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음악으로 소통하는 법 배워”… 중도입국 청소년, 꿈을 노래하다

CJ문화재단 ‘튠업 음악교실’

서울다솜관광고교 학생 40명
뮤지션과 교류하며 전문적으로 음악 익혀
“함께할 친구 사귀고 장래희망도 생겼죠”

지난달 26일 서울다솜관광고등학교 학생들이 음악실에서 합주 연습을 하고 있다. 마이크를 쥔 중국 출신 유이령(17)양은 오는 12월 17일 열리는 ‘제10회 튠업 음악교실 정기공연’에서 영화 ‘알라딘’에 나온 노래 ‘스피치리스(speechless)’를 부른다. ⓒ장은주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보컬 그룹 마호가니킹의 리더였던 고(故) 이한선씨가 지난 2014년 작곡한 합창곡 ‘일곱 빛깔’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슬픈 날엔 창밖을 보아요. 너무 울진 말아요. 일곱 빛깔 고운 마음들이 당신 곁에 머물러요.’ 피부색과 쓰는 말이 서로 다른 사람들도 무지개처럼 조화를 이뤄 사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씨의 제자들이 붙인 노랫말이다. 중국·베트남·우즈베키스탄·필리핀 등 10여 개국의 중도입국 청소년들이 다니는 서울다솜관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이씨는 ‘노래 선생님’이었다. 프로 뮤지션과 다문화·위기 청소년을 멘토와 멘티로 잇는 CJ문화재단의 사회 공헌 프로그램 ‘튠업 음악교실’이 맺어준 인연이다. 이씨는 지난해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와 그의 제자들이 남긴 노래 ‘일곱 빛깔’은 튠업 음악교실을 상징하는 노래로 사랑받는다. 서울다솜관광고 학생들은 매년 크리스마스 전후로 공연을 여는데, 언제나 이 노래가 마지막을 장식한다.

‘중도입국 청소년’들에게 소통과 배려 가르치다

지난달 26일 찾아간 서울다솜관광고는 밤늦은 시간까지 악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오는 12월 17일 서울 마포구 CJ아지트광흥창에서 열리는 ‘제10회 튠업 음악교실 정기공연’을 앞두고 막바지 연습이 한창이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기타·베이스·키보드·드럼 등 악기를 능숙하게 연주하고, 스탠드마이크 앞에 서서 록 가수처럼 노래했다. 절정에 달한 음악에 맞춰 헤드뱅잉을 하다가 서로 눈이 마주치면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음악은 개성 강한 이 학교 학생들을 하나로 묶는 연결 고리다. 전교생 112명 가운데 40명이 튠업 음악교실에 참여한다. 블루파프리카, 고래야, 후추스, 아홉번째, ABTB 등 실력파 뮤지션들로부터 직접 배울 수 있어 인기가 높다.

“한국에 온 지는 2년 됐어요. 처음에는 친구도 없고, 말도 안 통해서 힘들었어요. 아버지가 중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사업을 하셔서 거의 혼자 지내고 있거든요. 튠업 음악교실이 없었다면 더 외로웠을 거예요. 이제는 음악 하면서 어울리는 친구가 너무 많아서 좀 귀찮을 지경이에요.”

주신군(17)군이 웃으면서 말했다. 중국에서 태어난 주군은 2017년 한국에 왔다. 모든 것이 낯선 땅에서 외로움을 달래준 건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와 고양이뿐이었지만, 서울다솜관광고에 진학하면서 달라졌다. 피부색도, 종교도, 언어도 다른 친구들과 악기를 연주하면서 우정을 쌓았다. ‘싱어송라이터’라는 목표도 생겼다. 주군은 “기타와 노래를 전문적으로 배우면서 직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튠업 음악교실 수업이 있는 화요일이 일주일 중에 가장 좋다”고 했다.

이날 수업에는 기타리스트 이원엽(22·활동명 워너비)씨도 함께했다. 중국 태생인 이씨는 튠업 음악교실을 통해 프로 뮤지션의 꿈을 이뤘다. 현재 한국·중국·대만 등 국가에서 공연하고, 연말에는 첫 싱글앨범도 발매할 예정이다. 2017년 서울다솜관광고를 졸업한 이씨는 이번 학기부터 모교에서 튠업 음악교실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씨는 “학생 때 서먹서먹하고 말도 통하지 않았던 친구들과 악기를 연주하면서 처음으로 웃고 떠든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며 “튠업 음악교실은 단순히 음악을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서로 소통하고 배려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라고 강조했다.

기타리스트 이원엽(오른쪽)씨는 서울다솜관광고등학교 졸업생이다. ‘튠업 음악교실’에서 기타를 배워 프로뮤지션의 꿈을 이뤘다. 올해부터 모교에서 튠업 음악교실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장은주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창작자와 청소년이 상생하는 ‘선순환’ 지향

튠업 음악교실은 CJ문화재단이 음악을 통한 청소년의 자아실현·인격 성장을 목표로 2012년 만들었다. 서울다솜관광고를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서울소년원·부산소년원·꿈이룸학교 등 아홉 기관에서 학생 895명과 강사 331명이 참여했다. 프로그램은 뮤지션과 청소년들이 문화를 통해 교류하는 선순환 구조를 지향한다. CJ문화재단은 매년 실력 있는 뮤지션을 발굴해 지원하고, 지원받은 뮤지션들은 재능 기부로 청소년들의 멘토가 되는 구조다.

후추스라는 이름의 원맨밴드로 활동하는 김정웅(31)씨는 지난 2013년 CJ문화재단의 ‘튠업 뮤지션’ 13기로 선정되면서 가요계에 데뷔했다. 음반 제작, 홍보·마케팅, 뮤직 페스티벌 참가 기회 제공 등 지원을 받았다. 2014년부터는 튠업 음악교실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소정의 강의료를 지원받지만, 김씨는 “돈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아 계속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문화 학교에서도 가르치고, 소년원에서도 가르쳤어요. 약간의 편견도 있었고, 선생님이 된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지금은 제가 아이들한테 얻는 것이 더 많아요. 소극적이고 반항적이었던 아이들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과 소통하는 과정을 보는 게 가장 뿌듯합니다. 주신군 학생처럼 재능 있는 친구를 워너비 같은 뮤지션으로 키워내고 싶다는 꿈도 생겼어요.”

이날 수업은 오후 6시에 시작해 3시간 넘게 진행됐다. 학생들은 “손가락 아프다” “목소리가 안 나온다” 등 볼멘소리를 내놨지만,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2015년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3학년 강지훈(19)군은 졸업을 앞두고 열리는 이번 공연이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한국에 온 뒤로 방 안에 틀어박혀 게임만 했다”는 강군은 튠업 음악교실에 참여하면서 비로소 한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다. 통역사라는 장래 희망도 생겼다.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베트남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기타와 피아노를 쳤어요. 음악이 없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거예요. 낯설고 외로웠던 시간을 잘 넘길 수 있게 도와준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장지훈 더나은미래 기자 jangpr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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