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출근길 탑승 시위를 벌여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와 서울교통공사가 이동권 문제를 두고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최근 법원에서 2차 강제 조정안을 내놨지만, 이에 대해서도 각각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갈등이 길어지면서 소송전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6일 서울교통공사는 전장연과 박경석 전장연 대표를 상대로 6억145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2021년 12월 3일부터 지난해 12월 15일까지 전장연이 총 75차례 지하철 시위를 진행하면서 열차 운행 지연 등의 피해를 봤다는 주장이다. 앞서 2021년 말 공사 측은 전장연에 형사소송 2건, 민사소송 1건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전장연은 ‘기본권 침해’로 맞소송을 예고했다.
전문가들은 강제력을 가진 중재기관이 없어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활동하는 협동조합 ‘무의’의 홍윤희 이사장은 “서울시와 전장연의 갈등이 양비론에 그치지 않으려면 갈등을 완화하고 소통을 이끄는 중재기관이나 중재자가 있어야 할 것”이라며 “해외 사례를 참고해 원활한 소통 방안을 마련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중재기관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캐나다 교통국(Canadian Transportation Agency)‘다. 캐나다 교통국은 독립적인 준사법 기관으로 장애인의 이의제기나 진정을 전담한다. 교통국이 나서서 장애인 당사자와 정부가 직접 부딪히지 않고 양측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교통국은 ‘장애인 교통 규정(ATPDR)’과 ‘장애인 교통계획 및 보고 규정(ATPRR)’에 따라 대중교통 운영사에 행정적·금전적 처분을 통한 정정 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
실제 20년 전 교통국은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냈다. 2002년 캐나다 국영철도 기업 비아레일(Via Rail)은 ‘르네상스 객차(Renaissance rail cars)’라는 열차 139개를 신설하고 운행을 시작했다. 문제는 객차의 출입구 폭이 70cm가량에 불과해 휠체어 진입이 어려웠고, 도움을 받아 승차하더라도 공간 부족으로 객실과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에 캐나다장애인협회는 캐나다 교통국에 진정을 제기했다.
교통국은 협회의 진정을 받아들여 비아레일에 139개 객차 중 30여 대에 대해 휠체어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객차를 수리하라고 지시했다. 비아레일은 비용 부담과 함께 장애인 접근성 문제를 직원 도움으로 해소할 수 있다며 연방항소법원에 항소했다. 법원은 비아레일의 손을 들어줬다.
교통국은 이 사건을 연방대법원으로 보냈다. 연방대법원은 2007년 캐나다 교통국의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을 내리면서 “국영철도 기업은 법적 의무와 공공에 대한 책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도 장애인들이 소송을 감수하지 않도록 중재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조상미 중앙사회서비스원장은 “지금 당장 국내에 중재기관을 신설하기 어렵다면 정부 산하 장애인위원회나 협의체에 ‘이동권 TF팀’을 구성해 중재자 역할을 맡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면서 “이동권은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 아동에게도 중요한 권리이기 때문에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김수연 기자 ye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