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활동가는 세상을 보살피고 우리는 그들을 보살핍니다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이 걸어온 길

2013년 설립, 조합원 2200명 넘어
8년 동안 공익활동가 1721명 지원
의료·상담 지원 통해 건강도 챙겨줘
공로 인정받아 ‘태평양공익인권상’

2010년 가을, 40대 후반의 공익활동가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여느 날처럼 야근을 하고 늦은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가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늘 과중한 업무에 치이던 그였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며 매일을 바쳤지만, 그는 가난했다. 4대 보험조차 가입하지 못한 상태였다. 동료들이 할 수 있는 건 모금뿐이었다. 남겨진 아내와 초등학생인 두 아들을 위해 700만원을 모아 전달했다. 돈을 건네는 이들의 마음은 무너졌다. 동료의 죽음이 안타까워서, 다음은 내 차례일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해서.

이 사건 이후 공익활동가 20여 명이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 보자며 모였다. 2013년 4월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이 설립됐다.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변 시선에도 동행 구성원들은 저임금과 과한 업무량에 지친 활동가를 지원하려 발로 뛰었다. 8년이 지난 지금 동행은 조합원이 2200명 넘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그동안 1721명의 공익활동가에게 37억9000만원 규모의 경제적 안전망(대출 지원)과 의료 지원, 재충전 기회를 제공했다. 사회를 위한 일에는 발 벗고 나서면서 정작 자신을 돌보는 데는 무심했던 활동가들에게 기댈 언덕이 돼준 셈이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동행은 지난 10일 재단법인 동천이 수여하는 ‘제12회 태평양공익인권상’을 받았다.

"몸을 아끼지 않고 사회를 보살피는 고마운 활동가들에게, 당신들을 보살피는 따뜻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은 2013년부터 공익활동가들을 지원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제12회 태평양공익인권상'을 받았다. 사진은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만난 동행 구성원들. (왼쪽부터) 송경용 후원회장, 이지원 활동가, 여진 사무처장, 권다은 활동가, 염형철 이사장.
“몸을 아끼지 않고 사회를 보살피는 고마운 활동가들에게, 당신들을 보살피는 따뜻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은 2013년부터 공익활동가들을 지원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제12회 태평양공익인권상’을 받았다. 사진은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만난 동행 구성원들. (왼쪽부터) 송경용 후원회장, 이지원 활동가, 여진 사무처장, 권다은 활동가, 염형철 이사장. /장은주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동료 활동가의 죽음으로 탄생한 ‘동행’, 조합원 2000명 넘겨

“동행이 받은 첫 번째 상이에요. 제법 긴 시간 동안 많은 일을 했는데 이렇게 좋은 평가를 받아 기쁩니다. 동행의 활동은 앞에서 빛나지 않아요. 다른 활동가들이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잖아요. 조금은 다른 사명감을 가지고 일합니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동행 사무실에서 만난 염형철(53) 이사장이 책상에 놓인 상패를 보며 말했다. 송경용(61) 후원회장을 비롯해 여진(48) 사무처장, 이지원(27)·권다은(26) 활동가가 수상 소식을 듣고 한자리에 모였다.

설립 초반에는 모든 게 순탄치 않았다. 재원도, 활동가들의 관심도 부족했다. 조합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늘 과중한 업무와 재정적 압박에 시달리던 활동가들은 동참할 여력이 없었다. 조합원 1000명 달성이 목표였지만, 2년 동안 조합원 수는 1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럴싸한 성과를 내기 어려웠지만 초기 구성원들은 어떻게든 버텼다. 개인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고, 전세 자금을 끌어다 쓰면서 단체를 겨우 유지시켰다.

동행이 존재를 인정받기 시작한 건 안타깝게도 몇 명의 활동가를 더 잃고 나서였다. 2016년 한 활동가가 출산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소속 단체에서도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동행에서 상조금 1000만원을 보냈다. 이전처럼 동료들이 남은 가족을 위해 부랴부랴 모금을 하지 않아도 됐다. 2년 후 또 다른 활동가가 지방 출장을 다녀오다가 기차에서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다. 과로사였다. 동행에서 3000만원을 지급했다. 염형철 이사장은 “그제야 활동가들이 ‘우리에게도 최후의 안전망이 있구나’ 하며 동행을 믿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15년 이후 환경운동연합 같은 큰 조직이 단체로 가입하면서 조합원 수가 본격적으로 증가했다. 2018년 처음 목표였던 조합원 수 1000명을 달성했다. 규모가 커지니 소규모 단체 가입도 늘었다. 지난해에는 조합원 2000명을 넘겼다.

“요새는 활동가들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주변에서 ‘동행 가입했어?’라고 물어본다고 합니다. 이제 기댈 곳이 생긴 거죠. 서로 사회적 자산이 된 겁니다.”(송경용)

연이율 1%… 조합원 간 신뢰로 이뤄지는 대출의 선순환

공익활동가에게 가장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건 ‘대출 사업’이다. 급여가 낮고, 안정된 직업으로 인정받기 어려워 은행에서 대출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규모가 큰 사업은 20·30대 활동가를 대상으로 하는 대출 지원이다. 고이율의 학자금 대출이 남았거나, 급하게 생활비가 필요한 청년을 돕기 위해서다.

차가운 경제 논리가 적용될 법한 금융 지원 사업이지만, 동행에서는 구성원 간의 신뢰가 바탕이 된다. 활동가들이 상환한 원금을 모아 다른 활동가에게 대출해주는 자원의 선순환이 안정적으로 이뤄진다. 매달 성실하게 돈을 갚는 행위가 다른 활동가에 대한 지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대출을 신청하면서 부끄러워하거나 자신의 빈곤을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기금의 운영자’라는 책임감이 주어진다. 2018년부터 180명이 19억원을 지원받았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금융 전문가들에게 자문했습니다. 무조건 연이율을 3% 이상으로 정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야 굴러간다고요. 전통적인 금융 셈법에서는 그게 맞죠. 하지만 우리는 구성원을 믿고 이율을 1%대로 책정했습니다.”(송경용)

“그래도 상환에 실패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다른 구성원에 대한 책임감과 연대 의식이 깔렸기 때문이죠. 이런 대안 기금 모델이 성공하는 걸 보고 조합원들도 놀랐습니다. ‘우리는 다르구나, 다를 수 있구나’ 생각했습니다.”(여진)

구성원의 건강도 세심하게 챙긴다. 활동가들은 건강에 대한 걱정이 높은 편이다. 염형철 이사장은 “아파도 사회적 보호를 받기 어렵다고 생각하니까 도리어 건강을 더 염려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활동가들의 건강 상태는 좋지 않은 편이다.

2019년 동행이 서울시 NPO지원센터와 진행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활동가 5명 중 1명은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다. 전국 성인 평균보다 1.5배 많다. 스트레스 지수는 2배 높다. 동행에서는 정밀 건강검진 비용이나 치료·수술 비용을 일부 지원한다. 스트레스가 높은 활동가들을 위해서는 ‘마음튼튼 프로젝트’ 상담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소소한 지원도 다양하게 이뤄진다. 생일 등 기념일에 영화 티켓, 외식 상품권을 보내준다. 비싼 혜택을 주는 건 아니지만 조합원들의 만족도는 높다. 신청자에 한해 제공하는 리조트 숙박권도 인기가 좋다. 지난달에는 전남 신안군과 협약을 맺고 섬마을에서 보내는 2박 3일 휴가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신안군은 관광 자원을 홍보하고, 활동가들은 자연 속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여진 사무처장은 “활동가로 일하는 것을 사회로부터 인정받는다고 느끼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외부에서도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선배 활동가뿐 아니라 뜻있는 독지가, 다양한 기업에서 동행을 후원한다.

“2000명 넘는 조합원에게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모금을 상당히 많이 해야 합니다. 주변 분들께 기부를 부탁할 수밖에 없죠. 늘 여러 번 고민하다가 어렵게 수화기를 듭니다. 그럴 때 저희를 격려하시면서 흔쾌히 지갑을 여실 때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염형철)

동행은 이제 다음 단계의 성장을 고민 중이다. 지금까지는 구성원의 열정과 주변의 도움으로 살림을 꾸려왔지만,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염형철 이사장은 “모든 공익활동가를 위한 동행이 되고 싶다”고 했다. “초반에 진보 쪽 단체들이 나서서 동행의 기틀을 잡아서인지 지금도 비슷한 성향의 활동가들이 주로 조합원으로 가입합니다. 하지만 동행은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어요. 그것 외에 다른 기준은 없습니다. 이념 구분 없이, 다양한 활동가가 서로 응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blo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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