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8일(수)
평화·화해에 대해 토론… ‘대화’로 허문 불신의 벽

케냐 평화 주도한 자반 아푸두

2007년 12월 27일 열린 케냐의 대통령 선거는 온 나라를 유혈사태의 소용돌이로 밀어넣었다. 개표 과정에서 조작이 있었다는 의혹이 일며, 두달에 걸쳐 1500명이 죽고 30만명이 집을 잃었다. 폭력과 증오의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듯 보였다. 하지만 피를 흘렸던 도심 한가운데서 평화를 위한 재건의 외침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자반 아푸두(30)씨가 2009년 주도한 케냐청년평화회의(Kenya Youth Peace Summit)가 48개 부족의 200명과 함께 포럼을 열고 평화와 화해에 대해 토론하며 갈등이 해결되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분쟁 해결의 주인공으로 손꼽히는 아푸두씨를 지난 18일 부산 인디고 유스북페어 현장에서 만났다.

“이웃이 이웃을 죽이고, 친구가 친구를 죽이는 상황들이 펼쳐졌습니다. 아무도 대화를 하려 하지 않은 채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들만이 떠돌고 있었습니다.”

불과 2년 전에 지켜보았던 참상들을 떠올리는 자반씨는 힘든 이야기를 꺼내면서도 좀처럼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미상_사진_평화_자반아푸두_2010“2007년 12월 30일부터 폭동이 있었습니다. 이 폭동이 격화되던 2008년 초, 주변 친구들과 연속해서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우리가 깨달은 것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지금 수많은 폭력이 일어나고 있지만, 매우 많은 사람들이 폭력이 멈추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자반씨와 친구들은 케냐청년평화회의(Kenya Youth Peace Summit)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폭력사태가 정점에 달했던 2008년 1월과 2월에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평화를 위한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자반씨와 함께 토론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청년들이 주축이 된 이 모임은 자반이 활동하고 있던 SOS-Childrens Villages라는 NGO는 물론, SOS와 네트워크가 있던 다양한 NGO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NCCK, KELC, ELCA, Dance 4 Life 등의 단체들이 평화회의를 함께 준비했다. 그러는 사이 코피 아난 전(前)유엔사무총장의 중재로 2008년 2월 28일 여당과 야당이 평화합의안에 서명을 하고 연정을 구성했다.

물론 그것으로 폭력이 중단된 것은 아니었다. 2달에 걸친 폭력사태가 남겨 놓은 후유증은 사람들 사이에 깊은 불신과 증오를 남겨 두었다. 고향에서 쫓겨난 국내 난민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고 불안정한 연정은 오히려 치안의 공백을 초래하기도 했다. 더욱 문제가 되었던 것은 이와 같은 폭력 사태가 재발할 것이라는 불안감이었다. 폭력사태를 막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시민들의 힘이라는 믿음이 필요했다.

“우리는 케냐의 전 지역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을 나이로비로 초대했습니다. 각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사람들이기도 했고 케냐에 분포하고 있는 48개 부족의 일원이기도 한 사람들이 200명 가까이 모였습니다. 그들과 함께 포럼을 개최하고 평화와 화해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준비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했습니다.”

이것은 작은 시작이었다. 평화 회의가 끝난 후 평화회의 참석자들은 자신의 지역으로 돌아가 주민들을 초대해 평화회의에서 진행했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평화에 대해 토론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주민들은 다시 자신의 이웃이나 친구들과 토론을 벌였다. 모임이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유엔과 국제사회, 국내 정치가들조차 어찌하지 못한 불신의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며 자반씨에게는 ‘화해’라는 화두가 생겼다.

“화해는 넘어서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나 개인을, 나의 가족을, 나의 부족을 넘어서는 것을 보는 것. 국가를 위해 때로는 국가보다 더 큰 것을 위해 생각하는 것, 이것이 평화와 발전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남한과 북한 사이의 화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행동이 중요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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