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더나미 책꽂이] ‘기억의 목소리’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 외

기억의 목소리
1949년 1월 17일 제주도 서귀포시 조천면 북촌리. 오전 11시, 군인들이 찾아왔다. 마을 사람들을 전부 학교 운동장으로 모았다. 군인들은 운동장에 모인 주민들에게 “빨갱이를 찾아라”고 호통쳤다. 그날 영문도 모른 채 총에 맞아 숨진 주민은 300명가량. 제주4·3사건 당시 북촌리에서 일어난 일명 ‘북촌리 사건’이다. 생존자 이재후씨의 어머니는 온몸에 피를 묻히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의 죽음을 확인하고 오는 길이었다. 그는 아들 이재후씨에게 말했다. “먹게, 먹게,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른다. 한번 배불리 먹자. 그릇에 밥 떠놔라.” 이씨는 어머니의 유품인 다듬잇돌을 보며 당시를 회상하곤 한다. 책은 다듬잇돌을 비롯해 저고리, 비녀, 재봉틀, 궤, 은반지, 사진, 엽서 등 제주4·3사건 희생자들의 유품을 사진으로 모았다. 유족의 기억도 함께 담았다. 유품 사진은 한 사람의 소박한 역사를 보여주지만 이면에는 한국의 아픈 역사를 감추고 있다. 책장을 넘길수록 묻어둔 역사를 눈으로 확인하고 평화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허은실·고현주 지음, 문학동네, 1만7500원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
기후변화가 인간의 모든 일상을 바꿔버린 가까운 미래. 폭염, 혹한, 백화, 해빙 등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속 사랑 이야기를 담은 단편 소설집이 나왔다. 단편 ‘천국의 초저녁’에서 주인공 경민의 친구 영우는 신혼여행지로 몰디브를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해수면 상승으로 잠기는 중인 몰디브를 갈 수 있는 건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이유에서다. 소설 속 이야기지만 실제 신혼부부들이 할 법한 현실적인 고민이다. 이 밖에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정치에 참여했다 헤어진 커플, 폭염에 지쳐 민원을 넣으러 온 사람과 사랑에 빠진 공무원 이야기도 사실적인 묘사로 몰입을 더한다. 책에 실린 총 10편의 단편 소설들은 기후변화를 ‘인식’하기 보다 ‘감각’하게 해준다. 이성으로 설득하는 수많은 기후변화 도서 가운데 감정으로 사람들을 움직이는 책.
김기창 지음, 민음사, 1만4000원

ESG 시대: 기업의 대응과 역할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다룬 입문서 ‘Coporate Social Reponsibility’가 네 번째 개정판으로 새롭게 나왔다. 지난 2008년 첫 출간 이후 기업을 둘러싼 환경적인 변화에 맞춰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확대돼 왔다. 이번 책은 기후변화, 플랫폼 노동자 문제 등 최근 새롭게 생긴 사회문제들을 ESG 측면에서 분석했다. ESG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자로, 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고려해야 하는 비재무적인 요소들을 말한다. 다양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례들을 소개하며 지배구조, 기업 공시, 임팩트투자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에서 고려해야 하는 요소들을 차례대로 다룬다. 저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결국 확대될 영역”이라고 말한다.
마이클 블로필드·앨런 머레이 지음, 정영일 옮김, 이음연구소, 2만9000원

동물복지의 시대가 열렸다
한국의 동물보호법이 올해로 제정 30년을 맞았다. 그간 동물 유래 성분과 동물 실험 없이 제품을 만드는 비건 시장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정부는 공식적으로 반려동물의 지위를 물건에서 가족으로 올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책 제목처럼 동물복지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2013년에 출간됐던 책이 2020년까지의 새로운 동물복지 이슈를 추가해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농장에 있는 동물부터 전시동물, 반려동물, 실험동물, 그리고 야생동물까지 인간 때문에 고통받는 동물들에게 필요한 복지에 대해 쉽게 풀어냈다. 또 독자가 동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주며 동물복지 실천을 권유한다. 저자는 “동물복지는 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자비며, 인간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말한다. 책은 주로 8년 전 동물복지 실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도 책에 나온 사례들과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는 건 안타까운 현실이다.
박하재홍 지음, 슬로비, 1만5000원

젠더 모자이크
“여자다움이나 남자다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는 “처음부터 ‘남성의 뇌’와 ‘여성의 뇌’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책은 여태껏 굳게 믿어왔던 남녀의 뇌는 ‘과학적으로 다르다’라는 개념을 통째로 뒤집어 준다. 저자의 주요 분석인 ‘모자이크 뇌’는 2015년에 나와 학계를 뒤집어엎은 개념이다. 그는 성인 1400명의 두뇌를 자기공명영상으로 촬영해 뇌에서 남성적 특성과 여성적 특성으로 불리는 것들의 반응을 구별해낸다. 남성 특성은 파랑, 여성 특성은 분홍으로 모자이크를 만들었다. 전통적인 믿음에 따랐다면 남성은 파랑으로, 여성은 분홍으로 가득해야 했다. 결과는 반반이었다. 남성의 뇌도, 여성의 뇌도 하나의 색으로만 나타나지 않았다. 1400명 전부. 결국 모든 인간이 여성적이면서도 남성적이고, 남성적이면서도 여성적이라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풀어냈다. 사람을 두 가지 성으로 묶을 수 없다는, 사회를 뒤집을 발견이다.
다프나 조엘 외 1명 지음, 김혜림 옮김, 한빛비즈, 1만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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