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4일(화)

[희망 허브] 세상에 없던 발효 초콜릿으로 직원도 소비자도 행복한 세상 꿈꿔요

100대 1 경쟁 뚫고 亞·太 대륙 대표로…
까르띠에 여성 창업어워드 참가하는 장지연 ‘황후’ 대표
카카오 콩에서 추출한 효소 첨가로 유통기한 1년까지 늘어난 발효 초콜릿
韓 명장 초콜릿 선정·세계발명대회 금상
“사회적기업 배울수록 알겠더라고요
회사가 아닌 사람을 키우고 싶은 마음 그게 제가 추구하는 방식이었다는 걸”

장지은 ㈜발효초콜릿황후 대표
장지은 ㈜발효초콜릿황후 대표

다음 달 13일, 프랑스 북부의 해변 휴양지 ‘도빌(Deauville)’에 세상을 이롭게 하려는 여성들이 모인다. 올해로 8회째를 맞은 ‘까르띠에 여성 창업 어워드(Cartier Women’s Initiative Awards)’ 결선 심사가 열리는 곳. 명품 브랜드 까르띠에(Cartier)가 지난 2006년 국제여성포럼, 맥킨지앤드컴퍼니, 인시아드 비즈니스스쿨과 함께 발족한 대회다. 1년 이상, 3년 이하 신규 사업을 이끄는 여성 사업가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한데, 기업 창의성과 지속 가능성,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은 18명만이 초청장을 거머쥘 수 있다. 100대 1의 경쟁률이다. 아시아·태평양 대륙을 대표해 참가하는 장지은(35·사진) ㈜발효초콜릿황후(이하 황후) 대표도 그중 하나다.

“정말 간절한 마음이었거든요. 제가 젊음을 바쳐 고민한 것들을 평가받으니까요. 제가 가진 기업가 정신을 온전하게 전달할 수 있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아요.”

◇사회 초년병 ‘사장님’ 10년의 고민을 떠안다

장 대표는 스물두 살, 대학(제과제빵 전공)을 갓 졸업한 나이로 조그만 공장 사장을 한 적이 있다. 도넛을 만들어 강원·충청 지역의 마트나 식당에 납품하는 곳이었다. “원래 부모님과 친지들이 동업으로 준비했던 건데, 다들 사장 맡기를 꺼려서 등 떠밀려 맡게 됐죠.” 경영도 몰랐고, 인간 관계도 미약했던 시절이지만, 공장은 “그런대로 굴러갔다”고 한다.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 덕분이다. 장 대표는 “혼자 공장 문 걸어 잠그고 밤새 신제품을 연구하곤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온몸으로 부딪쳤던 2년 반 동안 장 대표는 “나는 돈만 보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는 결론을 얻었다.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머리를 밀고 1년간 절에 기거하기도 하고, 갑자기 사람이 그리워 몇 개월 동안 길거리에서 ‘호떡 장사’를 하기도 했다.

29세가 되던 해, 오랜 방황의 마침표를 찍었다. 서울 강동구 상일동에 위치한 장애인 제빵시설을 우연히 도우면서부터다. “지인 소개로 봉사를 하게 됐죠. 첨엔 자문 역할이었는데, 점점 깊이 개입돼 나중엔 책임자 격으로 일했어요. 1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내가 그들에게 ‘응원’이 되고 있다는 걸 느꼈죠. 제가 꿈꾸는 조직이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주는 회사요.” 세상은 이를 ‘사회적기업’이라 불렀다. 많은 사회적기업가를 만났고, 카이스트(KAIST)에서 진행하는 ‘사회적기업 MBA 과정’도 수료했다. “배울수록 알겠더라고요. 회사가 아닌 사람을 키우고 싶었던 마음. 그게 제가 추구하고 싶은 방식이었다는 걸요.”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의 출발점은 잘 고른 ‘아이템’

철학이 정해졌으니 이를 구체화해야 했다. ‘아이템’에 집중했다. 일찍이 회사를 이끌었던 경험을 토대로 자기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 ‘누구나 좋아하면서, 경쟁력과 부가가치가 있어야 하며, 건강이나 환경 같은 이로움이 더해질 수 있는 것’. 그 결과 초콜릿이 낙점됐다. 초콜릿은 대중성이 높고 유행을 타지 않는 식품으로, 초콜릿 시장은 2008년 이후 10%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다(일반 제과는 4%). 2012년 4월, 장 대표는 초콜릿에 한국의 전통 발효기법을 더해 초콜릿을 만드는 회사를 열었다.

“가족 모두 빵 만드는 일을 했었어요. 어릴 때부터 빵을 부풀리는 발효 기술을 재밌게 봐왔죠. 맛에도, 건강에도 좋거든요. 유통기한도 엄청나게 길어지고요. 이를 초콜릿에 활용했죠.” 생소한 시도라 전문가가 부족했다. 장 대표는 김치, 치즈, 전통주 분야의 ‘발효 전문가’를 두루 찾아다녔다. 밤새 공장 문 걸어 잠그고 일했던 근성이 다시 발휘됐다. 동서고금을 아우른 발효 초콜릿은 그렇게 탄생했다.

“일반 초콜릿은 그냥 재료들을 섞어서 굳히는 건데, 우리 제품은 카카오 콩에서 효소를 추출한 후 배양해서 같이 굳혀요. 일반 초콜릿 유통기한이 7일이라면, 발효 초콜릿은 1년까지 늘어나는데, 갈수록 맛이 더 좋아져요. 초콜릿이 익는 거죠. 마치 묵은지처럼요.” 명성황후가 우리나라에 처음 초콜릿을 들여온 것에 착안해 회사 이름도 ‘황후’로 지었다. 제품에는 특성별로 ‘강직한 순종’ ‘덕혜옹주’ ‘경순공주’ 등의 이름이 붙었다. 발효 기술과 마찬가지로 서양 식품에 우리 전통을 덧입히려는 시도다.

세상은 이 참신함을 치하했다. 특허정보원장상(2011)을 시작으로 세계발명대회 금상(2012), 세계 여성발명대회 은상(2012)을 받았다. 지난해 ‘살롱 뒤 쇼콜라(Salon du chocolat·초콜릿 명장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대회)’에선 한국 명장 초콜릿으로 선정되며, 세계 7인의 ‘쇼콜라티에'(Chocolatier·초콜릿 공예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했다.

(왼쪽부터)①황후에서 만드는 초콜릿 제품들. 첨가물 없이 발효숙성 기법만으로 100일 이상 장기보관이 가능한 생(生)초콜릿이다. ②치악산 자락에 위치한 황후 연구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직원들. /㈜발효초콜릿황후 제공
(왼쪽부터)①황후에서 만드는 초콜릿 제품들. 첨가물 없이 발효숙성 기법만으로 100일 이상 장기보관이 가능한 생(生)초콜릿이다. ②치악산 자락에 위치한 황후 연구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직원들. /㈜발효초콜릿황후 제공

◇제품이 진화하듯, 사회적 가치도 진화합니다

황후의 올해 예상 매출은 7억원 정도다. 사회적기업은 아니지만, 설립 초기부터 지역의 노인과 장애 여성들을 채용해오며 실험을 계속했다. 부작용도 많았다.

“여성 장애인 직원이 40만원 상당의 초콜릿 세트를 가지고 사라졌고, 일흔이 다 되신 노인은 젊은 친구들에게 모든 걸 떠넘기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했죠. 중간 관리자가 기둥이 되어 주지 못하는 상태에서 취약계층만 데리고 일을 하다간 ‘비즈니스는 없겠다’ 싶었어요. 많은 사회적기업가 선배들이 ‘먼저 기업의 뼈대를 튼튼히 갖추라’는 조언을 해줬어요.”

직원 8명 중 취약계층은 2명으로 줄었지만,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움직임은 더 분주해졌다. 현재 황후는 수익의 절반을 사단법인 ‘글로벌호프’에 전달해 카카오(초콜릿의 원료) 산지인 남미의 콜롬비아 농가를 위해 쓰고 있다. 네이버의 ‘비해피샵’을 통해서도 해외 빈곤 아동을 돕는 활동에 참여한다. ‘성공회 원주나눔의집’과 각종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강원도 사회적기업과도 활발히 교류한다. 한국도예고등학교(경기도 이천) 학생들과 초콜릿을 담는 옹기 디자인 공모전을 진행해 우수한 학생들에게 인턴십 기회를 제공하고, 미래산업과학고등학교(서울 중계동) 학생들에겐 제품을 직접 판매할 수 있는 사업장을 만들어준다. 최근 황후는 강원도 원주 지역의 한지나 횡성 지역의 인삼, 홍삼, 허브 등 ‘로컬푸드’를 활용해 친환경 건강 초콜릿을 만들고, 농가 수익도 증대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과연, 다음 달 프랑스에서도 초콜릿처럼 달콤한 승전보를 들려줄 수 있을까. 우승자에겐 1년간의 개인 비즈니스 코칭(약 150시간)과 미화 2만달러(약 2000만원)의 지원금이 제공되며, 프랑스 도빌에서 열리는 국제여성포럼 글로벌 연례회의 초청 자격이 주어진다. 국내에선 2010년 대회 때 이경재 ‘대지를 위한 바느질’의 대표와 채수경 ‘리블랭크’ 대표가, 2013년에는 이진화 ‘JR CO.’ 대표가 최종 결선에 진출했지만 우승자가 되진 못했다.

최태욱 기자

최수연 청년기자(청세담 2기)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