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가 생각하는 ESG는?]
기업과 정부, 미디어가 ‘ESG’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모두가 ESG를 이야기하지만 정작 마이크를 쥔 사람은 거의 50~60대다. 미래를 위한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야기하는 자리에 청년들의 목소리는 빠져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신현상 한양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는 “미래를 이어받을 다음 세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면서 “함께 이야기하며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이를 토대로 답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Z세대는 ESG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더나은미래는 한양대학교 임팩트사이언스연구센터, 사회적가치연구원과 1996~2005년 출생한 Z세대 150명을 대상으로 ESG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Z세대는 기업도, 기업의 ESG 경영도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는 28일 온라인으로 열리는 ‘2021 넥스트 임팩트 콘퍼런스(Next Impact Conference)’에서는 한국·호주·싱가포르 대학생들이 모여 이번 설문 결과를 두고 ‘ESG의 미래’에 대해 토론을 벌인다.
가치 있는 곳에 지갑 연다
Z세대는 ‘가치’에 민감한 세대다.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제품이나 서비스에는 기꺼이 돈을 낸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 중인 ‘미닝아웃(meaning out)’ 트렌드를 이번 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의 정치적·사회적 신념을 소비를 통해 드러내는 것이다. 설문 결과 ‘다른 조건이 모두 같다면 환경·사회·거버넌스 관련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하겠다’는 응답이 각각 83.3%, 80.6%, 72.0%였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응답자의 81.3%가 ‘기업은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고 답했다. 기업이 단순히 싸고 좋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넘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ESG에 대한 인식에서도 Z세대의 이런 성향이 드러났다. 10명 중 7명 이상이 ‘기업이 ESG 관련 이슈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답했다. ESG 경영을 하는 기업의 재화에 추가 금액을 지불하겠다는 응답도 많았다. 환경적 가치를 위해서는 응답자의 84.7%가 ‘비용을 더 지불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이를 위해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의 1~5%를 더 지불할 수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42.7%였고, 6~10%를 더 내겠다는 응답도 34.7%에 달했다. 사회적 가치를 위해 돈을 더 쓰겠다는 응답도 82%나 됐다. 1~5%를 더 지불하겠다는 응답이 48%, 6~10%를 더 쓰겠다는 응답이 24.7%였다. 신현상 교수는 “국내 Z세대 인구가 500만명 정도인데 환경 이슈의 경우 6% 이상을 더 부담하겠다는 답변이 40%를 넘었다”며 “40%를 인구 수로 환산하면 적어도 200만명이 환경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의 제품에 돈을 쓰겠다는 의사를 갖고 있다는 뜻이 된다”고 했다.
ESG, Z세대엔 허공의 메아리
Z세대는 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 응답자들은 ‘우리나라 기업은 본분을 다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전통적인 경영학적 관점에서 보면 기업 경영의 목적은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고객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설문 결과 ‘기업이 주주 이익을 중시한다’(56.7%)는 답변이 ‘경영자 이익을 중시한다’(77.4%)는 답변보다 20%나 낮게 나타났다. ‘고객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응답은 35.3%였다. 신 교수는 “한마디로 기업이 기본자세가 안 돼있다고 본 것”이라고 했다.
‘광고, 제품, 기업 소개 등 기업이 보내는 메시지를 신뢰할 수 있다’는 응답은 10%에 불과했다. 기업이 ESG 경영을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Z세대에게 닿지 않고 ‘허공의 메아리’로 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기업이 환경, 사회, 지배구조 문제 해결을 위해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각각 28%, 20%, 22%에 머물렀다.
기업의 신뢰도 하락은 경제성장의 동력을 훼손한다. 한국전쟁 이후 전 사회가 협력해 경제적 파이를 키웠지만 소비자이자 잠재적 직원인 국민이 시장의 주요 행위자인 기업을 믿지 못하면,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 설명이다. 기업에 대한 불신은 시장경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신 교수는 “ESG 경영에 앞서 기업과 Z세대의 관계 회복이 중요하다”고 했다. 종전의 구태의연한 방식으로는 Z세대를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한쪽에서는 청년이 일하다가 사고로 죽고, 폭언을 당하는데 이를 외면하고 사회 공헌을 이야기하는 것은 Z세대에게 ‘위장된 가치 추구’로 인식된다”고 했다. 이어 “소외 계층을 위한 연탄 배달, 김치 담그기, 단순 기부 등 일회성의 보여주기식 활동도 Z세대에게는 와 닿지 않는다”면서 “탄소 배출량을 얼마나 줄였는지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거나, 비영리단체와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만들기 위해 협력하는 등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blo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