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5일(목)

[Cover Story] 지속가능한 개발, 변화의 현장② 태양광 램프로 환해진 마을… 희망도 빛을 낸다

[Cover Story] 지속가능한 개발, 변화의 현장② 캄보디아 태양광 보급 사업
인구 80% 농어촌 거주… 등유로 불 밝히지만 2주치 식비 맞먹는 가격
안전·위생 위험도 높아 제대로 된 활용 어려워
굿네이버스 지원으로 태양광 램프 보급하고 솔라홈 구축 준비 완료
등유 구입 비용 줄어들고 아이들 저녁 공부 쉬워져
자유로운 저녁 활동이 주민들 생활 의욕 북돋아
향후 배터리 충전소 설치… 태양광 전문인력 양성 등 사업 범위도 확대하기로

바람이 불자, 물 위에 떠 있는 집 전체가 출렁였다. 바닥에 손을 짚으니 검은색 물이 스며들었다. 대나무로 엮인 바닥은 군데군데 벗겨졌고, 일부는 웅덩이처럼 파였다. 할톤(49)씨는 “돈이 없어서 집 수리를 제때 못하고 있다”고 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막내 썸썸낭(7)군이 라이터로 양초에 불을 붙였다. 촛농을 떨어뜨려 양초를 고정하는 모습이 익숙했다. 양초는 집을 밝히는 유일한 빛이다. 일할 때 쓰는 헤드램프(Head Lamp)가 있지만 집 안에서는 쓰지 않는다. 건전지 비용이 부담되기 때문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양초 불이 위태롭게 느껴졌다.

캄보디아 바탐방 주(州)에 위치한 ‘꺼찌베앙(Kohchiveang)’ 수상가옥 지역.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캄보디아 ‘씨엠립(Siem Reap)’에서 배를 타고 3시간여가 걸린다. ‘삽(Sap)’ 강을 따라 끝없이 드러나는 수상가옥은 관광객에게 이국적인 볼거리다. 하지만 주민들의 삶은 처절하다. 분베잉(59) 꺼찌베앙 마을 대표는 “주민의 80%가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하는데, 산란기 5개월 동안 낚시를 못해 다들 어렵게 산다”고 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환경은 가난을 부채질한다. 분베잉 대표는 “집집마다 대부분 자동차 배터리나 등유를 사용해 불을 밝히는데, 너무 비싸다”고 했다.

①할톤씨 가족은 양초 하나에 의지한 채 어두운 밤을 지샌다. ②태양광 램프를 손에 쥔 쓴미익씨가 손녀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③짭싸랏씨와 두 딸들이 마당에 설치된 형광등 아래서 글자연습을 하고 있다. /굿네이버스 제공
①할톤씨 가족은 양초 하나에 의지한 채 어두운 밤을 지샌다. ②태양광 램프를 손에 쥔 쓴미익씨가 손녀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③짭싸랏씨와 두 딸들이 마당에 설치된 형광등 아래서 글자연습을 하고 있다. /굿네이버스 제공

◇온 가족이 2주간 먹을 양식 값이 등유 기름 값 등으로 쓰여

“어제 같은 날엔 아이들이 무서워서 잠을 못 자요.”

쓴싸이(34)씨가 부서져 내린 지붕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엮은 지붕엔 구멍이 뚫려 있었다. 간밤의 비바람을 견디지 못한 탓이다. 쓴싸이씨는 “집에서 등유를 쓰는데, 바람이 강하면 자꾸 꺼지고 불이 옮아붙을 수도 있어 켜지 못한다”며 “아이들이 비바람과 어둠이 무서워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쓴싸이씨는 어업으로 자식 8명을 키운다. 매일 부지런히 고기를 잡지만, 배 연료와 식비를 제하고 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 가난한 가정에 헤드램프 건전지나 등유 기름 값은 큰 부담이다. 쓴싸이씨는 “한 달에 24000리엘(한화로 약 8000원) 정도 드는데, 온 가족이 2주간 먹을 쌀을 살 수 있는 돈”이라며 “이 돈을 저축할 수 있다면, 집을 고치거나 아이들 교육에 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캄보디아는 가난한 나라다. 1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하루를 사는 사람이 인구의 30%가 넘는다. 전력 부족 문제는 심각하다.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전기량이 적고, 값은 비싸다. 생산 단가가 높은 화력발전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전기 사용량의 40%는 베트남, 태국 등 주변국에서 수입한다. 전체 인구의 20%만이 중앙 전력을 이용한다. 이마저도 도심 지역에만 국한돼, 인구의 80%가 사는 농어촌에선 주민 스스로가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삼능 캄보디아 바탐방 주지사는 “전기를 쓸 수 없는 시골은 생활, 위생, 교육 등 전 부문에 걸쳐 낙후됐다”며 “정부에서 ‘2020년까지 모든 지역의 에너지 접근성을 높이겠다’고 발표했지만, 어떻게 진행될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했다.

주민들은 스스로 독립적인 에너지원을 찾아 나섰다. 등유 램프나 차량용 배터리 등이 대표적이다. 캄보디아 시골 주민들은 한 달 평균 2만~3만2000리엘(한화 약 6000원~1만원)정도를 에너지 비용으로 쓴다. 전체 생활비의 10분의 1에 해당한다. 비용도 부담이지만 안전이나 위생 문제도 크다. 기름을 사용하는 만큼 매연과 화재 위험이 크고, 악천후에는 사용할 수 없다. 우기(雨期) 5개월이 지속하는 캄보디아에서 이런 조건은 치명적이다.

◇태양광 램프 덕에 개구리 잡아

‘띠니띠니'(여기예요!)

참뺏(12)군이 풀숲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한 손은 아빠 손을 잡고, 다른 손엔 큰 마대자루를 들었다. 어둠 속이지만, 램프 불빛에 비친 부자(父子)의 얼굴은 환했다. 눈찬(45)씨는 “개구리를 잡으러 갔다 오는 길”이라고 했다. 눈찬씨 손엔 ‘꺼뜨롱'(큰 잠자리채 모양으로 개구리를 잡는 도구)이 들려 있었다. 캄보디아 시골에서 개구리는 흔한 식재료다. 조심스레 자루를 열었지만 개구리는 한 마리뿐. “우기가 지났기 때문”이란다. “우기(雨期)에는 팔뚝만 한 개구리를 20마리씩 잡을 때도 있다”고 자랑했다. 큰 수확을 기대할 수 없는 건기에 이들이 개구리를 찾아나선 것은 태양광 램프 덕분이다.

반띠민체이(BanteayMeanchey) 주(州) 스놀뚜렛 지역에 사는 참뺏 가족은 지난 7월, 태양광 램프를 보급받았다. GS칼텍스, 코이카(KOICA), 굿네이버스가 함께 진행하는 태양광 에너지 지원사업을 통해서다. 일조량은 세계 최대 수준(5.3시간, 한국 3.6시간)인 데 반해, 전력 공급률은 저조한 캄보디아의 상황을 고려한 프로젝트다. 지난 2002년 굿네이버스 캄보디아 지부를 설립한 지역으로, 지역민과 관계가 돈독한 반띠민체이가 첫 번째 사업지가 됐다. 이유진 굿네이버스 캄보디아 사무장은 “무료로 보급하면 책임감이 없어질 수 있다고 판단해, 지역의 대표들과 상의해 5달러 안팎의 적정 가격을 받고 판매했다”면서 “모인 금액은 해당 지역의 개발기금으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태양광 램프가 생기니 어떻게 달라졌느냐”는 질문에 가족은 서로 경쟁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어머니 쑨클렁(40)씨가 “아무 때나 음식을 해 먹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하자, 참뺏군은 “밤에 공부하는 게 쉬워져서 시험에서 1등급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눈찬씨는 “태양광을 이렇게 쓸 수 있다는 것을 전에는 알지 못했다”면서 “돈이 절약되는 것은 물론, 우리 가정의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여줬다”고 했다.

태양광 램프 보급에 이어 솔라홈시스템(가정용 태양광 발전기) 판매도 채비를 마친 상태다. 반띠민체이 꼰뜨레이 지역의 짭싸랏(50)씨는 시범 설치의 주인공이 됐다. ‘쓰옴쓰와꿈!'(어서 오세요)을 연발하는 짭싸랏씨. 대나무에 길게 연결된 패널 끝을 보며 태양광을 어떻게 모으는지 알려줄 때도, 형광등·TV 등을 켜며 성능을 보여줄 때도 얼굴에 웃음기가 가시지 않는다. “밤에 형광등을 갖고 오리한테 가니, 벌레들이 불빛을 보고 모여들어 오리의 먹잇감이 되더라고요”라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한다. 짭싸랏씨 가족은 지난 2009년 등유 램프로 인한 화재로 집을 모두 태운 경험도 있다. 이유진 사무장은 “60W(와트) 기준으로 450달러(약 48만원) 정도가 들었는데, 이 가격을 절반으로 낮추고 할부를 이용해 주민들이 사기 쉽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솔라홈시스템은 앞으로 100대 정도가 설치될 예정이다.

◇내년 4월, 적정에너지기술센터 설립 예정

지난 5월 램프 보급으로 시작되어 솔라홈시스템 설치활동까지 이어진 사업은, 향후 태양광을 이용한 차량용 배터리 충전소, 폐배터리재생사업, 현지의 태양광 전문 인력 양성 등으로 그 범위를 확대해갈 예정이다. 내년 4월이면 ‘적정에너지기술센터’가 건립된다. 바탐방 외곽 약 1336평 부지에 건설 중인 적정에너지기술센터는 태양광 제품 제조와 연구, 교육 등을 담당한다.

22일 오전 9시. 반띠민체이 소피초등학교 운동장에 250명의 사람이 모였다. 태양광 램프 배분과 현장 교육이 진행된 날이다. 굿네이버스 캄보디아 직원들이 직접 가정을 방문, 전력 문제가 심각한 곳을 선별했다. 울창한 아카시아 나무 그늘에 모인 주민들은 저마다 호기심과 기대에 찬 얼굴로 행사를 맞았다. 이웃 주민 50명과 함께 한 시간을 걸어왔다는 흔레인(56)씨는 “굿네이버스를 통해 태양광에 대해 처음 알게됐다”면서 “손자가 태양광 램프를 쉽고 안전하게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날 현장을 찾은 옌분찻(52) 반띠민체이 지방정부 교육부 부장관은 “캄보디아에는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가 많은데, 태양광 램프로 공부할 기회가 많아져서 진학률이 높아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램프 상자를 품에 안은 쓴미익(51)씨는 “빨리 집에 돌아가 남편에게 오늘 배운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이번 사업에서 보급되는 램프는 총 1500대로, 이날 행사까지 660대의 램프 배분을 마쳤다.

이유진 사무장은 “반띠빈체이 사업을 통해 변화의 희망을 느꼈다”고 한다. 물질적으로 큰 지원을 하는 것이 아님에도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목격했다는 것이다.

“마음껏 TV도 볼 수 있고, 휴대전화를 충전할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좋은 일입니다. 무엇보다 행복한 것은 내 삶의 주인이 내가 됐다고 느낀다는 점입니다. 밤에도 낮과 똑같이 활동하게 되니까, 자유롭게 계획을 세워나갈 수 있어요. 의욕도 생기고, 모든 일에’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요.” 짭싸랏씨의 말처럼, 태양광은 그들의 마음속 어둠까지 비추고 있었다.

캄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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