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6일(목)

아동 학대는 자꾸 느는데… 쉼터 들어가기 ‘바늘구멍’

아동 학대는 자꾸 느는데… 쉼터 들어가기 ‘바늘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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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학대받은 아이들이 머무는 곳, 쉼터

충남에 있는 한 아파트. 성(姓)이 다른 일곱 명의 아이들이 한집에 산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나이대는 다양하다.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형제처럼 부대낀다. 이곳의 아침은 여느 가정처럼 분주하다. 아이들을 깨우고, 밥 먹이고, 씻기고, 학교를 보낸다. 코로나19로 외출이 어려워진 요즘 집 안은 더 복작인다. 일곱 아이를 돌보는 일은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보육교사가 맡는다. 아이들은 ‘학대피해아동쉼터’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

학대피해아동쉼터에 처음 들어온 아동은 병원의 종합심리검사를 비롯해 외상증상검사, 자아존중감검사 등을 진행한다. 아동 심리 불안 정도가 심각한 경우 병원에서 약물 치료를 받기도 한다. /김지강 기자

학대 신고가 1년 이내에 두 번 이상 접수된 아동에게서 학대 피해가 강하게 의심될 경우 아동을 가정에서 즉각 분리하는 제도가 오는 3월 시행된다. 생후 16개월 된 입양 아동이 부모의 지속적인 학대로 숨진 이른바 ‘정인이 사건’의 후속 조치다. 하지만 가정으로부터 분리된 아이들이 머무르는 학대피해아동쉼터는 전국에 76곳에 불과하다. 최대 정원은 7명. 단순 계산으로도 600명을 채 돌보지 못한다. 2019년 기준 아동 학대 판단 건수가 3만건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아동 학대 3만건, 학대피해아동쉼터는 76곳 불과

중학생 하진이(가명)는 쉼터에 오기까지 몇 번이나 짐을 쌌다 풀기를 반복했다. 시작은 아버지의 구타였다. 이유는 다양했다. ‘동생을 돌보지 않았다’ ‘대답 안 했다’는 말과 함께 주먹이 날아왔다. 아버지는 ‘훈육(訓育)’이라고 했다. 그러다 학대 신고를 받아 출동한 아동보호전문기관 담당자들을 만났다. 하진이는 학대 가해자인 아버지를 떠나 이혼 후 별거 중인 어머니와 살게 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어머니는 정신병을 앓으면서 병원에 입원했고, 결국 쉼터에 오게 됐다. 입소 당시 진행한 종합심리검사에서 하진이는 ‘자살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다. 어느 한 군데에 집중하지 못했고, 스마트폰 중독이 심했다. 쉼터 생활을 시작한 지 11개월, 지속적인 심리 치료 덕에 이제는 쉼터의 다른 아이들과도 편하게 지낸다.

고등학생인 대현이(가명)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어머니와 단둘이 살던 대현이는 경계선 지능 아동이다. 지적장애는 아니지만 평균 지능에 도달하지 못한 상황이다. 어머니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어 오랫동안 방임된 상태였다. 대현이는 쉼터에 올 당시 대소변도 제대로 가리지 못했고, 스스로 씻거나 양치질도 못했다. 가정에서 분리된 이후 임시보호시설에 머물기도 했지만, 적극적인 심리 치료가 필요해지면서 쉼터로 옮겨져 1년 넘게 지내고 있다.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르면, 학대 피해 아동이 쉼터에서 머물 수 있는 기간은 3~9개월이다. 이 기간 심리 치료를 통해 안정을 찾아주는 게 목적이다. 다만 하진이나 대현이처럼 갈 곳이 마땅치 않거나 학대 후유증으로 문제 행동이 지속할 때는 더 머무를 수 있다.

학대 아동을 전담하는 쉼터를 지원하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건 2016년이다. 학대 피해 아동에게 심리 치료나 지원을 전담해줄 공동생활 공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전국 쉼터 수는 2015년 40곳에서 2017년 57곳, 2019년 73곳으로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에는 3곳이 늘어 76곳이 됐다. 하지만 아동 학대 판단 건수는 2015년 1만1715건에서 2019년 3만45건으로 폭증했다. 쉼터에 들어가는 건 바늘구멍 통과만큼 어렵다.

심리 불안 지속으로 1년 넘게 머물기도

아동 학대 신고가 접수되면 아동학대전담공무원과 경찰이 출동해 현장을 조사한다. 이들이 학대 현장을 포착하거나 재학대 위험을 발견하는 등 긴급하게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엔 ‘응급조치’를 취한다. 현장에서 응급조치가 이뤄지는 경우는 2019년 기준 전체 신고 건수(4만1389건)의 3.2%(1309건) 정도다. 응급조치 된 아이들은 72시간 동안 아동 보호 시설이나 병원에 머물게 된다.

관할 자치구에서는 담당 공무원과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사, 심리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아동복지심의위원회’가 열린다.

접수된 사건에 대해 아동 학대 여부를 판단하고, 아동을 분리할지 원가정으로 보낼지 등도 함께 결정하는 자리다. 위원회에서 학대로 판단한 건수가 2019년 3만45건이었고, 이 가운데 83.9%(2만5206건)는 원가정 보호 조치가 내려졌다. 나머지는 가정과 분리돼 아동 보호 시설로 간다.

가정 내 학대를 피해 새로운 생활공간을 찾아야 하는 아이들이 한 해 3000명이 넘는다. 쉼터는 학대 피해 아동의 심리 치료가 가능하지만 대부분 포화 상태라 아이들은 보육원이나 그룹홈 등 일반 양육 시설로 보내지는 경우가 많다. 한 학대피해아동쉼터 원장은 “지자체에서 아이를 받아줄 수 있느냐는 전화가 수시로 온다”면서 “새로운 아이들을 받기 위해 기존에 머물던 아이를 무리해서 내보낼 수도 없어 괴롭다”고 했다.

쉼터는 들고 남이 잦다. 아동권리보장원에 따르면 2019년 쉼터에 입소한 아동은 756명, 퇴소 아동은 654명이다. 퇴소 아이들의 거주 기간을 살펴보면 1개월 미만이 247명(37.8%)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어 1개월 이상 6개월 미만이 226명(34.6%), 6개월 이상 1년 미만이 111명(17.0%)으로 나타났다. 1년 이상 장기 거주한 아동은 70명(10.7%)으로 조사됐다. 경기 지역의 학대피해아동쉼터 원장은 “아이들이 나가기가 바쁘게 새로운 아이들이 들어온다”며 “심리가 안정되고 거처가 마련되면서 퇴소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고 했다.

호준이(6·가명)의 경우가 그랬다. 아버지는 호준이를 데려가기 위해 끊임없이 민원을 제기했다. 떼를 쓰고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했던 호준이가 심리 치료를 통해 안정을 찾아갔지만 보육 교사들의 근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6개월 뒤, 호준이는 원가정으로 돌아갔다. 이내 호준이가 재학대를 받고 다른 시설로 보내졌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한 학대피해아동쉼터 관계자는 “쉼터에서 원가정으로 복귀했다가 재학대당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정말 분통이 터진다”며 “아이의 마음을 치료하기 위해 들인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쉼터를 퇴소하면 종결 사례로 분류하는데 서류가 아닌 온전한 종결 사례를 만들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사회복지사 기피 시설된 쉼터

쉼터는 국고보조금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일반 가정집처럼 아이들을 키우기에는 보조금만으로는 부족한 게 현실이다. 경기의 한 학대피해아동쉼터 원장은 “쉼터에 오는 아이들은 급박한 상황에서 가정과 분리된 경우가 많아 제대로 짐을 챙겨올 형편이 안 된다”면서 “속옷부터 시작해서 책가방까지 몸에 걸치는 모든 걸 새로 사야 하기 때문에 늘 생활이 빠듯하다”고 말했다.

쉼터 보조금은 ▲사업비 ▲운영비 ▲인건비 등 세 가지 항목으로 나뉘는데, 매년 보건복지부에서 단가를 정한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쉼터 보조금을 사업비 3030만원, 운영비 1212만원으로 동결했다. 인건비의 경우 지난해보다 4.9% 오른 1인당 2893만원으로 책정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쉼터 관계자는 “사업비에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사거나 식비, 심리치료사에게 지급하는 돈까지 모두 포함된다”면서 “특히 인건비는 1인당 비용을 정해놓고 사람 수를 곱해서 지급하기 때문에 경력에 비례한 처우를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에서 발간한 ‘아동분야 사업안내’에는 쉼터 인건비 책정 권고안이 명시돼 있다. 이에 따르면 쉼터는 ‘사회복지시설 인건비 기준 적용’이라고 돼 있지만, 실상은 20년을 일해도 보건복지부가 책정한 5년 차 정도의 임금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한 쉼터 관계자는 “보육 교사는 24시간 3교대로 아이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사회복지사들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육교사 한 명이 그만두면 새로운 사람을 구하지 못해 비상이 걸리기도 한다”고 했다.

새로운 쉼터가 설립되기는 더 어렵다.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쉼터 마련 비용으로 3억2000만원을 지급한다. 이 중 3억원은 공동생활 가정 형태인 쉼터 특성상 주택을 구하는 데 쓰는 자금이고, 나머지 2000만원가량은 쉼터에 필요한 가전제품이나 인테리어 등에 활용할 수 있다. 부동산 가격이 높은 서울에서는 신규 쉼터가 설립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황은희 학대피해아동쉼터협회장은 “서울의 한 쉼터는 30년 넘은 낡은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거나 아예 월세로 주택을 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아동 학대 예산의 약 70%는 범죄피해자보호기금과 복권기금에서 나온다.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은 법무부, 복권기금은 기획재정부 소관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아동 학대 예산이 다른 부처에 의존하는 구조라 복지부는 운용만 하는 상황이라 예산을 크게 확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쉼터는 아이들의 마음을 치유하면서 동시에 양육하는 전문 인력이 필요한 곳이지만, 현재 구조로는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면서 “아동 학대 방지를 위해서 즉시 분리제도를 비롯한 다양한 정책이 쏟아지는 건 좋지만, 아이들이 어떻게 보호되고 복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아동 보호 시스템부터 진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문일요·김지강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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