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토)

기후위기 대응 아이디어, 현실이 되다

숲과나눔 ‘카카오뱅크 에코실험실’ 결과공유회
20개 팀 108명, 환경문제 해결 아이디어 제안

기후 우울증 극복을 위한 스탠드업 코미디쇼, 폐어망으로 만든 고양이 해먹, 못난이 농산물로 수제 맥주 레시피 개발….

‘카카오뱅크 에코실험실’ 프로젝트에서는 지난 6개월 간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톡톡 튀는 실험들이 진행됐다. 에코실험실은 카카오뱅크가 후원하고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원, 재단법인 숲과나눔이 주관해 올해 처음 시행한 프로젝트다. 지난 5월 선발된 청년 108명은 20팀으로 나뉘어 각자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다. 활동 지역은 서울, 강원, 제주 등 전국 12개 지역으로 도시, 농촌, 바다 등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이들의 활동 주제는 크게 ▲기후변화 ▲자원순환 ▲생물다양성 ▲환경 교육 등 네 개로 구분됐다. 각 팀에는 활동비 300만원과 전문가 멘토링 등이 제공됐다.

'카카오뱅크 에코실험실 결과공유회' 참가자들. /임화승 C영상미디어 기자
25일 서울 강남구 우상향라운지에서 열린 ‘카카오뱅크 에코실험실 결과공유회’ 참가자들. 이날 청년들의 기후위기 대응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들이 소개됐다. /임화승 C영상미디어 기자

“환경 운동, 재밌게 합시다!”

“산불 취약 지역인 강원 고성, 해수면이 높아지고 있는 제주 서귀포에서 자생하는 토종 식물 종자 9종, 3950개를 채집했습니다. 이 종자들은 모두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기증할 예정입니다.”

지난 25일 서울 강남구 우상향 라운지에서 열린 에코실험실 결과공유회장. 첫 번째 발표를 맡은 ‘K-SEED’는 기후위기 시대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종자수집에 나선 팀이다. 김채은씨 등 한경국립대 식물생명환경학과 학생 4명이 모였다. 산불이 이미 발생한 적 있거나, 발생 가능성이 큰 건조하고 기온이 높은 지역을 선정해 생태 조사를 하기로 했다. 최종적으로 강원 고성 지역이 뽑혔다. 팀원들은 지난 7월, 2박 3일 동안 고성의 산림을 돌아다니며 닭의장풀, 애기땅빈대 등 토종식물을 채집했다. 이달 2일에는 3박 4일 동안 제주도를 방문해 해안가에 근접해 잠길 위험이 있는 종들을 채집했다. 문주란, 순비기나무, 담팔수 등을 수집했다. 종자는 물과 알코올을 1대1 비율로 섞은 용액에 소독하고 건조한 후 저온에 저장해뒀다. 김채은씨는 “앞으로 ‘시드줍깅(Seed+plogging)’이 새로운 문화가 됐으면 좋겠다”며 “2030년까지 종자 500종을 모아 추가로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기증해 종자 보존에 이바지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카카오뱅크 에코실험실'에서는 생물다양성 보존, 기후위기 대응, 쓰레기 줄이기 등을 주제로 한 프로젝트 20개 진행됐다. /임화승 C영상미디어 기자
‘카카오뱅크 에코실험실’에서는 생물다양성 보존, 기후위기 대응, 쓰레기 줄이기 등을 주제로 한 프로젝트 20개 진행됐다. /임화승 C영상미디어 기자

‘水요일’ 팀 프로젝트는 ‘왜 서울 한복판인 강남역에서 매년 침수가 일어날까?’ 궁금증에서 시작됐다. 서울시에 문의했더니 관계자로부터 “기후변화로 강수량이 급격히 증가했고, 배수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비가 내린다”는 답변을 받았다. 水요일 팀은 도시 내 물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LID 저영향 개발 기법’을 적용해보기로 했다. 팀원들은 강남역 인근에서 두 달 동안 네 차례의 현장조사를 거쳐 해결 방안으로 ▲빗물이 스며드는 소재로 만든 생태보행로 설치 ▲흡연 부스 리모델링 ▲시민에게 막힌 빗물받이 신고 광고 버스 정류장에 설치 등을 고안했다. 이 같은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해 강남구청과 국민신문고에 제출했고, 강남구청으로부터 “추후 도시 물순환 체계인 ‘저영향개발(LID)’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때 자료로 활용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팀원 이수정씨는 “기후위기로 강우량이 늘면서 도시 침수 문제가 다른 지역에서도 심각해질 수 있지만, 당장 모든 도시 인프라를 재설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강남을 넘어 전국으로 아이디어 적용 범위를 확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밖에 ▲지지배(제로웨이스트 공직선거법 개정안 입법 청원) ▲클린-잇(곤충 ‘동애등에’를 활용한 친환경 음식물쓰레기 처리 장치 개발) ▲범고래단(‘기후 디스토피아’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담은 영상 시리즈 제작) ▲울릉소셜클럽(울릉도 물류 운송에 사용된 아이스박스용 스티로폼 수거, 재사용 방안 제시)도 프로젝트 결과를 소개했다.

'카카오뱅크 에코실험실' 참가자들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어려웠던 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임화승 C영상미디어 기자
카카오뱅크 에코실험실 참가자들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어려웠던 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임화승 C영상미디어 기자

에코미디팀의 진솔씨는 기후 우울증을 주제로 스탠드업 코미디 ‘기후위기로 웃겨볼게: 진정한 에코실험’ 공연을 펼쳤다. “제가 환경 얘기를 자주 하니까 사람들이 저한테 자꾸 비건이냐고 물어봐요. 심지어 육회를 먹고 있을 때도요! 세상이 너는 ‘비건이라야 한다’고 비건라이팅(비건+가스라이팅)하는 것 같아요. 늘 혼나는 느낌이죠. 우리 모두 너무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지 말고 지속가능한 환경 운동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웃으면서요.”

10분 남짓한 시간, 진솔씨가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행사장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에코미디팀은 스탠드업 코미디를 준비하던 청년 4명이 모여 구성한 팀이다. 프로젝트 기간에 다섯 번의 워크숍을 하면서 서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발전시켰다. 지난 9월 16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의 한 공연장에서 첫 번째 공연을 했다. 반응이 좋아 두 달 후 앵콜 공연도 열었다. 총 140여 명의 관객이 쇼를 관람했다. 인스타그램 릴스 영상 조회 수는 총 7만회에 달한다. 진솔씨는 “관객들에게 ‘기후위기에 너무 큰 죄책감을 갖지 말고, 오늘만은 깔깔 웃고 마음 편하게 갔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에코미디팀은 전국 투어를 이어갈 예정이다.

숲과나눔 '카카오뱅크 에코실험실' 참가팀 현황2

곤충, 술 찌꺼기, 못난이 농산물만 있다면

13개 참가팀은 결과공유회 현장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못난이 농산물로 수제 맥주 레시피를 개발한 ‘어글리브루어리’가 가장 주목을 받았다. 어글리브루어리는 맛에는 문제없지만 외관의 흠집 등으로 상품성이 떨어지는 멜론, 복숭아, 키위로 수제 맥주를 만든다. 지난 10월 시음회에서 참석자 50명에게 못난이 과일 인식을 조사한 결과 못난이 과일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5%에서 71%로 높아졌다. 팀원 강솔빈씨는 “4개월 동안 열심히 만든 맥주를 환경운동을 열정적으로 하고 계신 분들께 선보일 수 있어 의미 있는 자리였다”며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앞으로 어떻게 시장성을 확보해야 할지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글리브루어리'가 못난이 농산물로 만든 수제맥주를 시음하는 참가자들. /임화승 C영상미디어 기자
‘어글리브루어리’가 못난이 농산물로 만든 수제맥주를 시음하는 참가자들. /임화승 C영상미디어 기자

‘시리얼(SEAREAL)’팀은 폐어망으로 만든 고양이 그물을 전시했다. 낚시를 좋아하는 부산 청년 8명이 부둣가에 버려진 그물 더미를 보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어민들에게 물어보니 낡은 그물을 수협에 반납하면 보증금을 환급해주는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번거롭고 귀찮아서 바다에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물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고양이를 위한 해먹을 제작하기로 했다. 해양공단에서 무상으로 제공받은 그물을 세척한 후 염색을 하면 별도의 가공 과정 없이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시리얼은 지난 9월 16일 부산 송정해수욕장에서 열린 국제 연안정화의 날 행사에서 시제품을 선보였다. 배준수씨는 “자식이나 다름없는 고양이를 위한 제품을 바다에 빠졌던 그물로 만들었다고 하면 사람들이 좋아할까 걱정이 됐는데, 냄새도 안 나고 친환경적이라서 좋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라서 놀랐다”고 말했다. 시리얼은 지금까지 총 150kg의 폐그물을 감축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좋았던 점과 어려웠던 점 등을 공유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양조부산물인 술지게미로 반려동물 간식을 만드는 ‘삐오’의 안재현씨는 “술지게미는 막걸리를 만들고 남은 음식물찌꺼기라는 인식 때문에 ‘먹어도 된다’고 설득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동애등에를 활용한 음식물쓰레기 처리 장치를 개발한 ‘클린-잇’의 박예원씨도 “거주공간인 아파트에서 음식물찌꺼기 처리를 위해 곤충을 기른다는 것도 인식을 바꾸기 위한 설득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선은 머릿속에만 있던 아이디어가 실현돼서 기쁘다”며 “전자제품을 제작하려다 보니까 회로 설계까지 직접 해야 했는데, 숲과나눔에서 연결해준 전문가에게 멘토링을 받으면서 실물을 제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윤정백 카카오뱅크 ESG팀장은 “청년들이 생활 속에서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아내 매우 인상적이었다”며 “몇몇 프로젝트는 바로 상용화 가능해 보일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고 말했다. 이어 “지구를 지키려는 노력이 일상에서 확산할 때 우리가 지향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며 “에코실험실이 지구 환경을 지키는, 청년들의 의미 있는 활동의 시작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장재연 숲과나눔 이사장은 “어떤 시도든 첫 단계에서는 ‘실패’가 없다”며 “아이디어를 실험해보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수정할 부분 등을 계속 고심하다 보면 성공 가능성이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숲과나눔 프로그램에 참가한 청년들이 벌써 교수, 연구자가 되어 환경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프로그램에서 만난 청년들도 앞으로 더 큰 활약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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