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루이스 노다 국제해비타트 아시아태평양 부사장
아시아 인구는 47억명. 이 중 10%가 넘는 5억명이 도시 속 비공식 정착촌, 일명 ‘슬럼가’에 산다. 비공식 정착촌의 확장은 도시화와 관련 있다. 캄보디아, 필리핀 등 도시화가 한창인 개발도상국에서는 점점 더 많은 인구가 도시로 몰린다. 하지만 도시에는 이들을 수용할 ‘집’이 부족하다. 결국 불법건축물이 올라간다.
비공식 정착촌의 생활은 도심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기본적인 식수와 전기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다. 감시반에 의해 언제 쫓겨날지도 알 수 없다. 기후변화로 빈번해진 홍수, 폭염은 정착촌에서의 생존을 더욱 위협한다. 전 세계에는 총 10억명이 비공식 정착촌에 거주 중이다.
지난 6일 방한한 루이스 노다 국제해비타트 아시아태평양 부사장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볼리비아 출신인 노다 부사장은 2007년부터 국제 NGO 기아대책(Food for the Hungry)에서 근무하며 라틴아메리카 지역 디렉터, 국제운영최고책임자, 혁신참여담당 부사장 등 직책을 역임했다. 2020년부터는 필리핀 마닐라에 위치한 국제 해비타트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해비타트 활동을 이끌고 있다. 노다 부사장은 “아시아 도시 인구가 농촌 인구를 초과하면서 도시 빈민을 위한 대대적인 솔루션 모색이 시급해졌다”며 “개발도상국 정부 역량만으로는 빠르게 늘어가는 비공식 거주촌 규모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에 자주 방문하나.
“종종 온다. 2018년에는 석 달 동안 가족과 함께 서울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서울은 올 때마다 인상적인 도시다. 문화, 음식, 풍경…. 빠지는 것이 없다.”
-겉으로 번화한 서울에도 주거 문제는 있다. 주택 가격이 상승하면서 청년들이 집을 마련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이 성장하면서 심화될 수밖에 없는 문제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눈에 띄는 변화는 전 세계에 한국 문화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한국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국가적 자신감이 상승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개발도상국 지원 규모도 커졌다. 국제해비타트를 통해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인도 등 다양한 나라를 지원한다. 해비타트 네트워크에서 한국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비영리단체 국제해비타트는 지난 5월 글로벌 옹호 캠페인 ‘홈이퀄스(Home Equals)’를 시작했다. 앞으로 5년 동안 비공식 정착촌의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 정부, 기업, 시민단체 등과 협력할 계획이다. 오는 26·27일 경기 수원에서 열리는 ‘2023 제9회 아시아·태평양 주거 포럼’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집중적인 논의가 이뤄진다.
-국제해비타트의 활동 방향에도 변화가 생겼다. 지금까지 난민과 이재민 등을 주로 지원했는데, ‘도시 빈민’으로 대상을 넓혔다.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은.
“아시아 개발도상국 도시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도시로 유입되는 인구가 늘면서 도시 공간이 협소해지고, 정부 통제를 벗어난 슬럼가 같은 낙후된 주거지 규모도 커지고 있다. 전 세계 비공식 정착촌 인구는 10억명인데, 아시아에만 5억명이 산다. 지금 액션을 취하지 않으면 2050년에는 10억명 이상으로 증가할 것이다. 기후변화로 빈번해진 홍수, 폭염은 정착촌에서의 생존을 더 크게 위협한다. 전 세계에는 10억명이 비공식 정착촌에 거주 중이다. 수해를 예로 들면, 기후변화로 강우 패턴이 바뀌었다.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호우가 내린다. 비공식 정착촌에는 배수 시설 등 도시 기반 시설이 잘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같은 양의 비가 내려도 슬럼가에서는 더 큰 피해로 이어진다. 콜레라 같은 수인성 질병이 확산할 가능성도 크다. 기후변화는 비공식 정착촌에서 더 부정적인 파급 효과를 갖는다. 국제해비타트가 지난 5월 ‘홈이퀄스(Home Equals)’ 캠페인을 시작한 이유다. 난민이나 이재민에게 더 이상 관심을 주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선순위를 바꾼 것이다.”
-도시에 집이 부족한 게 아니다. 집을 지어주는 것보다, 집을 구할 비용을 지원하는 게 우선 아닌가.
“나라마다 다르다. 한국의 경우는 도시에 집이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아태 지역 전체로 보면 그렇지 않다. 개발도상국에는 적절한 주거지 자체가 부족하다. 그래서 국제해비타트는 대상자의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라 다르게 개입한다. 중하위 계층에게는 혼자 힘으로 집을 짓거나, 기존의 집을 수리할 정도의 지원을 한다. 그 아래 더 취약한 계층엔 주거 상황에 따라 지원금을 제공한다. 최빈곤층에게는 주택을 제공한다. 파트너와 협력해 신용 문제로 일반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운 저소득층을 위한 소액금융(microfinance) 서비스를 지원하기도 한다.”
-비공식 정착촌에 가장 필요한 지원은 무엇인가.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제는 방 한 칸만 있다고 모든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도시에 온 사람들의 ‘니즈(needs)’는 갈수록 복잡해진다. 기본적으로는 식수와 위생 설비가 갖춰져야 한다. 가전제품과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려면 전기도 들어와야 한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늘어 이제는 집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으면, 돈을 벌기도 어렵다. 아이들 교육 인프라에 대한 접근성도 높아야 한다. 범죄로부터의 안전성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비공식 정착촌에 대한 주거 지원을 할 때는 이런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한다.”
-도시 주거 문제는 정부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
“물론 정부, 특히 지자체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해당 지역에서 주택 정책을 수립하고, 이행하는 주체가 지방정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 역량만으로는 대처할 수 없다. 개발도상국에서는 특히 그렇다. 그래서 ‘파트너십’이 더 중요하다. 해비타트는 정부, 민간 기관, 다른 NGO와 협력해 개도국 문제에 접근한다. 모금을 해서 꼭 필요한 지역에 할당하고, 현장 상황을 정부에 알려 관련 정책을 내놓도록 독려한다. 자체 솔루션을 마련해 정부에 제안하기도 한다. 주택을 짓는 건설사나 기술을 가진 기업과도 협업해야 한다. 해비타트가 전문지식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다른 NGO의 관심도 필요하다.”
-해비타트에서는 비공식 정착촌 개선을 위해 어떤 활동을 하나.
“직접 집을 지어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예를 들면 필리핀에서는 지붕 개선 프로젝트를 했다. 지진과 태풍, 장마에도 지붕이 버틸 수 있도록 시멘트와 대나무를 활용해 지붕을 만들었다. 대나무는 가격이 저렴해 저소득층이 자주 사용하는 자재다. 가벼워서 지진에도 더 강하다. 시멘트만 사용하는 기존 주택보다 탄소배출량은 70%나 적다. 하지만 대나무를 단독으로 쓰기엔 약하다. 해비타트는 대나무와 시멘트를 함께 활용하는 재료와 코팅 기술을 민간 기업과 협업해 개발했다. 같은 방식의 건축을 네팔 비공식 정착촌에도 적용했다. 캄보디아에서는 친환경 벽돌과 대나무로 집을 지어주는 프로젝트를 펼치기도 했다. 오는 26일 수원 포럼에서는 이런 혁신기술을 더 자세히 소개할 예정이다.”
-어느 지역의, 어떤 집에 사는지는 한 사람의 정체성과도 관련된다. 해비타트에서 지어주는 집은 소재도 외양도 특이하다. 이런 주택의 특징이 ‘주거 취약계층’이라는 사회적 낙인을 더 강화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주거 지원을 할 때는 대상자가 스스로 ‘수혜자’라고 인식하기보다 집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비타트에서는 우리가 주택을 다 지어주지 않고, 실제로 거주할 사람들이 집을 짓거나 개조하는 데 직접 참여하게 한다. 우리는 이걸 ‘땀의 분담’이라고 부른다. 당사자가 ‘내가 내 집을 짓는 데 일조했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비공식 정착촌 환경 개선은 어떤 효과가 있나.
“주거 환경이 취약한 당사자 니즈를 충족시키면 전체 공동체에 혜택이 돌아온다. 해비타트와 국제환경개발연구소는 HDI 모델링에 기반해 비공식 정착촌 개선의 임팩트를 측정했다. 그 결과 비공식 정착촌을 개선할 경우 전 세계 기대수명은 4%, 정규 교육 기간은 28%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 GDP도 증가한다. 방글라데시에서는 7.25%, 미얀마에서는 최대 10.5% 높아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앞으로 만들어가고 싶은 아태지역 모습은.
“국제해비타트의 비전은 ‘모든 사람에게 안락한 집이 있는 세상’이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편안한 집에서 살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일을 해나갈 것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대비도 빼놓을 수 없다. 비공식 정착촌의 생활 인프라를 업그레이드 하고 기후재난에 대한 회복탄력성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다. 특히 아태지역은 글로벌 플레이어로서 위상이 높다. 아태지역에서 만드는 솔루션이 다른 지역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