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6일(토)

[비영리스타트업] ②구독자 70만 뷰티 유튜버 “여성 인권 NGO 설립했어요”

[비영리스타트업] ②구독자 70만 뷰티 유튜버 “여성 인권 NGO 설립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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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혜원 WNC 대표

비영리스타트업 WNC의 김혜원 대표. /김종연 C영상미디어 기자

직업이 두 개에, 이름도 두 개다. 70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뷰티 유튜버 ‘에바(EVA)’. 그리고 여성 인권 이슈를 다루는 비영리 단체 WNC 대표 ‘김혜원’.

대학 신입생이던 2015년 유튜브를 시작한 그는 화장품 리뷰 영상과 브이로그(일상을 담은 영상 콘텐츠)로 인기를 얻었다. 구독자가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2018년, 느닷없이 비영리 단체 WNC를 설립했다. WNC는 ‘Why Not, Why Can’t?(왜 안 돼? 왜 못 해?)의 줄임말이다. 가로막힌 여성의 삶을 조명하는 전시회를 열고, 데이트 폭력을 막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비혼 여성들의 생각을 공유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물론 유튜버 에바로도 여전히 활약 중이다.

지난 23일 서울 광화문에서 에바가 아닌 김혜원을 인터뷰했다. 그는 “대단한 정의감이나 사명감으로 비영리 단체를 시작한 건 아니었다”고 말했다. “대학교 3학년 때 교양수업으로 ‘여성학’ 강의를 들었던 게 계기가 됐어요. 제 채널 구독자 대부분이 10대~20대 여성이거든요. 여성과 관련해 어떤 사회적인 이슈가 있고 갈등이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신청한 수업이었어요.”

강의 듣는 내내 충격의 연속이었다.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성차별과 고정관념들에 대해 낱낱이 알게 되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김혜원 WNC 대표.

“기존의 여성 인권 단체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좀 어려웠어요.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일개 대학생’이 낄 자리는 아니라는 느낌이었죠. 기껏해야 기부하는 정도? 내가 어떤 단체에 도움이 되는 것도 좋지만, 그 안에서 내가 뭘 얻느냐도 중요하잖아요. 기존 단체들의 활동에서는 그런 게 없었어요.”

추석 연휴를 앞둔 어느날, 유튜브에 올릴 영상을 찍기 위해 카메라 앞에 앉았다. 씻고 화장하고 머리 손질하면서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 영상 콘텐츠였다. 자연스럽게 명절 이야기가 나왔다. “명절 때마다 제가 보고 겪었던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관습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요. 예전에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여성학 강의를 듣고 난 후에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죠. 그냥 친구한테 이야기하듯이 제 경험과 생각을 편안하게 말했을 뿐인데 그 영상에 ‘공감한다’는 댓글이 500개 넘게 달렸어요.”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일상 콘텐츠’에 여성 인권 이슈들을 녹이면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유튜브를 하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밀레니얼과 Z세대는 자신의 삶과 맞닿아 있는 콘텐츠에 반응한다는 거예요. 제 채널의 구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도 시시콜콜한 대학 생활을 친근하게 보여주는 ‘대학생의 하루’ 라는 콘텐츠 때문이었거든요.”

그는 여성 이슈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일상 콘텐츠에 조금씩 담아내기 시작했다. 구독자들이 질문했다. ‘언니는 페미니스트인가요?’ ‘페미니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작정하고 40분짜리 영상을 만들어 올렸다.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이란 무엇인지, 성평등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평소처럼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이게 엄청 이슈가 됐어요. 두세달 만에 조회 수가 100만을 넘겼어요. 그리고 다짜고짜 악플이 달리기 시작했죠. 원래 악플에 민감한 편이 아닌데, 그때는 좀 심각했어요.”

WNC라는 비영리단체를 설립하게 된 것도 그 영상 때문이었다. 그는 “개인의 자격으로 목소리를 내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유튜버가 본격적으로 비영리단체를 설립한 건 아마도 제가 처음일 거예요. 최초 타이틀을 달고 싶어서도, 한국 사회를 바꾸고 싶어서도 아니었어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목소리를 내보자는 마음이었죠.”

WNC는 지난해 다음세대재단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함께 진행하는 ‘비영리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사업에 선발됐다. 사업비 지원도 받고 공유 오피스도 생겼다. “WNC 구성원이 총 4명인데, 적은 인원으로 많은 일을 하다 보니 눈앞의 것들을 쳐내느라 팀원 간 비전 공유가 잘 안 됐거든요. 멘토링과 교육을 받으면서 방향성이 훨씬 뚜렷해졌어요.”

‘여성들의 일상을 편하고 즐겁게!’ WNC의 새로운 슬로건이다. 여성 인권이라는 무겁고 민감한 주제를 일상으로 가져오자는 것, 친구들과 밥 먹다가도 대화 주제로 꺼내 이야기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문화’로 만들자는 것이다. 김혜원 대표는 “제도를 바꾸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일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WNC는 전시 티켓이나 굿즈 판매를 통한 수익을 다음 프로젝트에 사용하는 식으로 단체를 운영 중이다. 온라인에서는 ‘주거’와 ‘비혼’이라는 두 가지 주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늘어나는 여성 1인 가구를 위해 필요한 정보와 정책을 살펴보는 콘텐츠를 만들고, 비혼 여성을 섭외해 평소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어떤 고민들을 하는지 인터뷰로 풀어내는 영상을 찍어 올린다. 내년 1월에는 경복궁역 근처에서 ‘검열’이라는 주제로 오프라인 전시회를 연다. 여성에게 씌워진 고정관념들을 검열이라는 주제로 풀어내는 전시다.

“올초 n번방 사건이 터졌을 때 ‘성적 대상화’를 키워드로 서울스토어와 함께 티셔츠를 제작해 판매했어요. ‘I’m not to be desired but to desire’(나는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욕망하는 주체다)라는 문구를 새긴 티셔츠였어요. WNC의 수익금은 전액 한국여성의전화에 기부했고요. 누군가 이렇게 말했어요. ‘티셔츠 산다고 세상이 변하니?’ 맞는 말일 수도 있죠. 그런데 어느 날 티셔츠 구매한 분이 사진을 찍어 보내주셨어요. 그 옷 입고 카페에 갔는데 거기에서 일하는 알바생이 같은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인증샷’을 찍었다고요. 느슨한 연대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김시원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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