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6일(월)
[재난, 그 후] 공장 침수된 포스코, 중소기업 473곳에 전화 돌렸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죠. 수출해야 할 물량은 밀려 있는데 핵심 소재를 납품해주던 포항제철소가 물에 잠겨버렸으니까요.”

지난 22일 경기 안산의 시화공단에서 만난 박동석 산일전기 대표는 두 달 전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포항을 덮친 당시를 떠올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산일전기는 태양광·풍력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특수변압기를 만드는 기업이다. 지난 10년간 매출 600억원을 유지하다가 올해 두 배 가까이 매출이 늘 정도로 수주 물량이 많았다. 생산 라인을 멈출 수 없는 상황에서 핵심 소재인 ‘전기강판’을 공급해주던 포항제철소가 수해를 입은 것이다.

납품이 지연될 경우 수십년간 쌓아왔던 고객사와의 신뢰 관계가 깨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자연재해로 발생한 일이라 포스코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하며 여러 시나리오를 그려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포스코도 큰 피해를 입은 상황이라 정신이 없을 것 같아서 차마 바로 연락을 해볼 수가 없었어요. 일주일 만에 포항에 연락을 했더니 담당자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때 정말 감동했습니다.”

제11호 태풍 '힌남노'로 인해 수해를 입은 포항제철소에서 한 직원이 설비에 쌓인 흙더미를 씻어내고 있다. /포스코
제11호 태풍 ‘힌남노’로 인해 수해를 입은 포항제철소에서 한 직원이 설비에 쌓인 흙더미를 씻어내고 있다. /포스코

산일전기가 생산하는 변압기의 주소재는 전기강판이다. 전기강판은 규소(Si) 1~5%가 들어간 특수 소재다. 전력 손실이 작고 자기장을 발생시키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 전동기, 발전기, 변압기 등에 쓰인다. 최근 몇 년 새 전기차와 신재생에너지 산업이 크게 성장하면서 전기강판도 세계적으로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국내에서 전기강판을 생산하는 곳은 포스코가 유일하다. 박 대표는 “전기강판을 생산할 수 있는 국가는 한국, 일본, 독일, 중국 정도라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다”라며 “소재를 구하지 못하면 수주 물량을 포기하거나 유럽 시장에서 높은 가격으로 수입해야 하는데, 잘못하면 엄청난 적자를 떠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수해 피해 직후, 포스코는 제철소 복구 작업과 동시에 고객사로 이어질 연쇄충격을 최소화할 방안을 찾아나섰다. 포항제철소 생산 물량을 납품받는 고객사 473곳을 대상으로 전수 조사를 진행했고, 납기 지연 우려가 있는 81곳을 직접 방문해 의견을 들었다. 산일전기도 그중 하나였다.

포스코 관계자는 “전기강판은 포항에서만 만들수 있는 특수 소재라 광양제철소를 통해 전환 생산하는 것도 불가능했다”면서 “해외로 수출하기로 돼 있던 물량을 내수용으로 돌려 산일전기에 먼저 납품했고, 전기강판을 품질 손상 없이 건조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내 알려줬다”고 했다. 박동석 대표는 “사실 포스코가 전기강판을 해외로 직접 수출하면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데, 고객사를 포함해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큰 결정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포스코그룹 임직원들이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수해를 입은 포항제철소 피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포스코
포스코그룹 임직원들이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수해를 입은 포항제철소 피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포스코

철강 소재를 공급받는 국내 건설업계도 비상이었다. 서영산업은 경기 평택에서 건설 중인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케이블트레이’를 납품하는 업체다. 케이블트레이는 건물에 깔리는 전기 케이블의 훼손을 막는 필수 제품이다. 권오섭 서영산업 대표는 “케이블트레이를 제조하려면 포항에서 생산하는 ‘포스맥’이라는 소재가 꼭 필요했다”면서 “수해로 반도체 공장 건설까지 지연될 위기였다”고 했다.

포스코는 포항에서 생산하던 포스맥을 광양제철소에서 전환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전환 과정에서 소재와 색상에 약간의 변경이 발생했다. 서영산업이 예전 처럼 납품을 하려면 발주처와 감리사로부터 사용 승인을 다시 받아야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포스코의 마케팅 부문과 연구소 등이 총동원됐다. 연구소에서는 광양제철소에서 대체 생산한 제품을 수차례 테스트한 뒤 내구성 등을 보증하는 품질보증서를 발행했다. 마케팅 부문에서는 품질 보증 범위를 조율하고 발주처를 설득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권 대표는 “전체 공사 규모로 보면 작은 부분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전기공사 없이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는 중요한 파트”라며 “한동안 잠을 못 잘 정도로 힘들었지만 다행히 지난주에 승인이 나서 예정대로 공사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전환 생산이 어려운 소재의 경우, 포스코 해외 법인을 통해 수급 문제를 해결했다. 글로벌 자동차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부산의 스테인리스 가공업체 코리녹스도 중국·태국·베트남에 있는 포스코 해외 법인 도움을 받아 납품 지연 위기를 넘겼다. 포스코 관계자는 “국내 재고를 빠르게 확보해 우선 공급하고 해외 법인에 대체 생산을 긴급 요청해 조만간 물량을 공급할 예정”이라며 “수출 기업들이 제품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모든 방안을 동원할 것”이라고 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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