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네이버스 해외 지부장 6인 대담] 빌린 양 3마리 팔아 가게 차린 아프리카 주민… 그들이 바란 건 일할 기회
NGO역할 주민이 정하고 정보공유해 실수 줄여야
가난한 사람 돕는 최선은 기회 제공해 자립 돕는 것
가난한 사람을 돕는 최선의 방법은 돈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 돈을 벌게 해주는 것이다. 가능성을 인정하고 기회를 제공하면, 이들은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해나간다. 한국 개발협력 NGO들이 해외 원조를 시작한 지 20년. 국제개발협력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목마른 아이에게 물통을 건네기보다 학교 안에 우물을 짓는다. 온종일 마실 물을 찾아 헤매던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공부를 하고, 물을 얻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단순히 모기장을 지원하기보다 모기가 번식하는 웅덩이를 메우는 등 환경을 개선한다. 당장의 성과보다 개도국의 자립과 행복을 생각하는 해외 원조. 최근 대두하는 ‘지속가능한 개발’의 모습이다. ‘더나은미래’는 굿네이버스와 함께 ‘지속가능한 개발, 변화의 현장을 가다’ 캠페인을 전개한다. 그 첫 번째 기획으로 굿네이버스 개발협력 전문가 6인 대담을 실시했다. 이들은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네 가지 어젠다(agenda)를 제시했다.
◇배우는 자세로 현장의 니즈(needs)를 파악하라
“아프리카에 처음 갔을 때, 옥수수 농장을 지어서 주민들에게 수천 가마의 식량을 보급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주민들이 ‘옥수수 말고 학교를 지어달라’고 하더군요. 결정을 보류하고 다시 마을에 가보니, 이들이 3개월 만에 밀짚으로 교실을 만들었더라고요. 마을의 234명 아이가 전부 모여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저를 본 주민들이 ‘모래와 벽돌을 교실 옆에 모아두고, 물도 저장해뒀다’면서 ‘굿네이버스가 시멘트와 지붕만 지원해줄 수 있겠느냐’고 요청했어요. 그때 깨달았죠. 개발 주체는 제가 아니라 주민들이고, NGO는 주도자가 아니라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요.”
박근선 굿네이버스 차드 지부장이 ‘지속가능한 개발’의 첫째 화두를 던졌다. 개발 협력 NGO의 역할을 현지 주민들이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NGO는 주민들에게 현장을 배우면서,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면 된다. 정금나 에티오피아 사무장도 박 지부장의 의견에 동의했다.
“2010년 헤토사라는 시골 마을에서 양 3마리를 주고 이듬해 양 3마리를 갚는 대부업을 진행했습니다. 자녀 5명을 둔 아이유라는 아줌마가 우연히 새끼를 밴 양을 받아서, 두 달 만에 양이 4마리가 됐어요. 하루에 1달러도 못 벌던 아줌마가 양 한 마리를 팔고 48달러를 손에 쥐게 됐죠. 목축업에 재미를 붙인 아줌마는 양을 판 돈으로 소를 사고, 소를 판 돈으로 양파밭을 샀어요. 이웃에게 양파밭을 대부하면서, 초등학교 앞에 학용품 가게도 열었어요. 본인이 직접 번 돈으로 아이 5명 모두 학교에 보내게 됐죠. 우리는 양을 키울 기회만 제공했을 뿐이에요. 양을 키우며 꿈을 꾸고 인생을 바꾼 건 주민들 몫이었죠.”
◇현지의, 현지에 의한, 현지를 위한 개발
굿네이버스 개발 협력 전문가들은 “현장의 니즈를 파악한 뒤엔, 주민들이 개발 주체가 되도록 프로젝트를 설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부터 카마롭 지역에서 소수력발전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이병찬 타지키스탄 지부장은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했다. 소수력발전소 부지를 선정할 때, 지역들끼리 경합을 붙인 것. 지역위원회의 조직성과 적극성을 가장 중요한 평가 요소로 정했다. 그러자 카마롭 마을 전체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마을마다 지역위원회가 생겼고, 산의 경사나 강폭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지역 환경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가정마다 1달러씩 걷어서, 수조 탱크나 파이프 수리도 가능하게 했다.
적정기술 역시 마찬가지다. 현지를 위한, 현지에 맞는 기술이 아니면 적정기술이라 할 수 없다. 굿네이버스의 적정기술을 총괄하는 이성범 국제협력실 팀장이 ‘현장’을 강조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적정기술에 ‘완성’은 없습니다. 현지 상황에 따라 함께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이 있을 뿐이죠. 실제로 몽골 지역의 열효율을 높이기 위해 개발한 축열기 ‘지세이버(G-saver)’는 지금까지 10번 이상 설계ㆍ모양이 바뀌었습니다. 축열기를 실제 사용하는 가정에 방문해 설문 조사를 하면서, 현지에 더 적합하고 주민들이 만족할 만한 설비로 보완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NGO들, 실패 사례 공유해 시행착오 줄이자
‘지속가능한 개발’의 셋째 어젠다는 ‘실패 사례 공유’다. “개발 협력 NGO들끼리의 정보 공유나 협력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기 때문이다. 박성락 중남미권역본부 본부장은 2010년 5월, 과테말라 파카야 화산 폭발로 애를 먹었다. 화산재 때문에 농사가 망하고, 키워 놓은 말도 죽고 말았다. 산간 지방 사업장을 방문할 때는 산사태가 나서 꼼짝없이 갇힌 적도 있었다. 박 본부장은 “몇몇 NGO는 화산 폭발과 산사태의 위험을 미리 알고 대처했는데, 이러한 정보가 공유되지 않아 피해를 보는 NGO가 많다”면서 “우리부터 공유하자는 생각에 산사태 출몰 지역에 위험 팻말을 세웠다”고 전했다. 박 본부장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굿네이버스 각 지부장이 “다른 NGO들은 우리처럼 시행착오를 겪지 않길 바란다”면서 현장에서 겪은 실패 사례를 하나둘 풀어냈다. 정금나 에티오피아 지부장은 “에티오피아 주민들은 공동체 문화를 불편해하기 때문에 억지로 조합을 결성하면 엉뚱한 곳에 자원을 낭비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무조건 맡기기보다는 전문가를 투입해서 초기 프로젝트를 설계해야 한다”고 전했다. 박근선 차드 지부장은 주민들에게 2000달러를 대출해줬는데 아무도 돈을 갚지 않아, 한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없었다고 한다. “차드 주민들은 체면을 중시합니다. 촌장이 돈을 갚질 않아 마을 개발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안 주민 100명이 촌장 집에 몰려갔어요. 당장 돈을 갚으라고요. 그러자 촌장이 집에 있는 쌀, 농기구를 팔면서 3개월 만에 다 갚았습니다. NGO들끼리 마을 문화를 공유하는 것도 유용할 것 같습니다.”
◇조직 경영의 해답은 ‘비전 공유’에 있다
개발협력 NGO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바로 ‘조직 경영’일 것이다. 현지인을 지부장으로 채용해도 괜찮을지, 업무를 많이 맡겨도 위험하지 않을지 걱정이 많다. 그래서 대부분의 NGO가 현지 지부장을 세우더라도, 재무회계 업무만큼은 한국인 직원에게 따로 맡기고 있다. 혹시 모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굿네이버스 국제본부 및 해외지부장들은 “현지인을 중심에 세우되, NGO의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박근선 차드 지부장은 지역개발사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직원들의 세계관 교육부터 시작했다. 세계 시민으로서의 역할과 해당 직원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지 직접 가르친다. 책임감을 심어준 덕분일까. 차드 지부 직원의 70% 이상이 5년 넘게 박 지부장과 함께 일하고 있다. 박 지부장은 “해외 연수 다녀온 직원보다 프로젝트 실패해 본 직원이 더 빨리 성장하더라”면서 “현지 직원이 실패하더라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금나 에티오피아 지부장은 “지부장-사무장-활동가로 이어지는 조직 시스템을 잘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한국인이 모두 떠나더라도 현지인들이 조직을 운영할 수 있는 분위기와 시스템을 갖추는 게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성하은 제네바 국제협력사무소 대표는 “지속가능한 개발은 ‘지구 공동체에 똑같이 주어진 환경과 자원을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가 공평하고 유익하게 나누며 살아가자’는 움직임에서 시작됐다”면서 “‘물질’이 아닌 ‘사람’을 중심에 두고, 공동체의 자기실현과 행복을 돕는 ‘통합 개발’이야말로 지속가능한 개발이 나아갈 방향”이라고 전했다.
굶주림 없는 세상,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1991년 한국에서 설립된 국제구호개발 NGO이다. 빈곤과 재난으로 고통받는 이웃이 자립적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국내 및 전 세계 32개국에서 전문 사회복지사업과 국제구호 개발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1996년에는 국내 최초로 UN 경제사회이사회(ECOSOC)로부터 NGO 최상위 지위인 포괄적협의지위를 획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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