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장애인 이용률 0.1%, 의사 참여율 0.5%… 시스템 개선 시급

유명무실 ‘장애인 건강주치의 사업’

거동이 어려운 중증장애인 A씨는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장애인 건강주치의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동네 의사가 주기적으로 건강을 관리해주고 집으로 왕진도 나온다는 설명에 신청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검색해봤지만 집 근처에는 이 사업에 참여하는 병·의원이 없었다. 조금 멀리 있는 병원에 전화를 걸어 방문 진료가 가능한지 물었지만 모두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중증장애인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지난 2018년 5월 시작한 장애인 건강주치의 시범 사업이 유명무실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1차 시범 사업 결과에 따르면, 2018년 5월부터 2년간 이 서비스를 이용한 장애인은 1146명에 불과했다. 2020년 등록 중증장애인 98만4965명 가운데 약 0.1%가 이용한 셈이다. 2차 시범 사업 기간인 지금도 이용률 변화는 거의 없다. 서비스를 원하는 장애인이 있어도 주변에 시범 사업에 참여하는 병·의원을 찾기 어렵고 그나마도 방문 진료가 안 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Getty Images Bank

중증장애인 위한 주치의 사업… 방문 진료 거의 없고 비용도 비싸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당뇨, 뇌혈관 질환, 암 등 만성 질환 유병률이 높고 평균 수명도 9년가량 짧다. 건강관리에 더 신경 써야 하지만 이동 불편, 경제적 어려움 등의 이유로 병원을 자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 건강주치의 사업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됐다. 상급종합병원과 요양병원 근무자를 제외한 모든 의사가 장애인 건강주치의가 될 수 있다. 주치의 등록을 원하는 의사는 ▲만성 질환 등 일반적인 건강 상태를 관리해주는 일반 건강관리 ▲장애로 인한 불편함을 관리해주는 주장애관리 ▲일반 건강관리와 주장애관리를 합친 통합 관리 등 3개 서비스 중 하나를 골라 건강보험공단에 등록하면 된다. 장애인도 비교적 간단한 신청 과정을 거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시범 사업 기간이 3년을 넘어서고 있지만 서비스 이용률은 여전히 저조하다. 장애인이 서비스를 받고 싶어도 주변에 병원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시범 사업에 참여한 의사는 지난 4월 기준 총 567명이었다.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의사 9만8482명 가운데 0.5%만 등록했다. 더 심각한 건 실제로 활동한 기록이 있는 건강주치의는 88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479명은 등록만 해놓고 활동이 없는 상황이다.

방문 진료를 제공하는 곳이 많지 않다는 것도 이용률이 저조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중증장애인의 경우 이동의 어려움으로 병원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장애인 건강주치의 시범 사업에도 방문 진료를 포함시켰다. 하지만 건보공단 홈페이지에 공개된 현황에 따르면 전체 장애인 건강주치의 중 방문 진료를 제공하는 의사는 약 19%에 불과했다. 임종한 인하대학교 의과대학장은 “중증장애인을 위한 사업인 만큼 방문 진료 서비스는 필수적으로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비용 문제도 제기된다. 건강주치의 사업에 참여하는 장애인은 진료 시 본인 부담금으로 10%를 내야 한다. 지난해 서울시복지재단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시 중증장애인의 약 81%가 무직이었고, 나머지 일하는 19%의 월평균 소득도 117만4456원에 그쳤다. 김정애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정책위원는 “중증장애인들은 소득 수준이 낮고 평소에도 의료 비용으로 많은 돈을 쓰고 있기 때문에 진료비가 조금이라도 더 나오면 부담스러워할 수밖에 없다”면서 “장애인을 위한 사업인 만큼 본인 부담금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복잡한 행정 절차 때문에 활동하던 의사들도 중도 포기

의료계는 장애인 방문 진료 등을 활성화하려면 현재의 장애인 건강주치의 의료 수가를 개선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의료 수가는 의사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환자와 건보공단으로부터 받는 돈이다. 현재 수가 체계는 의료 행위를 한 번 할 때마다 진료비를 받는 ‘행위별 수가제’ 방식이다. 많은 환자를 볼수록 수익이 커진다는 뜻이다. 반면 길게는 몇 시간씩 걸릴 수도 있는 장애인 방문 진료는 의사들에게도 부담이 된다는 게 의료계의 입장이다. 김종희 원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의사는 “여러 의사가 공동으로 진료하는 병·의원은 교대로 방문 진료를 할 수 있지만, 한국 의료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1인 개원의가 왕진을 나서면 현실적으로 의원 운영에 큰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복잡하고 불편한 시스템도 문제점으로 제기된다. 건강주치의가 되면 자신이 진료하는 장애인을 건강보험공단과 심사보험평가원 홈페이지에 각각 따로 입력해 등록해야 하고, 매번 건강주치의 활동을 할 때마다 심평원에 기입해야 한다. 진료비를 청구하는 곳은 또 다른 시스템을 이용해야 한다. 현재 장애인 건강주치의로 방문 진료까지 하고 있는 한 의사는 “환자의 집에 방문할 때는 종이를 들고 가서 진료하고, 의원에 돌아와 처방전을 뽑아다 약국에 가져다줘야 하는 등 번거로운 절차가 반복되고 있다”며 “이 때문에 건강주치의를 하던 의사들이 중도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건강주치의 사업을 활성화하고 중증장애인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업 내용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고 설명한다. 임종한 인하대 의과대학장은 “장애인 건강 증진이라는 사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장애인 거주지에서 최소 30분 거리 안에 건강주치의가 있어야 한다”면서 “의사들에게 인센티브를 줘서 참여를 독려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행위별 수가 체계를 포괄적 수가 체계로 바꾸는 등의 방식으로 장애인 진료에 시간을 할애하더라도 의사들의 수입을 보전해줄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면서 “장애인에게 부과하는 진료비 본인 부담금을 완화해 장애인들이 이점을 느끼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지강 더나은미래 기자 riv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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