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목)

“가족 지켜야 한다는 ‘절실함’으로 전국 방사능 데이터 모았습니다”

방사능 진실 알리는 일본 시민단체 ‘모두의데이터’ 인터뷰

日 정부선 검출 여부만 공개, 구체성 떨어져
전국 31개 시민 측정소 운영, 자료 모아 공개
작년 11월엔 7년간 수집한 정보 책으로 펴내

소수점 단위의 정확성 위해 오랜 기다림 감수
최근 한국 여당 자료 오용으로 여론 뭇매까지

오야마(왼쪽) 사무국장과 나카무라 데이터 담당자가 땅 표면의 방사능 농도를 측정하기 위해 도쿄의 한 공원에서 흙을 채취하고 있다. 일본 시민 단체 ‘모두의데이터’는 시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지난 2012년부터 식재료, 자연환경, 토양 등의 방사능 수치를 측정해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지금까지 공개된 데이터만 2만여 건에 달한다. ⓒ모두의데이터 제공

상근 직원 4명으로 이루어진 작은 시민단체가 일본 사회를 흔들고 있다. 식재료, 환경 자료, 토양 등의 방사능 수치를 직접 측정해 정부보다 구체적이고 다양한 데이터를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모두의데이터사이트'(이하 ‘모두의데이터’)다. 지난 2012년 설립된 모두의데이터는 전국 31개 ‘시민 방사능 측정실’이 제공하는 자료를 모아 정확도를 검수한 후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도록 지도, 그래프, 표로 만들어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다. 이런 식으로 공개한 데이터 수가 2만222개에 달한다.

모두의데이터는 지난해 11월, 수년간 수집한 정보를 모아 ‘방사능 측정 지도’라는 책을 출간했다. 출간 즉시부터 지금까지 아마존 재팬 에너지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8월에는 이 책으로 일본저널리스트회의가 선정하는 ‘일본저널리스트상’을 받기도 했다. 모두의데이터를 이끌어온 오야마 기유미(54) 사무국장과 나카무라 나호코(50) 데이터 담당자를 지난 9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전국 31개 방사능 측정소에서 시민 4000명이 직접 측정한 자료 모아

2012년부터 단체를 설립해 운영 중인 오야마 사무국장은 “정부가 제공하는 방사능 정보가 구체적이지 않고 다양하지도 않아서 시민들이 직접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오야마 사무국장에 따르면, 현재 일본 후생노동성이 각 지역의 식재료나 토양 등에 대한 방사능 검출량을 공개하고 있지만 ‘검출’ 혹은 ‘불검출’로만 간단히 표시하고 있다. 또 후쿠시마현, 도쿄도 등 지나치게 넓은 지역 단위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현행 일본 식품위생법은 품목 1㎏당 100베크렐(Bq) 또는 50Bq 등 기준을 정해 검출·불검출을 표시한다.

모두의데이터는 정부와 달리 ‘검출한계’ 수치를 공개한다. 검출한계란 측정 과정에서 걸러낸 최대 방사능량을 뜻한다. 모두의데이터 홈페이지에서 홋카이도산 감자를 검색하면 42종에 대한 검사 결과가 나오는데, 불검출이라는 측정 결과 옆에 검출한계치를 함께 표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불검출(3.27Bq)’이라고 표기된 경우 세슘(Cs)-137 농도가 아무리 높아도 3.27Bq 이하라는 것을 확인했다는 뜻이 된다. 나카무라 데이터 담당자는 “검출·불검출만 발표하는 정부 방식으로는 99Bq이 나온 품목과 1Bq이 나온 품목을 구분할 수 없다”며 “결과가 같더라도 구체적 정보를 알아보기 쉽게 제공하면 시민이 스스로 제품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모두의데이터에 공개된 데이터는 식품 데이터 1만6031개, 토양 데이터 3439개, 하천이나 생수 등 환경에 관한 데이터 1752개 등 2만개가 넘는다. 모든 자료는 전국 각지에서 운영되는 31개 시민 측정실에서 자발적으로 제공한다. 나카무라 데이터 담당자는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근처나 동일본 물건만 피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7년간 측정한 결과, 동일본산이더라도 수퍼에서 판매되는 식재료는 방사능 수치가 낮았고, 야생초나 산에서 따온 버섯은 서일본 지역에서 나온 것이라도 100Bq 이상의 방사능이 검출되는 경우가 있었다”면서 “이 결과를 지자체에 알려 가나가와현 등 일부 지역의 야생초나 버섯이 유통되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정부나 정치 세력에 기대지 않고 시민들이 스스로 삶을 지켜야”

데이터를 모은 것은 자발적으로 모인 4000명의 시민들이다. 지역 시민들이 스스로 비용을 부담하고 자원봉사를 하며 측정에 참여한다. 31개 시민 방사능 측정실은 각각 400만엔(약 4300만원) 상당의 신틸레이션식 측정기나 1000만엔(약 1억원) 상당의 게르마늄 반도체 측정기를 보유하고 있다. 나카무라 데이터 담당자는 “측정기도 중요하지만 좀 더 정밀한 측정을 위해서 시민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측정기에 측정품을 1L 정도 넣어 방사능 검사를 진행하는데 이때 공기가 들어가면 안 됩니다. 감자나 고구마의 경우는 다 썰고 으깨서 넣어야 하고, 콩처럼 빈틈이 많이 생기는 건 더 잘게 가루를 내야 하죠. 오랫동안 측정할수록 정밀한 수치가 나오지만 고기나 생선, 식재료는 썩거나 발효하는 경우가 많아서 계속 상태를 확인해야 해요. 아주 고생스러운 작업이죠.”

지난달 단체는 설립 이래 가장 큰 곤혹을 겪었다. 더불어민주당 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원회가 ‘일본 올림픽 경기장 방사능 지도’를 공개하면서 자료 출처를 ‘모두의데이터’로 밝히면서다. 문제는 정확한 수치가 담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시민이 측정한 자료는 신뢰할 수 없다”며 공식적으로 단체를 비난했고, ‘나라 망신’이라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오야마 사무국장은 “우리가 측정하지 않은 곳이나 내놓은 적도 없는 수치를 발표하면서 우리 자료라고 밝혀 큰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정확한 데이터로 시민 스스로 안전을 확보할 방법을 찾자는 단체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일이라 항의 서한을 더불어민주당 측에 보냈고 현재 답장을 기다리는 상태”라고 밝혔다.

최근 모두의데이터는 200쪽짜리 ‘방사능 측정 지도’ 책을 20쪽 영문 축약판으로 만들어 그린피스 등 전 세계 탈핵 운동 단체와 활동가들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오야마 사무국장은 “방사능은 공기나 해류, 토양을 따라 국경을 넘어 움직이기 때문에 전 세계 시민들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며 “정부나 특정 정치 세력에 기대지 않고 시민이 직접 어디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8년이나 지났으니 안전하다’는 근거 없는 안일함과 ‘모든 곳이 오염됐다’는 무조건적인 공포에서 벗어나 시민 스스로 삶을 지켜나갈 방법을 찾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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