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청소년 봉사왕’ 선의의 경쟁… 25년간 14만명 도전장 냈다

KB라이프생명사회공헌재단
‘전국중고생자원봉사대회’

전국 단위 유일한 청소년 자원봉사대회
3단계 심사 거쳐 매년 봉사왕 선발
수상자 선후배 간 네트워킹도 활발

전국에 흩어진 ‘봉사 좀 한다’는 청소년들이 매년 한자리에 모인다. 자원봉사 왕중왕을 가리는 ‘전국중고생자원봉사대회(이하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KB라이프생명사회공헌재단이 1999년 시작한 이 대회에 도전장을 내민 청소년은 지금까지 총 14만2000여 명. 이 중 3만6309명이 우수 봉사자로 뽑혔다.

매년 심사 테이블에는 청소년들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재능을 담은 활동이 올라온다. 지난해 금상을 받은 황현(19)군은 어릴 때부터 좋아한 드론으로 경찰의 실종자 수색 작업을 돕고, 학교 주변 산과 하천에서 산불과 풍수해 위험 요소를 감시하는 활동을 펼쳤다. 한국조리과학고등학교 봉사동아리 ‘셰어 더 웜스(Share the Warmth)’ 소속 학생 19명은 코로나19로 무료 급식소 운영이 중단되자, 직접 간편식을 만들어 쪽방촌에 전달해 은상을 받았다.

대회 역사에 담긴 청소년 봉사 트렌드

“매주 금요일이면 학교 마치고 지역아동센터에 봉사하러 갔어요. 초등학생들 공부하는 걸 도와주고 식사 예절도 가르쳤어요. 4년간 꾸준히요. 학교에서 선행상도 받고 나름 ‘봉사왕’으로 유명했어요. 그런데 대회 시상식에 가보니까 더 대단한 친구가 많더라고요.”

이지은(19)양은 지난해 24회 대회에서 은상을 받았다. 이양은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또래 친구가 많아서 깜짝 놀랐다”면서 “서로 봉사 노하우를 나누면서 좋은 자극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자원봉사 활동의 경중을 따지기는 어렵지만, 심사 기준은 있다. 심사는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먼저 참가자가 최근 2년여 동안 수행한 봉사활동 자료를 제출하면, 심사위원이 1차 예비 심사를 한다. 평가는 봉사 동기와 창의성, 지속성, 지역사회 공헌도, 리더십 등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2차 지역 심사에서는 또 한 번의 평가를 통해 본선에 진출할 ‘지역 봉사왕’을 선발한다. 지역 심사까지 뚫은 참가자들은 중앙 심사위원 앞에서 최종 면접을 본다. 선의의 경쟁 끝에 장관상·금상·은상 후보로 발탁된 참가자들은 1박 2일 합숙에서 활동 사례를 공유하고 최종 시상식에서 수상자를 가린다.

지난 20여 년간 대회 수상자들의 봉사 내용을 살펴보면 봉사 트렌드를 엿볼 수 있다. KB라이프생명사회공헌재단에 따르면, 대회 초창기에는 일손 돕기나 위문 같은 단순 참여가 주를 이뤘다. 그러다 2000년대 중반부터 봉사자가 자신의 강점을 살려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재능 기부가 많아졌다. 최근에는 소셜미디어(SNS)·유튜브 등을 활용한 비대면 인식개선 캠페인 기획이 크게 늘었다. 기후위기에 대응한 환경보전 활동도 급격히 증가했다. 올해 심사위원을 맡은 윤순화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사무처장은 “변화를 빠르게 받아들이는 청소년의 강점이 봉사에서도 드러난다”며 “청소년들의 시도가 자원봉사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각 지역에는 꾸준히 성과를 내는 ‘전통 강자’가 있다. 인천 세일고와 송도고는 과학과 환경을 테마로 상을 휩쓰는 학교다. 전북 전주에서는 근영여고, 충북 청주에서는 청주청소년수련관이 줄기차게 수상자를 배출해 ‘봉사 명문’으로 불린다. 송이든 KB라이프생명사회공헌재단 과장은 “한 학교에서 선배가 솔선수범해서 봉사하고 상도 받으면 후배들이 따라 한다”며 “지도 교사까지 참여를 독려하면서 봉사의 전통이 생겨난다”고 했다.

'청소년 봉사왕' 선의의 경쟁... 25년간 14만명 도전장 냈다

20년 전 ‘봉사왕’이 후배 봉사자 키운다

대회의 역사가 깊어지면서 성인이 된 초기 수상자가 청소년 봉사자를 키워내는 선순환도 이뤄진다. 경북 김천 문성중에서 역사교사로 근무하는 김선호(34)씨는 중학생이었던 2004년, 6회 대회에서 은상을 탔다. 김씨는 평소 문화재 주변 쓰레기 줍기, 보육원에서 교육 봉사 하기 등 직접 실천한 봉사활동을 학생들에게 이야기한다. 선생님의 경험을 듣고 따라 하는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생긴다. 2년 전에는 어릴 적부터 8년간 부모님과 어려운 이웃에게 도시락을 배달한 제자 김민석(17)군을 대회 후보로 추천했다. 김군은 선생님에 이어 23회 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다.

역대 수상자 간 네트워킹이 활발하다는 점도 대회의 특징이다. 사회에 진출한 선배 수상자들이 진로 특강을 열기도 하고, 봉사 동아리를 오래 운영하는 노하우도 가르쳐 준다. 함께 봉사를 가기도 한다. 이지은양은 “직장에 다니면서 봉사도 하는 30·40대 수상자 선배들이 대단해보였다”며 “대학생이 돼서 봉사를 잠시 잊고 있었는데, 꾸준히 나눔 활동을 하는 멋진 어른이 돼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봉사 참여율이 저조한 상황에서 자원봉사대회의 가치는 더 크다”고 말한다. 2019년 711만명 규모였던 14~19세 봉사자 수는 2020년 코로나19로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이듬해 교육부가 대학 입시에 봉사활동 시간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발표하면서 2022년 청소년 자원봉사자 수는 134만명 수준으로 추락했다.

윤순화 사무처장은 “배려, 도덕성, 나눔의 리더십 등의 자질은 머리로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봉사라는 행동을 통해 몸과 마음으로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전통 있는 자원봉사대회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좋은 시민을 양성하는 데 보탬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환주 KB라이프생명사회공헌재단 이사장은 “KB금융그룹이 추구하는 ‘세상을 바꾸는 금융’을 실현하기 위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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