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로리 포스터 세계자원봉사협의회 기업전략 디렉터
자원봉사에도 ‘기브앤겟’ 메커니즘 필요
봉사 프로그램 유지하는 건 젊은 직원
경영진 지원 더해져야 이상적인 구조 완성
“기업의 자원봉사를 홍보하면 ‘보여주기식’이라는 꼬리표가 붙습니다. 그런데 조금은 자랑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원봉사에 조직력을 갖춘 기업이 뛰어들어서 무엇을,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 사회에 어떤 문제가 대응이 시급한지도 알릴 수 있습니다.”
로리 포스터 세계자원봉사협의회(IAVE) 기업전략 디렉터는 글로벌 기업의 자원봉사 트렌드를 분석하는 전문가다. 그는 지난 3년간 글로벌 기업 90곳과 비영리단체 125곳의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연구했다. 특히 기업 임원 800명을 인터뷰하면서 운영 전략도 분석했다. 그렇게 그가 내린 결론은 “기업 자원봉사를 적극 자랑하라”였다.
서울에서 열린 글로벌 자원봉사 포럼 ‘기업자원봉사 글로벌 아젠다’에 참석차 방한한 그를 17일 서울 강남 포스코센터 만났다. “이번 3년 연구에서 유독 협조가 안 되는 지역이 있었어요. 바로 아프리카였죠. 100곳 넘는 아프리카 기업에 설문조사 문항을 전달했지만, 회신 온 기업은 5곳이었어요. 선행을 굳이 드러내지 않으려는 아프리카의 문화 탓도 있지만 좋은 사례는 다른 기업에 널리 공유돼야 합니다.”
성과가 크면 비판도 사라진다
-전 세계 90개 기업 프로그램을 분석했다. 이번 연구 보고서에 한국 기업도 포함됐나.
“큰 작업이었다. 한국 기업은 CJ, 포스코, 메트라이프생명보험 등 세 곳이 포함됐다. 사회변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목표가 분명한 프로그램이 많아 인상적이었다. 기업의 자원봉사가 사회에 얼마나 큰 임팩트를 만들 수 있는지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눈에 띄는 사례가 있었나.
“직원들의 재능을 봉사 프로그램으로 연결한 포스코 사례가 기억에 남는다.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는 직원들이 모여 바닷속 폐기물을 수거하는 활동이었다.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14년이나 이어졌다는 점도 놀라웠다. CJ에서 진행하는 이주민과 김치를 담그는 프로그램도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주민이 그 나라 문화에 적응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은 한국 외에 찾아보기 어렵다. 일자리 지원 같은 목표가 명확한 활동과 달리 이주민의 문화 적응이라는 아주 미묘한 사회문제를 잘 포착한 사례다. 한국자원봉사문화 같은 비영리단체를 중심으로 20년 동안 기업들이 자원봉사 활성화를 위해 협력해왔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는 기업 봉사활동에 대해 ‘보여주기식’이라는 인식도 있다.
“어려운 문제다. 여러 나라에서 그런 목소리가 있다. 일례로 애플 직원들은 자원봉사할 때 애플에서 나왔다는 걸 알리지 않는다. 물론 단체 티셔츠를 맞추거나, 봉사활동한 것을 기사로 내면서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기업도 있다. 개인적으로 기업이 자신들의 봉사활동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본다. 기업이 어떤 사회문제에 주목하고 있는지, 자원봉사를 통해 무엇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리면 다른 기업이나 잠재적인 봉사자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기업들은 서로의 활동을 굉장히 궁금해한다. 어제도 한 글로벌 기업의 CSR 담당자가 요즘 다른 기업은 어떤 프로젝트를 하는지 전화로 물어왔다. IAVE가 글로벌 기업의 자원봉사 활동을 조사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기업은 모든 활동의 성과를 측정한다. 그런데 자원봉사는 성과 측정이 까다로운 분야인데.
“가장 중요한 건 ‘임팩트 측정’이다. 아직 소수의 기업만 시도하고 있는데, 단순 보여주기식 봉사인지 아닌지를 떠나 실제로 자원봉사 활동이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확인해야 한다. 측정은 단순히 총 몇 시간이 투입됐는지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직원의 시간은 시간대로 투입했는데, 성과 없는 프로그램도 있다. 수혜자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면 할 필요가 없다. 기업에서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구직에 도움 주는 직원 봉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임팩트가 크다. 하지만 다른 자원봉사자들이 얼마 전 칠하고 간 벽화 위에 또 페인트칠을 하는 건 아무 의미 없다.”
-봉사에 강제로 동원된다고 느끼는 직원도 있을 수 있다.
“약간의 강요에 의해 봉사를 하는 것이 꼭 나쁘지 않다고 본다. 한 번 경험하게 한 다음 선택의 자유를 주면 된다. 봉사를 한 번이라도 해본 것과 안 해본 것은 차이가 크다. 아들이 미국 워싱턴 D.C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이 학교는 입학 첫날 꼭 온종일 봉사를 해야 한다. 그 후엔 선택에 맡긴다. 아들은 이어서 안하더라(웃음). 그러다 졸업 후에 저소득 가정의 여자 아이들이 축구를 배울 수 있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었다. 직업은 따로 있고 부업으로 친구 세 명과 단체를 운영한다. 하루 체험을 통해 자원봉사 문화와 가치를 경험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개인 자원봉사로 해결하는 문제도 많다.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문제는 기후위기, 불평등, 고령화 등 다양하다. 기업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 기업 자원봉사는 개인 봉사와 다르다. 기업엔 리더가 있고 조직력이 있다. 다양한 시설과 자금, 마케팅 능력, 직원 개개인의 역량 등을 발휘해 다른 사람을 더 조직적으로 도울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팀에서는 특정 문제가 왜 빨리 해결돼야 하는지 효과적으로 홍보도 할 수 있다. 기업 자원봉사를 더 활성화할 길을 찾아야 한다.”
-자발적인 참여를 지속적으로 이끌어낼 방법은 없을까.
“자원봉사에도 ‘주고받기(give and get)’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직원의 시간과 노력이 자원봉사에 투입되는 것도 있지만 반드시 얻어가는 부분도 있도록 해야한다. 예를 들면 유럽의 한 에너지 회사에서는 참여할 수 있는 자원봉사 리스트를 직원들에게 공개한다. 각자 원하는 활동을 골라 참가하면 된다. 봉사가 끝나면 인사팀에서 증명서를 준다. 이 직원이 어떤 기술을 이용해 어떤 활동을 했는지 적혀 있다. 자원봉사를 자신의 포트폴리오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계속되는 비대면 트렌드
-기업들의 자원봉사 프로그램이 비슷비슷하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글로벌 기업들이 정보를 나누면서 아이디어를 떠올릴 자리가 마련돼야 한다. IAVE는 글로벌 기업 자원봉사협의회(GCVC)도 운영한다. 지역사회를 위한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약속한 글로벌 기업의 리더십 네트워크다. 또 1970년부터 2년마다 ‘세계 자원봉사 콘퍼런스(IAVE World Volunteer Conference)’를 열고 있다. 매년 약 80국 기업 관계자가 참가해 진행 중인 프로그램과 고민 등을 공유한다.”
-최근 트렌드는 어떤가.
“팬데믹은 끝났지만, 비대면 자원봉사는 여전히 활발하다. 덕분에 팬데믹 이전이라면 자원봉사에 참여하지 않았을 직원들도 꾸준히 봉사할 수 있게 됐다. 집에서 아이를 돌봐야 하거나, 신체장애가 있는 경우 쉽게 비대면으로 참여한다. 구글 직원들은 아동용 그림책을 다양한 언어로 번역하는 봉사를 계속 하고 있다. 휠체어로 방문 가능한 장소 지도를 작성하는 ‘맵아손(mapathon)’ 활동, 커리어 상담, 통역 봉사 등도 계속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고민이 있다면.
“지난 3년 동안 기업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주체가 늘었다. 임직원 외에도 친구, 가족 등이 함께 팬데믹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지역사회 구성원을 돕기 위해 봉사에 참여했다. 이 규모를 앞으로도 유지할 방안을 고민 중이다. 한편으로는 팬데믹으로 자원봉사 프로그램 수가 줄기도 했다. 대면 프로그램이 많이 폐지됐다. 팬데믹은 끝났지만 다시 시작하지 않는 기업도 많다. 이 활동을 다시 재개하도록 하는 것이 남은 과제다.”
-앞으로 기업 자원봉사는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까.
“팬데믹 이전과 마찬가지다. 기업 봉사활동은 결국 지역사회와 임직원, 그리고 기업을 향해야 한다. 기업은 좋은 평판을 얻고, 직원은 자원봉사를 통해 새로운 기량을 얻고, 지역사회 구성원의 삶의 질은 높아질 수 있다. 청년, 장애인, 고령자 등 모든 사람에게 이익을 제공하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목표 실현을 위해 기업 내부에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경영진이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경영진이 움직이면 그 정신이 직원들에게도 전달된다. 재정적 지원도 든든해지고, 경험 있는 CSR 리더를 고용할 확률도 높아진다. 사내에는 강력한 봉사 프로그램이 구축된다. 직원은 근무시간을 할애해 봉사에 참여해야 하는데, 상사에게 허가받기도 수월해진다. 가장 이상적인 프로그램은 최고경영자의 지원과 젊은 직원의 적극적인 참여가 만날 때 완성된다. 프로그램을 유지하는 건 젊은 직원이기 때문이다. 함께 만든 자원봉사의 성과는 정확하게 측정해 공유돼야 한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