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17일(화)
자연 훼손 않기, 친환경 제품 쓰기… 캠핑의 ‘기본’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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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해봤다] 제로웨이스트 백패킹

자연 훼손 않기, 친환경 제품 쓰기… 캠핑의 ‘기본’을 배우다
지난 16일 강원 횡성군 우천면 하궁리 횡성대피소에서 초보 백패커를 대상으로 ‘제로웨이스트 백패킹’ 교육이 진행됐다. /백패커스플래닛 제공

“지구별 백패커 여러분, ‘목성(木星)’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지난 16일 오후 2시. 강원 횡성군 우천면 하궁리 횡성대피소에서 초보 백패커(배낭에 등산 장비와 식량을 챙겨 자연 속에서 야영을 즐기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제로웨이스트 백패킹(backpacking)’을 교육하는 행사가 시작됐다. 현장에서 만난 ‘목성’이라는 단어에 눈길이 갔다. 이번 교육을 공동 주최한 소셜벤처 ‘백패커스플래닛’과 국내 산림 4000㏊를 관리·보존하는 ‘SK forest’는 “사람이 아닌 나무[木]가 주인공이 되는 백패킹 장소를 ‘목성’이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캠핑 열풍이 불면서 자연 훼손 문제와 지역 주민 간 갈등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새로운 산책로가 마련되면 ‘야영과 취사를 금지합니다’라는 푯말이 함께 설치될 정도다. 박선하(32) 백패커스플래닛 대표는 “제로웨이스트 백패킹은 캠핑의 기본”이라며 “20~30년 뒤에도 백패킹을 즐기고 싶다면 ‘지키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행사 참가자 25명이 모두 ‘목성’에 도착했다. 사전 신청자는 총 451명. 경쟁률 18대1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백패킹의 인기가 새삼 실감이 났다. 기자도 이들의 대열에 끼어 제로웨이스트 백패킹을 해보기로 했다.

교육 장소인 횡성대피소는 일반인 출입이 제한되는 산림 보호구역이다. 산등성이가 평평하고 넓어 백패커들이 성지(聖地)로 꼽을 만한 장소다. 텐트를 칠 수 있는 공간은 덱 7동을 포함해 총 16동이 마련돼 있었다.

초보 백패커들은 저마다 몸집만 한 배낭을 자리에 풀었다. 이들은 각자 챙겨온 흰색 티셔츠를 꺼내들었다. 백패커스플래닛은 레이지에코클럽과 협업해 행사 기념 티셔츠를 맞추는 대신 각자 입던 옷에 행사 로고를 실크 프린팅해주는 방법을 마련했다. 행사 로고는 친환경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레이지에코클럽의 상징을 활용해 제작됐다. 박선하 대표는 “행사 때문에 티셔츠를 구매하거나 생산하는 것도 어찌보면 쓰레기를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현장에서 실크 프린팅을 하는 게 새 옷을 맞추는 것보다 비용이 훨씬 더 들었지만 제로웨이스트 캠핑의 취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지속가능한 백패킹 문화를 안내하는 오리엔테이션이 마무리되고,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 자연을 즐기라고 했다. 벌써 오후 4시. ‘산중엔 금방 해가 진다고 하는데, 빨리 텐트를 쳐야 하지 않나?’ 조급해졌다. 그런데 아니란다. 백패커의 텐트는 최대한 늦게 치고, 최대한 일찍 걷는 게 원칙이라고. 기초 중의 기초라고 했다.

백패커에게 외로움은 숙명이다. 아니, 외로움을 즐기러 배낭을 챙긴다는 말이 더 맞는다. 삼척에서 온 2년 차 백패커 이기혁(21)씨는 일찍이 ‘혼자 노는 법’을 깨쳤다. 고교 시절 지리 선생님 추천으로 백패킹을 처음 접하고 그 매력에 빠졌다고 했다. 이씨는 “외국 캠퍼들은 집을 떠나서 자연을 만끽하러 가는데 한국 캠퍼들은 집을 들고 자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면서 “혼자 길을 나서면 챙길 것도 많지 않고 쓰레기도 안 생긴다”고 말했다. 또 “인원이 많을수록 캠핑을 풍성하게 즐길수록 백패킹할 장소는 사라지고 제로웨이스트도 멀어진다”고 했다.

오후 5시, 텐트를 무사히 설치하고 산길을 거닐었다. 스태프 도움 없이 실전에 바로 투입됐다면 고생깨나 했을 초보 백패커도 많아보였다. 전자기기로부터 단절된 게 백패킹의 매력일까. 휴대전화도 잠시 꺼두고 싶었다. 전문가들은 그건 또 아니라고 했다. 여러 사람이 모인 캠핑장이 아니라 외딴 노지로 백패킹을 갔을 때 응급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이때 연락 가능한 휴대전화는 반드시 살려둬야 한다는 얘기였다.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교육 현장에는 사회적경제 조직의 제품들이 곳곳에서 등장했다. 식수는 플라스틱 생수병 대신 아이쿱생협의 종이팩 물을 받았다. 사탕수수 마개도 쉽게 제거되고 납작하게 접혀 버리기도 좋았다. 로컬에서 조달한 원재료로 고형 세제를 생산하는 소셜벤처 호호히의 샴푸바와 닥터노아의 대나무 칫솔도 눈에 띄었다. 백패커들의 필수템인 커피는 공정무역기업 아름다운커피에서 조달했다.

첫날 교육 일정이 마무리됐다. 오후 9시. 금방 곯아떨어질 것 같았는데, 산등성이 곳곳에 설치된 텐트 안 랜턴은 쉬이 꺼지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이미 별이불이 하늘을 덮었다. 휴대전화 날씨 앱은 현지 기온을 영하 3도라고 했다. 하얀 입김을 내뿜으니 마치 구름처럼 보였다. 하늘은 가을, 코끝은 겨울이었다.

눈을 뜨니 새벽 5시. 어스름한 아침이다. 이따금 들리는 새소리에 몽롱한 정신이 돌아왔다. 풀벌레와 새들의 주파수를 온몸으로 느끼며 산길을 걷다보니 훌쩍 한 시간이 지났다.

텐트는 바로 철수해야 한다. 이미 야영 의자 하나만 남기고 짐을 챙겨둔 사람도 있었다. 주최 측은 아침 식사 준비로 분주했다. 메뉴는 팥죽. 나 홀로 백패킹으론 누릴 수 없는 호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패커들은 음식을 직접 준비해야 한다. 다만 백패커스플래닛은 지역사회에서 소비하는 걸 권한다. 박선하 대표는 “횡성시장 팥죽집에 전날 주문해 놓은 팥죽을 조금 전 찾아왔다”면서 “일회용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음식 담을 통을 직접 챙겨가는 ‘용기내’ 캠페인을 시장에 전파했다”며 웃었다.

1박2일 일정을 마무리하는 시간. 초보 백패커들은 하루 동안 각자 배출한 쓰레기를 들고 한자리에 모였다. 손에 들린 쓰레기는 한 줌이 되지 않았다. 25명이 배출한 양을 모두 합쳐도 10리터 봉투가 다 차지 않았다. 성준영 SK forest 산림팀장은 “수십년간 가꿔온 숲을 훼손 우려 때문에 그간 대중에게 공개하지 못했다”면서 “지속가능한 백패킹 문화가 정착된다면 국내 모든 숲을 시민이 누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횡성=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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