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6일(토)

“코로나 백신, 공공재 보급해야 팬데믹 끝낼 수 있다”

“코로나 백신, 공공재 보급해야 팬데믹 끝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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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티에리 코펜스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 사무총장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전설적인 야구 선수 요기 베라가 남긴 말은 코로나19에 딱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백신이 개발되면서 전 세계가 코로나 종식 희망에 들떠 있지만, 전문가들은 ‘축배를 들기엔 이르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국제 인도주의 의료 구호 단체인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 사무총장 티에리 코펜스(53)도 그중 한 사람이다. 벨기에 출신으로 20년 이상 레바논·아이티 등 전 세계 구호 현장에서 일한 그는 “국제 보건 역사를 보면 치료제가 있어도 가격이나 보급망 문제로 수십·수백만명이 죽는 일이 흔했다”면서 “만들어진 의약품이 적정한 가격으로 모두에게 보급되는 체계가 있어야 코로나19가 종식될 수 있다”고 했다.

국제사회도 전문가들의 이런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WTO(세계무역기구)다. WTO는 지난 10월부터 “의약품 보급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코로나19 관련 의약품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한시적으로 면제하자”는 논의를 시작했다. WHO(세계보건기구)도 이를 공식적으로 지지했다. WTO는 코로나19 의약품에 대한 지식재산권 면제를 두고 각국 정부의 의견을 묻고 있다. 100여 나라가 찬성했지만, ‘K방역’을 수출해 국제사회에 기여하겠다던 우리 정부는 두 달이 넘도록 묵묵부답이다.

지난 3일 서울 역삼동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소에서 만난 코펜스 사무총장은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보급을 위해서는 특허 면제 조치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거대 제약 회사가 백신과 치료제에 대한 전권을 갖게 되면, 계속해서 소외된 사람들이 나오고 결국 팬데믹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일 서울 역삼동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에서 만난 티에리 코펜스 사무총장은 “백신과 치료제는 필요한 환자에게 가닿을 때에야 비로소 효용이 있다”고 강조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지난 1999년부터 필수의약품 접근성 강화를 강조하는 ‘액세스(Access)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주제는 코로나19 관련 의약품 보급이다. /양수열 C영상미디어 기자

“코로나19 백신·치료제는 공공재로 봐야”

―백신과 치료제가 나와도 팬데믹이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는 무척 절망적으로 들립니다.

“저는 이상주의자도, 순진한 사람도 아닙니다. 안타깝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코로나19는 감염병이니까요. 가장 가난한 나라의 가장 소외된 사람에게 백신과 치료제가 닿지 않으면 절대 끝나지 않습니다.”

―’만들어진 의약품이 적정한 가격으로 모두에게 보급되는 체계를 만들어야 팬데믹이 끝난다’고 말했습니다. 정확히 어떤 의미입니까.

“백신이나 치료제를 개발한 제약 회사의 ‘수익’보다 코로나 극복이라는 ‘공익’이 우선되는 체계를 만들자는 겁니다. 현행 의약품 특허 제도는 먼저 약을 개발한 회사의 권리를 최우선으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약 하나에 열 건 미만에서 수십 건까지 특허가 걸려 있어요. 백신을 보관하는 용기 모양에도 특허가 나 있을 정도니, 후속적으로 약을 개발하려는 시도조차 막히는 겁니다. 그러니 해당 약을 독점한 제약 회사는 계속 가격을 올리고, 정작 약이 필요한 사람들은 점점 치료와 멀어지게 되죠.”

―그래서 WTO에서 특허 면제 논의를 시작한 거군요.

“현재 논의는 코로나19 관련 의약품에 대해서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TRIPs·트립스) 중 ▲특허 ▲의약품 개발에 관련된 정보 ▲저작권 ▲산업 디자인을 면제하자는 겁니다. 쉽게 말해, 의약품 개발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복제 약도 생산할 수 있게 하자는 거죠. 상시적인 것은 아니고, 글로벌 팬데믹으로서 코로나19가 종식됐다고 볼 수 있을 때까지 한정합니다.”

―비슷한 약이 많이 나오면 가격도 낮아지겠네요.

“바로 그겁니다. 각 나라 상황에 맞게 복제 약을 생산해 제때 보급할 수 있게 되니 신속한 대응이 가능해집니다.

코로나19 의약품 관련 한시적 TRIPs 면제 논의는 지난 10월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WTO에 공식적으로 안건을 상정하면서 시작됐다. 지금까지 세계 각국 정부와 관계자들이 세 차례 이상 논의를 진행했다. 중국을 포함한 100여 나라가 찬성 의사를 밝혔다. 문제는 선진국이다. 미국, 독일, 호주 등은 직간접으로 ‘반대’ 의사를 냈다. 코펜스 사무총장은 “백신을 개발하거나 물량을 확보하고 구매할 수 있는 경제력과 외교력을 가진 나라가 대부분 반대한 것”이라며 “힘 있고 돈 있는 나라만 백신을 얻는 상황이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했다.

―백신 개발 궤도에 오른 거대 제약 회사들의 저항이 특히 심각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선진국들이 나서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로비 능력은 대단하니까요(웃음). 하지만 코로나19 관련 의약품 개발에 들어간 자금을 살펴보면, 유엔이나 각 나라 정부가 내놓은 공적 자금이 대부분입니다. 아스트라제네카, 모더나 등 여섯 개 백신 후보 개발에 11월 기준 총 13조344억원의 공적 자금이 투입됐습니다. 백신 개발에 이 정도 규모의 공적 자금이 들어간 건 전례가 없습니다. 국제사회가 ‘모두를 위해’ 약을 개발해달라고 돈을 내놨는데, 제약 회사들은 임상 결과나 보급 계획만 단편적으로 공개할 뿐 어떤 기준으로 비용을 집행했는지, 백신의 안전성은 어떻게 검토했는지 공개하고 있지 않습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공적 자금이 투입됐으니 공공재로 보는 게 맞는다는 얘긴가요.

“그런 셈이죠. 게다가 지금 전 세계 백신 생산 시설을 전부 가동해도 150억개에 달하는 전 세계의 수요를 맞추지 못합니다. 복제 약이 일부 나와도 제약 회사는 생산 가능한 최대량을 계속 만들어 팔아야 하니 수익성 면에서도 큰 문제가 없을 겁니다.”

―일부 제약 회사는 원가에 판매한다고도 약속했는데요.

“제약 회사를 악마로 보자는 건 아니지만(웃음), 전 인류의 안전이 달린 일을 일부 제약 회사의 선의나 약속을 믿고 진행할 순 없는 일이죠. 또, 지금은 그 원가를 어떤 기준으로 잡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인데요.”

티에리 코펜스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 사무총장. 국경없는의사회. /양수열 C영상미디어 기자

“특허 면제 조치만으로 에이즈 사망자 줄어”

WTO는 2001년 ‘도하 선언’을 통해 에이즈 치료제에 대한 지식재산권 면제를 발표했다. 이 선언으로 매년 한 번 복용해야 하는 에이즈 치료제 가격이 1만달러(약 1085만원)에서 100달러(약 10만원)로 떨어졌고, 1990년대 수천만명에 달하던 에이즈 관련 질병 사망자 수가 2019년대에는 69만명 선으로 급감했다. 코펜스 사무총장은 “특허 면제 조치만으로 수십 년간 국제사회가 골머리를 앓던 에이즈 사망자 문제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고 말했다.

―국제 공조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얘기인가요.

“그렇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연대가 필요한 시기죠. 그럼에도 제약 회사는 그대로예요. 특허를 내 가격을 높이고 물량을 조절해서 수익을 극대화하는 거죠. 벌써 모더나가 낸 코로나19 관련 특허가 100건이 넘습니다. 국제사회가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한국 정부가 특허 면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글쎄요. 공식적으로 밝힌 게 없으니 알 수 없습니다. 한국은 원래 지식재산권 분야에서 아주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해온 나라입니다. 게다가 해외 제약 회사에서 눈치를 보며 공급까지 받아야 한다는 점도 있겠지요. 다만 선진국과 개도국으로 의견이 갈린 형국에서 백신을 수입할 경제력과 외교력을 갖춘 한국이 적극적으로 찬성 의사를 내준다면 WTO 논의에 큰 힘이 실릴 겁니다. 또, 아직 한국 기업이 백신을 내놓지 못한 상황에서 한국에도 이 조치는 손해가 아닙니다.”

지난 5월 열린 WHO 총회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선 문재인 대통령은 “앞으로 개발될 백신을 인류의 공공재로 공평하게 보급하자”고 제안했다. 코펜스 사무총장은 “이게 한국 정부의 진심이라고 믿는다”면서 “한국이 자국 이기주의를 뛰어넘은 아름다운 선례를 국제사회에 남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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