클 기회를 줘야 한다. 삼성전자만의 사회공헌 예산이 연간 6000억원쯤 된다는데, 그중 100억원만 써도 굉장히 좋은 정보센터나 도서관 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